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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5월 17일 새벽, 강남 한 상가 화장실에서 20대 여성이 30대 남성에게 살해당했습니다. "평소 여자들이 나를 무시해서 죽였다"는 게 살인의 이유였습니다. 강남역 10번 출구는 이 애석한 죽음을 애도하기 위한 사람들로 가득 찼고, 추모의 글과 '나는 우연히 살아남았다'는 문구들이 적힌 포스트잇이 나붙었습니다. 그 후 1년, 2017년의 대한민국은 무엇이 바뀌었을까요? 강남역 여성 살인 사건 1주기를 맞아 이 사건의 의미를 다시 되새겨봅니다. [편집자말]
지난 2016년 5월 17일 새벽 서울 강남역 부근 남녀공용화장실에서 30대 남성이 20대 여성을 살해한 사건과 관련, 21일 오후 강남역과 사건 현장을 오가는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 추모행진'이 수백명의 시민들이 참여한 가운데 열렸다. 20대 여성이 살해당한 현장 부근에서 시민들이 추모 묵념을 하고 있다.
▲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 추모행진 지난 2016년 5월 17일 새벽 서울 강남역 부근 남녀공용화장실에서 30대 남성이 20대 여성을 살해한 사건과 관련, 21일 오후 강남역과 사건 현장을 오가는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 추모행진'이 수백명의 시민들이 참여한 가운데 열렸다. 20대 여성이 살해당한 현장 부근에서 시민들이 추모 묵념을 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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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 그때로 돌아갈 수 없다. 그때와는 다른 나이기 때문에. 그리고 당신 역시 그렇다.

바쁜 하루하루다. 어느새 2017년이 되더니, 또 어느새 5월이 되었다. 그리고 '강남역 여성혐오 살해사건' 1주기가 되었다. 5월 내내 관련 행사를 준비하고 있는 내가 활동하는 여성주의 그룹은 그날 이후 생겨난 비서울지역 활동팀이다. 그런 우리가 1주기에 어떤 이야기를 하고자 함은 지극히 당연한 일인 것 같다. 우리는 5월 한 달 대구에서 '강남역 여성혐오 살해사건' 1주기를 맞아 이 사회의 젠더폭력을 이야기하고, 기억하고, 다시 나아가려 한다.

모르는 사람이 어느 날 날 죽이지 않을까

우리 사회에서는 하루에도 수많은 곳에서 여성들이 죽음을 당하고 있다. 그리고 2016년 5월 17일, 강남역 인근에서 아무런 관계도 없는 남성에게 한 여성이 살해당했다. 그녀가 단지 여성이란 이유로 '죽였다'. 누군가 이야기했었다. "이젠 여성이란 이유로 모르는 사람에게까지 이렇게 죽는 구나"라고.

그날, 그곳에 몇 명의 남성이 지나가는 것을 그는 아마도 숨죽인 채 바라보다가 여성이 나타나자 그녀를 죽였을 것이다. 이 사건은 나에게 실제적인 공포감, 두려움을 줬다. 살아가다가 어느 날 갑자기 원치않는 죽임을 당해도 아무렇지 않을 젠더폭력 사회에 내가 어제도 다행스럽게 살아남았고, 오늘도 살아남고 있다는 것이 절절히 다가왔다. 어두운 골목길에 대한 두려움은 더욱 온몸 가득 퍼져갔다. 이제 더는 갈 곳이 없을 만큼.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두려움으로 더 갈 곳이 없을 만큼 쫓기며 살 순 없으니까. 그런데 누군가에게 폭력을 당할까봐 무엇을 하기에도 솔직히 겁이 났다. 사무실 인근 지하철역에 추모 메시지 포스트잇 게시판을 만들러 가는 길에도 두려움이 일어 남성인 친구와 동행했다. 불안감에 주변을 살피고 조심스레 게시판을 부착하는 나를 스스로 인지하며 화가 났다. 화가 난 동시에 슬펐고, 또 두려웠다. 얼마 되지 않아 떼인 포스트잇을 정리하며 내가 있는 이곳에서도 무엇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늘도 이렇게 두려워하다 무사히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그런 걱정 없이 그저 삶을 안전하게 '살아가고' 싶었다.

비슷한 이야기를 나누던 이와 함께 사람들에게 제안해 추모발언대를 시작했다. 작은 엠프를 빌리고, 급하게 포스트잇 추모 메시지 게시판을 만들어 1호선 중앙로역 앞에 섰다. 우리는 거리에서 수많은 젠더폭력 피해자들을 추모했고, 이 사회의 혐오에 대해 말했다.

함께한 누군가들은 자신의 삶 속에서 존재했던 성폭력 경험들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이것이 추모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 '안전한 사회 속 평등한 삶'으로 이야기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안전하게 '살아가고' 싶고, 살아가야 한다고 달빛 걷기를 하며 우리는 외쳤다. 혐오에 맞서는 행동으로 문화제를 진행하며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등 이 사회의 다양한 정치사회적 약자들을 향한 차별과 혐오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하나의 개인들만의 문제로 환원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용인하고 방치해온 이 사회에 문제제기를 했다.

성별에 따라 갈리는 '안전', 생활화된 공포

2016년 6월 19일 혐오에 맞서는 작은 행동 "춤을추며 절망이랑 싸울거야" 대구문화제에서의 다이인 퍼포먼스. 2017년 5월 21일 19시. 대구백화점 앞 광장에서 혐오에 맞서는 작은 행동 두번째 문화제가 진행된다.
▲ 다이인 퍼포먼스 2016년 6월 19일 혐오에 맞서는 작은 행동 "춤을추며 절망이랑 싸울거야" 대구문화제에서의 다이인 퍼포먼스. 2017년 5월 21일 19시. 대구백화점 앞 광장에서 혐오에 맞서는 작은 행동 두번째 문화제가 진행된다.
ⓒ 김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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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어떤 일이 벌어질지 가늠할 수 없는 두려움과 함께하던 그때, 나는 이 사회의 여성혐오와 변화되어야 하는 당위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안전이 성별에 따라 다른 기준으로 존재하고 있음을, 이제는 모르는 사람에게 어느 날 내가 죽지 않을까 두려워해야 하는 불평등한 혐오 사회에 살고 있음을 이야기했다. 그것을 바꾸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나의 개인적 경험이 전혀 발화되지 않은 것은 스스로가 인생에서 성폭력 경험이 없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매일 나의 사적경험을 발화하는 것이 아니라 전반적인 사회문제를 제기했다.

그런데 어느 날, 매일 얼굴을 보며 함께한 친구가 자신이 겪어온 성폭력 경험을 이야기 하는 것을 들으며 불현듯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올랐다. 아무렇지 않게 잘 지내온 줄 알았던 시절의 어떤 경험이 말이다. 그러나 나는 그때 끝내 그것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못했다. 그저 그런 스스로를 발견하며 매우 놀랐을 뿐이었다. 그날 이후, 십 수 년 전의 일이 나를 사로잡았다. 사라진 줄 알았던 경험이 다시금 재의미화되며 내 삶의 수면 위로 떠올랐다.

나는 키가 크다. 덩치가 크다. 이 사회에서 이야기하는 여성스러운 여성도 아니고, 예쁜 외모도 아니다. 고분고분하지도 않다. 그런 내가 고등학생 때 겪어야 했던 경험들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도대체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이 사회에 존재하는 '여성다운 여성'의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는' 내가 받아야 했던 차별과 언어폭력들과 가해를 하며 깔깔대던 남학생들이 생각이 났다.

나는 그때서야 내가 사실은 아무렇지 않게 잘 지내온 것이 아니라, 있는 힘을 다해 그 시간을 버텨왔음을 알았다. '니들은 나에게 아무 것도 아니야'라며 무시해왔다고 믿었던 것이 사실은 그런 척했음을 오랜 시간이 지나 비로소 깨달았다. 내 잘못도 아닌데, 내 선택도 아닌데 타인에 의해 일방적으로 어떤 기준 앞에 세워지고, 멋대로 배제되어온 것에 대해 문제제기할 생각도 못하고, 그저 온 힘을 다해 아등바등 거리며 버텨왔을 내가 안쓰러워 펑펑 울었다.

강남역 여성혐오 살해사건은 내가 갑자기 살해당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문제적 사회에 살아가고 있음을 온몸에 박히는 두려움으로 알게 했다. 그리고 내가 억울하게 수많은 젠더폭력 속에서 내 의사와 무관하게 멋대로 놓이고, 삭제되고, 조롱거리가 되어왔음을 알게 했다. 그간 많은 책을 읽으면서 공감하고 곁의 사람들을 지지해왔지만, 정작 나 자신을 온전히 지지하지도 못하고 돌아보지도 못했음을 알게 했다.

나는 그때 비로소 직면할 수 있었다. 한쪽에서 웅크려 떨고 있는 나를 안아줄 수 있었다. 이것은 지극히 사적이지만, 한편으론 결코 사적이지만은 않은 이야기일 것이다. 많은 여성들의 삶 속에 존재하는 것들이고, 우리는 어쩌면 5월 17일 이후, 생각보다 더 나 자신을 바라보는 과정을 깊이 있게 갖고 있는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친구들을 보면서도 많이 하니까 말이다.

이제 나는 2016년 5월 17일 이전으로 돌아갈 수가 없다. 그때와는 이미 다른 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당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는 앞으로도 멈추지 않을 것이고, 멈출 수 없을 것이다. 언제까지나 '살아남'을 수 있을까 두려워할 순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안전하게 삶을 '살아가야'하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서 있는 '여기'에서 이렇게 말하고 싶다. '당신이' 바로 '나'임을, '나'는 다름 아닌 '당신'임을. 그리고 우리는 어디서든 이렇게 존재하고, 이렇게 함께 '기억'하고 있음을. 그런 우리가 바로 '여기'에 있음을 말이다.

강남역 여성혐오 살해사건은 특정한 지역과 특정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의 이야기다. 우리의 고통이고, 우리가 바꿔야할 일이다. 그렇기에 다양한 공간과 지역에서 혐오에 맞서는 행동들이 계속에서 이어지기를 바란다. "춤을 추며 절망이랑 싸울 거야." 앞으로도 나의 용기인 '당신'과 함께 지금의 절망 속에서도 춤추고, 노래하고, 거리에 설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리고 그 시간 속에서 나 역시 언제나 당신의 '용기'가 되고 싶다. 우리가 서로를 발견하고, 연결되어 가는 것. 그것이 강남역 여성혐오 살해사건 이후, 우리에게 찾아온 힘일 것이라 믿기에.  

강남역 여성혐오 살해사건 1주기 전국공동행동 기자회견 대구지역 웹포스터.
▲ 다시, 포스트잇을 들다 강남역 여성혐오 살해사건 1주기 전국공동행동 기자회견 대구지역 웹포스터.
ⓒ 김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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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 여성혐오 살해사건 1주기 전국동시다발 추모제 대구지역 웹포스터. 대구지역은 5월 17일 거리전시회 및 추모제와 21일 혐오에 맞서는 작은 행동 "춤을추며 절망이랑 싸울거야" 문화제가 진행된다.
▲ 우리의 두려움은 용기가 되어 돌아왔다. 강남역 여성혐오 살해사건 1주기 전국동시다발 추모제 대구지역 웹포스터. 대구지역은 5월 17일 거리전시회 및 추모제와 21일 혐오에 맞서는 작은 행동 "춤을추며 절망이랑 싸울거야" 문화제가 진행된다.
ⓒ 김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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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강남역여성혐오, #나쁜페미니스트, #페미니즘, #페미니스트, #여성혐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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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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