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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한 학생이 교사에게 접어 준 '종이 꽃'.
 15일, 한 학생이 교사에게 접어 준 '종이 꽃'.
ⓒ 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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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지' 잡으라고 했더니 '카네이션'을 잡고 있다."

제36회 스승의 날인 15일, 학교 주변에서 떠도는 얘기입니다. 카네이션 생화는 물론 '색종이 꽃'까지 막고 나선 국민권익위원회를 겨냥한 말이죠. "소 잡는 칼로 종이꽃까지 자르겠다고 나선 모습"이라는 비아냥거림도 들립니다.

"아이들이 쉬는 시간에 뭘 자꾸 접어다줘요, 신고하세요"

청탁금지법(부정청탁및금품등수수의금지에관한법률)에 대한 세부규정 제정과 해석 권한을 갖고 있는 권익위. 이날은 이 기관에 대한 교사들의 원성이 그 어느 때보다도 드높았습니다. 권익위가 "유독 교사들에게만 '오버'를 해도 너무 '오버'를 했다"는 지적입니다. (관련기사 : 카네이션과 '먹는 선물' 받은 게 청렴우수작?...당황한 권익위)

권익위는 지난 3월 펴낸 '새내기 학부모가 궁금해 하는 청탁금지법' 규정 홍보물에서 "담임교사에게 음료수를 주는 것도 안 된다"고 밝혔습니다. 더불어 스승의 날 카네이션을 선물하는 것도 학생 대표 등만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경기지역 초등학교의 김아무개 교사는 다음처럼 말했습니다.

"1학년 아이들이 쉬는 시간에 꼬물꼬물 뭘 자꾸 접어다줘요. 이걸 뭘 돌려보내. (받았지요.) 확 신고하시던가!"

강원지역 초등학교의 민아무개 교사도 다음처럼 밝혔습니다.

"아이가 사온 카네이션 돌려주니 '이것도 김영란 법 때문에 안 되는 거예요?'라고 해서 '교실에 기부한 걸로 하자'고 교실 뒤편에 게시했습니다."

하지만 이 두 교사는 권익위 해석대로라면 청탁금지법 위반으로 고발되거나 징계 가능성이 큽니다. 학생 대표가 아닌 일반 학생에게 꽃을 받았기 때문이죠.

전북지역과 충남지역 학부모인 문아무개씨와 박아무개씨는 다음처럼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습니다.

"종이꽃도 안 된다는 건 누구 소리예요? 하도 어이가 없어서요. 그걸 가져온 애들은 선생님이 안 받으면 얼마나 마음에 상처를 입을까요?"

"지침은 학생대표만이 꽃을 전달할 수 있다고 하는데 일반학생들이 느끼는 박탈감과 차별... 너무 기분이 별로인 하루입니다."

그렇다면 외국의 '스승의 날'은 어떤 풍경일까요? 15일자 <조선일보> "'돈 봉투 없는' 해외 스승의 날" 보도에 따르면 미국은 교사에게 '20달러 안팎의 선물'은 할 수 있도록 열어놓고 있네요. 독일과 베트남, 태국, 중국도 꽃이나 손수건을 허용하고 있고요. 우리나라처럼 종이로 만든 꽃까지 금지하고 나선 나라는 찾지 못했습니다.

물론 권익위의 해석에 동조하는 의견도 있습니다. "법과 규정은 예외 없이 적용해야 촌지도 근절 된다"는 주장입니다. 권익위도 담임교사와 학생(학부모) 사이는 '직무관련성이 있기 때문'에 꽃은 물론 캔 커피도 엄금하고 있습니다.

종이꽃도 막더니, 기자들에겐 밥값 내는 권익위

15일 교육부가 공식 홈페이지 첫화면에 올려놓은 그림. 권익위 논리대로라면 꽃을 갖고 있는 세 명의 아이 가운데 한 명이라도 '반장'이 아니면 청탁금지법 위반이다.
 15일 교육부가 공식 홈페이지 첫화면에 올려놓은 그림. 권익위 논리대로라면 꽃을 갖고 있는 세 명의 아이 가운데 한 명이라도 '반장'이 아니면 청탁금지법 위반이다.
ⓒ 교육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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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권익위는 자신에게도 이런 세밀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을까요? 이 기관에는 출입기자들이 있습니다. 이들과 권익위는 직무관련성이 충분한 사이죠. 그런데 권익위 공무원들은 기자들에게 '3만 원 이내'로 식사를 사주고 있는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10원 짜리 색종이 한 장으로 만든 꽃도 막고 나선 기관이니까 조금은 다를 줄 알았는데 여느 부처와 마찬가지네요. 이날 깊이 고민하다가 권익위에 관련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시듯 기자들도 공무원과 함께 청탁금지법 적용 대상입니다.

다음은 이날 오후 권익위의 한 중견관리와 통화한 내용입니다.

- 권익위 출입기자들도 이해당사자인데 회식비를 누가 내나요?
"업무적으로 출입기자들 뵐 때 3만 원 이하의 범위 내에서 (우리가) 사죠."

- (종이)카네이션도 선물 못하게 한 세밀한 권익위의 잣대로 판단한다면 출입기자들에게 밥 사는 것은 청탁금지법 위반 아닌가요?
"글쎄 그 부분은 제가 말하기가..."

- 기사를 잘 써주고 안 써주고 하는 이해당사자가 곧 출입기자인데...
"(권익위의) 청탁금지해석과에서 해석한 것이고. 더 이상 말씀드릴 게 없네요."

위와 같은 사실에 대해 또 다른 권익위 관계자는 "출입기자들에게 그런 것(밥을 사는 것)은 사회상규에 반하지 않고 원활한 직무수행을 위한 의례적 행위"라고 해명하기도 하더군요.

송기춘 교수 "카네이션 금지... 소가 웃을 일"

그럼 초등학교 1학년이 '10원짜리 색종이'로 접어 만든 카네이션 꽃은 사회상규에 어긋나는 걸까요? 송기춘 전북대학교 교수(법학전문대학원)는 이날 페이스북에 다음처럼 적어놨더군요.

"카네이션을 학생이 주면 안 되고 학교 전체가 주면 가능하다고? 소가 웃을 일이다. 카네이션이 도대체 '금품'인가? 재산가치보다는 거기에 담긴 고마운 마음이 전부가 아니겠는가? 제발 법해석을 그렇게 경직되게 하지 않으면 좋겠다. 물론 권익위의 해석이 결정적인 것이 되지도 못한다. 행정소송에서 김영란 법에 대한 귄익위의 경직되고 과도한 해석이 잘못되었다는 판단이 나올 것이라 생각한다. 도저히 '사회상규'에 위배된다고 보기 어려운 이런 문제에 대해 사회상규에 반하는 결과가 되는 해석을 하는 것은 김영란 법에 대한 불만을 만들 뿐이다."


태그:#스승의 날, #권익위 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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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교육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살아움직이며실천하는진짜기자'가 꿈입니다. 제보는 bulgom@gmail.com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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