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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툇마루 덮은 송홧가루
 툇마루 덮은 송홧가루
ⓒ 강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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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갔다 와?"
"서울에요."
"신랑은 같이 안 오고?"

마을 입구 밭에서 고춧대에 지지대를 세우고 계시던 김 할머니가 허리를 펴며 물었다. 나는 눈동자를 어디다 둬야 할지 모르겠다. 혀는 목구멍 너머로 말려들고.

"네... 좀, 바빠서... 내일... 올 거예요... "
"상추 뽑아줄게 신랑 오면 같이 먹어."
"네, 고맙습니다. 호호호!"

실없이 풀어지는 웃음으로 '거짓말'을 눙쳤다. 한 아름 안겨주는 상추를 받으며 김 할머니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외로 뺐다. 사방천지 송홧가루가 노랗게 날리는 날이었다.

지리산 자락 산촌마을로 귀촌한 지 햇수로 벌써 6년째다. 그런데 이 마을에 들어올 때부터 애당초 작정하고 한 거짓말이 있다. 입술에 침도 묻히지 않고, 물에 밥 말아 먹듯 술술 그 거짓말을 하며 살았다. 연기력 뛰어난 배우처럼 동네 어르신들을 감쪽같이 속여 왔다.

이언 레슬리가 <타고난 거짓말쟁이들>에서 '하얀 거짓말은 우리가 일상의 사회문제에 바르는 반창고다'라고 하지 않았나. 그러니까 나는 그 거짓말을 하면서도 양심의 가책은커녕 눈 한쪽도 깜박거리지 않았다. 매일 그 '반창고'를 다닥다닥 붙이며.

'신랑'이 있는 것처럼 뻥친 것이다. 나는 혼자 사는 여자인데 말이다. 배우자는 직장 때문에 서울에 있고, 서울에서 지리산으로 오고가며 사는 거라고. 그래서 그 '신랑'은 6년 동안 지리산을 유령처럼 오갔다.

아뿔싸! 거짓말이 곧 들통나게 생겼다. 그러니 요즘 길에서 어르신들을 만날 때면 눈치부터 살폈다. 아직 못 들으셨나? 들으셨나? 소문이 아직 안 돌았나? 속이 뜨끔뜨끔했다.

이부자리 밑에 식칼 넣어놓았던 이유  

 자기방어캠프
 자기방어캠프
ⓒ 강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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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초, 지리산 산내초등학교 운동장에서 30여 명의 여성들이 모여 구호를 외쳤다. 서울, 부산 등 전국 각지에서 모인 12살짜리 소녀부터 중년여성까지. 나는 나무그늘 아래에 서서 그들의 '안간힘(?)'을 지켜보았다. 체격 다부진 두 강사가 (최하란 강사님, 정건 강사님 'School of Movement') 그들을 지도하고 있었다. 

"하나! 차고! 둘! 차고! 발, 앞에! 일어나요!... 더 빨리 움직여야 돼요! 포기하지 마세요!... 머리 드세요! 하나! 둘! 셋!..."

"어떤 것이, 어떤 곳이 위험한가 안전한가? 내가 지금 어떻게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이 안전한가? 주체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는 게 중요해요... 여러분은 어제보다 강해졌어요. 태어나서 이렇게 해본 적이 있으세요? 누군가를 발로 차고... 더 잘 하고 싶어요? 그럼, 연습이 더 필요한 거죠!"

그들은 운동장 바닥에 온 몸을 던져가며, 공격자를 방어하고 되받아치며 도망치는 동작들을 반복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기분이 몹시 씁쓸했다. 삶이 이토록 비장할 수밖에 없나(통계청의 자료에 따르면, 2011년 기준 대한민국 강력범죄에서 여성 피해자의 비율이 83.8%). 삶은 때때로 참 블랙코미디 같다. 웃을 수도 울 수도 없게.

내가 지리산 산촌마을에서 '안전'하게 살기 위해 선택한 그 '거짓말' 역시 그런 거였다. 생존전략적인 속임수. 보호색으로 위장하기. '안심길'에 설치돼 있는 범죄예방 장치인 '모스키토' 같은 것. 그리고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씁쓸함, 비장함.

시골마을에서 혼자 살며 겪었던 일 때문이었다. 30여 가구가 모여 있는 경기도 포천의 한 작은 시골마을에서 산 적이 있었다. 허물어진 한쪽 지붕 위에 비닐을 덮어놓은 빈집에서 월세로. 아궁이도 보일러도 없는 그 집에서 겨울을 나며, 소설 습작을 했다. 근처 식당 주방에서 일을 하며.

어느 날, 일 끝내고 집에 돌아왔는데 한 남자가 방 안에 숨은 듯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덩치 큰 40대 동네 아저씨였다. 다짜고짜 달려드는 그의 완력에서 빠져나와 나는 미친 듯이 밖으로 도망쳤다. 얼마나 달렸나, 양말발로. 찬바람 휘몰아치는 겨울 논바닥 한가운데서 멈춰 섰다. 정신을 차리고 마을로 돌아가 도자기를 굽는 청년인 친구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를 동행하고 집으로 들어갔다. 그 후로도 그 남자는 술에 취해 수시로 월담했다. 방에 앉아 나를 기다렸다.

그때마다 나는 마당에 서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발칵 동네를 뒤집어놓았다. 아무리 문단속을 잘해도 여자 혼자 사는 시골집은 경계가 허술했고... 무서웠다. 잠잘 때는 이부자리 아래 '식칼'을 숨겨놓고, 손에는 지팡이처럼 생긴 긴 막대기를 들고 누웠다. 길고양이가 지나가는 기척만 들려도 벌떡벌떡 일어나 숨을 죽였다. 결국, 나는 파출소 경찰관과 동네 어르신들의 조언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야반도주하듯 조용히 그 마을을 떠났다. 도시로 이사했다. 
 
아무리 그런 일을 겪었어도, 담장 허술한 시골집에서 혼자 살려면 '거짓말' 대신 '호신술'을 배웠어야 했나? 지금이라도 '자기방어캠프'에 참가했어야 옳았나? 이라영의 <한겨레> 칼럼, '폭력이 살아남는 방식'에 나오는 글귀가 떠올랐다.

여성이 조심하도록 강조한다는 것은, 바꿔 말하면 남성의 폭력을 불가피한 본능으로 '인정'한다는 뜻이다. 진짜 폭력은 바로 이 관념에 있다. 한쪽은 폭력을 피하도록 길러지고 다른 한쪽은 폭력이 폭력인 줄 모르게 길러진다.
우리가 유부녀인 척하는 이유

 시골집 문단속
 시골집 문단속
ⓒ 강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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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거짓말'로 잔머리 굴린 나는, '남성의 폭력을 불가피한 본능으로 인정한' 꼴인가? 물론 '폭력'만 피하려고 그런 건 아니었다. 이웃집의 숟가락 개수까지 안다는 시골마을이었다. 대부분 대문도 없어서 아무 때나 이웃집을 내 집처럼 들랑거릴 수 있는 곳.

어르신들은 이웃에 두루두루 관심도 많고 애정도 많다. 앞뒷집 옆집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도시랑은 분위기가 아주 딴 판이다. 그런 개방적인 환경 속에서 혼자 사는 여자가 엮일 수 있는 구설수, 추파, 업신여김 등 성가신 일들을 지레 막기 위해서였다. 실제 그런 이유 때문에 나처럼 '유부녀'인 척하며 근방에서 혼자 사는 여자들이 꽤 된다고 들었다. 또 이런 말도 들었다.

"처음부터 나도 남편이 외국에 나가 일하고 있다고 할 걸... 요즘은 후회 된다니까요. 동네 할머니들이 혼자 살면 안 된다고 어찌나 걱정들 하시는지... 여자가 결혼도 하고 애도 낳아야 한다며 중매를 드시겠다는데... 그 남자 심성도 바르고 성실하고 좋은 남자라고, 도박만 끊으면 정말 좋은 남자라며 자꾸 만나라고 성화시니... 동네 아저씨들에게 웃으며 인사했더니 꼬리친다고 하질 않나, 다리 드러난 옷 좀 입으면 누구 꼬시려고 그러냐고 하질 않나..."

그 말이 떠올라 피식피식 웃으며, 나는 계속 '자기방어' 훈련을 구경했다. 무릎을 꿇고, 돌아가며, 일어서... 동작을 따라 해 봤다. 다리가 꼬여 몸이 굼떴다. 이래서야 원! 지리산 산내의 <문화기획달>에서 주최한 행사였다. 취지는 이랬다. 

특히 농촌에서는 일상에서 낫, 망치, 기계톱 등의 기계와 장비를 다루고, 마초적인 남성성이 강조되기 때문에 거친 말과 욕설, 위협적인 행동이 용인되는 분위기다. 폭력적인 말과 행동을 마주했을 때 쉽게 주눅 들고 위축되는 상황 앞에서, 감정에 휩싸이지 않으면서 분명히 말하는 연습과 위험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몸의 훈련이 생존을 위해 필요하다.

엉거주춤 몇 번 동작을 따라 하는데 한편, 그런 의문도 들었다. 실재 힘센 공격자를 만났을 때, 이런 훈련이 효과가 있을까? 몸도 머릿속도 패닉 상태가 되어 하얗게 얼어붙는데.

50 평생 넘게 살아오면서, 내가 겪었던 위험한 상황이 포천 시골마을에서의 그 일 뿐이었겠나. 한두 번 겪어본 게 아닌 나로서는 그 훈련에 대해 좀 회의적이었다(혐오감, 수치심, 역겨움, 무서움... 그래서 차라리 죽고 싶은 일들... 그 강도가 심하든 약하든 평생 한 번도 안 당하며 사는 한국여자가 있을까? '없다'에 500원 건다).

그런데 성폭력의 위험 속에서 여성들이(희생자가 대부분 여성이기에) 평생 얼마나 두려워하며 일상을 살아가는지 '남자'들은 알까? 보통의 여성들보다 담력이 강하기로 자타가 인정하는 나 같은 사람도, 세상엔 선행이 악행보다 천배 만배 더 많다고 믿으며, 쓸데없는 걱정은 사서 하지 않는 나 같은 사람도, 문득문득 긴장하고 경계하며 두려움에 떠는데 말이다.

인간의 영혼을 갉아먹는 그 끔찍한 고통을 정말 이해한다면, 여성이 여성대상범죄의 심각성을 호소할 때 양성평등을 요구할 때, 남자를 통틀어 '잠정적성범죄자'로 취급한다느니 역차별이라느니, 하며 거품 물고 화부터 낼 수 있을까? 설마? 

나는 다음날 캠프의 마지막 자리에도 슬쩍 찾아갔다.

"사회적으로 이런 것들이 문제다, 정신 차려야 한다, 알려야 합니다... 모든 인간의 권리는 평등합니다. 양성평등 지수가 올라갈수록 그런 행동들이 잘못된 행동이라는 의식도 높아집니다. 그런데 개인의 변화보다 사회변화는 시간이 오래 걸리죠. 여러분은 이틀 만에 변화 하셨잖아요... 개인의 변화와 함께 사회변화 운동에도 참여 하며..." 
 
끝나가는 캠프 마당의 분위기가 활기찼다. 자신감에 찬 웃음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고, 참석자들의 얼굴이 생기로 반짝반짝했다. 2박 3일 동안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지? 마지막으로 '설문지'를 진지하게 쓰는 사람들.

'내 안전을 지키는 방법을 배웠다. 필요하면 육체적으로 저항하고 맞서 싸울 것이다. 위험에 빠진 여성을 도울 것이다... 일상에서도 계속 훈련으로 이어지길 바란다. 정신적으로 강해진 것 같다. 자신감이 생겼다. 용기를 얻었다. 실재로 내게 범죄가 일어난다면 두렵겠지만 저항방법을 배웠다는 것이 대처능력을 키운 것 같고...'

나는 '자기방어캠프'의 장면들을 떠올리며, 집을 향해 동네 길을 걸어 올라갔다. 김 할머니가 준 상추봉지를 꼭 안고. 돌담 위에 삶은 고사리를 널고 있던 손 할머니와 마주쳤다. 전 같으면 할머니에게 쪼르르 달려가 곰살갑게 굴 텐데. '안녕하세요!' 인사만 던지고 제 발 저린 도둑마냥 잰걸음을 놨다.

손 할머니가 했던 말이 생각나 또 웃음이 나는 걸 참으며. 지난겨울 3개월 동안 배낭여행을 하고 돌아왔을 때였다. 길에서 만난 손 할머니가 낮은 목소리로 소곤소곤 그러셨다.

"돌아온겨? 바람나서 도망갔다고 들었는디? 그 집에 남자 손님들이 무시로 들랑거리더니... 남자랑 눈 맞아 도망갔다며?"

나는 손 할머니의 마른 손을 잡으며 큰소리로 웃었다.

"호호호! 할머니, 아니야. 바람은 무슨... 여행 갔다 왔어요. 우리 집에 남자친구들은 많이 놀러오지만... 그런 거 아니에요. 호호호! 할머니, 참 귀여우셔! 호호호!"

집 앞에서 아랫집 아저씨와 마주쳤다. '안녕하세요?' 또 인사만 던지고 후딱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 휴우~~! 며칠 집을 비웠더니 툇마루에 송홧가루가 노랗게 덮였다. 상추봉지를 내려놓는데 송홧가루가 풀썩 피어올랐다. 아랫집 아저씨가 양철문을 삐익 열었다 닫는 소리가 들려오고. 아저씨가 언젠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 집 아저씨는 왔다 갔어? 언제? 부자네. 서울에도 집이 있을 테고... 그런데 부부가 이렇게 떨어져 살면 안 돼. 남자는 혼자 오래 두면 십중팔구 한눈 팔어. 돈 버는 것도 좋지만 부부가 같이 살아야지. 무슨 일 나면 어쩌려고..."

그때도 나는 입술에 침 한 방울 안 바르고 "괜찮아요. 우리 아저씨는 그럴 사람 아니에요. 걱정 안 해도 돼요"라며 밝게 받아쳤는데.

다 '거짓말'이었다는 게 들통 나는 건 이제 시간문제다. 지난 4월에 <아이슬란드가 아니었다면>(도서출판 어떤책)이 출판됐기 때문이다. '죽을 만큼 힘들고, 눈물 나게 외롭고, 아찔하도록 위험한 여정'이었던, 실패를 찬양하는 나라에서 71일 동안의 히치하이킹 여행기. 그 책에 내 사생활을 낱낱이 까발렸으니. 설마, 동네 어르신들이 그 책을 읽으시겠나. 아들이나 딸들이 읽게 되면, 그편에 듣게 되겠지.

송홧가루가 바람에 날리듯 노랗게 소문이 돌기 전, 내가 먼저 고백할까? 이만저만해서 이만저만 했다고. 인심 좋은 마을이고 어르신들도 다 좋은 분들인데 (정말 다행이다), 나를 많이 예뻐해 주시는데, 죄송하다고. 그래도 이젠 참 못 믿을 사람이라며 언짢아하실까? 상처받으실까? 그동안 할머니들과 쌓은 친밀감이 깨질까?

안절부절 어쩔 줄 모르겠다. 바람이 분다. 지리산 골짜기에 송홧가루가 노랗게 날아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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