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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가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자유한국당 개표상황실에서 사실상 패배 승복 발표를 하고 자리를 떠나고 있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가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자유한국당 개표상황실에서 사실상 패배 승복 발표를 하고 자리를 떠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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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사건 사고가 잦았던 탓이었을까. 상대적으로 단기간에 치러졌지만 길게 느껴졌던 대선이 드디어 끝났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내심 우려했던 일은 끝끝내 발생하지 않았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는 24%의 지지율을 얻었고 대통령에 당선되지 못했다.

그런데도 홍 후보가 얻은 것이 없는 건 아니다. 비록 간판을 바꿔 달긴 했지만, 사실상 그는 비리 혐의로 탄핵당한 전임 대통령의 소속 정당 후보로 나섰다. 이것만으로도 엄청난 악조건 속에서 선거를 시작한 셈인데, 심지어 후보자 본인도 문제적 행보를 보였다. 홍준표 후보는 과거 성범죄에 공모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일었고, 막말과 실언 또한 이어졌다. 이러한 상황을 감안한다면 홍 후보의 지지율 약진은 놀라운 수준이다.

이 같은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 모든 악재를 뚫고 정치적으로 유의미한 득표율을 이끌어 낼 만큼 홍준표가 스스로를 매력적인 후보로 포장하는 데 성공한 것일까. 사실 그렇지도 않다. 정치적 입장을 차치하고 보아도 그는 너무나도 알맹이가 없는 후보였기 때문이다.

홍 후보는 스스로 서민 대통령이 되겠다 자임했지만 지루한 가족사만을 되풀이했을 뿐 정책이나 비전에 있어 달리 주목할 점을 드러내지 못했다. 복지나 경제에서도 다를 건 없었으며, 심지어 자신이 강점으로 미는 안보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모든 대선 주자들이 공약만으로 지지를 호소하는 것은 아니지만 홍 후보의 경우 정도가 심했다. 그가 대통령으로서 무슨 일을 할 것이며 어떤 정부를 꾸릴 것인지 전달되지 않을 정도였다.

적대와 증오, 홍준표 유세의 모든 것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가 8일 오후 서울 중구 대한문 앞에서 유세를 펼치자 지지자들이 환호하고 있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가 8일 오후 서울 중구 대한문 앞에서 유세를 펼치자 지지자들이 환호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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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홍준표 후보는 자신의 유세를 무엇으로 채웠을까. 답은 다른 후보나 특정 집단에 대한 비방과 적대다. 홍 후보는 '자유 한국'을 지키기 위해 뚜렷한 국방 정책을 부각하는 대신 '친북 좌파' 후보를 당선시켜선 안 된다고 말했으며 사회 질서를 바로 잡기 위해 전교조와 민주노총을 용납하지 않겠다고 주장했다.

이들뿐이겠는가. 그는 SBS의 세월호 인양 고의 지연 논란 보도가 비판을 받고, 끝내 사과 방송을 내놓았을 때도 자신이 당선된다면 해양수산부와 SBS 8시 뉴스를 없애버리겠다고 공언했다.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는 사람들에겐 "억울한 죽음을 대선에 이용하는 나라를 우습게 보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선 기간 내내 막아야 할 '위험 세력'과 적대해야 마땅한 '문제적 집단'을 지목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입지를 쌓았다.

일각에서는 이런 홍준표의 언행을 놓고 전통적인 보수 표심을 붙들기 위한 전략에 불과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사실 홍 후보의 행보를 보자면 그는 정말 대통령에 당선되는 것보다 탄핵으로 사분오열된 보수 세력을 다시 모으는 데 더 큰 관심을 가졌던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지지층 외연 확대를 위한 노력도 없었다. 그가 일관성 있게 강변한 색깔론이나 귀족 노조론은 중도 혹은 진보 성향 유권자들에게 되레 반감을 살만한 주장이었다.

문제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홍 후보가 '증오 선동'이란 방식을 택했다는 점이다. 나는 그가 대선 기간 내내 '실언'을 한 것이 아니라 전략적으로 선택한 '발언'을 했다고 생각한다. 특정 집단을 향한 혐오와 적대는 매우 강력하기 때문에 단기간에 열렬한 지지자들을 결집시키는 데 매우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 있다.

사회적 약자는 홍준표의 '제물'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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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같은 전략의 한계는 명확하다. 할 줄 아는 것이라곤 악성 포퓰리즘을 퍼트리는 것뿐인 후보가 유권자들의 보편적인 지지를 얻기는 힘들다. 하지만 이러한 조건도 상황에 따라선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미국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이나 프랑스 마린 르 펜의 약진을 보자.

이들은 선거 기간이나 정치 생활 내내 이민자와 소수자들에 대한 혐오 선동으로 악명이 높았던 인물들이다. 하지만 기성 정치 세력이 여러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그들에 대한 환멸이 높아지자 극우 후보들의 배타적인 태도는 정치적 자산으로 바뀌었다. 이들은 자신의 폭력성을 '정치적 아웃사이더'라는 정체성으로 가려버렸고 손쉽게 책임을 전가할 대상을 찾아 혐오하며 지지세를 얻었다.

사실 이는 미국이나 프랑스만의 문제라고 보기도 어렵다. 정치에 대한 체념과 포기는 한국 역시도 반복적으로 겪어온 일이기 때문이다. 또한 당장 홍준표 후보가 적대와 증오를 팔아 얻은 결과물만 봐도 상황은 심각하다. 기껏해야 한 자릿수 지지율도 넘지 못할 것 같던 그가 결국 득표율 2위의 자리에까지 오르지 않았는가.

기억해야 할 것은 그가 노조나 진보 세력만을 제물로 삼지 않았다는 점이다. 홍 후보는 유세를 마치고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면서 "동성애는 하늘의 뜻에 반하는 것이니 금지가 아니라 엄벌을 해야 한다"고 발언한 적도 있다. 적의를 자극한 후 스스로 반대자를 자임해 지지를 끌어올 수 있다면 딱히 대상을 가리지 않는 것이다.

홍 후보가 건들지 않았을 뿐, 한국 사회에는 혐오 대상으로 손쉽게 전락하는 집단이 상당히 많다. 이자스민 전 의원 사례에서 보듯, 비백인 이주민에 대한 혐오는 우리 사회도 미국이나 프랑스 못지않은 수준이다.

홍준표의 기행에 웃을 수 없는 이유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가 8일 오전 부산시 부산역 광장에서 유세를 펼치고 있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가 8일 오전 부산시 부산역 광장에서 유세를 펼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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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는 국민 대다수의 지지를 받거나 누구도 반대하지 않는 후보가 뽑히는 시스템이 아니다. 또한 위험 인물의 당선을 막을 수 있는 제도도 아니다. 그저 가장 많이 표를 얻은 후보가 선택되는 체계에 불과하다. 이는 홍준표와 같은 사람이 아무리 문제적 언행을 하고 반발을 사도 공직에 선출되는 것이 가능함을 의미한다. 그가 어떤 방식으로 지지를 모았건 간에 말이다.

우리는 특정 집단에 대한 증오 선동을 통해 대표자에 오른 이가 나라에 무슨 일을 벌였는지 똑똑히 보았다. 혐오는 용인됐고 특히나 소수자 개개인들의 삶과 권리는 파괴되거나 그럴 위험에 놓였다. 그렇기에 대선 기간에 홍 후보가 보인 모습을 단순히 비웃음거리나 해프닝 정도로 치부해선 안 된다.

홍준표는 세계적으로 만연하고 이미 큰 해악을 초래한 정치 방식으로 위기를 돌파하고자 했고, 생각보다 큰 성과를 거두었다. 꼭 홍준표가 아니더라도 다음 선거에서 같은 방식으로 지지세를 불리려는 후보가 등장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런 상황에서 혐오와 차별 앞에 스스로를 보호할 수 없는 사람들은 어떤 운명을 맞게 될까.

증오를 선동하는 유세 방식을 막을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지금의 위험 신호가 끔찍한 재앙으로 돌아오길 바라지 않는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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