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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수정 : 8일 오후 4시 5분]

'무임승차론'은 한국과 같은 동맹국들에게 '안보 무임승차론'을 들이대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전유물만은 아니다. 5자 대결로 굳혀진 19대 조기대선에서도 이 '무임승차론'이 조용하게 인기를 얻고 있다. 이제는 식상하기까지 한, 마치 소멸해 가는 듯한 '사표론'을 대신해서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공동선대위원장이 "정의당에 대한 지지는 다음 선거에 해도 괜찮지 않나"라는 발언으로 파장을 일으켰던 지난 2일, SNS에서는 "2002년에 처음 대선투표를 한, 그 이후로 정치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살아온, 30대 중반의 사회인"이라고 밝힌 글쓴이의 장문의 글이 화제가 됐다(관련 링크 :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humorbest&no=1427050 ). 글쓴이는 "그래도 문재인이 될 거 같으니 소신투표로 심상정 뽑겠다는 분들은 네, 소신투표 하십시오"며 "냉정하게 말씀드리죠. 그거, 무임승차입니다"라고 주장했다.

일부 전현직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이 글을 두고 "올킬"이라며 본인들의 SNS 계정에 퍼 나르기까지 했다. 사실 기존 '사표론'과 다를 바 없는 주장이다. 좀 더 수구 기득권 세력의 폐단들을 나열하고, 훨씬 더 감성적인 호소가 담겼을 뿐이다.

'사표론'에 이어 '무임승차론'까지... 문재인 캠프도 가세 

6일 오후 서울 강남역 부근에서 남편 이승배씨(가운데)와 함께 유세하던 심상정 정의당 후보가 노회찬 의원을 소개하고 있다. 심 후보는 오랜 정치적 동지인 노 의원을 '남편'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오늘 진짜 남편이 누구인지 알리게 되었다고 소개하자 모두 웃음을 터뜨리고 있다.
▲ 심상정 '노회찬은 제 남편이 아닙니다' 6일 오후 서울 강남역 부근에서 남편 이승배씨(가운데)와 함께 유세하던 심상정 정의당 후보가 노회찬 의원을 소개하고 있다. 심 후보는 오랜 정치적 동지인 노 의원을 '남편'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오늘 진짜 남편이 누구인지 알리게 되었다고 소개하자 모두 웃음을 터뜨리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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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우상호 위원장이 "문 후보의 지지율이 35~40% 사이 박스권에 갇혀 있다"며 "문 후보에게 절대적 지지를 보내 개혁 동력을 만들어주길 바란다. (심 후보 지지보다) 정권교체에 집중해주는 것이 시대정신에 맞는 것"이라고 했던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지지율 수치는 사실일 수 있다. 반면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지지층 결집'을 시도하기 위해 '엄살'이나 '과장'까지 동원해 지지율 상승을 도모해야 하는 선거 캠프 입장이 반영된 주장일 수도 있다.

이에 대해 정의당은 "심 후보의 지지율 상승 기반은 20대, 청년, 무당층으로 파악되고 있다. 민주당이 기존에 보듬지 못했던 계층이 정의당을 주목하고 있다"라며 "심 후보의 지지율 상승은 문 후보의 지지율과는 별로 관련이 없다. (우 위원장의 말은) 매우 부적절한 발언으로 유감을 표한다"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이와 관련 정의당 노회찬 상임선거대책위원장은 지난 4일 기자간담회에서 "지금 1위를 달리고 있는 후보 진영에서 '정의당에는 다음에 투표를 해달라'는 말을 연거푸 하고 하는 것을 볼 때, 심 후보의 지지율이 두 자리 수를 기록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며 우회적으로 심 후보 지지율 상승을 강조하는 전략을 구사하기도 했다. 

문제는 지난 4~5일 치러진 사전투표 기간을 거쳐 선거일이 이틀 앞으로 다가온 7일까지 이러한 '사표론', '무임승차론'이 거세지는 것은 물론 일부 문 후보 지지자들의 진보정당 전체에 대한 비판이 자칫 혐오로까지 번지고 있다는 점이다. 일부 민주당 의원들이 출연하기도 했던 팟캐스트 <권갑장의 정치신세계>의 진행자 중 한 명인 김성진씨와 참여정부 시절 홍보수석을 지냈던 조기숙 이화여대 교수의 소셜미디어 글이 대표적이다.

구좌파(진보정당)과 보수는 적대적 공생관계?

"투표 X같이 하면 노무현이 죽고 용산철거민이 죽고 세월호아이들이 죽는데 아직도 아무 생각없이 투표 X같이 하는 저능아들 보면 정말 죽빵을 날리고 싶다. 야이 저능야XX들아, 권영길이랑 민노당이랑 통진당이랑 정의당에 표 찍어줘서 세상이 그동안 뭐가 얼마나 달라졌어요?"

최근 문 후보 지지자들 사이에서 다수 공유된 김씨의 글이다. 7일 오전 정의당 김종철 동작구 공동위원장은 "이 분이 민주당과 관련해 뭘 하는 사람인가 보죠? 문재인 표 낮추는데 혁혁한 공을 하는 것 같은데..."라며 이 글을 공유했다. 김씨의 글은 사실 앞서 언급한 '무임승차론'을 욕설을 섞어 축약한 버전에 가깝다. 이러한 글이 문 후보의 지지율 상승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다. 또 앞선 6일 오후, 조기숙 교수는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글도 2천 여회 리트윗 되며 반향을 얻었다.

"심상정에 이은 김종대의 유승민 지지, 혼란스러우신가요? 구좌파와 보수는 적대적 공생관계입니다. 2007년 대선 민노당 지지자 다수가 권영길이 아닌 이명박을 지지한 것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민주당과 정의당은 연대 가능성 있는 경쟁관계일 뿐입니다."

진보정당을 "구좌파"로 정의하고 "구좌파와 보수는 적대적 공생관계"라고 단정한 조 교수. 그가 문제 삼은 "심상정에 이은 김종대의 유승민 지지"의 근거는 최근 선거 유세에서 "보수라 날 안 찍으면 유승민을 찍어달라"는 심상정 후보의 발언과 한 라디오방송에 출연, "자기 당이 아닌 대통령 후보 1명만 선택해달라?"는 질문에 "유승민 후보에게 한 표 드리겠다"고 발언한 정의당 김종대 의원의 '워딩'을 문제 삼은 것이다.

이에 대해 6일 임한솔 선대위 부대변인 역시 6일 논평을 통해 "김종대 의원의 발언은 합리적인 보수유권자라면 홍준표 후보가 아니라 차라리 유승민 후보를 응원하는 것이 낫다는 취지였다"며 "하지만 조기숙 교수는 실제 방송내용의 전후맥락을 무시한 채 김종대 의원의 발언만 왜곡해 마치 정권교체를 반대하는 것처럼 표현했다"며 유감을 표했다.

한편 조 교수가 "2007년 대선 민노당 지지자 다수가 권영길이 아닌 이명박을 지지한 것이 바로 그 증거"라며 든 증거는 2007년 대선 당시 <한겨레21>의 설문조사 중 민주노동당 지지자 501명 중 34.8%가 이명박 후보를 지지한다고 밝힌 대목이다. 이 조사에서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는 14.8%의 지지를 받는데 그쳤다(이밖에 정동영 9.8%, 손학규 7.4%, 이해찬 5.6%, 무응답, 모르겠음 22.2%였다).

잘 알려진 대로, 2007년 대선은 참여정부의 실정과 열린우리당으로 대변되는 '범여권'의 실망으로 인해 '경제'와 '보수화'가 주된 화두였던 선거였다. '뉴타운'으로 집약되는 이명박 후보에 대한 폭넓은 지지는 세대를 뛰어 넘기도 했고, 전통적인 야권과 진보전당 지지층의 이탈을 낳기도 했다. 또 민주노동당 내부에서는 전통적으로 조직세가 강한 권영길 후보가 연이어 대선 후보로 선출됨으로서 지지자들이 피로감을 호소했던 내부 사정도 간과할 수 없다.

이렇게 구체적인 전후 맥락을 거세시킨 채, 단순한 수치 하나를 가지고 결과를 확대시키고 2007년과 2017년의 상황을 비약시키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이에 대해 역시 참여정부 시절 국민경제비서관을 지냈던 정태인 정의당 정책자문담당은 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렇게 반박했다.

"'구좌파와 보수는 적대적 공존관계다'. 그 증거는 2007년 대선에 관한 여론조사다. 민주노동당 지지자의 35% 정도가 이명박을 찍었다는 여론조사. 명쾌하다. 그리고 단순무식하다. 2002년 대선도 똑같이 조사하면 어떻게 나올까? 모르긴 몰라도 민주노동당 지지자의 70% 이상이노무현을 찍었을 거다. 그럼 '구좌파와 민주당은 더 열렬한 적대적 공존관계'인가? 단순 통계에서 바로 결론을 도출하는 건 도대체 어디서 배운 걸까?"

문 후보 지지자들에게 필요한 것, 진보정당 네거티브 아닌 5060 포지티브

문재인 더불어민주당(오른쪽), 심상정 정의당 대통령 후보가 2일 저녁 서울 마포구 상암동 <문화방송>(MBC)에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주최로 열린 토론회 시작에 앞서 인사를 하고 있다.
▲ 인사하는 문재인-심상정 문재인 더불어민주당(오른쪽), 심상정 정의당 대통령 후보가 2일 저녁 서울 마포구 상암동 <문화방송>(MBC)에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주최로 열린 토론회 시작에 앞서 인사를 하고 있다.
ⓒ 국회사진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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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한솔 선대위 부대변인은 조기숙 교수를 향해 "개혁진보진영의 감정적 분열을 조장하는 행위를 즉각 중단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며 "만일 이런 일이 다시 발생한다면 선관위 고발 등 법적조치까지 고려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도 그럴 것이, 넘쳐나는 진보정당에 대한 혐오도 모자라서 '진보정당과 보수세력이 공생관계'라는 워딩은 도를 넘어도 한참 넘은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여론조사 공표가 금지되는 '블랙아웃' 기간이야말로 네거티브와 흑색선전이 가장 극성을 부리는 시기인 것은 맞다. 그럼에도 위와 같이 감정 섞인 분노와 비방은 지양돼야 마땅하다. 실제로 정권교체가 기정사실화 된다면,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은 함께 정책연합을 이루고 연대해야 할 주체들이 아닌가. 

더욱이 일부 지지자들의 태도와 달리 문 후보는 대선 TV 토론에서도 "정의당이 역할 많이 해 달라. 같이 하자"는 요지의 발언을 여러 차례 한 바 있다. 특히 지난 2일 열린 3차 토론에서 심 후보의 개혁공약 이행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 문 후보는 "정의당을 비롯해서 다른 당들하고 충분히 대화하면서 타협해 나가겠다"고 답한 바 있다.

"최근 모든 여론조사에서, 아직까지 정의당을 지지한다고 하면서 근데 누구 찍겠냐고 물어 보면 심상정 찍겠다는 사람이 반밖에 안 돼요. 지금도 정의당 지지자의 반은 떳떳하게 정의당 지지한다고 밝히면서도 다른 후보(문재인)를 찍고 있는 거예요."

최근 팟캐스트 <김어준의 파파이스>에 출연한 노회찬 위원장은 "벼룩의 간을 빼먹어서야 되겠냐"며 심 후보의 지지율 추이에 대해 이렇게 토로했다. 불안 심리가 극에 달하는 이른바 '깜깜이' 선거 기간이야말로 1위 후보에 대한 쏠림과 진보정당 표심이 기성 야당으로 이동하는 현상이 두드러진다는 기간이라는 것은 정설에 가깝다.

이번 대선이 문 후보와 보수 단일화 후보의 양자 대결이었다면, 심 후보 지지자 중 다수는 이미 사전 투표부터 문 후보에게 표를 주지 않았을까. 심 후보의 10% 돌파도 낙관할 수 없다던 노회찬 위원장. 그의 앞선 발언도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작금의 사표론이, 무임승차론이 타격하는 대상이 실제로는 이렇게 허망하다

그런데도 향후 연대의 대상임이 분명한 진보 정당과 그 지지자들에게 '혐오'와 '존재 부정'을 일삼는 행위는 가혹하다 못해 부끄러운 짓 아니겠는가. 5자 대결이 굳어지는 상황에서, 50% 돌파도 좋지만 대선 이후 '개혁정국'을 위해 연대를 도모하는 것도 필요하지 않겠는가. 더욱이, 이번 조기대선을 이뤄낸 결정적 계기가 '촛불시민'들의 연대였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될 것이다.

"한 표가 아쉽다"는 문 후보의 말마따나, 문 후보 지지자들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진보정당과 후보에 대한 네거티브가 아닌 5060세대에 대한 포지티브 전략이다. <썰전> 전원책 변호사가 '최고의 정책'으로 꼽은, 문 후보가 직접 만들었다는 '치매국가책임제'와 같은 좋은 공약이 있지 않은가. 지금이야말로 심 후보 지지율이 높은 20대 선거인수보다 무려 8.6%나 많은 60대 이상 유권자들을 설득해야 할 때 아니겠나.


태그:#문재인, #심상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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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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