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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겨울 촛불 집회를 계기로 '18세 선거권' 등 청소년들의 참정권에 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일어났다. 그러나 일부 정당들의 소극적 자세나 반대 속에 대선 정국이 되자 청소년 참정권에 대한 관심은 다시 사그라지고 있는 분위기다. '청소년인권연대 추진단'은 청소년들의 정치적 권리 전반의 문제가 이슈화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여, 3월부터 청소년들의 정치적 권리가 탄압 받은 사례를 수집했다. 그 결과 모인 사례들을 소개하며 청소년 참정권 보장을 위해 풀어야 할 과제들을 제시하고자 한다. 5월 9일 대선일에는 광화문에서 청소년 참정권 보장을 요구하는 청소년 집회가 열릴 예정이다. - 기자말

지난달 10일 광화문광장에서 아수나로 등 청소년 단체들이 '18세선거권만으로는 부족하다, 제대로 된 청소년 참정권을 요구한다'는 내용으로 기자회견을 했다.
 지난달 10일 광화문광장에서 아수나로 등 청소년 단체들이 '18세선거권만으로는 부족하다, 제대로 된 청소년 참정권을 요구한다'는 내용으로 기자회견을 했다.
ⓒ 아수나로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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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관여' 금지, 집회 금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헌법 제1조이며, 광장에서 촛불을 들었던 시민들이 가장 많이 외쳤던 말 중 하나일 것이다. 광장에 백만 명이 모이면서,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시키면서, 우리가 말한 '민주주의', '민주공화국'이란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물론 우리가 선출한 대표가 권력을 사유화하지 않고 공익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는 요구였으며, 선거에서 뽑힌 대통령이라 하더라도 시민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고 잘못을 했으면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원칙이었다.

그리고 또한 민주주의는 그 무엇보다도 그렇게 모여서 이야기할 자유 그 자체였다. 두려움 없이 생각하고 이야기하고 모일 수 있는 자유, 즉 양심·사상의 자유, 언론·표현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 등이 보장되고, 이와 같은 사람들의 자유로운 정치적 활동에 따라 세상이 움직이는 것이 민주주의의 기본적인 구상인 것이다. 그러므로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및 지원 배제나 언론 탄압, 집회의 자유 침해 등은 비선실세의 권력 사유화만큼이나 심각하고 노골적인 민주주의 훼손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딱히 '후퇴'랄 것도 없이, 오랜 시간 동안 민주주의가 제대로 실현되지 않고 있는 곳이 있다. 바로 초·중·고등학교이다. 많은 학교들이 학생들의 표현의 자유, 결사의 자유를 비롯하여 정치적 권리를 직접적으로 침해하고 금지하는 규칙을 갖고 있다. 예컨대 다음은 재학생이 제보한 서울시 강남구에 있는 한 고등학교의 학칙이다.

학생회 회칙
제3조 (자격) 본 회의 회원은 본교 재학생으로 한다. 다만 휴학중이거나 또는 정학 이상의 징계 처분을 받은 때는 그 기간 중 회원으로서의 권리행사가 정지된다.
(......)
제6조 (금지) 본 회의 회원은 정당 또는 정치적 목적의 사회단체에 가입하거나 정치활동을 할 수 없으며, 학교장의 행정사항에 관여할 수 없다.

퇴학 처분
(......)
④ 정치에 관여하는 행위를 하거나 학생 본분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 자


재학생의 정당 또는 정치적 목적의 사회단체 가입을 금지하고 있으며, 정치활동을 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한 정치에 관여하는 행위를 하면 퇴학을 시킬 수도 있다고 정해 놓고 있다. 군사독재 시절, 아니 일제 시절부터 있었을 법한 이러한 학교 규칙들이 여전히 많은 학교에 존속하고 있다. "불온한 문서를 배포하는 것"이나 "학교장의 허락 없이 외부 단체의 행사에 참여하는 것"을 징계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는 경우들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이런 학교 규칙들은 평소에는 있는 줄도 모르지만, 문제가 되면 바로 학생들을 탄압하는 근거가 된다. 지난 2016년 11월 촛불 집회에 많은 청소년들이 참여했고 그중 상당수는 초·중·고 학생이었는데, 집회에 참가하지 말라고 압박을 가했다거나, 심하면 집회에 참가했다고 벌점이나 징계를 줬다는 사례들이 있다. '청소년인권연대 추진단'에 제보한 한 고등학생은 "촛불 집회에 간 사진을 반 단체 카카오톡방에 올렸더니 학교 대청소 10일을 하는 벌을 받았다"라고 증언했다. 네이버 지식in이나 카페 게시물 중에서도 그런 내용의 글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헌법은 물론 유엔아동권리협약 등에 명시된 정치적 권리를 노골적으로 짓밟고 있는 것이다.

2008년 광화문 촛불시위가 벌어질 당시 서울시교육청은 서울 시내 전 고교 교감 회의를 소집해 "학생들의 집회 참석을 못하게 설득하라"고 지시했다. 또 2016년 경북교육청은 학생들의 사드 배치 반대 집회 참여를 자제시키는 공문을 내려보냈다. 변함없이 민주주의와 거리가 먼 학교의 현실이다.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카페에 올라온, 촛불집회 참가로 벌점을 받은 이야기 캡쳐
▲ 촛불집회참가로벌점을받은이야기캡쳐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카페에 올라온, 촛불집회 참가로 벌점을 받은 이야기 캡쳐
ⓒ 유윤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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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의 입을 막는 학교

집회에 참가하거나 단체 등에 가입할 자유만 침해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정치적 자유의 가장 기본적인 출발점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생각하고 의견을 표현할 자유, 즉 언론·표현의 자유이다. 그래서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행위나 독재 정치를 가리켜, 사람들의 눈과 귀와 입을 막는다고 비유적으로 표현하곤 한다. 그리고 학교에서 바로 그런 일들이 일어난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맞이하여 여러 학교에서 학생회나 학생들이 나서서 시국선언을 발표했고 큰 주목을 끌었다. 그러나 시국선언을 무사히 발표한 학교들도 있었던 반면, 교사나 학교의 제지와 방해를 받은 경우도 많이 있었다. 경남에서 학교를 다니는 한 고등학생은 학교 안에 동아리 명의로 시국에 관한 내용의 대자보(벽보)를 부착했다가 학교장의 압력으로 떼게 된 경험을 제보했다.

제보에 따르면, 당시 학교장은 그 동아리의 담당 교사와 학생과 친밀한 관계인 다른 교사에게 압력을 가했고 교사와 학생 모두가 난처한 처지가 되었다고 한다. 이 학교에서는 학생회에서 시국선언을 준비했으나 무산되었다.

학생들이 학교 안에서 대자보를 게시했다가 강제로 철거당하거나 심한 경우 징계까지 받은 경우는 숱하게 있었다. 2013년에는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를 붙였다가 징계 위기에 처하거나 교무실에 불려가서 혼이 난 학생들이 많았고, 역사 교과서 선정이나 국정화 문제에 관해 대자보를 붙였다가 대자보를 훼손·압수·철거 당한 경우도 많았다. 학교의 문제점을 비판하는 글을 올리거나 1인 시위를 했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거나 같은 학교 교사·학생들의 손가락질을 받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생각하는 바를 말하거나 글로 표현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은 민주시민의 가장 기본적인 자유임에도 학생들은 이를 당연하다는 듯이 억압당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을 비판하는 그림을 그리거나 전단지를 배포했다고 해서 표적 수사를 당하고 불이익을 받던 모습과 다를 바가 없다. 이처럼 민주주의와 거리가 먼 교육현장의 현실이야말로, 사람들이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비판하고 토론하고 집회하고 시위하는 것을 낯설게 여기고 민주주의 후퇴를 가볍게 여기는 데 일조한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민주주의를 확대하자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 파면시키고 조기 대선이 치러지고 있다. 많은 시민들이 다시 그러한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민주주의가 후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뜻을 모으고 의견을 나누며 우리 사회가 나아갈 길을 모색하고 있다. 광장에 모였던 백만 촛불의 경험은, 사회 곳곳에서 발표된 시국선언과 가만히 있지 않은 시민들의 힘은 우리 사회에 희망을 주었다.
그런데 더 나은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해서는, 바로 그 광장의 여러 면을 봐야 하지 않을까.

청소년들이 광장에 나왔다고 많은 사람들이 박수를 쳤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청소년들은 학교의 불이익이나 따가운 시선을 극복해야 했고, 또 그러한 장벽에 가로막혀 좌절하고 상처받은 청소년들도 있었다. 발표된 시국선언들만큼이나 말하고 싶었으나 끝내 발표되지 못하고 무산된 선언과 목소리들도 있었다. 박근혜 정부 이전부터 우리 사회에 자리하고 있던 이러한 반민주적인 문화와 제도들로 시야를 확대하여 이런 문제들을 개선하는 것이 박근혜 이후의 민주주의를 건설해가기 위해 필요하다.

학교와 같은 '민주주의의 예외 구역'들을 없애는 것, 나이가 어리고 학생이라는 이유로 배제당하던 이들에게도 바로 지금 민주주의를 보장하는 것이 '적폐 청산'이며 이 시대의 민주화를 위한 과제이다.


태그:#청소년인권, #청소년, #민주주의, #참정권, #학생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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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인권활동가,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 대학입시거부로 삶을 바꾸는 투명가방끈,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등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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