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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민 바른정당 후보가 2일 오전 서울 영등포경찰서 중앙지구대를 방문하는 가운데, 지지자들이 '굳세어라 유승민'이 적힌 피켓을 들고 사퇴 압력을 받고 있는 유 후보를 응원하고 있다.
▲ 유승민 응원하는 지지자들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가 2일 오전 서울 영등포경찰서 중앙지구대를 방문하는 가운데, 지지자들이 '굳세어라 유승민'이 적힌 피켓을 들고 사퇴 압력을 받고 있는 유 후보를 응원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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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보수는 지금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어떻게 보면 작년 하반기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때보다 더 위기인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필자의 해석에 많은 사람들은 이런 반론을 할 것 같다.

'최근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의 상승세가 두드러지고 있는데, 위기라고 하는 것은 이해가 안 간다'고 말이다. 물론 전통 보수 세력의 결집 현상은 매우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중장기적 관점에서 볼 때 보수의 현재 모습은 또 다른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본다.

지금 바른정당과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의 상황을 보고 이런 평가를 하는 것만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필자 역시 바른정당이 창당 정신에 맞게 보수 혁신을 이뤄내어 보수의 새로운 주류가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 전개되는 상황을 보면 이것이 매우 쉽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보수 위기 사태에 있어 바른정당과 유승민 후보 역시 일정 정도 책임이 있다고 본다. 그래서 보수 위기를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의 위기로만 접근하는 일반적 시각에 대해서 필자는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 이것을 다음 두 가지 측면에서 분석해보려고 한다.

유승민 후보가 결과적으로 잘못한 지점은 무엇인가?

첫 번째는 노선 문제다. 지금 주류 보수 세력은 중도친화적인 노선을 내걸었던 지난 시기와 단절한 채 강경한 노선을 내걸고 있다. 이것은 전통적인 이슈인 대북 안보 문제에서부터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2004년 보수 혁신을 강조한 이후부터 보수 세력은 그들의 대북 안보 노선 기조에 있어 진보적 시각을 일정 정도 반영했었다. 물론 집권 이후 다른 방향으로 나갔다고 볼 수 있지만 우선 기조 자체에 있어서는 진보적 대북 접근법을 수용하려는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보수 주류 세력이 지지하는 홍준표 후보는 동성애 문제나 5.18 유공자 가산점 재검토 등 공동체의 기본 질서와 안녕에 위협을 줄 수 있는 발언까지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부분은 깊이 살펴보아야 한다.

보수 진영의 경직된 선거 기조

이것은 그만큼 보수 진영의 선거 기조가 매우 경직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이것을 과거와 비교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1987년 '보통사람들의 시대'를 선거 슬로건으로 내걸었던 노태우 후보까지 가지 않는다고 해도 2007년 '국민성공시대'를 내세운 이명박 후보, '국민행복시대'를 내건 2012년 의 박근혜 후보 등 모두 중도친화적인 노선을 내세웠었다. 그렇게 보면 이번 선거는 매우 특이하다.

물론 중도친화적인 기조가 선거 때에만 해당되는 정략적인 태도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그리고 이 주장은 상당 부분 일리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선거 기조를 그렇게 잡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사이에는 매우 큰 차이가 있다. 이것은 두 가지 차원에서 살펴볼 수 있다.

우선 기조를 이렇게 내세우면 집권 시 정책을 추진하게 될 때 이것에 일정 정도 영향을 받게 된다. 그래서 무리한 방향 전환을 제어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 이것은 박근혜 정권 초기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의 사퇴 문제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안이다. 당시 진영 장관의 사퇴로 박근혜 정권은 타격을 받았었다.

그리고 정치는 민의를 반영하기도 하지만 역방향에서 정치가 시민사회에 영향을 주는 일종의 교육 기능을 한다는 점도 중요하다. 이것은 일종의 '의미의 정치' 영역이다. 이렇게 볼 때 정치세력의 선거 기조는 국민들의 의식 형성에 일정 정도 영향을 준다. 그러므로 이처럼 극단적 언술을 동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지금처럼 극단적인 언술이 제어되지 않고 나오게 되면 일반인들 사이의 정서적·이념적 양극화 현상이 강화될 가능성이 있다. 이것은 선거를 떠나서 옳지 못하다. 안 그래도 우리 사회는 정서적·이념적 극단화에 따른 갈등이 심한 편인데, 정치권이 여기에 잘못 대처하면 큰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이 점 경계해야 한다.

냉전 반공주의에 기반을 둔 안보 보수 이데올로기가 문제의 온상

그러므로 주류 보수 세력의 현재 모습은 큰 문제가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은 변화는 보수 세력들이 이번 대선 기조를 '안보 선거'로 잡은 것과 관련이 있다. 그리고 이 점에서는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의 책임도 있다.

냉전 반공주의에 기반을 둔 안보 보수 이데올로기는 개인의 자유, 민주적 사고방식을 무력화시킨다. 그리고 이것은 자유민주주의 대신 전체주의에 친화성이 있는 사회문화적 기반을 창출하게 된다. 그러므로 냉전 보수에 기반을 둔 안보 보수 이데올로기가 결국 문제의 온상이다.

그런데 자유한국당 바른정당은 모두 대북 안보 현안에 있어서 모두 매우 강경한 노선을 내걸면서 이번 선거를 '안보 선거'로 방향을 몰아갔다. 그리고 그와 같은 분위기 속에서 여러 가지 심각한 문제점이 파생되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유승민 후보는 위에서 나타난 반인권적 공세에 동참한 바 없다. 이 점에서 유 후보는 좋은 점수를 받을 자격이 있다. 그러나 합리적 보수라는 기대와 대외적 인식을 획득한 유승민 후보가 '안보 보수' 선거 분위기에 일조한 것은 큰 잘못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는 종횡무진 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더군다나 그 과실의 대부분은 결국 유 후보가 아닌 홍 후보가 얻고 있다. 그러므로 유 후보는 본인의 의도와 상관없이 결과적으로 보면 이 지점에서 분명 잘못을 한 것이다.

정치리더십을 약화시키는 바른정당 소속 국회의원들

바른정당 의원 14명이 탈당과 함께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 지지 및 자유한국당 입당을 밝혔다. 2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13명 의원(권성동, 김재경, 김성태, 김학용, 박성중, 박순자, 여상규, 이군현, 이진복, 장제원, 홍문표, 홍일표, 황영철)이 기자회견을 통해 입장을 밝혔고, 이 자리에 참석하지 않은 정운천 의원은 3일 후 지역구인 전주에서 단독으로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 유승민 버리고, '홍준표 품'으로 바른정당 의원 14명이 탈당과 함께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 지지 및 자유한국당 입당을 밝혔다. 2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13명 의원(권성동, 김재경, 김성태, 김학용, 박성중, 박순자, 여상규, 이군현, 이진복, 장제원, 홍문표, 홍일표, 황영철)이 기자회견을 통해 입장을 밝혔고, 이 자리에 참석하지 않은 정운천 의원은 3일 후 지역구인 전주에서 단독으로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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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정치리더십 문제다. 정당이 제대로 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당 내부에 확고한 리더십이 갖춰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정당은 지지층을 비롯한 국민들과 괴리되기 쉬워서 조직 역량이 약화되며 궁극적으로 정당 약화로 이어진다.

이것의 중요성은 지난 시기 민주당의 암흑기를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민주당의 정치적 암흑기는 정치리더십의 공백 혹은 약화와 직접적으로 맞물려 있었다. 그만큼 정당 내부의 정치리더십은 매우 중요하다.

정치리더십이 약한 정당의 대표적인 특징은 대중적 인기가 낮은 국회의원 등 정치엘리트들이 정당을 좌우한다는 점이다. 정치엘리트들이 정치적 자리보전만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면서 패권적 행태를 보일 경우 정당 내부에서 대중적 정치리더십 형성은 어려워진다.

지금 바른정당 국회의원들이 유승민 후보를 흔드는 것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런데 이와 같은 모습은 기존 보수 정당에서는 찾기 힘든 광경이다. 보수 세력이 그동안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대중적 리더십 자원을 잘 유지해온 것과도 관련이 있다.

이명박 정권의 실패로 정권교체 여론이 높았을 때 보수 세력은 박근혜 대표를 통해서 위기를 극복하고 정권교체를 이뤄냈었다. 그런데 박근혜라는 인물이 하루아침에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다. 박근혜 대표는 이미 2004년부터 보수 세력의 유력한 정치지도자로 부각되었었다.

대중적 정치리더십 갖춘 보수 정치인 드물어

지금 보수 세력에서 명망 있는 중진의원은 많지만, 대중적 정치리더십을 형성할 수 있는 인물은 매우 드물다. 사실 이 부분은 향후 보수 재건에 있어 매우 큰 문제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보면 유 후보에 대한 선호와 상관없이 그가 보수 진영에서 대중적 리더십을 갖춘 드문 인사 중의 하나라는 점을 보수 세력은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유 후보의 든든한 보호막이 되어야 할 상당수 바른 정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유 후보에게 등을 돌렸다. 이런 식으로 가게 되면 보수 정당은 정치 엘리트에 의해 정당이 지배받는 구조로 변하게 될 것이다. 대중적 정치리더십의 형성이 더욱 어려워지게 된다는 뜻이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노선과 정치리더십 문제에 있어 보수 혁신과 보수 재건은 매우 어려운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바른 정당과 유승민 후보가 이 역할을 해야 했다. 그러나, 유승민 후보와 바른정당은 이 문제에 대해서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으며 보수의 위기를 가중시키는 오류를 범하고 말았다.

이는 한국 정치 발전에 있어 상당히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역사를 보면 위기는 주기적으로 오곤 하지만 기회는 항상 자주 오는 것이 아니라 가끔 우연히 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렇다. 그래서 보수 재편에 있어 경고음이 크게 울린 지금, 이 점 매우 우러스럽고 마음이 아프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보수 세력에 의한 진보 내부의 의식의 식민화 현상 그리고 보수 세력의 '반노무현' 정치 전략을 분석한 <진보 오리엔탈리즘을 넘어서-반노무현주의, 탈호남 그리고 김대중 노무현의 부활>이라는 책을 최근에 낸 바 있습니다.



태그:#유승민, #바른정당, #보수, #2017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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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 박사이며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에서 사료연구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김대중에 대한 재평가를 목적으로 한 김대중연구서인 '성공한 대통령 김대중과 현대사'(시대의창, 2021)를 썼습니다.

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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