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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몸의 콩팥은 체내에 생긴 불필요한 물질을 오줌으로 내보내 체액의 균형을 유지시켜주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습지(늪)의 여러 역할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콩팥처럼 물과 땅을 정화시키는 자정능력입니다. 그래서 '자연의 콩팥'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습지들은 과거 쓸모없는 불모지 정도로 간주되기도 했습니다. 그리하여 인간의 생활을 위한 어떤 장치들이나 하수 등으로 오염되거나 사라지기도 했습니다.
<우포늪, 걸어서> 책표지. ⓒ 목수책방
국내 가장 오래되었으며 규모가 가장 크다는 우포늪은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250만평에 달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일제강점기부터 1970년대까지 11개에 이르는 제방 축조로 많은 부분이 농경지로 전환, 현재는 약 70만 평 정도라고 합니다.

우포늪의 가치는 연간 560억 원(환경부, 2001년 우포늪 자산가치 평가)에 이른다고 합니다. 미국의 학계 또한 습지의 하수처리나 수질정화 기능을 돈으로 환산, 1헥타르(ha) 당 약 40만 달러(1만 m²당 4억 원 가량)란 발표를 했다고 하는데요. 인공시설이 아닌 자연 상태 그대로가 하는 역할이란 점을 고려하면 그 가치는 실로 어마어마한 것이지요.

이처럼 사실상 인간에게 매우 중요하고 고마운 역할을 함에도 잘못된 인식으로 오염되거나 사라져가는 습지를 보호하고자 람사협약과 같은 세계적인 기구가 생겨났고, 국내에서도 습지보전 관련법들을 제정해 보호하고 있습니다. 우포늪은 대암산 용늪(강원도)에 이어 국내 늪으로는 두 번째로 람사협약에 등록, 보호되고 있는 세계적인 습지입니다.

'람사르총회를 한 해 앞둔 2007년 우포늪에 관광용 소달구지가 등장했다. 소벌이라는 지명과 관련이 있어 다들 반기는 분위기였다. 소달구지는 우포늪 입구에서 전망대까지 편도로만 다녔는데 우리는 암소에게 '소희'라는 이름을 지어 불렀다.(…) 풀밭에 앉아서 느긋하게 되새김질을 하고 있으면 소벌과 썩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는 무엇이든 여유가 있었다. 아이들은 자연스레 소를 쓰다듬어 주고 어른들은 옛이야기를 하며(…) 그러나 지역주민사업의 하나로 자전거 대여점이 들어왔고 소달구지를 찾는 사람들은 점점 줄어  들었다. 이때부터 늪을 돌아보는 방식이 많이 바뀌었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이다.

자전거는 배기가스, 이산화탄소 등을 배출하지 않고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아 환경에 바람직한 교통수단이지만 늪 안에서 달릴 때는 문제가 된다. 달리는 사람과 걷는 사람이 같은 길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걷는 사람은 자전거 소리가 나면 걸음을 멈추고 길을 비켜야 한다. 새들은 자전거 소리에 놀라 별안간 날아오르고 무심코 땅바닥에 앉은 잠자리와 메뚜기는 자전거 바퀴에 깔려 죽는다. 자전거는 환경에 좋은 탈것이지만 우포늪에 사는 동식물에게는 좋지 않다. 사람에게 좋은 길은 사람에게만 좋은 길이다.' - 250쪽.

<우포늪, 걸어서>(목수책방 펴냄)는 우포늪의 생태를 기록한 책입니다. 장맛비나 폭우와 같은 자연조건으로 인한 우포늪의 변화들과 사계절 저마다의 풍경과 생태, 우포늪에 깃들여 사는 생명들과 그들 낱낱의 생태, 생태탐방 구간별(현재 4코스) 소개와 걷기, 역사 속 우포늪과 그간의 변화, 늪가 사람들의 삶 등, 우포늪의 참 많은 것들을 담았습니다.

무엇보다 우포늪의 다양한 풍경들은 물론 꽃과 나무, 곤충 등에 관한 사진이 많아 사진집 보듯 사진들 먼저 설명을 읽는 것만으로도 흠뻑 빠져들 정도로 흥미롭게 읽은 책이랍니다.
우포늪 왕버들군락(2017.4.18) ⓒ 손남숙
일반인들의 습지에 대한 인식 역시 미비했습니다. 이런 습지들이 많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람사르총회 국내 개최(2008년)를 계기로 습지의 중요성을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입니다. 워낙 광활한데다가 가장 오래된 국내내륙습지라는 우포늪 특성상 우포늪은 국내 습지들 중 가장 유명한 곳이 되었습니다. 자연생태에 그다지 관심 없는 사람들까지 찾을 정도로 유명한 관광지가 되었고요.

그런데 우포늪은 생태관광지입니다. 일반 관광지와 다른 마음이나 자세로 만나야 하는 것이 당연하고요. 산행하다가 산악자전거를 타고 느닷없이 달려드는 사람들 때문에 위험을 느꼈던 불편한 기억들까지 떠오를 정도로 공감하며 읽은 부분입니다. '바람직한 모습으로 변화가 필요하다. 독자들에게 공감을 구하자'고 생각하며 읽었고요.

어렸을 적 더러는 보기도 했으나 이제는 볼 수 없는 소달구지 풍경을 담은 사진을 구하는 과정 중 저자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지레짐작했던 것들을 저자에게 들었고요. 지난주(19~21일)에 전화와 메일로 나눈 이야기를 전합니다.

- 아름다운 풍경이나, 들꽃이나 새가 있는 풍경 등, 보기 좋은 모습으로 우포늪을 소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던데요. 범람으로 헝클어진 늪의 모습 등, 물과 관련된 이야기로 시작하고 있어서 인상 깊은 책입니다. 민낯이나 속살까지 보여주고 있다는 그런.
"늪을 가장 크게 변화시키는 것은 물입니다. 범람으로 길이 사라지기도 하고 홍수 직전까지 잘 자라던 식물이 쓸려 나가거나 녹아 없어지기도 하죠. 새로운 생명들이 깃들기도 하고, 싹조차 틔울 기회를 얻지 못했던 식물들이 늪의 주인공이 되기도 하고. 우포늪에 대한 책이니까요. 우포늪 자체를, 우포늪의 속살까지 최대한 기록하고 싶었습니다. 우포늪은 낙동강 배후 습지라 낙동강의 자연적인 변화(홍수 등)와 깊은 연관이 있는데요. 4대강 사업으로 우포늪이 배후습지로서의 역할을 많이 잃었습니다. 4대강 사업 관련 전문적인 지식이 그다지 많지 않아 그에 대해 어찌 말하지 못하지만, 많이 안타깝고 그리고 속상합니다."

- 우포늪이 있는 창녕에서 나고 자라 떠났다가 귀향, 10여 년 전부터 책의 바탕이 된 것들을 사진에 담는 등, 기록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그동안 많이 달라졌죠?
"2004년에 고향에 돌아왔고, 우포늪이 남다르게 좋아져서 다니기 시작한 것은 2006년부터입니다. 그해에 습지해설사교육을 받았고, 2007년에 자연환경안내원(지금은 자연환경해설사)을 하면서 우포늪이 직장이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관찰과 기록, 사진을 찍었는데요(이 책의 바탕이 되는) 2007년과 비교하면, 정말 많이 달라졌습니다. 그땐 주차장에 임시화장실뿐이었는데 이후 생태관이 들어섰고, 소달구지 운행에 이어 자전거 운행, 식당과 매점 등이 생겼습니다.

가장 중요한 변화는 늪을 바라보는 관점인 것 같습니다. 2007년에는 우포늪을 찾아오는 사람들을 탐방객이라고 했지만, 지금은 관광객이라고 합니다. 용어에서부터 늪의 가치와 인식, 대중화 정도를 알 수 있어요. 그리고 전에는 보전 지역을 강조했다면 지금은 생태관광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 책 제목 '우포늪'과 '걸어서' 사이 '쉼표(,)'에 많은 뜻이 있는 것 같은데….
"애초 '우포늪 걸어서'란 제목을 붙였는데 목수책방(출판사) 대표님이 쉼표를 넣자고 하더군요. '한 템포 쉬면서 천천히 여유 있게 보라는 의미와, 우포늪과 걷기, 둘 다 중요한 느낌으로 읽히길 바라기 때문에'라고요. 사실 제 생각도 같(았)습니다. 그래서 우포늪을 앞세우는 한편 '걸어서'를 넣었던 것인데…. 결론적으로 훨씬 의미 있어져서 쉼표를 찍었습니다."
우포늪 삼거리 소달구지(2010.5) ⓒ 손남숙
- 워낙 유명한 곳인데요. 소달구지 아쉽네요. 생태관광에 좋다 싶은데. 우포늪 여행(?)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우포늪 제대로 만날 수 있는 귀띔? 그런 것을 한다면?
"굉장히 넓은 지역인 데다 다양한 풍경이나 생물들을 보거나 느낄 수 있는 곳입니다. 이런 우포늪을 하루 만에 다 본다? 보겠다?는 것은 욕심입니다. 우포늪을 제대로 만나기 힘들고요. 뭣보다 자연을 배려해야 하는 생태관광지라는 것을 생각, 넉넉하게 시간을 잡아서 설렁설렁 걸어도 보고, 나무 밑에 잠시 앉아도 보고, 구름도 보고, 날아가는 새와 잠자리도 보고…. 시간에 쫓기지 말고 쉬엄쉬엄 지내다 갔으면 좋겠어요. 시간적 여유가 없다면 걷고 싶은 코스를 정해서 걷고 다음에 또 걸으면 되고요. 많이 걷는 것보다 많이 느끼는 것, 최대한 힐링하는 것이 중요하니까요."
지름너비 2m에 이르는 가시연꽃의 잎이 수면을 덮은 여름 우포늪은 녹색융단으로 불린다.(2013.8) ⓒ 손남숙
- 저마다의 특성 때문에 사계절 모두 좋을 것 같은데, 그래도 걷기에 특히 좋은 때는?
"아무래도 봄과 가을이겠지요. 풍경도 아름답고, 몸에 부대끼는 것도 없고요. 하지만 한여름 땡볕 아래 끈적끈적한 땀을 훔치며 걷는 것이야말로 진짜 늪을 경험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몸은 힘들어도 흔히 여름 우포늪을 말할 때 녹색융단이라고 하는 그 멋진 풍경을 볼 수 있으니까요. 겨울에는 새를 보는 즐거움과 자욱하게 울리는 큰기러기, 큰고니 소리를 듣는 것이 근사한데 추우니까 사람들이 많이 오진 않더군요. 새벽 풍경과 분위기도 남다른 곳인데…."

- 바쁘게 걸으면 놓치고 말 것들이나 자주 가는 사람들이나 볼 수 있는 것들을 사진으로 만날 수 있는 것도 이 책의 두드러진 특징인데요. 남다른 이야기도 많을 것 같아요.
"2013년 토평천에서 꼬마물떼새 부부의 포란과 부화 과정을 관찰할 때 천변 갈대숲에 숨어있었는데, 혹시나 나도 모르게 부스럭거릴까 봐 종일 자갈밭에 엎드리고 있었어요. 물만 조금씩 마시고 배고프면 빵 조금 먹었고요. 그렇게 꼼짝도 하지 않고 지켜보다가 저물녘 집에 갈 때쯤이면 온몸이 굳은지라 일어나는 것조차 힘들었어요. 하지만 새끼들이 나왔을 때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기뻤고 지금도 그 순간, 순간들이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새에 대한 애정이 가장 뜨겁게 이입되던 때였습니다."
우포늪 안개(2017.4.18) ⓒ 손남숙
- <우포늪, 걸어서>의 감동은 이 책 이전에 쓰셨다는 시집 <우포늪>(푸른사상사 펴냄)까지 찾아 읽어보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준비 중인 책이나 우포늪 관련 계획된 일 있나요?
"우포늪을 관찰한 기록과 사진들이 많아서 거기에다 살을 붙이고 상상력을 더한 이야기를 만들려고 합니다. 이제 막 시작했기 때문에 아직 제목은 정하지 않았습니다."

- 자연과의 교감은 혼자만의 온전한 경험이죠. 우포늪 기록하며 얻은 것들도 많을 듯?
"고향에 돌아와서 한동안 힘들었습니다. 늪을 알게 되어 많이 추스르게 되었고요. 들끓던 마음도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홀로 계시던 엄마와 같이 살았는데, 늪을 이해하는 만큼 엄마와 삶도 이해하게 되었지요. 우포늪은 많은 생각들을 하게 했고, 나를 벗어나 있는 것들을 바라보게 하고, 자꾸 바라보고 생각하고 그러다 보니 몰랐던 것들도 보게 되고, 나아가 이해하게 되고 그렇게 되더라고요.

지금은 곁에 계시지 않지만 엄마와 늪과 함께 했던 지난 십여 년은 제게는 가장 소중하고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책에 드러내진 않았지만 엄마와 겹치는 장면이 많아 제게는 엄마와 같이 쓴 일기와 같은 책이기도 합니다. 자연생태 관련 책들도 참 많이 읽은 귀한 시간들이었고…. 모두 우포늪 덕분입니다."

덧붙이는 글 | <우포늪, 걸어서>(손남숙) | 목수책방 | 2017-03-10 | 정가 17,000원.

우포늪, 걸어서

손남숙 지음, 목수책방(2017)


태그:#우포늪, #람사협약(람사르총회), #배후습지, #가시연꽃, #손남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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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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