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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늦겨울, 남편과 함께 회사에 사표를 내고 10개월 된 아이를 데리고 싱가포르에 왔다. 1년간 어학 공부를 하겠다는 목적이었다. 이 연재는 육아와 공부를 병행하며 싱가포르에서 생활하는 젊은 유학생 부부의 소소한 일상 이야기를 담는다... 기자말

싱가포르 가든스바이더베이에서 아기와 아빠가 함께.
 싱가포르 가든스바이더베이에서 아기와 아빠가 함께.
ⓒ 김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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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는 바빠 죽는다'는 말이 딱 맞다. 부부동반 백수에 귀여운 혹까지 달려있다면 더욱 그러하다.

"싱가포르에선 숨 쉴 때마다 돈이 나가는 느낌이야."

비단 돈 뿐만이 아니라 젊은 날 직장에서 쌓아올릴 수 있는 것들에 대한 기회비용까지 더한다면 싱가포르에서의 생활은 1분 1초가 아쉽다.

절박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시간

"난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어."

남편은 입버릇처럼 말한다. 이 말을 들을 때면 돈을 벌어야 할 책무을 뒤고 하고 자기 자신에게 시간을 투자하는 것에 대한 그의 부담감을 느낄 수 있다. 호기롭게 던진 주사위였지만 여전히 우리 현실은 우리가 원하는 미래의 발끝 정도에 머물러 있다. 그러므로 우리 삶은 더 치열하고 더 절박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싱가포르에서 보내는 시간은 나름 체계적이다. 7시에 일어나 아기 우유를 먹이고 2시간 가량 아기가 자는 틈을 타 공부를 한다. 아기가 일어날 때 즈음 집안일을 하다보면 중국어 과외선생님이 집으로 찾아온다.

아기와 함께 수업을 받으며 수업이 난장판이 되기 일쑤지만 선생님과 1시간 반 남짓 중국어로 수다를 떨면 시간가는 줄 모른다. 과외가 끝나면 학원으로 가 아기를 남편에게 넘기고 1시부터 6시까지 중국어 수업을 받는다. 아기가 가장 귀여워지는 시간인 밤 11시 아기가 눈을 감으면 그때부터 우리는 다시 공부를 하기 시작한다.

"학교 다닐 때 이렇게 공부했다면?"
"결혼하기 전에 혼자 와서 공부했다면?"
"아기를 갖기 전에 이런 결정을 했다면?"


수업에 치이고 아기에 치이며 녹초가 될 때면 우리는 한숨 섞인 목소리로 이런 경우의 수에 대해 따져본다. 하지만 과거 어느 시점의 순간순간 역시 다른 결정과 고민들로 우리 삶은 가득 채워져 있었기에 과거에 대한 되새김질이 얼마나 무의미한지 우리 둘 모두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아기가 잠든 이 고요한 밤 스탠드를 켜놓고 나란히 앉아 눈앞에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하는 것 밖에 별 도리가 없다.

내가 사는 싱가포르

우리를 만나는 사람들은 우리가 싱가포르를 유학지로 선택한 이유에 대해 의아해 한다. 영어를 배우려면 호주나 캐나다, 미국을 가고 중국어를 배우려면 중국을 간다. 하지만 우리는 누구 하나의 희생 없이 남편은 영어, 나는 중국어를 배워야 했고, 아기도 돌봐야 했다. 중국어와 영어를 공용어로 쓰며 비교적 안전한 싱가포르를 선택한 이유다.

싱가포르는 서울과 별반 다르지 않다. 제주도 반 만 한 땅덩어리에 모든 지역이 전철로 연결돼 있다. 전 국토가 계획도시로 잘 정돈돼 있으며 청결이라면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 "싱가포르는 너무 지루해. 서울과 별반 다르지 않잖아"라고 말하던 나는 두 달 사이 다양한 인종과 언어, 종교가 뒤섞인 싱가포르란 나라에 매료되기 시작했다.

중국계, 말레이시아계, 인도계 인종들이 모여 한 국가를 형성한 이 나라에선 영어와 중국어, 힌두어, 말레이시아어 등등 다양한 언어가 오고간다. 한편에서 히잡을 쓴 여자들이 수다를 떠는가 하면 또 다른 한편에선 머리에 꽃 장식을 하고 사리를 입은 사람들이 몰려 있다. 중국어와 영어 뿐만 아니라 말레이어와 타밀어까지 공용어로 삼고 있는 이 나라에선 한 사람이 2~3가지 언어는 기본으로 한다.

"우리나라에선 몇 가지 언어를 같이 하지 못하면 살기 힘들어. 기본적으로 어린이집에서부터 중국어랑 영어를 같이 가르치고 있지."

싱가포르인 친구 핑은 별것 아니란 듯이 얘기한다. 하지만 취업용 토익점수를 따기 위해 영어공부를 해야 하는 한국인으로선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쟤는 인도계처럼 생겼지만 사실 인도계라기보단 타밀계야. 우리랑은 달라."
"나는 원래는 말레이시아인이었는데 대학교 때 싱가포르에 와서 싱가포르인이 됐고, 실상 내 조상은 중국인이야."
"내 남편은 싱가포르인이고 나는 인도네시아인인데 내 조상은 중국인이야."


이곳에선 다양한 친구들이 자신의 다양한 뿌리에 대해 이야기한다. 단일민족으로 이뤄진 한국과 다른 인종과 언어, 문화의 용광로 속에서 지금껏 당연한 줄 알았지만 당연하지 않은 것들에 대해 배워간다.


태그:#싱가포르, #다민족, #영어, #중국어, #유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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