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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늦겨울, 남편과 함께 회사에 사표를 내고 10개월 된 아이를 데리고 싱가포르에 왔다. 1년간 어학 공부를 하겠다는 목적이었다. 이 연재는 육아와 공부를 병행하며 싱가포르에서 생활하는 젊은 유학생 부부의 소소한 일상 이야기를 담는다... 기자말

싱가포르에서 아기와 아빠가 함께.
 싱가포르에서 아기와 아빠가 함께.
ⓒ 김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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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볼 일 없는 우리 부부에게도 별 볼 일 있는 꿈은 있다.

우리의 결혼 생활은 볕이 잘 들지 않는 18평 남짓의 빌라에서 시작됐다. 결혼하고 2년간 아등바등 돈을 모아 대여섯 남짓 큰 평수의 아파트로 이사할 수 있는 정도가 됐다. 태어난 지 10개월도 안 된 아기는 연일 젖가슴에 매달려 자기도 사람이라며 바둥거리고 있었다. 우리 자신보다 가족, 아기를 먼저 생각하며 '어른'이 가져야 할 책임감의 무게가 느껴질 때 즈음 우리는 직장을 그만두고 통장 잔고를 털어 싱가포르행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1년간 어학연수를 할 계획이었다.

하루 1시간도 가질 수 없는 우리의 시간

2016년 4월 14일 다섯시간의 진통 끝에 아기가 태어났다. 아기는 우리 삶의 축복이었지만 육아는 현실이었다. 직장에서 9개월이란 출산·육아휴직을 간신히 얻어 생전 경험해보지 못한 엄마 노릇을 했다. 그 어떤 경험과도 바꿀 수 없다던 엄마 노릇은 실상 행복감 30%, 버거움 30%, 미래에 대한 고민 30%, 남편에 대한 원망 10%로 감정 구조가 구성됐다.

구두회사의 기획MD였던 남편은 이어지는 야근과 술자리에 11시가 넘어야 충혈된 눈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갓난쟁이 아이를 돌보고 집안일을 하는 것은 오롯이 내 몫이었다. 회사에 이야기해 꾸역꾸역 육아휴직을 받아내긴 했지만 한창 날고뛰어야 할 6년 차 기자에게 9개월이란 공백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아이가 태어나고 우리는 각자의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었지만 정작 우리 모두 그 삶이 최선이라고 생각할 순 없었다.

"이렇게 살다 보면 몇 년 후 우리 삶은 어떻게 달라질까?"

남편의 질문에 답은 정해져 있었다. 우선 지금껏 모은 종잣돈으로 20평대 아파트로 이사를 할 것이다. 투자 가치가 있는 학군 좋고 위치 좋은 아파트라면 더 좋겠다. 주변에 아이 양육을 도와줄 사람이 없으니 아이는 아침 8시부터 저녁까지 어린이집에 맡겨야 한다. 그나마 어린이집 비용을 정부에서 지원해 주니 얼마나 감사한지. 하지만 저녁 7시 30분 이후에도 아이를 맡아 주는 시간 연장형 구립 어린이집에 들어가기가 하늘에서 별 따기라는 점이 함정이다.

직장이 끝나고 부랴부랴 아이를 어린이집에서 찾아 집으로 돌아온 후 아이 이유식을 만들고 아이를 씻기고 재우면 하루 24시간이 채워질 것이다. 좀 더 부지런을 떤다면 아이와 함께 즐길 수 있는 시간은 하루 24시간 중 1시간 정도는 될 것이다.

아이 때문에 포기해야 하는 수백만 개 이유

싱가포르의 야경.
 싱가포르의 야경.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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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 아니면 절대 할 수 없어."

우리 부부가 싱가포르행을 택한 이유다. 6년간 기자생활을 하며 남들과 차별화된 포인트를 찾고 싶었다. 싱가포르에서 중국어를 공부해 중국 경제 분야로 전문 분야를 서서히 키워나갈 계획이었다. 기획MD였던 남편은 영어실력을 다듬어 글로벌 스포츠 기업에서 일하고 싶어 했다. 우리 부부는 1년간의 싱가포르 어학연수 계획을 이런저런 꿈으로 잘 포장하려 했지만 결국 우리가 한 결정은 누구나 다 가는 어학연수에 불과했고, 한마디로 말하자면 '돈지랄'이었다.

"젖도 안 뗀 아기를 데리고 어디를 가려고?".
'싱가포르.'

"너희는 너희만 생각하니? 아기가 먼저지. 아이를 데리고 가서 무슨 고생을 시키려고?"
'우리 삶이 먼전데.'

"1년 어학연수 갔다 온다고 뭐가 달라질 것 같아?"
'적어도 지금처럼 영혼 없이 살진 않겠지.'

"애 낳고 한창 일할 때 직장까지 그만두고 미쳤어?"
'혈기 왕성하게 놀 때 일수도.'

"다녀와서 직장 못 구하면 어쩔래?".
'앞으로 몇십 년은 더 일할 건데 직장 하나 못 구하려고.'

"차라리 그 돈 나한테 투자해라. 주식해서 배로 굴려줄게."
'......'

수만 가지 질문에 수만 가지 대답을 해도 우려는 가시지 않았다. 현실에서 남과 다른 결정을 하고 새로운 삶을 설계하는 데 있어 아이는 걸림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먼 미래에 '아이만 없었어도...'란 후회를 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당장 간절하게 살고 싶은 우리 삶을 살기로 했다.

백수 부부의 젊어서 '돈지랄'

부부 중 누구 하나 일하지 않고 유모차를 끌고 어학원을 오가는 백수 부부의 삶은 이곳 싱가포르에서도 별종 취급이다.
 부부 중 누구 하나 일하지 않고 유모차를 끌고 어학원을 오가는 백수 부부의 삶은 이곳 싱가포르에서도 별종 취급이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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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여기 와서 뭐하니?"
"중국어 공부."

"네 남편은 어떤 일을 하니?"
"일 안 하고 영어 공부하는데."

"돈은 누가 벌어?"
"모아둔 돈 쓰고 있어."

"아기는 누가 보니?"
"우리가."

부부 중 누구 하나 일하지 않고 유모차를 끌고 어학원을 오가는 백수 부부의 삶은 이곳 싱가포르에서도 별종 취급이다. 온갖 우려를 뒤로하고 싱가포르에 온 지 어느덧 두 달이 흘렀다. 우려가 무색하게 우리 백수 부부와 아기의 싱가포르 삶은 무탈하다. 우리는 서로 다른 시간에 하루 5시간씩 어학원을 다니며 어학공부를 하고 아기를 번갈아가며 돌본다.

하늘을 치솟는 싱가포르 물가를 감당하기 위해 저렴한 분유와 기저귀를 찾아 헤매며 아기에게 다소 죄책감이 느껴지긴 하지만 그럭저럭 우리 삶에 만족하며 살고 있다. '나는 누구? 여기 어디?'에 대한 의문이 이어졌던 한국에서의 삶과 비교하면 야무지게 스스로를 몰아세우며 공부하며 스스로를 성장시켜나가고 있는 중이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데 젊어서 '돈지랄'을 못할 건 무엇인지.

우리가 함께하는 시간은 그렇게 비싼 값을 치르며 흘러가고 있다.


태그:#여행, #유학, #육아, #꿈, #싱가포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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