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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사는 사람이라면 부산이나 광주가 멀다고 느낄 만합니다. 부산이나 광주에 사는 사람이라면 서울이 멀다고 느낄 만하지요. 강릉에 사는 사람이라면 서울도 멀고 부산도 멀며 해남도 멀다고 느낄 만해요. 해남이나 진도에 사는 사람이라면 서울이며 부산이며 대전이며 온통 멀다고 느낄 만하고요.

우리는 늘 우리가 발을 디딘 곳에 맞추어 가깝거나 멀다고 여겨요. 그리고 내가 쓸 수 있는 탈거리에 따라 가깝거나 멀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 하나를 덧붙인다면, 내 마음에 와닿는 이야기가 있는 곳이라면 길은 멀어도 마음으로는 가깝다고 여겨요. 살가운 동무나 따스한 이웃이 사는 곳이라고 할 적에도 길은 멀지만 마음으로는 가깝다고 여기고요.

겉그림
 겉그림
ⓒ 나는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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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천 천 자로 끝나는 땅은? 순천 영천 옥천 인천 홍천 동두천

산 산 산 자로 끝나는 땅은? 부산 울산 군산 괴산 서산 안∼산
주 주 주 자로 끝나는 땅은? 제주 광주 진주 전주 상주 남양주
양 양 양 자로 끝나는 땅은? 고양 양양 단양 청양 광양 밀∼양 (10쪽)

김성은 님이 글을 쓰고 김규택 님이 그림을 그린 <우리 땅 노래 그림책>(나는별 펴냄)을 읽습니다. 이 그림책은 이름 그대로 한국이라는 이 땅의 노래를 부르면서 헤아려 보자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아이들한테 낯설거나 멀다고 느낄 수 있는 다른 고장을 여러모로 재미난 노랫가락에 맞추어 이름을 차근차근 읊어 보자는 마음을 들려주어요.

어느 말 한 마디로 끝나는 땅이름을 하나하나 돌아보면서 어슷비슷하지만 다른 고장이 있네 하고 느낄 수 있습니다. 낯설거나 새삼스럽지만 우리 동무나 이웃이 사는 숱한 고장을 곰곰이 되새길 수 있습니다. 사람들마다 고향이나 보금자리로 삼아서 지내는 땅이 이렇게 온갖 이름으로 다 달리 있네 하고 새롭게 바라볼 수 있어요.

속그림. 팔도를 그림으로 보여줍니다.
 속그림. 팔도를 그림으로 보여줍니다.
ⓒ 나는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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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플 땐 계란리, 지글지글 파전리, 후루룩 국수리, 추운 날엔 목도리, 몸 담그자 목욕리, 뜨뜻하게 연탄리, 아름다운 목소리, 신이 나게 외치리, 노래하자 가수리, 설마 이런 마을이 진짜 있을라고? 설마 하면 설마리 (14∼15쪽)

<우리 땅 노래 그림책>은 때때로 익살맞게 땅이름을 노래합니다. 이를테면 계란리 파전리 국수리 목도리 목욕리 연탄리 목소리 외치리 가수리 설마리... 같은 마을이름을 노래해요. 이런 마을이 실제할까요? 찾아보니 진짜 있습니다.

충북 제천시 수산면 계란리
경북 군위군 의흥면 파전리
경기 양평군 양서면 국수리
충북 괴산군 불정면 목도리
전북 정읍시 산외면 목욕리
충북 증평군 증평읍 연탄리
충남 금산군 복수면 목소리
전남 함평군 월야면 외치리
강원 정선군 정선읍 가수리
경기 파주시 적성면 설마리

그나저나 '-리'로 끝나는 이름은 무엇을 가리킬까요? 언제부터 '-리'로 끝나는 이름을 썼을까요? '리'는 '里'라는 한자입니다. '읍(邑)'하고 '면(面)'하고 '리(里)'를 묶어 '읍면리'라고도 하는데, 이는 시골에서 흔히 쓰는 이름이 되었습니다. 도시에서는 새롭게 '구(區)·동(洞)'이라는 이름을 쓰지요.

이런 한자를 쓰기 앞서 한겨레한테는 다른 이름이 있어요. 먼저 '마을'이 있습니다. 다음으로 '고을'이 있어요. 여기에 '고장'이 있지요. '리(이)'하고 '동'은 똑같이 '마을'을 뜻합니다. 도시에서는 '동'이라는 한자를 쓰면서 '동네'라는 말씨를 따로 쓰기도 했습니다만 요새는 도시에서도 '마을'이라는 이름을 한결 널리 써요.

살림집이 도란도란 모여서 이루어진 삶터가 바로 '마을'이에요. 이 마을이 여럿 모여서 '고을'을 이루고, 다시 고을이 여럿 모여서 '고장'이 됩니다. 고장이 여럿 모이면? 이때에는 '나라'가 되지요.

속그림. 산자락을 그림으로 보여줍니다.
 속그림. 산자락을 그림으로 보여줍니다.
ⓒ 나는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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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아 금강아 어디까지 왔니? 
공주까지 왔다 아직아직 멀었다
부여까지 왔다 군산까지 왔다
어디까지 왔니? 서해 바다 다 왔다! (19쪽)

저는 전남 고흥에 살아요. 고흥에는 읍이 몇 곳 있고 면도 여러 곳 있어요. 읍이나 면은 으레 읍내나 면내라는 말을 쓰는데, 제가 사는 곳은 '마을'이라는 말을 씁니다. 행정구역으로는 '동백리'가 될 테지만, 마을 분들이나 면사무소나 군청이나 어디에서나 모두 '동백마을'이라고만 말해요. 이웃한 다른 마을은 '봉서마을·신기마을·지정마을·호덕마을'이라 하고요.

이 같은 마을이름은 다른 고장에서는 무척 낯설 만해요. 거꾸로 제가 사는 이 고장에서는 다른 고장에서 쓰는 이름이 무척 낯설어요. 스스로 살지 않는 곳이기에 낯선 이름이 되고, 아는 사람이나 이웃이 없으면 더더욱 낯설지요.

<우리 땅 노래 그림책>은 우리 삶터 둘레에 있는 수많은 마을이나 고을이나 고장을 두루 헤아리도록 돕습니다. 때로는 익살맞게, 때로는 수더분하게, 때로는 잔잔하게, 때로는 차분하게 가락에 마을이름을 얹어서 노래를 부르자고 합니다.

속그림. '나란히 나란히' 노래에 맞추어 부르는 이름들.
 속그림. '나란히 나란히' 노래에 맞추어 부르는 이름들.
ⓒ 나는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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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수많은 마을이며 고을이며 고장을 혀에 얹어 노래로 부르다 보면, 언젠가 이 마을이나 고을이나 고장으로 나들이를 가 볼 수 있겠지요? 노래로만 부르던, 말로만 듣던 마을이나 고을이나 고장에 처음으로 서 보면, '아, 이곳에서는 이렇게 이쁜 이웃들이 마을을 이쁘게 가꾸면서 사는구나!' 하고 느낄 만하지 싶어요.

가만히 이름을 불러 보면서 마음에 담습니다. 마음에 담아 본 마을이름을 떠올리면서 그곳에 나들이를 가는 날을 그려 봅니다. 그리고 사뿐사뿐 즐거이 이 나라 골골샅샅 두 다리로 밟아 보면서 아름다운 마을살림을 온몸으로 느껴요. 어느 고장 어느 고을 어느 마을 어느 살림집이나 따사롭고 아늑한 보금자리입니다.

이 그림책을 펴낸 '나는별' 출판사는 <지구촌 노래 그림책>하고 <우리 역사 노래 그림책>을 펴내기도 합니다. 노래에 얹으면 이야기가 더욱 살뜰하면서 즐겁게 마주할 만하리라 생각해요.

덧붙이는 글 | <우리 땅 노래 그림책>(김성은 글 / 김규택 그림 / 나는별 펴냄 / 2014.11.7. / 12500원)



우리 땅 노래 그림책

김성은 지음, 김규택 그림, 박승규 감수, 나는별(2014)


태그:#우리 땅 노래 그림책, #김성은, #김규택, #그림책,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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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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