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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어금니 대신 히말라야

서른, 클라이밍을 하며 근근이 체력을 키우고 있었던 나는 당시 인문학 공동체(감이당)에서 함께 공부하던 언니에게 지리산종주를 하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두 해 전 중국 윈난 성의 호도협을 슬립온(손쉽게 입고 벗을 수 있는)을 신고 어찌저찌 넘고, 등산은 처음이었다(호도협은 해발 2000m 16km의 협곡이다). 트레킹을 마친 밤, 쏟아지는 별을 보고는 막연하게 등산은 좋은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만난 첫 산이 지리산이다.

종주로 들뜬 나는 클라이밍 선생님이 빌려준 가방에 신나서 이것저것 넣었다. 출발 전 몸무게를 재어보니 69kg. 몸의 무게와 무거운 옷가지의 무게를 제한다고 하더라도 25kg은 거뜬히 나가는 배낭을 메고 노고단부터 올랐다. 노고단은 버스로 갈 수 있는 길이라 대부분의 종주는 노고단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시작한다고 하는데(나는 몰랐다. 나는 몰랐네. 나는 몰랐었다. 엉엉) 우리는 그 험한 길부터 오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눈이 많이 오던 1월의 위험천만한 산의 정상에서(나는 어금니 하나를 천왕봉에 던져주었다. 산길을 걷다 빠진 어금니는 올해 초 뼈 이식 수술 후 아직 부재중이다.-원래 글은 괄호 바깥글로 마무리 되어야 하겠지만 이번 여행기는 신체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으므로 미대언니의 병력에 대한 언급이 자주 있을 예정이다.) 등산객들의 대화를 귀동냥으로 엿들으며 히말라야 산맥에 대해 알게 되었다. 어금니를 지리산 천왕봉에 두고는 대신 히말라야를 주머니 속에 집어넣었다.

'히말라야에 가야겠다.'

자주 꺼내보지는 못했지만, 나는 종종 그곳에 있는 나를 꿈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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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다르게 빛나는 우수한 저질체력

"저 학생 끌어내려요!"

2016년 1월 불암산(508m) 정상에서 한 아저씨가 나를 향해 소리쳤다. 나는 암벽이랄 것도 없는 돌 벽에 매달려 덜덜 떨며 오도 가도 못하고 있었다.

'맘 좋은 아저씨 저 학생 아니에요.. 아 놔.. 나 왜 이렇게 됐더라.. 조금 전까지만 해도 괜찮았었는데..'

나는 경사진 돌 벽에 매달려 덜덜 떨며 등산객들의 진로방해를 하고 있는 중이다. 손이 마비되고 호흡이 어려워지자 금세 간질 환자마냥 손이 틀어지고 어지럽다.

조금 전 아저씨의 고성 덕에 주변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나를 끌어내렸다. 전문 등산인처럼 보이는 아저씨들은 못 내려간다며 질질 우는 나를 그러잡고 부축해 평평한 땅 위에 놓았다.

덜떨어진 나는 어지러움보다는 쪽팔림에 얼굴을 들 수가 없다. 함께 간 현진 언니는 내가 죽으면 어쩌냐며 통곡을 하고, 박구남은 깔깔거리며 사진을 찍고 있다. 일출산행을 하자며 모인 친구들과 올해는 히말라야에 가겠다며 설레발을 친 게 바로 몇 시간 전인데 이렇게 널브러져 있다니 낯이 뜨거워 고개가 절로 수그러든다.

"누나, 괜찮으니까 업혀요!"

바닥에 널브러져 울고 있는 나에게 대장 태원이가 말했다. 아 이번 생은 망했다. 히말라야가 무슨 소용인가 당장 죽게 생겼는데. 나는 낯 뜨거움과 미안함과 고마움이 뒤엉켜 우물거리며 그 등에 올랐다.

우리일행은 남자 여섯에 여자 다섯. 나는 믿음직스러운(?) 여섯 등에 골고루 업혀가며 하산했다. 제 한 몸 가누기도 벅찬데 나를 끌고 업고 내려오자니 그 하산길이 얼마나 고단했을까. 꼬리뼈를 바위에 찍으면 어떠하랴.

미안하고 쪽팔린 거보다 꼬리뼈가 아픈 게 더 낫다(홍식아 현우야 누나를 마구 내던지렴. 누나는 괜찮아). 하산 후 아이들에게 밥과 아이스크림을 먹이고는 오늘 일은 제발 잊으라며 레드썬을 재차 당부했다. 그리고 일 년 동안 동네 뒷산인 안산(300m)만 혼자 올랐다. 더 이상 다른 사람들의 짐이 되고 싶지 않았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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쿰부 히말라야,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3PASS) 기부트레킹

작년 늦여름부터 시작한 기부 공동체 '이타'에서 2017년 기부 프로젝트를 기획했다(이타는 다양한 활동으로 즐거운 기부문화를 만들기 위해 마음이 맞는 친구들이 모여 만든 모임이다).  이타의 활동은 1.러닝으로 기부하기 2.공연으로 기부하기 3.행사참여로 기부하기 4.함께 기부하기 등 여러 프로젝트로 진행이 된다.

주로 러닝으로 많은 사람들과 만나는데 소셜 액티비티 플랫폼 프립에서 기부러닝을 지원해주고 있다. 러닝 외에 다른 프로그램은 당시 상황과 여건에 맞게 프로젝트형으로 진행된다. 이번 정유년을 여는 프로젝트는 히말라야 기부 트레킹을 진행하기로 했다.

기부 트레킹은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이하 EBC- Everest Base Camp)를 목표로 오르고 추가적으로 3PASS는 개인적인 목표로 오르기로 했다. 그 땐 EBC와 3PASS를 이렇게 쉽게 오를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했다.

사실 나는 심장 병력이 있다. 심장판막기형으로 정맥류가 동맥류와 섞이며 생기는 피로감, 그로 인한 다른 장기 손상 등의 소소한 병력으로 오랜 시간 고생한 나는, 심장질환 어린이들을 도와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2016년 마음이 맞는 친구들을 만나 수술이 어려운 심장질환 어린이들을 돕는 모임의 일원이 되었다. 그 모임의 이름이 이타다.

이타에서 기획한 기부트레킹은 아픈 사람들도 꿈을 꾸고 도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함께 마음을 모아 그들을 돕자는 취지에서 시작되었다. 작년까지는 생각도 못할 일이었지만 79번의 안산등반과 125번의 러닝, 혼자 한 기초체력운동으로 준비해왔으니 거뜬하진 않아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앞선 이야기에서도 언급했듯 미대언니는 남다른 체력조건과 신체조건을 소유하고 있다. 천왕봉에 바친 어금니 하나, 김치를 꼭꼭 씹다 빠진 어금니 둘, 치아건강을 위해 양치하다 빠진 어금니 셋, 껌 씹다.. 떡볶이 먹다... 빠진 어금니가 총 다섯.(하나는 남은 치아를 그러모아 겨우 크라운을 씌우고 나머지는 아직 부재중)

달에 한 번씩 찾아오는 생리 전 증후군과 생리통 덕에 여자로 사는 것은 개나 줘버리고 싶은 환자생활을 연간 60일가량 하고, 가끔 치솟는 간 수치에 건선에 노인과 같은 생활을 하라며 수차례 경고를 받곤 했다. 그래도 한 번 사는 인생인데 아픈 것을 핑계로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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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양말과 와디즈 공공 프로젝트 펀딩

마음을 먹으니 24시간이 모자랐다. 와디즈에 공공프로젝트 펀딩을 올리기로 하고 리워드를 준비하고, 에베레스트 오를 준비도 하고, 펀딩스토리도 쓰고, 에베레스트 준비물도 챙기고.. 준비만 하기에도 벅찬 시간을 펀딩과 함께 진행하려니 더 정신이 없었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펀딩승인은 늦어져 히말라야에 오르며 오픈이 되었고, 짐은 출발 전날까지 다이소를 털어도 준비를 마치지 못했다.

"모모야(자매애칭), 언니가 도와줄 테니까 필요한 거 있음 말해."

에베레스트라는 산을 평생에 알 이유도 관심도 없을 언니는 몇 주 전부터 내가 가는 루트를 공부하고 날씨를 알아보고 필요한 목록을 체크하는 중이다. 이 날도 언니는 하루 종일 스케줄을 비우고는 내가 동동거리는 곁에서 이런 저런 것들을 챙겨주며 말했다.

"알류(자매애칭)! 등산양말이 없어요. 엉엉.."

주말이고 10시가 되어가는 늦은 저녁시간에 어디서 양말을 구한단 말인가. 사실 양말은 남자친구와 크게 다툰 후, 살 수 있는 타이밍을 놓쳐버려 빠진 품목이었다. 알류는 주변에 문을 열 것 같은 마트로 출동했지만 주변 마트는 이미 모두 문을 닫은 뒤였다. 아무 양말이나 두 짝을 한꺼번에 신어야겠다, 하고 있는데 알류가 양말을 구했다는 연락이 왔다.

"모모야, 언니가 양말 사갈게."

후에 나는 산 위에서 이 양말 여덟 켤레를 빨며 한참을 울었다. 아침에 양말을 신을 때마다 집이 그리웠다. 기다랗고 마른 손가락으로 머리를 쓰다듬으며 잘 다녀오라고 다치지 말라고 배웅해주던 언니가 그리웠다. 하지만 출발 전에 '산위의 외로움'이란 것은 체크리스트에도 없고 고려사항에도 없는 품목이므로 나는 신나게 양말을 가방에 구겨 넣으며 준비가 다 되었노라며 속도 없이 깔깔거렸다.

덧붙이는 글 | 와디즈펀딩 자세히 보러가기. https://www.wadiz.kr/web/campaign/detail/11813



태그:#히말라야, #에베레스트, #에베레스트트레킹, #기부트레킹, #에베레스트베이스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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