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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도스 기념비
▲ 산티아고순례길 11일째 벨로라도->아헤스 카이도스 기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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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한다1988 16 Belorado -> Ages

상처 입은 순례자

이틀 전 여섯 명이서 같이 걷다가 어제는 종원이가 앞서가서 다섯 명이 함께 걸었고 오늘은 네 명이서 같이 걷기 시작했다. 우현이가 오늘은 혼자 걸으며 생각을 정리하고 싶다고 해서 우리보다 먼저 출발했고 오늘 목적지인 아헤스(Ages)의 알베르게에서 만나기로 했다.

걸음걸이 속도와 일정이 비슷한 이들과는 일부러 맞추지 않아도 알베르게에서 계속 만나게 된다. 먼저 간 승현이나 종원이처럼 일정이 빠듯한 순례자들은 속도를 높여서 걷기도 하고 일정 구간을 버스나 기차를 타고 이동하기도 한다.

어젯밤 알베르게에서 처음 만난 매리는 걷다가 다리를 접질려서 붕대를 감고 있었다. 다친 다리로 배낭을 메고 걸을 수 없어서 오늘 오전 버스를 타고 레온으로 떠난다고 했다. 이제까지는 별로 큰 일이 없었는데 10일 정도 지나니 물집이 생기거나 상처가 생기고 몸에 피로가 쌓여 힘들어하는 순례자들이 생겼다.

충만 : 준택아 속은 좀 어때?~괜찮아?~ 
준택 : 네. 괜찮아요. 형 자고 났더니 좀 나아졌어요.

준택이는 어제 저녁 저녁을 먹고 속이 좋지 않아 먼저 잠에 들었다. 오늘 아침 다행히 몸 상태가 좋아져 걷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 어제는 간단하게 인스턴트 피자로 저녁식사를 했다. 하루 종일 걷고 저녁식사를 준비해준 준택이에게 더 고마움을 느꼈고 더 아프지 않아 다행이었다. 타지에서 계속 걸어야 하고 좁은 공간에서 많은 사람들과 생활하는 게 공립 알베르게이다 보니 면역력이 떨어질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스페인 약국에서 볼 수 있는 효능 좋은 밴드
▲ 콤피드 스페인 약국에서 볼 수 있는 효능 좋은 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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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장애물

열흘 넘게 걸어보니 날씨 뿐만 아니라 몇 가지 장애물을 맞이했다. 가장 먼저 순례자들이 맞는 위기는 바로 물집이다. 한 달 동안 무사히 걷기 위해서는 가방 무게를 줄여 몸에 오는 부담을 줄여야 하지만 신발 또한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하루 6~8시간씩 20~30km 때로는 35km를 걷기 때문에 발이 편안해야 한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신발을 신어도 워낙 오래 걷기에 물집이 생기고 발이 부르트곤 한다. 물집이라는 것은 영어로 blister 스페인어로는 'ampolla'라고 불리는데 피부 세포와 세포 사이에 단백질 성분을 가진 묽은 액체가 고여 생긴다. 생리 식염수로 치료가 가능한데 표피 밑에 존재하면 흉터나 궤양을 남길 수 있기 때문에 물집이 생기면 유의해야 한다.

물집이 한 번도 생기지 않기는 어려우나 예방은 가능하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나는 40~50분씩 걷고 나서 무조건 10분 이상은 쉬곤 했다. 비가 와서 쉴 곳이 없을 때는 어쩔 수 없었지만 평소 날씨가 좋은 날 더 걸을 수 있더라도 일정 시간은 쉬고 발 마사지를 했다. 너무 오래 걸으면 배낭 무게 때문에 무릎 관절에도 좋지 않고 발도 쉽게 피로해지기 때문이다.

마사지 뿐만 아니라 발을 말려줘야 물집이 잘 생기지 않는다. 땀이 많이 나는 편이라면 넉넉한 양의 양말을 준비해 중간중간 갈아 신는 게 좋다. 순례길을 걷는 동안 반짝반짝 빛나는 십자가 모양의 간판을 볼 수 있는데 바로 약국이다. 순례자들이 많이 찾다 보니 스페인 약국은 굉장히 잘 준비되어 있다. 여러 제품을 볼 수 있는데 특히 콤피드 스틱(Compeed Stick)을 바르면 유용하다. 이외에도 바셀린을 발라 발과 신발의 마찰을 줄일 수도 있다.

종이 반창고를 발가락과 발에 감아 마찰을 줄일 수도 있지만 어쩔 수 없이 생기는 게 물집이다. 물집이 생겼다면 소독한 바늘로 터트리고 소독약으로 소독하는 것이 좋다. 물집이 작고 아직 부풀지 않았다면 콤피드를 구입해 물집 위에 붙이는 것을 추천한다. 발바닥용 발가락용 종류가 있고 효과도 좋다. 무릎이 좋지 않은 순례자들은 무릎보호대를 사용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밀크 초콜렛은 스위스에서 처음 만들어졌다
▲ 스위스 초콜렛 밀크 초콜렛은 스위스에서 처음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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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유혹, 초콜릿의 효능을 아시나요?

아무리 건강해도 10일쯤 걸으니 다들 피곤함이 눈에 띄었다. 건강을 지켜야 무사히 완주하고 또 헌혈에 참여할 수 있으니 건강에 유의하며 순례길을 걸었다. 나만의 건강 비법은 잘 먹고 잘 자는 것인데 그중 초콜릿을 항상 지니고 다녔다. 단 음식의 과다 섭취는 몸에 해롭지만 이로운 효능도 있기 때문이다. 스페인 마트에서 파는 초콜릿 가격은 한국 마트보다 싼 편이다. 1유로면 우리나라에서 2~3천 원 하는 초콜릿보다 크기나 맛이 좋은 초콜릿을 구입할 수 있고 종류도 정말 많다.

초콜릿은 중앙 아메키라에서 먹기 시작했는데 유럽에 소개된 것은 콜럼버스가 코코아 콩을 스페인 왕에게 소개함으로써 시작됐다. 1585년부터 중앙아메리카와 유럽 간의 코코아 무역이 시작되었고 고체 초콜릿은 1828년에 개발되었다. 최초의 밀크 초콜릿은 스위스에서 만들어졌는데 스페인에서도 스위스산 초콜릿을 자주 볼 수 있었다.

다크 초콜릿은 폴리페놀, 플라보노이드 성분이 많이 함유되어 있는데 이는 항산화 작용을 한다. 또한 많은 카페인 덕분에 각성효과가 있어 피곤할 때 도움이 되곤 한다. 나는 매일 초콜릿 한 두 개를 구입해 쉴 때 같이 걷는 일행과 나눠 먹곤 했다. 처음 만나 어색한 외국인 순례자들과 대화를 시작할 때 초콜릿을 건네기도 했는데 말문을 트는데 도움을 주기도 했다. 또 나눠 먹으면 맛이 배가 되서 꼭 초콜릿을 가지고 다녔다.

스페인 내전 희생자를 기리는 비
▲ Monte de la pedraja 스페인 내전 희생자를 기리는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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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내전 기념비, Monte de la pedraja 1936

Villafranca를 지나 San Juan Ortega까지 가는 길은 해발고도 1000m 정도의 산을 걸어야 한다. monte de la pedraja(페드라 하) 언덕을 지날 때 기념비를 보았다. 카이도스 기념비인데 1936년 ~ 1939년  스페인 내전 때 죽은 사람들을 기리는 기념비이다.

스페인 내전(1936~1939)은 같은 민족 나라 사람들끼리 치른 내전이면서 동시에 국제적으로도 많은 영향을 끼친 전쟁이었다. 1936년 2월 총선거에서 인민전선이 성립되자 반대하는 프랑코 장군은 군부를 동원해서 반란을 일으킨다. 인민전선 측을 소련이 지원했으나 독일과 이탈리아가 반군을 지원했고 결국 1939년 3월 프랑코는 마드리드를 점령한다. 시민이 선택한 정부가 군부에 의해 무너졌고 많은 시민이 죽었다.

왜 이 기념비가 산티아고 순례길 위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의 동족상잔인 6.25 전쟁이 생각났다. 잠시 묵념을 하고 길을 다시 나섰다.

순례길에서는 십자가를 자주 볼 수 있다
▲ 십자가 순례길에서는 십자가를 자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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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순례자 무덤

순례길 위에서 순례자만큼이나 자주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십자가였다. 성당과 교회에 있는 장식뿐 아니라 신앙심을 나타내기 위해 길 위에 세운 비석이나 돌과 나무 등으로 만든 십자가도 볼 수 있었고 간혹 무덤도 있었다. 사망한 순례자들을 위해 무덤을 만들고 십자가엔 순례자 이름과 사망한 년도를 적어 놓았다.

기술의 발달로 인해 지금은 전 세계 사람들이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있다. 몇 십 년 전만 해도 대부분 유럽 순례자들이었다. 과거 사람들은 지금처럼 옷이나 가방 등 장비를 갖추지 못했다. 지금은 스마트폰으로 날씨 확인이 가능해 날씨가 좋지 않으면 좋아지길 기다리거나 둘러간다. 버스나 기차로 이동도 가능하나 과거에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무방비 상태의 순례자를 산에서 기다렸다가 급습해 물건을 빼앗은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순례길을 걷다가 사망한 이들을 십자가를 통해 볼 수 있었다. 지금은 과거보다 위험한 일을 당할 일이 적어졌지만 그래도 인적이 드문 곳은 주의하고 소지품도 잘 챙겨야 한다.

저녁에 미사도 있으나 오늘 우리의 목적지는 아헤스라 쉬고 지나쳤다
▲ Monasterio de san san juan de ortega 수도원 저녁에 미사도 있으나 오늘 우리의 목적지는 아헤스라 쉬고 지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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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asterio de san san juan de ortega 수도원

발걸음을 재촉해 우리는 San juan de Ortega에서 잠시 휴식시간을 가졌다. 산 후안에서 유의 깊게 본 건물은 바로 수도원이었다. 이 수도원은 12세기에 만들어진 로마네스크 양식의 수도원인데 아이를 갖지 못하는 여성이 성당을 방문하면 임신을 한다는 전설이 있다고 한다. 산후안(San Juan) 성인은 우리나라의 삼신할머니와 비슷한데 전설은 이와 같다.

산토도밍고의 제자였던 산후안은 그의 스승처럼 평생을 순례자를 위해 바쳤다. 산티아고로 향하는 길을 놓고 성당과 집을 짓고 마을을 가꿨는데 '산후안 데 오르데카(San Juan de Ortega) 성당'이 바로 12세기에 산 후안이 직접 지은 것이다.

산후안의 무덤이 공개되었을 때 하얀 벌 떼가 날아오르고 관 주변에 아름다운 향기가 감돌았는데 사람들은 그 하얀 벌 떼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들의 영혼이라고 믿었다. 오랫동안 아이가 없던 카스티야 왕국의 이사벨 여왕이 이 이야기를 듣고 산후안의 무덤에 찾아와 왕국의 후계자를 내려 달라고 간절히 기도를 하고 아들을 낳았다.

여왕은 아이 이름을 후낭이라고 지었는데 얼마 살지 못하고 죽고 만다. 슬픔에 빠진 여왕은 다시금 아이를 갖기 원해 이곳을 찾아와 다시 한 번 더 기적을 바라면서 기도를 했고, 이번에는 딸을 낳게 됐고 이름을 후아나라고 지었다. 감사한 마음에 여왕은 산후안 무덤 주변에 거대한 캐노피(왕좌나 침대 등의 윗부분을 가리는 것)를 만들어 주었다. 석고로 만들어진 산후안의 무덤에는 아직도 벌 떼 신화를 비롯한 그의 일생이 그려져 있다

저녁에는 미사에도 참여할 수 있지만 오늘 우리의 목적지는 아헤스기 때문에 쉬는 시간을 끝내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마을 초입
▲ 아헤스 마을 초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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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번째 날 목적지, 아헤스... 혼자 걸으면 어떤 느낌일까?

천 년의 역사를 가진 산티아고순례길. 그 길 위에는 정말 많은 이들의 사연이 담겨져 있을 것이다. 그 사연 하나 하나를 다 알지는 못하지만 앞으로 더 걷다보면 그들이 어떤 마음으로 걸었는지 조금은 알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아헤스 알베르게에 도착하니 우현이가 먼저 도착해 짐을 풀고 쉬고 있었다. 몇 시간 얼굴을 못 봤는데 매일 같이 걷다 보니 오랜 시간 못 본 것처럼 매우 반가웠다.

충만 : 오늘 혼자 걷는 건 어땠어?~
우현 : 어휴 처음에는 편하다가 나중에 너무 심심했어요~

작년에 처음 레온부터 산티아고 콤포스텔라까지 걸을 때는 혼자 멋 모르고 걸었다. 길 위에서 만나 몇 시간씩 이야기하고 알베르게에서 식사를 하며 이야기 나눈 순례자들은 있었지만 며칠씩 하루 종일 같이 걸은 순례자는 없었다.

하지만 이번엔 시작 지점인 St.Jean부터 얼굴을 보고 하루 종일 같이 걷고 같이 저녁식사 준비를 하고 같이 자고 일어나서 또 걸었다. 그렇게 10일을 반복하니 너무 정이 들어 혼자 걸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사실 이번 순례길 기간은 비수기라 빠른 속도로 산티아고 콤포스텔라에 도착하려고 했는데 좋은 사람들을 만났기 때문에 혼자 걷기 싫어졌다.

이런 느낌은 나만 받은 게 아니었나 보다.

준택 : 종원아 뭐 하고 있어? 부르고스는 어때?
종원 : 너무 빨리 걸어서 다리 아파. 부르고스는 큰 도시라 볼 게 많아서 하루 더 묵으려고. 내일 만나자
충만 : 진짜? 빨리 안 가도 돼? 우리 또 같이 걷는 거야!
해인 : 종원이 오빠 부르고스에 하루 더 묵는대요?
성균이형 : 종원이 준택이 저녁식사 준비하느라 애썼는데 내일 부르고스에서 파티하자!

덧붙이는 글 | 벨로라도 -> 아헤스

오늘 하루 쓴 여비
점심 빵 맥주 3.70 알베르게 9 저녁 6 빨래 2 피자 3.75



태그:#산티아고, #순례길, #부르고스, #물집, #순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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