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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부터 '존속살해 무기수' 김신혜씨의 재심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박준영 변호사와 함께 토크 콘서트를 진행하고 있다. 그때마다 늘 상 빠지지 않는 청중들의 질문들이 있었다. 바로 '억울한 사람들의 호소'를 진실로 억울하다고 믿는 근거가 뭐냐는 것이었다.

존속살해 무기수 김신혜씨의 재심을 맡고 있는 박준영 변호사.
 존속살해 무기수 김신혜씨의 재심을 맡고 있는 박준영 변호사.
ⓒ sbs 뉴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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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질문에 답하는 박준영 변호사의 태도는 늘 진지하다. 누군가의 간절한 호소를 조사 과정도 없이 말 몇 마디에 판단하고 이에 따라 지원 여부를 결정하는 과정이 쉽지 않다는 인간적인 고뇌였다. 그러면서 마지막에 내놓는 답변은 듣는 나 역시도 뭉클하게 했다.

그건 얼마나 오랫동안 자신의 억울함을 주장했는지 여부라고 했다. 사람은 한순간 억울해할 수도 있고 또 잠시 그 억울함을 주장할 수 있지만, 오랫동안 한결같이 억울함을 주장하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실제로 그렇다. 박 변호사는 그래서 이렇게 말한다.

"저는 김신혜씨를 처음 만났을 때, 그녀가 지난 17년간 자신의 억울함을 주장하며 외치는 모습을 보고 전율했습니다. 사람이 이렇게 오랫동안 억울함을 주장하는 것은 그냥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스스로의 희생과 에너지가 엄청나게 필요한 일입니다. 정말로 억울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 제가 신혜씨를 도와야겠다는 마음을 먹은 일입니다."

김신혜가 말하는 17년 전 '나의 알리바이'

김신혜가 아버지를 살해한 혐의가 확실하다고 판단하는 경찰의 논리 중 하나는 바로 사건 당일 전후한 시각에 그녀의 알리바이가 없다는 것이다. 아니, 정확히 표현하면 알리바이가 없는 것이 아니라 그녀가 그 알리바이를 입증할 수 없다는 것이다. '범죄가 행해진 때에 피고인 또는 피의자가 범죄의 현장 이외의 장소에 있었다는 사실을 주장함으로써 무죄를 입증하는', 그녀의 알리바이는 무엇일까.

정말 그녀는 아버지가 사망한 그 시각에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김신혜는 2001년 1월경 나에게 장문의 편지를 3차례 보내온다. 편지지로 50매가 넘는 그 글에서 김신혜는 자신의 알리바이를 주장한다. 그녀가 주장하는 사건 당일을 전후한 진실은 이렇다.

김신혜씨가 보내온 편지중 일부.
 김신혜씨가 보내온 편지중 일부.
ⓒ sbs 뉴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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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발생 전날인 2000년 3월 6일(월) 오후 6시경. 신혜는 렌트한 차량에 시동을 걸었다. 고향인 전남 완도에 내려가 있던 남동생을 서울로 데려오기 위한 여행길이었다. 일주일 전인 3월 1일, 신혜는 집에서 키우던 강아지를 할머니 집에 데려다 놓기 위해 남동생과 함께 완도를 향했다. 애초에는 강아지만 데려다 놓고 당일 다시 남동생과 함께 서울로 올라오기로 되어 있던 계획이었다.

그런데 갑작스러운 일이 있었다. 당시 19살이었던 남동생이 마음을 바꿔 할머니 집에 더 있고 싶다며 떼를 쓰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누나인 김신혜는 남동생에게 "그럼 며칠 후에 너를 데리러 오겠다"며 혼자 서울로 올라오게 된다. 왜 그랬을까? 이유가 있었다.

신혜의 고향 친구 중 절친한 한 명이 결혼을 하고 그 친구의 집들이가 4일 후인 3월 5일(일) 광주광역시에서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신혜는 광주 친구의 집들이를 한 후 다음날인 6일 완도에 들려 남동생을 데리고 올라오면 되겠다는 마음속 계산을 한 것이다.

그런데 예정된 일정이 어긋나게 된, 뜻밖의 문제가 발생했다. 집들이를 가기로 약속한 5일 새벽에 집 앞 주차된 차가 누군가가 충돌하고 도주한 사고가 난 것이었다. 결국, 부서진 차의 수리를 맡기는 등 일 처리를 하다 보니 어느덧 시간은 광주로 출발할 수 없는 시간이 된다. 이에 신혜는 광주 친구에게 사정을 말한 후 다음 날인 월요일 아침에 출발하겠다며 전화를 하게 된다.

하지만 다음 날인 3월 6일(월)에도 신혜는 광주 친구의 집들이를 가지 못하게 된다. 아침에 광주 친구에게 전화를 하자 전날 고향에서 왔던 친구들이 벌써 집으로 다들 돌아갔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난감한 일이었다. 그래서 결국 집들이 방문을 취소하기로 결심한 신혜가 다시 전화를 건 곳은 다름 아닌 완도의 할머니 집이었다.

신혜는 이때 남동생에게 매우 중요한 말을 한다. 일정이 바뀌었으니 그냥 버스를 타고 서울로 올라오라는 말이었다. "광주 집들이가 취소되어 내려갈 일이 없어졌으니 그냥 버스를 타고 서울로 올라오라"는 말을 전하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누나가 통장으로 차비를 보내준다는 말도 곁들였다고 한다. 하지만 남동생은 막무가내였다. 내려와서 자기를 데려가 달라고 떼를 쓴 것이다.

세월이 흐른 후 신혜의 남동생은 '이날의 일을 뼈저리게' 후회한다고 나에게 말했다. 그날 누나의 이 말을 내가 그냥 들었다면 하는 후회였다. 남동생은 그날 누나가 자신에게 실제로 이런 말을 했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자신이 누나의 말을 듣지 않고 마냥 떼를 쓰며 억지를 부린 결과가 이러한 비극으로 이어질 줄은 몰랐던 것이다.

'착한 누나' 신혜는 결국 '귀여운' 남동생의 말을 끝까지 거절하지 못했다. 정말이지 운명은 이렇게 가혹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비극은 그렇게 한발씩 한발씩 그들 남매도 모르는 가운데 빠져들고 있었다.

존속 살해범으로 휘말린 운명의 4시간

결국 남동생에게 내려가겠다는 약속 후 신혜는 다시 전화기의 버튼을 눌렀다. 좀 전에 집들이를 취소했던 광주 친구였다. "완도에서 남동생을 데리고 올라가는 길에 집들이를 가겠다"며 새로운 약속을 하기 위한 전화였다. 그리고 또 전화를 건다. 이번에는 광주에서 만나기로 했던 완도 친구들이었다. 고향 친구인 박아무개씨와 권아무개씨에게 "오늘 밤 내가 완도로 내려갈 테니 친구의 구둣가게에서 만나자"는 말이었다.

나는 이러한 김신혜의 주장을 확인하기 위해 2001년 이들 친구들을 상대로 직접 확인했다. 2003년에는 MBC <PD수첩> 제작진이 이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친구들은 김신혜의 말은 전부 사실이라고 전했다. 아버지를 살해하기 위한 목적으로 완도를 내려갔다는 수사기관의 결론과 달랐던 것이다. 과연 이런 살인범도 있을까?

한편 변경된 일정으로 출발이 늦어진 신혜가 완도를 향해 가다가 처음 차를 멈춘 곳은 대전 부근의 어느 휴게소였다고 한다. 이곳에서 신혜는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당시 아버지는 동네 주민 두 명과 함께 집에서 술을 마시던 중이었다.

"아버지, 저 지금 고향으로 내려가는 중이에요."
"조심해서 내려오고 너 오면 먹으라고 아버지가 닭죽 쑤어 놨다."

당시 아버지와 신혜가 나눴다는 대화 내용 중 일부다. 이 내용으로 본다면 당시 신혜의 아버지도 딸이 완도로 내려오는 중임을 알 수 있다. 과연 사실일까? 사실이다. 이는 사건 후 경찰 수사를 통해 확인된다. 이를 증언한 이는 두 사람의 통화를 곁에서 듣고 있던 마을 주민이었다. 그래서 통화를 마친 그 아버지에게 마을 주민은 "딸도 내려오고 있는데 술 좀 그만 마시라"며 가볍게 타박까지 했다고 말했다.

김신혜씨
 김신혜씨
ⓒ 고상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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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주민들은 신혜와 아버지 사이가 생전 나쁘지 않았다고 한다. 몸이 불편한 아버지에 대한 연민과 애정을 가진 착한 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부녀지간이었다고 한다.

여하간 그렇게 통화를 마친 신혜는 이후 어두운 고속도로를 헤치며 내내 쉬지 않고 완도를 향해 달려갔다. 3월 7일(화) 0시 55분경. 신혜가 완도를 들어서기 위해 검문소를 통과한 시각이었다. 하지만 운명은 여기서부터 꼬이기 시작한다. 남동생의 떼쓰기가 첫 번째였다면 두 번째는 신혜의 변심이었다.

그날 신혜는 집으로 들어갔어야 한다. 하지만 내려오기 전 친구들과 한 약속이 생각난 것이 문제였다. 구둣가게에서 보자며 약속한 친구들이 자기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마침 마을 입구에 공중전화가 보였고 신혜는 이내 차에서 내려 전화를 건다. 하지만 벨이 울려도 전화를 받는 사람은 없었다.

"이상하다? 친구들이 기다리기로 했는데 어찌된 일일까?"

신혜는 다시 친구 박씨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했다. 몇 번의 울림이 있은 후 반갑게도 박씨의 목소리가 들렸다.

"난데, 왜 가게 전화를 안 받냐?"
"야야, 우리는 네가 버스 타고 오는 줄 알고 이제껏 완도 버스터미널에서 기다리다가 지금 막 들어왔다. 너 놀래켜 줄려고 기다리다가 우리 둘 다 얼어 죽는 줄 알았다."
"그랬냐? 그럼 나 지금 도착했는데 나올 수 있냐?"

하지만 친구는 난색을 보였다.

"지금? 시간이 너무 늦었는데... 우리 그러지 말고 내일 만나면 안 될까? 권OO하고는 통화해 봤어?"

'나와라, 못 나온다' 실랑이 끝에 결국 신혜는 친구에게 지고 만다. 새벽 1시가 넘어 나갈 수 없다는 친구에게 "그럼 내일 보자"며 전화를 끊은 것이다. 그러면서 대신 다른 친구인 권씨와 만나면 되겠다고 생각했다는 신혜. 하지만 친구 권씨의 휴대폰으로 건 전화는 연결이 되지 않았다. 벨이 한참 울려도 친구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대신 음성 메시지를 남기라는 안내음만 들려왔다고 한다.

그러자 신혜는 다시 친구에게 전화를 걸기 전 아버지를 생각했다. 내려오면서 곧 도착할 것이라고 말을 했는데 도착 이야기는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래서 걸게 된 '문제의' 아버지 집 전화. 그러나 이상했다. 아버지 역시 집 전화를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시간에 어딜 가셨나?

그래서 또 걸게 된 전화는 신혜의 할머니 집이었다. 아버지가 전화를 안 받자 이번엔 남동생과 여동생, 그리고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자고 있는 할머니 집으로 전화를 건 것이다. 다행히 이번엔 전화를 받은 사람이 있었다. 당시 18살의 여동생이었다.

"혼자 있는 게 죄가 될 줄 몰랐어요"

신혜는 "금방 집에 도착하는데 다들 뭐하냐?"며 여동생에게 물었다고 한다. 그러자 여동생은 "오빠와 할머니는 잠을 자고, 나는 만화 그리고 있는 중"이라며 답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여동생은 세 번째 '비극적인' 운명으로 이어지는 결정적 말을 언니에게 전하게 된다. "아빠가 술에 많이 취해 올라와서 할머니, 할아버지와 싸우고 방금 내려갔다"는 말이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신혜는 아버지를 만나러 가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아버지의 술주정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또다시 무릎 꿇게 한 후 밤새 자신의 이야기를 하실 것이 뻔했다. 술만 아니면 더없이 좋은 아버지였지만 그놈의 술이 문제였다. 취하면 누구도 못 말릴 난폭한 성격이 아버지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렇게 아버지가 취한 날에 선택할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아버지가 취한 날에는 되도록 함께 있지 않는 것이 가장 상책임을 신혜는 체험으로 알고 있었다. 그 순간만 피하면 조용해지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아버지를 찾아갈 생각을 접자 신혜는 친구인 권씨를 꼭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였다. 여동생이 갑자기 "언니 어디야?"라고 물어온 것이다. 그리고 이때 매우 중요한 말이 오고 갔다. 방금 전 집에 갈 생각이 없어진 신혜가 그 갑작스러운 여동생의 질문에 당황하여 엉겁결에 '검문소 앞'이라며 거짓말을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 '네 번째 운명'은 이후 오늘까지 17년간 김신혜를 감옥에 가두게 되는 결정적 의혹이 된다. 완도에 도착하고도 자신이 도착하지 않았다며 가족들을 속인 이유가 바로 아버지를 살해하기 위한 목적이었기 때문이라고 경찰이 판단했기 때문이다.

재심개시 1심 재판이 열렸던 해남법원. 그녀는 울부짖으며 억울함을 외쳤다.
 재심개시 1심 재판이 열렸던 해남법원. 그녀는 울부짖으며 억울함을 외쳤다.
ⓒ 고상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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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김신혜의 주장은 달랐다. 고향에 도착하고도 친구부터 먼저 만난다며 들어가지 않으면 할머니께서 서운해하실 것 같아 순간적으로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거짓말이 추후 재판 과정에서 불리한 증거가 될 줄을 당시만 해도 어찌 알았을까? 그렇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운명의 시간은 조금씩 다가오고 있었다.

하지만 신혜는 결국 그날 밤 친구 역시 만나지 못하게 된다. 정말 친구라도 만났다면 그녀의 알리바이가 증명되었을 텐데 안타깝게도 그렇게 되지 못한 것이다. 경위는 이랬다. 여동생과 통화를 마친 후 신혜는 다시 친구 권씨에게 전화를 했다. 다행히 이번에 친구가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앞서 친구와 같이 "시간이 너무 늦어 엄마에게 혼날 것 같고 또 내일 출근도 해야 하니 나갈 수 없다"며 다음날 보자는 말이었다고 한다.

이날의 일에 대해 두 친구는 김신혜의 1심 법정에 출석하여 증인으로 증언했다. 그날 밤 친구인 김신혜에게 전화를 받은 사실이 있으며 이러한 경위로 만나지 못했다는 증언이었다. 그러면서 두 친구는 "그날 밤 우리가 신혜를 만나기만 했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라며 울었다.

여기까지가 바로 남동생과 여동생, 그리고 친구들과 마을 주민에 의해 확인되는 그 날 밤 김신혜의 행적이었다. 하지만 경찰은 이러한 김신혜의 행적에 대해 무게 중심을 두지 않고 그녀의 범행 가능성에 대해서만 집중적으로 추궁했다. 그리고 그 결과 김신혜는 아버지를 살해한 범인으로 지금도 여전히 갇혀 있다.

과연 그녀는 아버지를 살해한 것이 사실일까? 그렇다면 아버지를 살해하기 전 의도적으로 여러 사람에게 전화를 하고 또 나오라고 불러내며 또 다른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것일까? 또한, 이렇게 친구들과 만나려 했으나 결국 만나지 못한 3월 7일 새벽 1시 30분부터 사건이 발생했다고 경찰이 판단한 새벽 4시 사이까지 그녀는 또 무엇을 한 것일까? 그 의문의 열쇠는 다음 주 5화에서 공개한다.


태그:#무기수 김신혜의 17년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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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운동가, 재야인사 장준하 선생 의문사 및 친일 반민족행위자의 재산을 조사하는 조사관 역임, 98년 판문점 김훈 중위 의문사 등 군 사망자의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저서- 중정이 기록한 장준하(오마이북), 장준하, 묻지 못한 진실(돌베개), 다시 사람이다(책담) 외 다수. 오마이뉴스 '올해의 뉴스게릴라' 등 다수 수상

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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