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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소식지를 함께 만들었던 젊은 노동자는 어느덧 50대가 훌쩍 지났다. 그 노동자의 아이는 이제 20대의 청년이 되었다. 100호는 어떤 이에게 이런 의미다."

"100호를 기념하기 위해 100호는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새 출발점에서 과거의 사람들과 소통하며 현재 그리고 미래를 만들어 나가고자 100호는 만들어지는 것이다. 언제나 산추련 소식지에는 '저항'이 존재한다."

마산창원거제 산재추방운동연합(산추련)이 소식지 100호를 냈다. 25년 전 <산재 없는 그날까지>를 부르짖으며 분기마다 소식지를 내기 시작했는데, '산재 없는 그 날'은 아직 달성되지 않았고, 어쩌면 계속 될 것이다.

마창거제 산재추방운동연합이 소식지 100호 특별판 <산재없는 그날까지>를 펴냈다.
 마창거제 산재추방운동연합이 소식지 100호 특별판 <산재없는 그날까지>를 펴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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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 없는 그날까지>는 1991년 11월 23일 '노동자 건강을 위한 모임'에서 발행한 '산재 없는 그날까지' 창간호와 1992년 '일하는 사람의 건강을 위한 모임'에서 낸 '노동과 산업재해'에서 시작되었고, 1995년 4월 '노동과 건강을 위한 연대회의'에서 복간 13호를 발행한 뒤 계속 이어졌다.

1990년대 나온 소식지 표지를 보면 예나 지금이나 산업재해가 얼마나 심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영미의 처참한 죽음에 우리는 분노한다"(4호), "작업중지"(17호), "직업병 대책을 즉각 수립하라"(23호)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또 1997년 7월에 나온 소식지(24호)에는 "더 이상 이 아이들에게 고통을 주지 말자"며 과로사한 노동자의 장례식장에서 오열하는 부인과 아이들의 모습을 담아 놓았고, 1998년 5월에 나온 소식지(29호)에는 '근로복지공단 항의방문 투쟁에 나선 산재 환자'의 모습을 담아 놓았다.

2000년대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2001년 8월 소식지(42호)에는 노동자 건강권 사수와 산재 추방을 위해 용접․도장복을 입고 거리로 나선 노동자들의 모습을 담았고, 2003년 6월에 나온 소식지(47호)에는 '근골격계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노동자들의 거리행진 사진이 실려 있다.

"자랑삼아 떠벌리는 노동운동 30년의 세월 속에 노동자 죽이는 기계가 되어버렸다"(57호, 2005년 8월), "또 한 명의 노동자가 살해 당했다. 그의 나이는 26세였다. 노동자에게 따뜻한 봄날은 언제나 가능할까?"(64호, 2007년 3월)라는 이야기도 있다.

또 "1988년 15살 소년이었던 문송면의 죽음을 기억하시나요? 열악한 노동조건은 15세 소년을 수은중독이라는 이름으로 앗아갔다. 15살 소년이 불혹의 나이가 되었을 지금, 여전히 문송면의 죽음은 노동현장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80호, 2012년 7월)는 내용도 담았다.

"조우고 닦고 넣고 빼고 한결같은 일상에는 둔감해지는 걸까? 골병의 현장은 여전하다"(84호, 2013년 7월), "노동자가 22미터 아래로 추락했다. 저 위 보이지 않는 끝에 그가 있었다. 회사의 최고경영진은 사신이 씌웠다고 망발을 해댄다. 이윤만을 위해 달리는 사회에서 노동자는 죽을 운명이라는 것일까?"(94호, 2015년 9월)라는 내용도 있다.

소식지를 한 번 낼 때 대략 15개의 글이 실린다. 노동자와 산재 전문가들이 현장 소식과 경험담, 법률 상담과 판례 등을 소개하고 다양한 정책을 내놓기도 했다.

한 번 낼 때마다 1000권을 발행하고, 100번 냈으니까 권수로 따지면 10만권이 나온 셈이다. 한 호에 40쪽 분량인데 1000권을 100번 냈으니까 그동안 400만쪽을 발행한 것이다.

마창거제 산추련은 "100호가 발생되는 25년 동안 산추련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고, 25년 동안 책을 만들기 위해서 수많은 노동자와 진보적 전문가들이 함께 했다"며 "수많은 노동자의 건강 소식과 더불어 전국 그리고 지역에서 일어나는 각종 투쟁 소식을 전해 왔다"고 했다.

"현장 상황을 보면 결코 녹록하지 않다"

고정필진으로 '산재 판례'를 소개하고 있는 최영주 노무사는 "노동 없는 이 세상 아무 것도 이루어질 수 없듯이, 노동하는 사람들이 건강하게 살아가는 그런 세상을 앞당기는데 기여해온 산추련 사람들과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고 했다.

'건강하게 삽시다'를 쓰고 있는 김명수 노무사는 "유해물질은 자비가 없고 과로스트레스는 의도가 없다"며 "일하면서 병들고 다치고 죽는 일들을 막기 위해서 사람 사이의 관계, 노동과 자본 사이의 관계를 바로잡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라 했다.

'건강하게 삽시다'를 쓰고 있는 김영기 교수(부산대 예방의학)는 "노동자 건강을 지키고자 하는 노동보건운동은 여전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지속되어야 한다"며 "그런 측면에서 산추련 소식지는 노동자 건강 지킴이로서 그 역할을 잘해나갈 것이라 믿는다"고 했다.

<산재 없는 그날까지> 편집에 참여했던 노동자들이 세상을 뜨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고 변우백, 손명제 위원이다.

편집위원 박근복씨는 "현장 상황을 보면 결코 녹록하지 않다. 20여년 전 상황이나 지금이나 현재가 결코 낫다고 장담하기 힘든 것 또한 현실이다. 이 엄혹한 현실을 어떻게 돌파해 나갈 것인가. 그 답은 그 누구도 아닌 현장의 노동자 자신에게 있다"고 했다.

심소보씨는 "회사, 노동부, 근로복지공단과 싸운다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았지만 힘들다고 그만둘 수가 없었고 몇몇이 싸운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기에 더욱 그만두지 못했다"며 "소식지를 통해 노동자들이 단위 사업장에서부터 조직하고 싸워서 사고나 직업병을 인정하고 건강권을 지킬 수 있도록 열심히 했다"고 밝혔다.

'100호 특별판'에도 알찬 글들이 많다. 여영국 경남도의원은 "작업 중지권 아직도 그림의 떡이다"고, 김재천 산재노동자협의회 회원은 "18년 전의 그때보다 나아진 것은 없다"고, 이민형 대우조선노조 대의원은 "끝나지 않고 계속되고 있는 조선소 노동자들의 노동안전투쟁", 김정철 금속노조 경남지부 사무국장은 "현장에서 출발하는 생명권 투쟁"을 썼다.

산추련은 최근 정기총회를 열어, 김문겸 대표와 김종하 노동건강연대사업단 운영위원장, 김병훈 사회건강심리센터 운영위원장, 심소보․양수호 감사를 선출했다.

산추련은 "1호와 99호의 내용은 변했을 것이다. 그러나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여전히 우리 사회는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 그리고 재해를 당하는 자와 재해를 일으키는 자(사업주)가 존재한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저항하는 자가 산추련에 남아 있다는 것이고, 그 저항은 소식지를 통해 '글'로서 일상에서의 '행동'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라 했다.


태그:#산업재해, #산재추방운동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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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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