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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먹으'려고만 태어나지 않습니다만, 우리는 '먹고·입고·자는' 세 가지를 하면서 목숨을 잇습니다. 이른바 '밥·옷·집'이 있어야 살아요. 먹지 않으면 굶어서 죽을 테고, 입지 않으면 추워서 죽을 테며, 집이 없으면 느긋하게 쉬지 못할 뿐더러 이리저리 치이며 고달플 테지요.
겉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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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수와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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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날에는 누구나 손수 살림을 지어서 밥이랑 옷이랑 집을 얻었어요. 오늘날에는 '먹고 입고 자는' 살림을 거의 다 돈으로 풀어요. 시골에서 살며 '먹는' 데만큼은 손수 지어서 거두더라도, 옷이나 신을 손수 짓는 분은 매우 드물고, 집을 손수 짓는 분도 무척 드물어요.

무엇이든 손수 지어서 쓸 적에는 '먹고 입고 자는' 살림하고 얽힌 일을 낱낱이 배우거나 알기 마련이에요. 오늘날에는 돈을 써서 '먹고 입고 자는' 살림을 누리느라, 이제 우리는 '먹고 입고 자는' 살림이 어디에서 어떻게 오는가를 쉽게 잊거나 놓치곤 해요.

오스트리아, 독일, 스위스 등지에서는 동물은 물건이 아니라고 법에 명시하는 반면에 우리나라에서는 동물을 재산으로 보고 있습니다. 사유 재산에 불과하므로 "내 것을 내 마음대로 하는데 무슨 상관이냐"는 식의 방치나 학대도 사실상 법으로 제재하지 못하는 실정이랍니다. (38쪽)

번식장의 엄마 개들은 따뜻한 햇볕도 촉촉한 흙의 느낌도 전혀 알지 못한답니다. 왜냐고요? '뜬장'이라고 불리는 철창에 갇혀 평생 강아지를 낳는 기계 노릇을 하기 때문이에요 … 강제 임신과 제왕절개는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모견·종견들은 더는 번식을 할 수 없을 때까지 계속 이 일을 겪어내야 한답니다 … 우리나라에서 현재 불법으로 운영되는 번식장은 약 3천여 곳이라고 합니다. 한 달 평균 2만여 마리의 개가 경매장을 통해 거래되고요. (46, 48, 49쪽)

이유미 님이 글을 쓰고 최소영 님이 그림을 그린 <10대와 통하는 동물 권리 이야기>(철수와영희 펴냄)는 우리가 흔히 잊거나 놓치는 '먹고 입고 자는' 살림을 살며시 건드립니다. 언뜻 보자면 '동물 권리'를 밝히는 책인데 무슨 '먹고 입고 자는' 살림을 건드리느냐고 물을 수 있어요.

자, 한번 생각해 보기로 해요. 사람들이 아주 쉽게 흔히 먹는 '튀김닭(치킨)'은 무엇일까요? 고기가 되는 닭은 어디에서 어떻게 키워서 우리 앞으로 올까요? 세겹살이 되어 주는 돼지는 고기이기 앞서 어디에서 어떻게 살다가 우리한테 올까요? 고기가 되는 소는 어디에서 어떻게 살까요? 젖을 주는 소는 어디에서 어떻게 살까요?

아무런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시달리거나 들볶이면서 살던 닭이나 달걀을 먹을 적에 우리 몸은 튼튼할 수 없으리라 느껴요. 고기가 되는 짐승뿐 아니라 나물이랑 열매도 매한가지이리라 생각해요. 시달리거나 들볶이는 나무에서 딴 열매는 맛나기 어렵겠지요. 따스한 손길이 아닌 매몰찬 손길을 받은 나물이나 열매일 적에도 우리 몸에 도움이 되기 어려울 테고요.

속그림. 돼지는 그저 '고기'일 뿐일까요.
 속그림. 돼지는 그저 '고기'일 뿐일까요.
ⓒ 철수와영희/최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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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완견 생산을 목적으로 운영되는 번식장은 3천여 곳이지만 식용 개 공급을 목적으로 하는 개 농장은 무려 1만 7천여 곳입니다 … 이 개들에게 사료란 사치스러운 음식입니다. 농장주들에게는 수지타산이 안 맞거든요. 1천 마리 이상 키우는 곳에서는 한꺼번에 들어가는 돈이 어마어마하잖아요. 음식물 쓰레기를 공급받는 것은 그나마 다행일지도 모릅니다. 같이 살았던 다른 개들의 사체에서 나온 내장 등의 부산물을 먹고살기도 합니다. (60, 61쪽)

<10대와 통하는 동물 권리 이야기>는 우리 곁에 대단히 흔할 뿐 아니라 아주 많이 있는 수많은 '짐승'이 누릴 권리 이야기를 다룹니다. 짐승한테 무슨 권리를 챙겨 주느냐고 물을 분도 있을 텐데요, '죽은 다른 개'를 먹고 살아야 하는 개가 '사람이 먹는' 개라면? 반려동물이나 애완동물이 되는 개라면? 우리가 흔히 먹는 고기하고 달걀을 내어주는 닭이 무척 괴롭고 끔찍하며 무시무시한 곳에서 억눌린 채 산다면? 권리를 못 누리는 뭇짐승한테서 우리가 무엇을 얻을 만한지 생각해 봐야지 싶어요.

우리는 이 같은 얼거리를 아주 쉽게 놓치거나 흘려 보내곤 합니다. 아무래도 우리가 우리 살림을 손수 짓는 길이 아니거든요. 손수 키운 닭을 잡아서 먹는다고 할 적에 아무것이나 먹이면서 아무렇게나 키우지 않아요. 돼지나 소를 손수 기를 적에도 아무것이나 먹이지 않을 테고요. 반려동물이나 애완동물만 살가이 사랑을 받아야 하지 않아요. 모든 짐승이 똑같이 사랑받을 수 있어야지 싶어요.

속그림. 개구리 해부실험은 참말 교육이 될 만할까요.
 속그림. 개구리 해부실험은 참말 교육이 될 만할까요.
ⓒ 철수와영희/최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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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그림. 동물 실험은 효과가 없는 줄 널리 알려졌어도 한국에서는 아직도 '중국 수출로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에 동물 실험을 그치지 않는다고 합니다.
 속그림. 동물 실험은 효과가 없는 줄 널리 알려졌어도 한국에서는 아직도 '중국 수출로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에 동물 실험을 그치지 않는다고 합니다.
ⓒ 철수와영희/최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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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은 애완용, 식용, 실험용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랍니다. 모두 같은 동물이지요. 여러분도 용도가 나뉘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 우리나라에서는 동물 실험을 통해 제조된 화장품 유통이 금지되었지만, 문제는 중국으로 수출하려면 동물 실험을 의무적으로 해야 한답니다. 여기서 충돌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중국 수출을 포기할까요? (83, 85쪽)

우리가 믿는 바와는 반대로 의학과 생명 과학 분야에서 동물 실험이 비효율적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지는 오래되었습니다 … 동물과 인간이 공유하는 질병은 1.16퍼센트에 지나지 않아 동물 실험으로 개발된 의약품은 사실상 보편적인 안전성을 보장해 주기 어려운 정도의 비율입니다. (89, 90쪽)

손수 짓는 살림이 아닌 터라 자꾸 돈을 생각하고 맙니다. 더 싸고 더 많이 얻을 수 있기를 바라고 맙니다. 이러면서 저절로 '동물 학대'로 기울어집니다. 오늘날에는 '동물 실험'이 거의 보람이 없다고 하지만, 한국은 중국에 수출을 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화장품 동물 실험'은 그치지 않는다고 해요. 권리보다 돈이 앞서고 맙니다. 권리는 따지지 않고 돈만 따지는 셈입니다.

동물 권리를 살피지 않는 흐름은 동물한테만 머물지 않는다고 느껴요. 이주노동자한테도, 이 나라 모든 사람한테도 똑같이 맞물린다고 느껴요. 정규직하고 비정규직으로 갈리는 사회 얼거리도 권리를 제대로 살피지 않는 모습하고 맞닿아요. 모든 차별이나 계급은 바로 '서로 아끼며 보살피는 마음'인 권리를 하찮게 여기는 모습하고 이어져요.

속그림. 돌고래가 좁은 사육장 아닌 바다에서 헤엄치기를.
 속그림. 돌고래가 좁은 사육장 아닌 바다에서 헤엄치기를.
ⓒ 철수와영희/최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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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그림. 사람들은 사람만 생각하며 숲을 마구 불태우기도 합니다.
 속그림. 사람들은 사람만 생각하며 숲을 마구 불태우기도 합니다.
ⓒ 철수와영희/최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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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특히 돌고래 쇼를 아주 좋아합니다. 그것은 동물에 대한 인간 본성과 순수한 동심에서 표현되는 환호이지만 결국은 이 아이들도 자라서 동물 쇼의 배경을 알고 나면 마음이 매우 아프겠지요. (112쪽)

우리 주변에는 동물들로 넘쳐나는데 여전히 강아지 공장, 고양이 공장에서는 생명들을 생산해 내고 있습니다. 거듭 강조하지만, '새 상품'을 갖고 싶어 하는 소비자들의 욕구가 그대로 반영된 사회 현상입니다. (160쪽)

흔히 '양계장'이라고 하지만, 어느 모로 보면 '닭 공장'이라고까지 할 만한 얼거리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강아지 공장'하고 '고양이 공장'이 버젓이 있는 한국입니다. 살아서 움직이는 목숨을 기계 부속품하고 똑같이 다루지요. 멀쩡히 산 목숨이지만 마구 다루고 함부로 죽이며, 어쩌면 기계 부속품만도 못하게 다루면서, 오로지 돈이라는 잣대로만 바라보고 말아요.

이 슬픈 흐름을 끊을 수 있을까요. 돈을 그만 바라보고 권리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을까요. 돈을 벌더라도 아름답게 버는 길로 거듭날 수 있을까요. 참말로 돈을 버는 살림도 아름답고 사랑스레 이웃 목숨을 고이 헤아리는 몸짓으로 할 수 없을까요.

속그림. '라쿤'이란 무엇일까요.
 속그림. '라쿤'이란 무엇일까요.
ⓒ 철수와영희/최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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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그냥 인간 1, 2, 3, 4가 아닌 것처럼 연구 대상이 되는 침팬지라도 애정을 담은 이름으로 불린 것은 제인 구달을 통한 연구가 처음이었습니다. 이런 방식을 못마땅하게 생각한 과학자들도 많았지만 … (171쪽)

인간이라는 멋진 이름으로 태어난 여러분이 같은 생명끼리의 도덕과 의무를 인지하고 실천한다면 훨씬 의미 있는 삶이 되지 않을까요? (41쪽)

<10대와 통하는 동물 권리 이야기>를 쓴 분은 이 나라 푸름이한테 '사람이라는 멋진 이름으로 태어난 우리'가 앞으로는 뜻있고 아름다운 삶으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마음을 보여줍니다. 이웃 짐승을 짓밟고 올라선 사람이 아닌, 이웃 목숨을 고이 사랑할 줄 아는 어깨동무로 나아가는 슬기로운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뜻을 이 책에서 펼쳐 보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글쓴이가 다음처럼 묻는 말을 가만히 새겨 보아야지 싶어요. "이제는 치킨을 못 먹을까" 걱정하는 살림이 아니라, '닭고기를 즐겁게 먹는 길'을 생각하자는 말을 곰곰이 헤아려야지 싶습니다.

왜 그동안 우리 눈에는 이런 상황이 들어오지 않았을까요? 만약 주변에서 흔히 보는 풍경이라면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요? 한 번쯤은 동물들의 고통이 끔찍하게 느껴져 마음이 아플 것이고 한 번쯤은 나의 무심함을 반성하게 되겠지요. 좀더 용감한 사람이라면 불쌍한 동물을 그런 식으로 키우지 말라고 목소리를 높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면 양계 농가는 다 망하고 우리는 치킨을 먹을 수 없게 되는 것이 아닐까요? 그냥 이쯤에서 못 본 척 넘어가 버릴까요? (68쪽)

속그림. 이 지구에서 우리는 무엇을 하면 좋을까요.
 속그림. 이 지구에서 우리는 무엇을 하면 좋을까요.
ⓒ 철수와영희/최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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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본 척 넘어가기 때문에 아픈 이웃이 있습니다. 뭇짐승도 아프고 숱한 사람들도 아픕니다. 이제는 못 본 척할 일이 아니라, 제대로 보고 똑바로 세울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슬그머니 넘어가는 짓은 이제 끝내고, 슬기롭게 맺고 풀면서 함께 기쁘고 아름다운 삶으로 다시 태어나야지 싶습니다.

작은 권리를 지키기에 큰 권리를 지킬 수 있어요. 작은 곳을 바라보기에 큰 곳을 바라볼 수 있어요. 작은 사랑으로 손을 맞잡을 때에 커다란 사랑으로 피어날 수 있어요. '값싼 튀김닭'이 아닌 '맛있고 좋은 튀김닭'을 즐겁게 나눌 수 있는 한국 사회가 되기를 비는 마음입니다.

덧붙이는 글 | <10대와 통하는 동물 권리 이야기>(이유미 글 / 최소영 그림 / 철수와영희 펴냄, / 2017.3.29. / 13000원)



10대와 통하는 동물 권리 이야기

이유미 지음, 최소영 그림, 철수와영희(2017)


태그:#10대와 통하는 동물 권리 이야기, #동물권리, #동물권, #청소년인문, #청소년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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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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