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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센 벵거는 영국의 명문 축구클럽 중 하나인 아스널의 현 감독이다. 그는 아스널이 겪고 있는 오랜 부진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경기에서 패배하면 전술, 포메이션 등을 바꾸며 묘책을 마련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벵거는 반대로 간다. 그는 패배했던 때의 선발 라인업, 포메이션, 전술을 똑같이 고집해 똑같은 패배를 반복한다. 보를 이기기 위해 가위를 내야 하지만 끝내 주먹을 내는 꼴이다.

정부가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3조 원 규모의 추가지원 방침을 내놨다. 2015년 4조 원을 지원했지만, 효과가 없었으니 추가로 자금을 투입하겠다는 것이다. 핵심은 자금을 지원하면 대우조선이 살아날 수 있느냐다. 정부는 조선업계 상황이 개선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지만 합리적인 판단으로 보이진 않는다. 2015년 실패했던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2015년 대우조선을 지원할 당시 조선업계 상황을 긍정했다. 당시 조선업계 분석업체인 클락슨은 조선업계 상황이 2016년부터 점차 개선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냈다. 반면 국제 컨설팅 업체인 맥킨지는 조선업계 불황이 계속될 것이므로 대우조선을 하루빨리 정리하라는 보고서를 내놨다. 정부는 클락슨의 보고서에만 의지했고 맥킨지 등의 부정적인 보고서는 외면했다.

결국, 정부의 구고조정 방안은 조선업계의 장기 불황 가능성을 간과한 채 수립됐고 결과는 실패였다. 정부는 대우조선이 2016년 115억 달러를 수주할 것으로 예측했지만 실제 대우조선의 수주액은 15억 달러에 불과했고 적자는 1조가 넘었다. 대우조선은 5조4000억 원의 자구 노력 중 1조8000억 원밖에 이행하지 못했다.

 (서울=연합뉴스) 안정원 기자 = 2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대우해양조선 지원문제에 대한 의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17.3.21
 (서울=연합뉴스) 안정원 기자 = 2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대우해양조선 지원문제에 대한 의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17.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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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정부는 여전히 조선업계의 개선을 낙관하고 있다. 이미 전망 예측에 실패했던 2015년 클락슨의 보고서를 또 대우조선 지원의 근거로 삼은 것이다. 일각에서는 미국의 금리 인상으로 인한 국제 유가의 하락세,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기조에 따른 발주환경의 불확실성 증가 등으로 조선업계 침체가 한동안 이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맥킨지의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이어졌던 수주절벽은 향후 5년 동안 지속된다. 그러나 이번에도 조선업계 상황에 부정적인 의견은 배제됐다.

이 때문인지 정부는 이번 구조조정 방안을 보수적으로 짜는데도 소극적이었다. 수주 목표를 최대한 보수적으로 잡았다고 밝혔지만, 이 또한 지난해 대우조선의 실제 수주액보다 4배 높은 수치다. 저번과 같은 미흡한 대응이 되풀이될지 우려된다.

또한, 지난번 지원 때 문제시됐던 불투명한 의사결정은 다시 지적됐다. 소수의 금융 관료가 비공개로 모여 대우조선 지원 문제를 논의한다는 이야기다. 앞서 정부는 대우조선의 도산에 따른 경제적 손실이 59조에 육박할 것이라며 추가지원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렇다면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해 정부는 여러 전문가의 의견을 참고해야 하지만 이러한 노력은 아직도 보이질 않는다. 산업 현장은 모른 채 금융논리만 앞세운 구조조정이라는 비판이 벌써부터 나온다.

벵거 감독의 고집에 분노한 아스널 팬들은 결국 경기장에서 'Wenger out'(벵거 감독은 나가라)이라고 적힌 플패카드를 들었다. 차라리 벵거 감독이 없는 게 낫겠다는 뜻이었다. 지금 정부는 대우조선 문제의 감독 노릇을 하며 개입하고 있다. 하지만 실패한 방식을 반복하는 개입은 없느니만 못하다. 감독의 부재보다 더욱 치명적인 것은 감독의 무능이다.



태그:#대우조선해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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