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농촌마을공동체를 되살리려면 농민, 주민 말고도 시민이 많이 살아야 한다. 마을에 사는 시민, '마을시민'이 많이 내려와 뿌리를 내려야 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시민은 도시에 사는 시민, 그 행정적 의미의 시민이 아니다. 근대 이후 사회에서 도시 지역이나 국가의 중심을 이루는 구성원이었던 그 '시민(Citizen)'을 말한다. 정치적 권리와 사회적 의무를 가지는 존재인 그 '시민(Citizen)이다.

이같은 시민의 개념은 18세기 봉건사회를 혁파하려는 영국의 명예혁명, 프랑스의 프랑스혁명 등 '시민혁명'을 계기로 본격 등장했다. 특히 프랑스 혁명 이후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 제1조의 기본 원칙에서는 "인간은 자유롭게, 평등한 권리를 가지고 태어났다"고 천명한다. 제2조는 자유, 소유, 안전, 그리고 압제에 대한 저항으로 시민의 권리를 새기고 있다.

이처럼 시민과 민주주의는 본디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는 것이었다. 시민이 곧 민주주의의 주체이자 주인이기 때문이다. 시민이라는 개념의 탄생시점도 고대 그리스 아테네 민주주의에서 발원하고 있다. 바로 도시국가의 주권, 또는 참정권을 가진 계급이 시민이었다. 당시 시민의 개념은 공간적 시민, 경제적 시민, 정치적 시민 등 세 가지로 구분했다. 공간적인 개념은 시민의 형성 및 활동 공간으로서 도시의 거주민이다. 경제적 시민은 도시국가라는 공동체 내에 재산과 교양을 갖춘 사람이라는 개념이다. 정치적 시민은 공동체의 결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능동적 존재라는 것이다. 현대적 시민의 개념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후 봉건 귀족의 쇠퇴기에 새로운 시민들이 등장했다. 농업, 상업의 발전으로 자본을 축적한 신흥 유산계급들은 정치 권력에서는 소외되고 배제되자 불만이 쌓였다. 정치 참여를 요구하며 시민혁명을 일으켰다. 산업활동으로 부를 축적한 이들 자본가들을 브루조아(Bourgeoisie)로 통칭했다. 자본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계급의 출현이다. 돈의 힘을 앞세운 이들은 구 체제(Ancient Regime)의 지배계급에 대항하는 혁명적 성향을 굳이 감추지 않았다. 이념적으로는 자본주의에 편승해 구체제의 억압으로 벗어나려는 '자유주의'로 무장했다. 

하지만 세상이 진보하면서 '시민'은 모든 사람들을 보편적으로 일컫는 말이 되었다. 심지어 역사적 배경과 무관하게 국민 국가의 구성원을 포괄적으로 일컫는 '국가시민'처럼 국민과 동의어로 혼용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오늘날 '시민'의 의미는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의사와 행동으로 근대 국가에 주체로서 참여하고 국가를 이루는 구성원"에 가깝다고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지구촌 시대에 국가시민은 이미 세계시민으로 개념을 확장하고 있다.

다종다양하고 다채로운 마을시민들의 이야기, ‘마을시민으로 사는 법’
▲ 마을시민으로 사는 법 다종다양하고 다채로운 마을시민들의 이야기, ‘마을시민으로 사는 법’
ⓒ 정기석

관련사진보기


문제는 사람, 진화한 마을시민이다

결국 문제는 '사람이다. 농촌마을의 문제도 근본적, 궁극적으로는 사람으로 풀어야 한다. 농촌마을의 근본적 병인과 한계는 일단 사람의 절대적 량도 부족하고 사람의 근본적 질도 모자라다는 점일 것이다. 농촌마을에는 일단 일을 할만한 사람이 별로 없다. 있다해도 거의 농사기술 전문가 말고는 없다. 그것도 노인 말고는 별로 없다. 지역 내부의 인적자원만으로는 농업이나 마을공동체사업을 감당하는 데 본질적이고 구조적인 장벽이 높은 것이다.

물론 정부나 지자체는 매년 큰 돈을 들여 내부의 역량을 강화하려는 목적의 주민역량강화 사업을 줄기차게 벌이고 있다. 하지만 역부족, 기대 이하이다. 글도 모르는 문맹이 적지않은 고령의 마을주민들이 주력인 농촌마을에서 그 정도의 투자나 방법론은 아무런 교육효과도 거둘 수 없다. 전문가, 귀농인 등이 외부에서 상시, 수시로 유입되어 원주민과 긴밀하게 결합하는 유기적 시스템부터 구축하는 게 일의 순서이고 정석이다.

그렇게 마을공동체사업의 핵심 책임주체인 마을과 지역의 인재를 마을 안에서, 지역사회의 토대 위에서 적극 발굴․육성해야 한다. 그런데 아무나 그런 일을 할 수는 없다는 게 또 문제다. 농사도 아무나 지어서 안 되듯, 농촌 일도 아무나 해서 안 된다. 농촌마을에는 농민이나 농촌주민도 물론 더 필요하지만 '마을시민'이 더욱 절실하게, 보다 많이 필요하다.

'마을시민'이란 말그대로 마을에 사는 시민이다. "지역공동체적 사회자본, 혁신적 인적자본으로서, 마을 또는 지역사회공동체사업에서 주체적 역할을 감당하는, 농촌 및 지역 주민"을 뜻한다. 가령 마을공동체사업의 책임주체인 '마을기업'을 관리하고 경영하는 역량을 갖춘 책임있는 사업주체 역할과 책무를 감당할만한 유능한 인력이다. 귀농인의 경우에는, 제 가족 정도는 책임질만큼 지역에 적응한 단계에 접어든 상태의 귀농인을 포함할 수 있다. 마땅히 그럴만한 수준과 경지에 이르면 귀농한 외지인 처지라 해도 더 이상 주변인이 아닌 당당한 마을•지역사회공동체의 권리와 책임의 주체로 설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귀농인의 3단계 진화론 : 귀농인->마을시민->마을주의자
▲ 귀농인 3단계 진화론 귀농인의 3단계 진화론 : 귀농인->마을시민->마을주의자
ⓒ 정기석

관련사진보기


마을시민이라야 지속가능한 '생활귀농' 기약할 수 있어

지금도 많은 귀농인들은 '생태적, 자립형 소농'으로 제2의 인생을 누리기를 소망한다. 마치 구도를 하는 수행자처럼 자발적 가난 정도는 얼마든지 각오하고 감당할 마음가짐부터 단련한다. 하지만 마음과는 다르게 몸이 먼저 지치거나 무너지는 사례가 흔히 목격된다. 가계 생활이라는 모질고 가혹한 현실이 귀농한 터전의 안방까지 쫓아내려오기 때문이다.

본디 처자식과 더불어 '먹고사는 문제'야말로 정신력이나 도덕률 만으로는 좀처럼 해결하기 어려운 인류문명사 최대최고의 난제가 아닌가. 더욱이 농업이란 일거리 자체가 구조적, 태생적으로 먹고살기에 좋은 사업이나 산업이 아니다. 그래서 농사로 능히 먹고사는 건  일부 소수 능력있는 농부들의 전유물로 보일 뿐이다. 농지, 기계 등 적정한 투자자산과 강인한 노동력, 그리고 실용적인 상술을 두루 갖추어야 한다.

그렇다면 거의 대부분 소농, 영세농으로 분류되는 평균적 귀농인들은 그들의 경쟁상태가 아니다. 아쉽지만 전업농부의 꿈과 욕심을 합리적으로 조절하고 조정할 필요가 있다. 구체적으로 정부의 겸업농업인, 일본의 반농반X의 개념과도 일맥상통하는 '마을시민'으로서 현실에 기반을 둔 귀농생활계획을 정교하게 세울 필요가 있다. 여기서 '마을시민'이란 "어설픈 낫과 호미 보다, 저마다 도시의 소시민으로 용케 버티면서 챙겨둔 생활의 농기구를 꺼내드는" 용기 있고 지혜로운 창조적 귀농인을 말한다.

이러한 마을시민들은 "치열한 도시의 직업전선에서 갈고 닦은 경험, 기술, 노하우, 지식정보 같은 빛나는 무형자산"을 귀농생활의 도구이자 무기로 삼을줄 안다. 귀농인들이 '마을시민'의 각오와 자세로 이같은 생활의 무기들만 잘 챙겨 짐을 꾸리고 하방계획을 세우면 예측가능하고 지속가능한 '생활귀농'을 얼마든지 기약할 수 있다. 마을은 물론 지역공동체에서 외지인이나 주변인이 아닌 주체적이고 혁신적인 마을시민으로 자리잡을 수 있다. 이때 자발적 가난의 각오와 이타적 헌신의 태도는 일상적으로 명심하고 지참해두는 게 좋다.

마을공동체사업 3마을해법 추진전략 : 마을시민->마을기업->살림(대안)마을
▲ 세마을 해법 마을공동체사업 3마을해법 추진전략 : 마을시민->마을기업->살림(대안)마을
ⓒ 정기석

관련사진보기


농부와 함께 마을에서 살아가는 마을시민들

무엇보다 마을시민이 살지 않는 마을은 마을답게 느껴지지 않는다. 선뜻 마을이라 부르기 어색하고 주저된다. 하물려 마을공동체는 제대로 구성되거나 작동하기 어려워보인다. 농부들만 모여서 농사만 짓고 사는 곳은 마을이라기보다 사실 농장에 가까운 것 아닌가. 농부들이 먹고살려고 농사 일에만 매달리는 힘겹고 우울한 공간이 아닌가. 우리 농촌의 현실이 그렇다는 사실을 부정하거나 부인하기는 매우 어렵다.  

모름지기 마을이라면 농부는 물론 농부가 육체를 다치면 고쳐줄 의사, 농부가 마음이 아프면 달래줄 성직자, 농부가 아이를 낳으면 보살피고 가르칠 교사, 농부의 고민을 함께 풀어줄 연구원, 농부가 사는 마을을 아름답게 표현할 문화예술인이 함께 살아야 마땅하다.

또 농부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세상에 대신 들려줄 작가, 농부의 삶과 운명을 고쳐줄 사회운동가, 농부의 소득을 높여주고 일자리를 만들어줄 기업가, 농부의 집을 짓고 농기계를 고쳐줄 기술자, 농부의 농산물을 제값받고 팔아줄 상인도 한 데 어우러져야 한다. 그래야 마을은 공동체도 되고 사회도 되고 우주같은 대동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런데 이미 우리 농촌에는 이런 마을시민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근본적으로 마을시민들이 살아갈만한 이유와 조건이 미비하거나 성립하기 어려운 공간으로 우리 농촌은 충분히 공동화, 형해화된 상태다. 이런 농촌을 살려보겠다는 선의를 품고 작심하고 하방을 감행하는 도시민조차 마을시민으로 살아갈 실제적인 준비와 훈련이 부족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래서 마을과 지역을 재생하려면 그 일을 책임지고 맡아할 마을시민부터 발굴하고 양성하는 정책과 제도가 시급하다. 

농촌중심지 활성화 사업의 성공적 추진을 위한 주민역량강화사업 사례
▲ 주진역량강화 농촌중심지 활성화 사업의 성공적 추진을 위한 주민역량강화사업 사례
ⓒ 정기석

관련사진보기


'마을시민'을 양성하는 '먹고사는 생활기술 작업학교'를

불행히도 우리는 지난날 산업화과정에서 농촌지역의 인적 자본이 대거 도시로 이동했다. 전통적인 농촌 마을사회의 사회조직 또는 공동체조직이 와해되고 공동체 규범은 약화되었다. 특히 '마을시민' 역할을 맡아야 할 인적 자본의 약화는 마을지역사회의 지도력 약화로 직결되었다. 농촌지역사회 내에 축적되었던 이러한 사회적 자본이 쇠퇴하면서 활력과 동력 또한 동반 상실되었다.

설상가상, 한국의 제도권 학교, 교육시스템에서 마을공동체와 지역사회가 요구하는 마을시민은 결코 훈련, 양성될 수 없다. 우리 학교에서는 '마을에서 주체적으로, 자유롭게, 사람답게 먹고 살 수 있는 기술'은 가르치지 않는다. 그저 "가만히 있어야 비로소 먹고살 수 있는" 자본주의의 기계적 부속품, 이기적 노예들만 양산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잘못이라기보다 정치와 정책의 구조악 때문이다.

지금 당장, 농촌마을과 지역사회의 공동체를 지키고 공동체사업을 꾸려갈만한 마을시민을 기르는 새로운 학교, 혁신적인 대안교육시스템이 필요하다. 이른바 '지역사회에서 능히 먹고사는 생활기술을 가르치는 직업전문학교'라면 좋을 것이다. 마땅히 그 학교는 출세를 위해 시험이나 자격을 대비하는 학원같은 곳이 아니라 '인적 사회적자본 발전소' 정도의 사회적 책무와 기능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그 학교에서는 마을만들기, 사회적경제 등 농촌마을공동체사업을 잘 할 수 있는 역량과 품성을 갖춘 다양한 '마을시민'들이 학습하고 훈련하는 곳이라야 한다. 졸업하고 마을로 내려가 자신도 먹고 살고 마을과 지역도 먹여살릴 수 있는 인재라야 한다. 그 전문인력은 농촌마을공동체사업의 1차적 정책목적인 '사회적경제'는 물론, 궁극적 2차 사업목적인 '마을(지역사회)공동체'의 구현까지 책임지고 기획하고 조정하고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소임을 수행할 수 있는 최적임자는 기왕의 관성이나 통념대로, 경제학자도, 행정공무원도, 복지운동가도, 벤처사업가도, 토건기술자도 아닐 것이다. 사회적경제(Community Biz)의 '사회(community)'와, 마을(지역사회)공동체의 '사회(commune)'를 두루 잘 학습하고 성찰한 선각자, 혁신가라야 한다. 가령, 마을과 지역사회 공동체 현장의 청장년 지역사회디자이너 또는 생활기술 전문가로서 '마을시민'이라야 한다.

 귀농인과 마을시민을 위한 정책을 고민하는 전국귀농운동본부 귀농정책연구소 회의
▲ 귀농정책연구소 귀농인과 마을시민을 위한 정책을 고민하는 전국귀농운동본부 귀농정책연구소 회의
ⓒ 정기석

관련사진보기


덧붙이는 글 | ※ 마을학개론(마을에서 먹고 사는 법) : 귀농을 하거나 자발적 하방을 해서 마을에서 먹고 살려면, 사람답게 살아가려면, ‘마을이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그리고 마을, 공동체, 마을시민. 마을기업, 대안마을, 대안농정, 그리고 대안사회를 열심히 공부해서 체화해야 한다. 그러면 마을에서 사람답게 먹고 살 수 있다.



태그:#마을학개론 , #마을시민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2,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마을연구소(Commune Lab) 소장, 詩人(한국작가회의)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