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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修辭)라는 단어는 공자(孔子)가 처음으로 사용한 표현입니다. 서양의 레토릭(rhetoric)이 동양에 들어온 후, 학계에서는 의심의 여지없이 자연스레 레토릭을 수사 또는 수사학으로 번역해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어요. 그런데 수사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하는 주역(周易) 건괘(乾卦)편을 보면 수사는 군자(君子)의 개념을 설명하기 위한 표현임을 알 수 있어요. 다시 말해 수사의 진의(眞義)를 파악하려면 군자의 정의를 명확하게 밝히지 않을 수 없는 겁니다. 이 책의 말미에 제가 쓴 구절이 있어요. '공자의 수사학이란 참된 지도자인 군자가 갖춰야 할 인성론과 리더십에 관한 구체적 내용들을 밝히는 학문이다'라고요."

'공자의 수사학'의 저자, 안성재(사진) 인천대학교 교수의 말이다. 지난 7일 안 교수가 있는 인천대 교수연구실로 찾아갔다. 안 교수도 전날 책을 받았다고 했다. 출간된 지 얼마 안 된 따끈한 신간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수사학은 군자가 갖춰야 할 리더십

한국수사학회 총무이사와 편집이사를 역임하고 다시 총무이사를 맡고 있는 안 교수는 한국수사학회와 인연을 맺고 난 후, 본격적으로 공부했다고 했다.
   
안성재 인천대학교 교수
 안성재 인천대학교 교수
ⓒ 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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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중국 북경대학에서 '시경'으로 석ㆍ박사학위를 땄어요. 한국에 왔는데 한국수사학회에서 박사 논문을 요약해 발표해 달라고 했습니다. 수사학에 대해 모른다고 하니까, 내 논문 자체가 수사학의 범주라고 하더라고요. 당시 저도 레토릭을 동양어로 번역한 게 수사학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동양의 수사학을 공부하기 시작한 게 8년 전입니다."

주역(周易) 건괘(乾卦)편 구삼(九三)에 수사입기성(修辭立其誠)이라는 구절이 있다. 문헌에 '수사'라는 단어를 최초로 쓴 것이라고 하는데, 해석을 하면 '말을 닦음에 성실함을 세운다'는 것으로 군자(지도자)는 말을 내뱉을 때 함부로 하지 않고 신중을 기해 성실함(誠)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즉, 수사는 지도자의 성(誠)과 직결되는 개념이다.

성(誠)은 허신(許愼)의 저서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 '誠, 信也. 從言, 成聲. 성(誠)은 말한 바를 반드시 이루도록 정성을 다하는 것'이라고 했다. 성(誠) 즉, 정성이란 언(言)을 성(成)하는 것으로 정성을 다하는 것이다. 동양에서 '수사'란 정성을 다하여 함부로 말을 내뱉지 않음으로 자신이 한 발언을 반드시 실천하는 것이다. 이는 군자 즉, 지도자가 갖춰야할 덕목이라는 것이다.

레토릭에 대한 오해

안 교수는 "레토릭(수사학)은 말 잘하는, 설득하는 기술로 오해 받는 경우가 많은데 아닙니다"라는 말을 시작으로 길게 설명했다.

레토릭은 전통과 고전, 응용과 현대, 두 종류다. 응용 레토릭은 현대적 개념으로 '말 잘해서 설득을 잘하는 것'이고, 전통의 고전 레토릭은 '도리를 천명해 그 사람을 깨닫게 해서 내 편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레토릭은 전통적으로 레토릭과 안티 레토릭이 있다.

공자의 수사학은 레토릭이다. 그러나 원칙에 어긋나지만 그럴싸하게 상대방을 현혹시키는 것도 레토릭의 범주인 안티 레토릭이다. 레토릭 학자들은 두 종류를 같이 연구한다.

"우리가 아는 레토릭은 서양의 디알렉티케(dialektike)와 레토리케(rhetorike)로 나뉩니다. 디알렉티케는 일대일 대화를 말하고, 레토리케는 연설을 말하지요. 공자의 수사학은 레토리케가 될 수 없어요. 동양의 리더(군주)는 신하와 군주가 일대일로 대화해 대중을 상대로 연설할 이유가 없으니까요. 그래서 레토릭을 수사학으로 번역하는 게 맞는지, 더 연구가 필요합니다."

레토리케나 디알렉티케는 그리스어다. 레토리케는 레토릭이며, 디알레트케는 다이얼로그를 말한다. 안 교수는 정치인이 레토릭을 국민을 사로잡는 기술로 오해하는 이유가 여기(대중연설)에 있다고 하면서 레토릭은 그게 다 아니라고 강조했다.

수사학은 실천적 학문

안 교수는 "수사학은 이론뿐 아니라 실천까지 강조하는 강령"이라고 표현했다.

수사입기성(修辭立其誠)의 성(誠)을 이해하려면 신(信)을 이해해야 하는데 이는 인(人)과 언(言)이 합쳐져 '사람이 입 밖으로 내뱉은 말은 반드시 지켜야하는 것이며, 그 자체가 믿음이 되는 것'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수사학은 실천의 성격을 띠고 있어요. 동양에서 지도자가 말을 중요하게 여기는 건 말을 하면 지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성(誠)과 신(信)을 동일한 개념으로 볼 수 있죠. 공자에게 수사는 단순한 말의 기술이 아니라 이론이고 또한 이론에 그치는 게 아니라 실천을 겸비하는 것입니다."

또한, 안 교수는 지도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도(道)라고 했다. 도를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천도(天道)와 작위(作爲)해 노력하는 인도(人道)로 나눴다. 천성에 따라 진실한 사람은 힘쓰지 않아도 중(中)해 순리적으로 도에 이르니 이는 성인만이 할 수 있으며, 반면에 작위해 진실해지는 선(善)으로 도에 이르는 군자들은 부단히 도를 실천하려했다고 설명했다.

공자는 덕(德)으로 도(道)에 이른다고 했다. 도에 이르려면 덕을 쌓아야하고, 덕에 이르려면 중(中)과 화(和)를 갖추고, 이에 이르기 위해서는 인(仁)과 의(義), 예(禮)와 악(樂)을 중심으로 검(儉), 겸(謙), 자(慈), 강(剛), 직(直), 지(知)를 몸소 행해야하고, 변치 않고 일관되게 실천해 나가는 상(常)이 전제돼야한다고 안 교수는 덧붙였다.

"훌륭한 지도자라 하더라도 처음부터 끝까지 관철되지 않으면 오래가지 못합니다. 그래서 덕(德)이 상(常)을 겸해야 도에 이를 수 있는데, 그것이 수사학입니다."

그는 논어를 정리하면서 도를 실천하기 위한 구체적인 구성요소를 풀이하다가 한자 14개를 꼽았고, 이를 통해 현대적 개념을 파악하고 정리해 수사의 개념을 체계화했다고 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백지에 직접 한자를 써 설명해주기도 했다.

수사학은 에토스가 기본, 기초 없으면 사상누각
   
안성재 인천대 교수는 최근 '공자의 수사학'을 발간했다.
 안성재 인천대 교수는 최근 '공자의 수사학'을 발간했다.
ⓒ 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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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토릭의 세 가지 요소는 에토스(신뢰), 파토스(감성), 로고스(논리)입니다. 사람을 이해시키는 걸 100%라고 했을 때, 로고스는 10%의 역할밖에 못합니다. 말만 잘해선 안 되죠. 두 번째 요구되는 게 파토스인데 열정이나 감성에 대한 호소입니다. 적절한 감정을 넣어야 상대방 마음을 얻을 수 있죠. 파토스는 30% 정도에요. 에토스가 60%입니다. 에토스는 그 사람에 대한 이미지라고 설명할 수 있는데 일순간에 만들어질 수 없어요. 공자의 수사학, 전통의 레토릭은 엄밀한 의미로 에토스에 포함됩니다."

안 교수는 오늘날 정치인들은 레토릭이 중요하다고 여기며 로고스와 파토스에만 신경을 쓴다고 했다. 레토릭의 핵심인 에토스를 활용하려면 올바른 이론을 이해하고 나아가 실천하는 자세가 중요하단다. 이게 공자의 수사학이자 레토릭의 본질이라고 했다. 에토스라는 기본을 갖추지 못하면 사상누각이라고 덧붙였다.

설명을 들을수록 알듯 말듯 더 어려웠다. 그는 한국수사학회 회원이 1200여명인데 학술대회 참가 등, 활동하는 회원은 소수라는 말로 '수사학'의 어려움을 대신했다.

레토릭은 기술이 아닌 믿음

안 교수는 초판 발행을 한 지 얼마 안 됐지만 언론이나 사람들의 반응이 좋다고 했다. 현대인들이 '공자'에 대한 관심과 '수사학'에 대한 관심이 적지 않은데 두 단어가 합쳐졌으니 관심이 증폭된 게 아닐까, 하고 추측했다.

"레토릭을 기술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겁니다. '수사학과 레토릭의 본질은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자'라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단순히 상대방을 몇 마디말로 끌어들이는 게 아니라는 거죠. 우리가 추구할 것은 에토스이고, 이는 짧은 기술로는 불가능합니다."

안 교수는 공자나 논어의 말을 담은 책들은 정치서라고도 했다. 또한 수사학은 지도자가 갖춰야할 덕목이라고도 했다. 안 교수는 이 책으로 우리나라 정치지도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었던 건 아닐까?

자신이 예전에 썼던 책의 한 구절로 대답을 갈음하겠다고 했다. 책에는 '이 지면을 통해 위정자들에게 부탁한다. 태평성대는 결코 완성되는 게 아니다. 삼가 부단히 노력하는 모습 자체가 태평성대다. 국민들은 결과를 바라지 않는다.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달라는 것이다. 그 자체가 태평성대다'라고 쓰여 있었다.

"주역에 '군자는 종일 의지하지 않아서 저녁에도 두려워하니 위태로워도 재앙이 없다'는 구절이 있어요. 참된 지도자는 하루 종일 나라를 잘 다스리고 있다는 생각에 빠지지 않고 늦은 저녁시간에 이르러서도 자신이 나라를 잘 다스리지 못한다고 두려워해 변치 않고 삼가여 행하니, 설령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러도 결코 재앙이 닥치지 않는다는 뜻이지요. 우리 지도자들은 자신이 잘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닐까요? 잘한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문젭니다."

언행일치의 중요성

증조부와 조부가 모두 한학자였던 집안에서 태어난 안 교수는 자연스레 한학을 배웠다. 아버지가 초등학교 1학년인 안 교수를 새벽 5시에 깨워 천자문과 소학을 가르쳐 한글을 익히자마자 한자를 접했다고 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예로부터 처음 시작한 학문은 인문학입니다. 다만, 서양은 인간 개인의 존재가치에 대해 더 많은 연구와 사색을 했다면 동양은 지도자의 도리에 대해 고민했어요. 그러나 둘은 사실상 같은 고민인 거죠. 결국은 어떠해야 사람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니까요. 결국 사람이 먼저입니다. 지금처럼 지친 삶에 허덕이는 사람들이 옛글(고전)을 그리워합니다. 하지만 이것도 결국 실천이 따르지 않으면 노스텔지어의 손수건처럼 닿을 수 없어요. 이론은 중요하지만 실천하지 않으면 없는 것과 같거든요. 실천할 때만이 온전해질 수 있습니다."

끝으로 안 교수는 마가렛 대처가 한 말을 인용했다.

"'생각을 조심해라. 말이 된다. 말을 조심해라. 행동이 된다. 행동을 조심해라. 습관이 된다. 습관을 조심해라. 운명이 된다. 우리는 생각하는 대로 된다'라는 것은 바른 말이 바른 행동으로 옮겨진다는 뜻이잖아요. 언행일치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죠. 이론으로 알았다면 실천해야 합니다.

덧붙이는 글 | <시사인천>에 실림



태그:#안성재 교수, #공자의 수사학, #레토릭,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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