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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론 이러이러한 직업들이 없어질 거라는 예언이 언론보도에 자주 등장한다. 그런 보도를 듣노라면, 향후 사라질 직종이 정말 한둘이 아니다. 생물의 멸종이 아니라 직업의 멸종을 우려해야 할 정도다.

그런데 그렇게 멸종할 직업 중에 정치인도 있다고 한다. 미래학자 박영숙과 제롬 글렌이 지은 <세계미래보고서 2030-2050>에서는 "잘 발달된 온라인을 통해 직접민주주의가 가능해져 정치인이 사라진다"고 예언했다. SNS 등을 통해 국민이 구체적인 공론을 신속히 형성하고 이를 즉각 표시하는 추세가 강해지는 것을 고려하면, 당장은 아니더라도 직업적 정치인의 입지는 점차 축소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직업적 정치인, 그중에서도 국회의원의 역할이 많이 축소될 가능성을 보여준 게 2016년 10월 29일의 제1차 촛불집회로부터 시작된 촛불혁명이다. 아직 종결된 혁명은 아니지만, 이 혁명에서는 촛불집회를 통해 표출된 국민의 구체적 명령이 국가기관을 직접 이끌어가는 양상이 나타났다. 국민이 선거 때만 국정에 참여해서 대표자를 뽑고 국정의 구체적 내용에는 참여하지 않던 기존 상황과는 판이한 것이다.

애초에 촛불집회를 통해 분출된 국민의 명령은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였다. 그런데 이 명령은 즉각 하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대신, 이 명령은 국회가 박근혜를 탄핵소추(탄핵심판 신청)하도록 유도하고, 이에 따라 헌법재판소가 파면 결정을 내리도록 유도했다. 애초의 하야 요구가 파면 결정으로 귀결되기는 했지만, 박근혜 퇴진을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국민의 명령이 관철됐다고 볼 수 있다.

국민 의지가 대통령을 끌어 내렸다

12일 저녁, 박근혜 전 대통령은 서울 삼성동 사저에 들어가면서 민경욱 의원을 통해 "이 모든 결과에 대해서는 제가 안고 가겠습니다"라고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을 결정하고 실현시킨 것은 국민의 의지였다. 그래서 이로 인한 모든 결과 역시 국민이 안고 갈 것이다. 왜냐하면, 그를 청와대에서 끌어내 한강 다리를 건너 삼성동 집까지 되돌려놓은 것은 국민의 의지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국민의 의지가 관철되는 과정에서, 외형상으론 국가기관들이 법적 절차에 따라 각각의 권한을 행사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실제로는 국민의 요구를 거의 그대로 '받아쓰기'한 것에 불과했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4개월 반 동안 대한민국 국가기관들은 '국민의 시녀'였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 2항이 글자 그대로 실현된 것이다.

청와대 입구에서 열린 촛불집회.
 청와대 입구에서 열린 촛불집회.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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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권 도전에 나선 홍준표 경남지사는 12일 페이스북에다가 "헌재의 파면 결정문은 잡범들에게나 적용되는 괘씸죄가 주류를 이룬, 감정이 섞인 여론재판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것은 나만의 생각인지도 모르지만"이라고 말했다.

그것은 정말로 그만의 생각이다. 시대 조류와 무관한 그만의 생각이다. 정확히 말하면, 그와 생각을 같이하는 소수의 사람들 속에서나 공유되는 생각이다. 그가 여론재판이라고 느낀 것은, 실제로는 국민이 직접 나서서 국민주권을 실현시키는 과정이었다. 그런 과정이 그에게는 마치 인민재판처럼 비쳤던 것이다.   

그런데 국민이 직접 나서서 박근혜를 퇴진시키는 과정에서 독자 영역을 가장 많이 확보한 국가기관은 행정부였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이끄는 행정부는 청와대에 대한 박영수 특별검사의 압수수색을 승인하지 않았으며 특검 수사 기간의 연장도 허용해주지 않았다. 촛불혁명의 함성이 온 대한민국을 진동시키는 속에서도, 행정부는 상대적으로 가장 많은 독자성을 향유했다.

이것은 황교안 대행이 친박 세력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행정부가 갖는 고도의 전문성에 기인한 것이기도 했다. 행정관청이 입안해준 법률안을 기초로 국회가 입법 기능을 수행하는 일이 태반인 데서도 느낄 수 있듯이, 행정부는 행정뿐 아니라 입법 분야에까지 전문성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만큼 고도의 전문성이 행정 분야에서 요구되기 때문에, 국민이 광장에 나와 국가의사를 직접 결정하는 경우에도 전문적인 행정 기능까지 대신할 수는 없다. 촛불혁명의 진행 과정에서 행정부가 가장 높은 독자성을 유지한 데는 이런 요인도 적지 않게 작용했다.

행정부에 비하면 약하지만, 헌법재판소도 상당한 독자성을 향유했다. 촛불집회에 참여하거나 이를 지지하는 국민들도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지켜보고 그것을 따랐다. 물론 '탄핵을 인용하라'는 압력을 가하기는 했지만, 그보다 더 구체적 요구를 담은 압력은 가하지 못했다.

법률을 적용하고 해석하는 일이 고도의 전문성을 요한다는 점은 굳이 강조할 필요도 없다. 그래서 일반인이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 거기다가 대한민국의 법률체계는 전통적인 한국식 법감정이 아니라 독일·일본·영국·미국의 법감정에 상당 부분 기초해 있다. 이런 탓에 일반인들은 더욱더 법률을 이해할 수 없다. 이런 사정도, 헌재가 촛불혁명 과정에서 상당한 독자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배경 중 하나였다.   

서울 광화문광장에 등장한 대형 그림.
 서울 광화문광장에 등장한 대형 그림.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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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부나 헌법재판소에 비해 국회는 상대적으로 가장 적은 독자성을 누렸다. 탄핵소추를 발의하고 의결하는 과정에서 국회는 국민의 '간섭'을 심하게 받았다. 사실상 국민이 시키는 대로 꼭두각시 역할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친박 세력이 국회를 가장 증오한 이유도 거기 있다.

행정·사법부에 비해 전문성 떨어진 입법부

다른 국가기관 공직자들보다 국회의원들은 상대적으로 전문성이 떨어진다. 거기다가 국회의 주된 기능인 의결은 직접민주제 하의 국민 총회가 내리는 의결과 유사하다. 그래서 상황에 따라서는 국민 총회가 국회의 기능을 대신할 수도 있다. 이번처럼 국민이 직접 나서서 무언가를 결정하는 경우에는 국회의 의결 기능이 형식화되고 무의미해질 가능성이 커지게 된다.

그런데 촛불혁명 같은 일은 이번 한 차례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4개월 반 동안의 경험에서 나타났듯이, 국민들이 해외와 전국 곳곳에 동시에 모여 국가기관을 압박하는 일은 이제는 그다지 어렵지 않다.

이번처럼 국민의 결집력이 압도적인 파워를 발휘하는 경우에는 정권 수뇌부가 경찰이나 군대를 동원해 저지하기도 힘들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는 정권이나 국가기관이 중대한 잘못을 범하게 되면, 국민들이 언제라도 즉각적으로 광장으로 몰려나가 국가 운영에 개입하게 될 것이다.

앞으로는 그런 현상이 일상화될 거라는 점을 감안하면, 행정부나 사법부의 영역도 어느 정도 축소되겠지만, 무엇보다 국회의 영역이 가장 크게 축소될 것이라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국회의원 숫자의 증감에 관계없이 국회의원의 위상은 축소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정치인이 사라질 것이라는 미래학의 예측은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니다. SNS 기술이 좀 더 발달하여 국민들이 국정 현안이나 법률안에 대해 스마트폰으로 직접 의사를 표시할 수 있게 되면, 그런 예언은 훨씬 더 빠르고 쉽게 성취될 것이다.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벌어진 촛불집회.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벌어진 촛불집회.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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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0년 간 정치 주도해왔던 직업정치인, 하지만...

1776년 미국 독립혁명과 1789년 프랑스 혁명을 계기로 '국가의 주인은 왕실'이라는 전통적 관념이 무너지고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라는 국민주권 관념이 확산되었다. 하지만 지난 250년간 국민주권을 실제 행사한 것은 국민 일반이 아니라 소수 대표자들이었다. 그런 소수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국회의원들이었다. 국회의원들은 추정된 국민의 의지를 법률의 형태로 바꾸어내면서 지난 250년간의 정치를 주도했다.

국민이 직접 주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국회의원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할 수밖에 없었던 데는 기술적 요인도 컸다. 유럽에서 국민주권시대가 열렸을 때만 해도 가장 보편적인 교통수단은 기차였고 가장 보편적인 언론매체는 신문이었다.

기차가 사람들을 나르고 신문이 의견을 전달하는 상황에서는, 수많은 대중이 신속하게 공론을 형성하기도 힘들었다. 그들이 같은 시각에 전국 곳곳에 모여 결집력을 보여주기도 힘들었다.

이런 구조에서는 기차를 타고 먼 데를 이동하면서도 생계에 지장을 받지 않고, 신문 매체를 통해 자기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며 여론 형성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들만이 국정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었다. 

생계에 쫓기고 신문과 거리가 먼 일반 대중은 몇 년마다 열리는 선거 같은 때가 아니면 국정운영에 참여할 수 없었다. 이런 환경은 국민주권논리를 허상으로 만들고 소수 대표자들이 국민의 뜻을 운운하며 국정을 독점하는 구조를 낳는 데 기여했다.

촛불혁명 가능케 했던 기술발전

하지만 지난 20년간 벌어진 컴퓨터·인터넷·휴대폰·SNS의 극적 발전은 이 같은 상황을 일거에 바꿔놓았다. 국민들이 SNS를 통해 신속히 공론을 형성하고 가까운 데 신속히 모여 거대한 힘을 응집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지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중대한 국정 현안이 발생한 경우에는, 국회의 의결에 맡기지 않고 국민이 직접 나서서 국가의사를 결정할 가능성이 커지게 되었다.

이것은 자연히 국회의 기능 축소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기술 변화가 국민주권을 실질화시키는 한편 국회의원들의 역할을 축소시켜 놓은 것이다. 기술의 발달이 정치인의 입지를 줄여놓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촛불혁명은 크게 보면 기술발전에 기인한 것이지만 작게 보면 박근혜·최순실의 국정농단에 기인한 것이다. 이들의 국정농단이 국민적 공분을 부채질하지 않았다면, 수많은 국민들이 광장에 모여 국가의사를 결집하는 정치문화의 단초가 이렇게 쉽게 생겨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박근혜·최순실은 결과적으로 국민주권을 실질화시키는 동시에 '정치인이 사라질 것'이라는 미래학자들의 예언을 성취시키는 데 기여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미국 독립혁명과 프랑스혁명 이래 인류가 250년간 추구해온 국민주권의 시대가 두 사람에 의해 앞당겨진 측면이 강하다고 볼 수 있다.


태그:#직접민주주의, #대의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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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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