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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진수님
 배진수님
ⓒ 박우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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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인상. 모두가 건조하게 '나이 + 이름' 소개를 할 때, 그는 "전 길게 할게요. 더는 지지 않기 위해서 왔습니다."면서 "반드시 이기는 싸움을 할겁니다. 전 이기려고 왔어요."라고 거듭 강조해 소개했다. 이기려면 다른 데를 갔어야 한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우린 아무것도 없으니까. 스스로를 '개털도 없는 당'이라고 소개하고 있으니까. 부채만 '200만원'이된 두 달짜리 정당이니까. 그는 알고 있다고 했고 그래서 동료가 되고 싶어졌다고 했다.

포인트는 '가진 게 없으니까 망해도 남는 장사'라는 카피였다고 한다. 뭐지? 이 알듯말듯한 아이러니는.이 청년이 궁금해졌고, 인터뷰를 빙자해서라도 그의 이야기를 들어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자기소개가 너무 인상적이었어요. 그렇게 하다니.

나는 정치를 하러 왔어요. 여기서 '정치를 한다'는 것은 '나의 정치적 정체성'을 밝히고 승부, 즉 싸움을 하러 온 사람이란 거예요. 저는 이 당에 그냥 스태프를 지원한 게 아니라. 거창하긴 하지만 '이제는 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와 싸우겠다', '세상과 싸우겠다', '정면충돌, 부딪혀보겠다' 이런 마음으로 왔어요. 제대로 출사표를 던지는 느낌?

출사표라니까 그 동안은 세상과 싸우지 않았다는 것처럼 들려요.

저는 임종진 사진작가님의 강연을 참여연대에서 주최한다고 해서 그것도 갈지 말지 고민하던 사람이었어요. 참여연대는 빨갱이인줄 알았거든요. (웃음) 그 분께 사진을 배우면서 그 생각이 조금씩 바뀌었지만. 세월호 때도 용혜인씨가 구속되는 게 나는 너무 무서운거야. 그때도 차마 나지 못했어요. 작년 겨울 100만 모였을 때, 11월 25일 이었나? 난생 처음 촛불집회를 나갔어요. 그때도 나는 무서운 거예요.

100만이나 같이 있었는데 도요?

네, 저는 구호 외치고 이런게 정말 무서웠어요. 그런데 '용기라는 것은 두려워서 내는 거다'라던 은수미 의원의 워딩이 생각나더라구요. 나, 무섭기 때문에 이걸 감당해내는 게 용기다. 난 이제 용기를 내보자. 이제 한걸음 더 세상과 가까워져보자. 그리고 이렇게 말로만, 내가 분노한 걸로만 만족하지 말자. 이러면서 그동안에 가지고 있었던 나의 냉소주의랑 이별하자고 마음먹었어요. 최근에 김기춘의 '그알'을 보면서도 저는 눈물이 막나는 거예요. 재일동포들이 고문한 조국을 자기 조국이라면서 대한민국 잘되길 바라는 데 너무 슬프더라구요. 저는 요즘 점점 투사처럼 변해가고 있어요.

그것이 알고 싶다 김기춘편, 저도 보고 울었어요.. 저번주 인데, 정말 최근이시네요 (웃음)

상황을 알고는 있었지만 행동은 처음인거죠. 탄핵국면 접어드니까 이젠 자신감이 생기는 것 같아요. 떠나고 싶기만 했던 대한민국이 다시 뛰는 느낌? 슬픈 건 이 촛불들이 자기가 빛나기 위해서 나온 게 아니라는 거예요. 어느 인터뷰에서 읽었는데 이 사람들 100만명 중에 하나의 촛불이 되려고 나왔대, 저번주는 정말 폭설내리고 추웠잖아요. 이렇게 추운날 오들오들 떨면서 그 자리를 버티는 데, 어떤 당이고 그 촛불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이 없는 거야. 우리당은 감사하고 고마워해야겠다. 그래서 정말 고맙다고, 청년당 페이스북에 글 썼어요.

지켜보니까 우리 당 스탭들도 그런 사람들이 많더라구요. 그냥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 종현님처럼. 대한민국을 버텨왔던건 이래저래 큰 목소리들이 아니라, 자기 자리에서 그냥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 촛불들. 그런 사람들이 그렇게 버티고 지키고 있다고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슬픈 건 이 촛불들이 자기가 빛나기 위해서 나온 게 아니라는 거예요. 어느 인터뷰에서 읽었는데 이 사람들 100만명 중에 하나의 촛불이 되려고 나왔대. 대한민국을 지탱한 건 큰 목소리들이 아니라, 자기 자리에서 그냥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 촛불들. 그냥 묵묵하게 살아가는사람들이구나 그 생각이 들었어요.

진수씨는 지는 싸움을 하기 싫다고 했어요. 대체 무엇에 졌길래 더는 지기 싫다고 한건가요? 그말이 한편으로는 절박해보였는데, 어떤 사연이 있었나요?

저는 사회운동을 해보거나 그런 경험은 전무하구요. 고등학교때 야자가 너무 싫어서 친구랑 "이건 야간'자율'학습이 아니라 '강제'학습이다." 글을 교육청 홈페이지에 올린 적이 있는데, 선생님이 불러다가 내리라고 하더라구요. 그때 처음 부딪쳐 봤는데, 무섭더라구요. 그래서 지웠죠.

가장 큰 패배의 경험은 교수님과의 이야기를 해볼게요. 학부생 때 제가 블로그에 글을 썼어요. 학교생활은 삼백만원 값을 못한다며 수업의 문제점을 비판했죠. 거기엔 학생들에 대한 비판도 있었고, 교수님들 실명을 거론하기도 했어요. 어느 날 제 블로그 글을 캡처해서 교수가 학교 카페에 해명하라는 글을 올렸더군요. 저는 몇가지 글들로 더 논쟁 하면서 그 교수랑 실랑이를 벌였습니다. 결론은 제가 학생들 모인 자리에서 공개사과를 하고 끝났어요.

사과로 끝나다니, 서글퍼요. 어떤 기분이 들었나요?

비참하고 드러운 기분. 내가 납득되어서 사과한다기 보다는 내 주변 사람들이 너무 힘들어 했어요. 과 부회장이라는 친구는 막 불려가기도 하고… 전 믿었던 것 같아요. 대학이 지성의 전당이면 내 글이 부당하더라도 여기서 네 이야기를 토론해보자 이럴 줄 알았는데 웬걸, 나중엔 학생들 사이에서 저를 제적시키겠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거예요. 조용히 좀 살자, 누가 몰라서 그냥 학교다니는 줄 아나? 쟤 왜 저렇게 튀려 그러냐? 이런 반응들. 저를 응원하는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목소리를 내주진 않더군요. 학점이라는 권력을 교수가 쥐고 있는 거니까.

무슨 조국을 구하겠다고 나선 것도 아닌데, 같은 학생들이 그렇게 말한 건 좀 충격이네요.

지금은 좀 아쉽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 때 내가 겁을 많이 먹었구나. 학생들, 교수들 다 불러놓고 논의의 장으로 만들고 그랬다면 설령 처벌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감내할 수 있었을 텐데, 당장 취업도 걱정이고 주변사람들이 힘들어 하는걸 보면서 그만해야겠다 싶었죠. 저는 그때 4학년이었고 토익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었는데 공부가 안되더라구요. 하루는 즐겁고, 하루는 슬펐다가.. 그런 기분이었어요.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난 후에 취직을 위한 면접과정이 계속 패배의 연속이더라구요. 면접관이 딱 앉으면 물어봐요. "자기소개, 잘하는거 뭐요?" 계속 대답하는 데, 다 떨어져. 나중에는 점점 더 자신감이 없어지고… 늘 삶이 패배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거야. 모회사에서는 "열정있는 사람, 희망연봉보다 적게 받을 수 있는 사람, 상사의 부당한 지시 잘 이행할 수 있다, 손들어보세요." 저는 다 손을 들고 나서 비참했죠. "때려치고 다른데 가면 안돼?" 그러지만 대부분의 회사가 다~그래요. 드러워도 참는데 취업은 안되고, 참아도 또 참아도 계속 거부당하는 거지. 거부당하고 거절당하고,

포기하고 알바라도 해야겠다..이러면서 알바하고 인턴하고.. 일상이 싸움이고 패배인 것 같아요. 저는 정말 이 헬조선이 바뀌었으면 좋겠고, 용기를 냈고, 어렵게 마음먹은 만큼 이 싸움을 지고 싶지가 않아요.

지지 않는 싸움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이길 수 있을까요?

다른 당들은 보면 정권교체다 정치교체다 이야기하고, 우리도 청년이 중심이되는 정치를 하겠다고 하는데, 그건 다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이잖아요. 우리가 하고 싶은 말 보다는 어떻게 함께 할거냐를 만드는 게 중요하단 생각이 들어요. 이기려면 '같이' 해야하는 거잖아요.

저에게 정치는 싸우는 것인데요, 곰곰이 생각해보니, 함께 싸우러 온 사람들을 어떻게 더 끌어안고 사랑하느냐의 문제인 것 같아. 정치를 어떻게 잘하느냐보다 국민을 어떻게 사랑하느냐가 먼저라는 거죠. 두번째는 이기기 위한 싸움은 지치지 않아야 해요.

그래서 재밌게, 즐겁게 정치하자. 청년당 온 게 취미로 정치하자는 말이 좋아서였어요. 그러면 부담없이 오래 싸울 수 있겠다 싶은 거죠. 마지막으로는 말을 많이 해야 해요. 대화와 토론이 많아야하고 잡담이 많아야 해요. 그래야 집단지성도 원활하게 발휘되는 거고 서로 자연스럽게 친하게 지내면서 그런 동료가 많아지면, 정말 이길 수 있는 당이 되겠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막 '친구'가 된 그의 SNS 소개란은 이제 막 서른 살이 된 청년 치고는 너무 많은 이력들이 눈이 띄었다. 홍보대사 조장, 무슨 제작 팀원, 어느 회사 인턴, 인턴, 카페직원 등등. 스무줄의 이력을 얼핏 보고 '참 열심히 살았구나' 싶었는 데, 이야기를 마치고 나니 사실 그것들은 지리멸렬한 패배들의 흔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활의 숱한 패배를 끌어안고 절박한 심정으로 더는 지고 싶지 않아져서 정치를 해보겠다고 온 청년. "어쩌면 당신은 패배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왜냐면 지금도 싸우는 중이니까." 라고. "이길 때 까지 당신의 싸움을 끝내지 않으면 되는 거고, 나도 같이 싸우겠다"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아마도 그는 손사래 치면서 "그딴 정신승리 필요없다"라고 하겠지만. 첫 번째 인터뷰를 마친다.


태그:#청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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