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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업무를 경험하면서 사회생활 안에서의 인간관계뿐만 아니라 가족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해볼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업무를 경험하면서 사회생활 안에서의 인간관계뿐만 아니라 가족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해볼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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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드라마를 못 보게 하는 와이프에게 살짝 화가 난 것을 표시하긴 했어. 다음날 출근하려고 나오는데 '악!' 소리가 문 너머 들리길래 나는 와이프에게 무슨 일이 난 줄 알았어... 회사에 늦을 것 같다고 부장님께 전화를 드리고 나서 종일 와이프랑 얘기를 했는데, 나는 집도 내가 완전히 나를 내려놓고 쉴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걸 처.음. 알았어."
술자리에서 듣게 된 회사 선배의 이야기입니다.

얘기인 즉슨, 서예와 한문에 조예가 깊으신 L 차장님은 TV의 사극 제작에 참여하신 적도 있으십니다. 그래서 특별한 일이 없는 한 TV에서 사극을 방영할 때에는 꼭 챙겨서 보시는 편이라고 합니다. 그날따라 사모님께서는 거실에서 다른 채널의 드라마를 보고 계셨고 채널을 양보해주지 않으신 것에 L 차장님이 살짝 섭섭하셨던 겁니다. 섭섭함이 드러나는 얼굴을 하고 대화 없이 다음날 출근하려다가 닫힌 문 너머로 사모님의 외마디 비명에 깜짝 놀라 긴급 휴가를 내고 하루 종일 사모님이랑 시간을 가지고 얘기하면서 얻은 '집'에 대한 단상이었죠.

태어나면서 처음 맺은 가족이라는 관계, 학교를 다니면서 맺는 친구라는 관계, 회사를 다니면서 맺는 동료, 선후배-상사라는 관계 등등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관계를 맺고 살아가게 됩니다. 흔히 가족 - 배우자, 그리고 자식은 예의를 차려 무언가 지켜내는 관계라고 생각하기보다는 편안한 관계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편안한 관계이다 보니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하는 대화보다는 나를 위한 대화를 하게 되는 경향이 많죠. 특히 회사에서 힘든 일이 있는 날에 집에 돌아가면 평소에는 사소히 지나가는 일에도 날선 반응을 하다가 싸움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특히 한참 에너지가 넘치는 아이들, 쌍둥이 남매는 엄마 아빠가 퇴근하면 신발을 벗기도 전부터 자기네 얘기를 하기 바쁩니다. 현관문을 열고 눈이 마주치기가 무섭게 하루 종일 꾸미고 만든 무언가를 봐달라는 딸과, 장난감을 가지고 함께 놀자, 보드게임을 하자는 아들의 보챔에 시달립니다. 하루 종일 떨어져 있어서 그립고 애틋하던 마음도 잠시이고 "잠깐만~"이라는 부탁이 안 먹히면 "엄마 옷 좀 갈아입고!"  , "엄마 손 씻고 뭐 좀 먹고!~"  라며 결국 큰소리를 내게 됩니다.

작년까지 사무직으로 프로그래밍과 기획/마케팅 업무만 담당하다가 올해부터 처음으로 영업으로 직무가 변경됐습니다. 회사 정책상 일반 직원은 누구나 영업 경력을 가져야 한다는 게 규정이라고 하더군요. 직장생활 18년 차, 하루아침에 다시 신입사원의 위치에 놓이게 된 겁니다. 아니 오히려 신입사원만도 못하죠. 인건비는 비싸지만 체력도 열정도 신입사원과는 경쟁이 안 될 정도로 약해졌으니까요.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을 배우는 심정은 무척 암담하고 힘듭니다. 그래도 회사의 동료 앞에서는 혹은 고객 앞에서는 내색하지 않으려고 애를 써봅니다.

새로운 업무를 경험하면서 사회생활 안에서의 인간관계뿐만 아니라 가족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해볼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회사일로 밖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는 최대한 예의를 차려 지내면서, 집에 들어와 가족에게는 그만큼의 예의를 지켜 대한 적이 있던가? 몸이 피곤하다며 엉겨 붙는 아이를 억지로 밀어내고 칭얼대는 아이를 윽박지르고 남편에게, 친정 부모님께 짜증을 쏟아붓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자식이니까, 남편이니까... 등등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내 말을 들어주고 내 편 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고, 말을 따라주지 않거나 내 생각과 다른 방향의 조언을 듣게 되면 괜스레 섭섭해하거나 때로는 화가 나기도 하죠. 남이라면 그냥 넘어갔을 일을 쌍둥이 남매에게 엄마라는 이름 아래 너무 강압적으로 대하고 있었습니다.

직장과 가족을 두고 반드시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고를 가족.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가치를 지닌 가족. 감사하게 가족의 도움으로 직장생활을 하고 워킹맘을 유지하면서 그간 가족에게 너무 무심했던 게 아닌가라는 반성하게 됐습니다. 남편은 이런 생각을 하는 저를 보며 "네가 어려움을 직접 겪으니까 드디어 철이 드는구나"라고 일침을 가하네요.

남편이나 부모님께 마냥 응석을 부리거나, 내가 힘든 점을 의지하기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회사에서 차리는 예의만큼은 아니더라도 지켜야 할 선을 지키며 관계를 유지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들에게도 엄마의 권위는 유지하되 그 권위가 반드시 무서울 필요는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회식자리에서 평소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시던 차장님이 우연히 하신 얘기였는데, 제가 어려움을 겪으면서  그 이야기의 일부가 마음에 콕 와 닿습니다.

가족도 노력해야 하는 또 하나의 인간관계. 이번 주말에는 상사에게 예의를 지키듯 남편과 아이들에게도 조금 더 신경 쓰고, 예의 바른 엄마로 지내보려고 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네이버 개인블로그(http://blog.naver.com/nyyii)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70점엄마, #쌍둥이육아, #워킹맘육아, #까칠한워킹맘, #워킹맘두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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