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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원 제3 시집 <삼백예순날 하냥 외롭고 순결한>
 정도원 제3 시집 <삼백예순날 하냥 외롭고 순결한>
ⓒ 정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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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원 시인이 새 시집 <삼백예순날 하냥 외롭고 순결한>을 출간했다. 1994년 첫 시집 <교단으로 돌아가면>을 펴낸 이래 23년만에 상재한 세 번째 시집이다. 그 사이 시인은 제2 시집 <겨울나무는 외롭다> 외에도 <교육보다 교사가 먼저다>를 비롯한 세 권의 교육평론집을 선보였다.

세 권의 교육평론집 저술 경력이 말해주듯 그는 교육자이다.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독어교육과와 대학원을 마친 뒤 1980년부터 대구 송현여고에서 교사로 근무했다. 하지만 1989년 전국교직원 노동조합 결성 때 대구지부 정책실장을 맡아 교육노동운동에 매진한 죄(?)로 노태우 정권의 탄압을 받아 해직교사가 됐다.

1994년의 첫 시집은 교단에 복직하면서 출간했다. 그리고 이번에 낸 셋째 시집은 교단에서 정년 퇴임을 하면서 출간했다. 시인은 "철들고 난 후 시가 나를 표현하는 데 적절하다고 느껴 써 왔으나 그게 구태여 시라야 한다는 것은 좀 구속이었다"라면서 "남은 삶은 좀 더 자유롭고 싶다"라고 출간 소감을 밝혔다. 그만큼 시 쓰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세 갈래로 나눌 수 있는 정도원 시인의 시 경향

정도원 시인의 시들은 주제와 문체로 보아 크게 세 갈래로 나눌 수 있을 듯하다. 저자가 직접 쓴 '머리말 : 세 번째 시집에 부치는 글'의 표현을 원용해서 말하면, ① '모든 여리고 미약한 것들의 꿈'이 '다시 찾아온 봄 햇발 아래 / 민들레 홀씨처럼 눈부신' 시, ② '이 땅 위에서 근근이 목숨 부지하기 바쁜 착한 사람들과 그들의 삶이 / 도무지 피할 길 없는 아픔과 서러움을 / 날 것 그대로, 목 놓아 토해낸' 시, ③ '세상의 모든 음습한 시선과 구속으로부터 벗어나 / 머리를 비우고 식히고 좀 한가롭게' 자아를 노래한 시, 이렇게 세 갈래로 분류할 수 있다.

오월 밭둑에
애기똥풀이 무더기로 피었다
멀리서 보니
산수윤가 개나린가 싶더니
가까이 와서 보니
애기똥풀 저들끼리 야단법석이다
저들의 아우성이
오늘 심상찮다.
저들에게 그간
제대로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무심하기 이를 데 없었던
이 땅의 잘난 어른들과
이 땅의 세태를 빗대어
이유와 명분이 뚜렷한,
샛노란 반란 같다.
저들도 한 무더기로 어우러져
한꺼번에 이구동성으로 흐드러질 수만 있다면
산수유 빛 개나리 빛도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시위 같다
혁명 같다.

'애기똥풀이 야단이다'의 전문이다. 이 시처럼, 일상의 밑바탕을 이루는 소소한 대상들에 깃들어 있는 서정적 아름다움과 그것의 사회적 의미를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작품들을 필자는 '① 모든 여리고 미약한 것들의 꿈'이 '다시 찾아온 봄 햇발 아래 / 민들레 홀씨처럼 눈부신' 시로 분류했다. 이런 류의 사회적 서정시를 쓸 때 시인은 자신이 지식인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고 명징하게 깨어 있다.

실제로 정도원 시인은 사회적 서정시를 쓸 때 자신의 문학적 재능을 가장 잘, 두드러지게 드러내는 듯 보인다. 일단 시인은 '멀리서' 대상을 본다. 오월, 무심히 지나치던 들판 밭둑에 노란 꽃천지가 만개해 있다. 원경으로 보면, 꽃밭은 '이 땅의 잘난 어른들과 이 땅의 세태'로부터 주목을 받아 영화를 누리고 있는 산수유와 개나리들이 눈부시게 피어 있는 모습이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노랗게 아름다움을 뽐내던 그 군집은 산수유도 개나리도 아니고 흔히 잡초라는 이름 아래 홀대받는 애기똥풀들이다.

시인은 애기똥풀들이 '한꺼번에 이구동성으로' 모여 빚어낸 아름다움을 '멀리서'만 보고, 그 눈부심을 산수유 또는 개나리의 것으로 노래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상징조작을 범하는 행위를 거부한다. 애기똥풀 자체의 자연적 아름다움을 읊조리는 것으로 시작(詩作)을 마치지도 않는다. 결코 '가까이서 보면 아름답다'거나 '자세히 보면 아름답다' 식 피상적 관념론에 머물지도 않는다. 이는 시인이 '잉크가 아니라 피로써 쓴 시('파블로 네루다처럼')'를 정신사에 남기고자 하기 때문이고, '머리에서 나온 시'가 아니라 '온몸으로 쓴 시 / 낭자한 슬픔의 밑바닥에서 피워 올린 한 떨기 애기똥풀 같은 시('세 번째 시집에 부치는 글')'를 쓰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인은 세상과 세태가 '제대로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 무심하기 이를 데 없었던' '모든 여리고 미약한 것들'도 '한 무더기로 어우러져 / 한꺼번에 이구동성으로 흐드러질 수만 있다면' 어떤 고귀한 것과 견주어도 결코 모자라지 않는 아름다운 존재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밭둑에 피어난 애기똥풀떼를 우연히 보고도 이런 경지의 문학적 형상화를 이루었으니, 범상한 표현력이 아니다.

시인의 그같은 인식과 표현력은 좀 더 ②의 경향, 즉 '이 땅 위에서 근근이 목숨 부지하기 바쁜 착한 사람들과 그들의 삶이 / 도무지 피할 길 없는 아픔과 서러움을 / 날 것 그대로, 목 놓아 토해낸' 경향성에 접근하고 있는 시 '산책길에서' 같은 작품에서도 고스란히 발견된다. '애기똥풀이 야단이다'와 다를 바 없는 인식을 보여주지만, 어법은 훨씬 직설적이어서 일견 거칠게 시작하는 듯 느껴지는 이 시를 읽어보자.

어느 한여름 오후 산책길,
국민소득 20,000불을 눈앞에 두고
코스피 지수 2,000을 넘어선 이 나라
어느 광역시 변두리지역 밀집 주택가엔
아직도 단칸 셋방에 사는 가족들이 있다
장마로 눅눅해진 벽면 한 편,
유치원 졸업 때 찍은 듯한
학사모 아래 복숭아 볼을 한 아이의 사진
활짝 열어둔 창을 통해 본의 아니게 훔쳐 보다
벽 한가운데 예수가 매달린 나무십자가 보인다
교회나 성당엘 나가는 가족인 모양이다
새하얀 교복의 한 여고생이 그 집에 들어간다
이런 셋방에 도저히 어울리지 않을 듯싶은
하얀 교복 컬러보다 더 하얀 미소녀의 얼굴이다
애처롭다
신의 축복을 받았다는 이 나라 자본주의 속살,
가슴 먹먹하다

애기똥풀들이 '한 무더기'로 피어 있듯이, 빈민들도 '변두리 지역 밀집 주택가'를 이루고 살아간다. 시인은 그 동네를 지나치다가 어느 집 방 안을 우연히 본다. '장마로 눅눅해진 벽면'에 '학사모 아래 복숭아 볼을 한 아이의 사진'이 걸려 있다. 아마도 이 집은 경제적 몰락을 겪은 가난한 가정인 듯하다.

그 아이가 자라서 지금은 '새하얀 교복의 여고생'이 되었다. 빈민촌과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을 듯싶은 / 하얀 교복 컬러보다 더 하얀 미소녀의 얼굴'을 한 여고생이 그 집 안으로 들어간다. 시인은 그것을 '본다.'

아무나, 무심히 지나치던 골목에서 '본의 아니게 훔쳐' 본 어느 집의 방 안, 눅눅한 벽에 걸려 있는 사진액자 속에 담겨있는 사진에서 아이의 '복숭아 볼'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산수유 빛' 또는 '개나리 빛'을 한 여고생이 '단칸 셋방'으로 들어가든 말든 무관심한 사람의 눈에는 띌 일도 없다.

그런데도 시인은 본다. 시인의 눈에는 그 아이와 여고생이 '애기똥풀'이고 '민들레'이고, '이 땅 위에서 근근이 목숨 부지하기 바쁜 착한 사람들과 그들의 삶'이기 때문이다. '장마로 눅눅해진 벽면'과 '단칸 셋방'은 애기똥풀처럼 하루하루 살아가는 '여리고 미약한' 사람들이 '도무지 피할 길 없는 아픔과 서러움'의 은유이기 때문이다.

시인은 어째서 아이의 복숭아 볼을 볼 수 있을까

이제 시인은 '신'과 '자본주의'를 거론한다. '내가 믿어온 신에게 모욕을 끼얹는 소리지만 / 젊을 적 한때는 성직자가 되어' '골방에 무릎을 꺾은 채 눈물로 범벅이 된 / 기도를 남몰래 드리고 싶었던(시 '젊을 적 한때는')' 시인은 급기야 '저들은 저들이 하는 짓을 / 모르고 있나이다 주여!(시 '얼토당토않은, 혹은 어처구니없는')' 하고 절규한다.

그러나 '복숭아 볼을 한 아이', '유치원', '하얀 교복 컬러', '여고생', '예수가 매달린 나무십자가' 등 서정적 파장을 지닌 시어들을 채용하고 있는 데 힘입은 시 '산책길에서'는 '②이 땅 위에서 근근이 목숨 부지하기 바쁜 착한 사람들과 그들의 삶이 / 도무지 피할 길 없는 아픔과 서러움을 / 날 것 그대로, 목 놓아 토해낸' 시까지는 아니다. 그만큼 시인은 시적 어휘를 잘 활용할 줄 안다.

여기서 한 가지 덧붙여둘 말은, 시인의 눈에 유치원, 아이, 여고생이 두드러지게 들어온 까닭이다. 이는 고려가요 '사모곡'에 나오는 '호미도 날이지만 낫같이 들 리도 없습니다'라는 표현을 읽는 독법과 같은 해석이다. 시인은 '내 어릴 적 꿈은 / 학교 선생님이었어요 // 시와 사랑과 혁명과 역사를 가르치는 / 그런 선생님 되는 것이 / 내 어릴 적 꿈이었어요(시 '내 어릴적 꿈은')' 하고 토로하는, 실제로 평생을 교단에서 아이들과 함께 살아온 교육자이다. 그래서 무심히 지나가는 길에서도 '교육'이 늘 눈에 밟히는 것이다.

당연히 시집에는 흔히 '교육시'라고 말하는 작품들도 10여 편 수록되어 있다. 다시 당연히, 교육시들은 '시와 사랑과 혁명과 역사를 가르치는 / 그런 선생님'으로 산 시인의 생애를 담을 수밖에 없으므로 해직교사로서의 삶, 전교조 활동, 교육운동 동지들의 면모, 참된 학교의 모습 등을 노래하고 있다. 또 다시 당연히, 교육시가 아닌 시 '세월호 참사에 대하여'에도 '전교조 선생님'이 나온다.

임진왜란 때 백성들을 왜군의 칼끝에 버려두고
제 혼자 살겠다고 한양 도성을 버리고
비가 오는 캄캄한 밤 임진강을 건너 의주까지 도망간 선조나,
6.25때 '대통령이 서울에 있으니 안심하라'고 하고선
다음 날 서울을 버리고 대전으로 자기만 쏙 빠져 나가면서
한강철교 폭파를 명령한 이승만이나,
다 똑 같은 통치자들이다

대구지하철 참사 때 '자리를 떠나지 말고 기다리라'는 방송을 듣고
바지 뒷주머니 손수건을 꺼내 입을 틀어막고 버티다 끝내 불 타 죽은
무고한 대구시민들이나,
이번 참사 때 '선실에서 절대 이동하지 마라'는 선내방송을 듣고
고스란히 몰살당한 우리 단원고 꽃 같은 아이들의 생때같은 목숨들이나,
다 식민과 분단의 아귀들에게 무참히 먹힌
속수무책 어린 양들이다

'역사는 잘못된 과거를 잊지 말자는 걸 배우기 위해 개설된 과목이다'라는 말은
지난 삼월 일일자로 단원고로 발령난 지 두 달이 채 안 돼
이번 세월호 참사로 제자들을 구하고 자신은 실종되었던,
젊디젊은 역사 선생님 이해봉 전교조 선생님이
태연스레 살아 있는
우리들에게 남긴 가르침이다

시 '세월호 참사에 대하여'는 '②이 땅 위에서 근근이 목숨 부지하기 바쁜 착한 사람들과 그들의 삶이 / 도무지 피할 길 없는 아픔과 서러움을 / 날 것 그대로, 목 놓아 토해낸' 시들 중 한 작품이다. '날 것 그대로'이다. 문학적 수사의 대표격인 상징과 비유가 거의 없다. '왜군의 칼끝', '식민과 분단의 아귀', '단원고 꽃 같은 아이들', '속수무책 어린 양'에 쓰인 '칼끝', '아귀', '꽃', '양'뿐이다. 그나마 그 넷은 모두 사은유 형태여서 시의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는 데 기여하지도 않는다.

그런가 하면, 시인 스스로 "서시를 대신하여"라는 부제를 붙인 '내 젊은 날의 초상'도 제목은 감성을 자극하지만 내용과 수사는 직선적이다.

70년대 초반
난 시골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빡빡머리 촌뜨기였다.
70년대 중반 유신이 게거품을 물던 시절,
장발에 콧수염을 기르고 <별들의 고향>에나 흠뻑 취해
향촌동, 동성로 뒷골목이나 싸돌아 댕기던
나는 여전히 철딱서니 없는 대학생이었다.
70년대 후반, 군대생활 제대말년이었다.
군바리 출신 종신대통령이 심복에게 총맞아 죽은 후,
그의 꼬봉이었던 군바리눔이 또 왕노릇하려 들었다.
이건 아무래도 아닌 것 같았다.
80년 오월, 피투성이 광주 소식이 들려왔다.
가슴이 답답하였으나 걍 남들처럼 이전처럼 살았다.
말하자면, 바보처럼 밥 먹고 똥 싸고 살았을 뿐이었다.
87년 6월항쟁이 다가왔다.
내 나이 정확히 30대 중반이었고
우리 역사와 정면으로 마주쳤다.
그때까지의 내 삶이 부끄러웠다.
그때까지의 내 삶이 미안했다.
자책했다.
두 딸아이에게 떳떳한 애비가 되고 싶었다.
세상 모든 눈빛 고운 아이들에게 훌륭한 어른이 되고 싶었다.
내가 가르치는 학교 아이들에게 존경받는 선생이 되고 싶었다.

역시 시인은, 일반적으로 문학적 형상화라고 말하는 '가공'에는 별 관심이 없다. 시적 표현의 특징 중 한 가지인 애매성을 배치하는 법도 없다. 물론 시인은 그렇게 할 줄 몰라서가 아니라 의도적으로 그렇게 했다. 이렇게 말하는 근거는 두 가지이다. 첫째, ①의 분류에 들어가는 시들이 보여주는 문학적 성취이다.

둘째, '날 것 그대로, 목 놓아 토해낸' 시가 공들여 형상화 과정을 거친 작품보다 독자의 가슴을 적시는 효용력이 반드시 낮은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의도의 오류'가 발생할 여지를 염두에 두지 않을 수도 없지만, '해석의 오류'를 흔히 범하는 독자, 즉 향유자들 중에는 자신이 창작자(시인)에 견줘 예술의 본질적 주체라고 강변하는 이가 한둘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시인은 자신의 의도를 가감없이 전달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과학적 언어'를 채용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성과도 거두고 있다. 시 '세월호 참사에 대하여', '내 젊은 날의 초상' 외에도 '김수영이 다시 살아온다면', '이런 나라', '그대의 죽음 앞에, 어찌 내 삶은 이리도 구차하고 누추한지요', '황새울 들녘의 평화를 지금, 누가 짓밟고 있는가' 등의 시는, 오직 개인적 서정시만 인정하는 시선에서 볼 때는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참여시로서 당당한 면모를 갖추고 있다.    

초여름
무더운
한낮의 정적(靜寂) 사이로
홀로 산을 오르다가
한 마리 풀벌레 소리
엿듣다

가까이 다가가니
뚝 멈추다

납덩이처럼 무겁고
고장 난 시계바늘처럼
문득 멈춘
산중의 적요(寂寥)

불현듯
외롭다
- '홀로 산에 오르며' 전문 

20세기 막바지
어느 해 여름 장마
후텁지근한 더위 속
여우비 몇 방울,
드레스덴을 넘어
프라하로 향하는 길목
국경도시 데첸
그 자그만 체코 레스또랑
붉은 수줍음에서
슬픈 아름다움으로
내 걸음 못내 붙들던
한 송이 수국(水菊)
- '짧은 추억, 어느 슬라브 소녀에게' 전문

시 '홀로 산에 오르며'와 '짧은 추억' 등은 정도원이 통념적 서정시인으로도 모자람 없는 표현력과 감성을 갖췄음을 확인하게 해준다. 그 외에 '치자꽃', '봄날', '봄, 동백', '남쪽 마을에 살고 싶다', '소백산 아래 풍기에 대한 기억', '다람재에서' 등의 서정시들도 훌륭한 성취에 도달한 빼어난 수작들이다.

어떤 독자는 '애기똥풀이 야단이다'와 '산책길에서'처럼 사회적 관점이 깔고 있으면서도 서정적 어조가 충만한 ①경향의 시만 좋아할 수도 있다. 다른 어떤 독자는 '세월호 참사에 대하여'와 '내 젊은 날의 초상'처럼 단도직입적으로 현실에 대해 발언하는 ②식 어투만 마음에 들어할지도 모른다, 또 다른 독자는 '홀로 산에 오르며', '짧은 추억'같이 보편적 정감을 노래한 ③식 분위기의 서정시만 편애할지도 모른다.

결론은, 어떤 시가 독자의 심금을 울리는가는 시의 성취 정도와 독자의 개인적 취향에 따라 변화무쌍하게 변주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볼 때, 시인의 뛰어난 ①경향 작품들은 자신의 분명한 사회 인식을 보여주는 ②경향 시와, 애틋한 감수성이 돋보이는 ③경향 시의 멋진 이중주(二重奏)라 하겠다.

3월 3일 출판기념회도 예정

오는 3월 3일 오후 6시에는 시집 출판 기념회도 예정되어 있다. 첫 시집 이래 23년만에 제3 시집을 출간했지만, 출판 기념회도 1994년 첫 시집 때에만 열고 제2 시집과 세 권의 교육 평론집 상재 때는 생략했으니 23년만이다. 이제 해직교사로서가 아니라 정년을 맞아 교단을 떠나는 정도원 시인, 앞으로 어떤 문학 활동과 사회 활동을 보여줄지 자못 기대된다.

덧붙이는 글 | 정도원 시집 <삼백예순날 하냥 외롭고 순결한>(다운미디어, 2017), 160쪽, 1만 원.



태그:#정도원, #하냥 외롭고 순결한, #교단으로 돌아가면, #전교조, #해직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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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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