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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쩍 떠나고 싶다. 꼬일대로 꼬인 일이 마음처럼 풀리지 않을 때, 하나 둘 늘어선 문제가 온 몸을 옭아맨 것처럼 느껴질 때, 하루 종일 시달린 머리에서 멍하니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을 때, 그럴 때 훌쩍 떠나고 싶다.

너도 나도 가방 하나 들고 비행기 타고 버스 타고 심지어는 걸어서까지 어디론가 바삐 가는 모습을 볼 때, 매일 만나는 일상으로부터 어떤 자극도 얻지 못할 때, 훌쩍 떠나고 싶다. 가끔은 그냥 아무 이유 없이, 때로는 무슨 이유든 만들어서라도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

많은 경우 일상은 일탈보다 무거워 들뜬 마음을 꾸욱 잡아 앉힌다. 떠나고픈 마음을 주체할 수 없을 때, 하지만 일상으로 돌아가야만 할 때, 바로 그때 책은 그럭저럭 훌륭한 대안이 되어준다.

여기 내가 지난 시간 만난 세 권의 책이 있다. 모두 떠남에 대한 이야기로 한 권은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여행산문집이며 다른 한 권은 여행을 여행 그 자체보다 위대한 경험으로 묘사했다. 또 다른 한 권은 떠남을 삶의 일부로 삼아 전과 전혀 다른 삶을 만들었다.

다른 이의 이야기로 훌쩍 떠나 삶 속에 쉼표를 새기는 그런 여정, 책 속의 여행이 당신 삶 속의 여행으로 이어질 수 있길 바라며 이 세 권의 책을 소개한다.

이병률, <끌림>

책 표지
▲ 끌림 책 표지
ⓒ 랜덤하우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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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사람들이 부러워 하는 직업을 논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게 여행작가다. 세계각지, 방방곡곡을 원없이 쏘다니며 돈까지 버니 부러워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그들의 삶을 조금만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실제 모습이 상상과 상당히 다르다는 걸 금세 알게 된다.

목적지가 정해지면 짧게는 몇주, 길게는 몇달씩 훌쩍 떠나야 하니 삶의 터전이 갖는 무게가 머물러 사는 사람과 같을 수가 없다. 한데 어우러져 살아가는 세상에서 홀로 머물다 떠나버리니 같이 살아가는 입장에서도 정을 주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머물러 살지 않는 사람들이 있어 방랑벽, 역마살과 같이 사람의 의지를 넘어선 표현이 생겨났는가 보다.

여행 산문가로 명성을 얻은 이병률의 산문집 <끌림>은 저자에게 베스트셀러 작가의 영광을 안긴 책이다. 세계 각지를 다니며 찍은 사진과 짤막한 감상을 이어붙인 수필집으로 2005년 첫 출간 이후 2010년 개정증보판과 지난해 '리커버에디션'이란 이름의 추가판 등이 나온 스테디셀러이기도 하다.

한국일보 등단시인인 그는 여행산문가로 활동하며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내 옆에 있는 사람>을 연달아 출간, 더욱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교보문고가 지난 10년 간 누적판매량을 조사한 결과 이병률의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와 <끌림>이 누적판매량 1, 2위를 차지, 가장 많이 팔린 여행에세이로 이름을 올렸다.

책은 저자가 1994년부터 2005년 초까지 50여 개국, 200여 개 도시를 돌아다니며 남긴 기록이다. 어느덧 반백이 된 저자가 스물 아홉부터 서른 아홉까지 청춘을 바친 삶의 순간 순간이 카메라 셔터에 담겨 글과 함께 실렸다.

페루에서 볼리비아 국경을 넘어 코파카바나로 가는 버스 안에서 뉴욕 맨해튼에서 왔다는 옆자리 중년 여인에게 대뜸 묻는다. "뉴욕의 지난 가을은 어땠어요?" - 책 중에서

<끌림>이 여타 여행수필집보다 큰 인기를 누린 건 특유의 감성적인 감상 때문이다. 사람에 대한 애정과 가야할 길에 대한 동경, 서성거림의 순간이 시인의 고운 언어로 담겨 감수성 있는 독자의 가슴을 울린다. 여기에 손때 묻은 카메라로 진득하게 기다려 찍은 듯한 사진이 여백을 채워 충분한 사고의 공간을 마련해두고 있다.

방송작가로도 활동하는 작가의 책은 누구도 개의치 않고 자신만의 길을 가는 것 같으면서도 다른 어느 책보다 독자의 입맛에 맞추고 있다. 뛰어난 통찰이나 번뜩이는 감각이 엿보이진 않지만 편하고 쉽게 접할 수 있는 뭔가 있어 보이는 책이다. 베스트셀러가 될 만하다.

브라이언 트레이시, <내 인생을 바꾼 스무살 여행>

책 표지
▲ 내 인생을 바꾼 스무살 여행 책 표지
ⓒ 작가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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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처음 읽은 건 본격적으로 공부라는 걸 시작했던 고등학교 3학년 때였다. 다른 많은 평범한 학생들처럼 여행을 떠나본 적도 없고 여행이라는 게 왜 좋은지도 알지 못했던 나는 다른 사람의 여행기를 읽고서라도 왜 사람들이 여행을 하는지 조금이나마 알고 싶었다.

그래서 집어든 책이 바로 <내 인생을 바꾼 스무살 여행>이었다. 여행이 인생을 바꾸고야 말았다는 그 거창한 제목이 여행의 의미를 알지 못하고 그래서 부정하고 있던 나에게 강한 매력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절반은 사실, 절반은 소설인 이 책은 단돈 300달러에 아프리카 종단을 계획한 스무살짜리 사내들이 주인공이다. 나와 몇 살 차이 나지 않는 스무살 청년들의 도전은 당시 내겐 너무나도 대단한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책을 읽으며 마주한 그들의 여행과정과 그곳에서 얻은 깨달음들은 그보다도 훨씬 더 대단해 보였다.

책을 읽는 내내 그네들이 부러웠다. 함께 고생하고 노력하고 극복하고 성취감을 맛보는 일련의 과정들이 쳇바퀴도는 삶을 살던 내겐 너무나도 부럽게 느껴졌다. 그들의 여행을 온 마음으로 힘껏 따라가다 잠시 잠깐 멈춰 돌아본 내 삶은 어떤 모습이었던가. 열여덟 청춘을 감옥과도 같은 고등학교에서 수능이라는 벽에 짓눌린 채 아둥바둥 하며 보내고 있지 않았던가. 나는 내가 정말이지 불쌍했다.

대체 뭐하자는 것인가.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훌쩍 떠나고픈 마음이 들 때가 한 두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대입 수학능력 시험은 피할 수 없는 관문이었고 결국 난 기꺼이 감옥에 갇히기를 선택하고 말았다. 이 책 한 권을 손에 든 채로. 그래서 늘 불행했고 조금은 견딜 만했던 나날이었다.

감옥에서 웃으며 걸어나온 뒤 나는 여행을 즐기기 시작했다. 마치 오래 전부터 즐겨온 것처럼. 책을 가장 열정적으로 읽었던 고등학교 3학년 시절을 돌아본다. 몸은 여행은커녕 답답한 교실도 떠나지 못했지만 그래도 견딜만 했던 건 내 마음 한 조각이 사하라를 가로지르는 주인공들의 랜드로바 앞자리에 타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신념과 용기는 포기와 절망의 오랜 친구다' 이 말에 동의하는 사람이라면 <내 인생을 바꾼 스무살 여행>의 동반자로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김연식, <스물 아홉, 용기가 필요한 나이>

책 표지
▲ 스물 아홉, 용기가 필요한 나이 책 표지
ⓒ 예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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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서른 넷일까.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고 인천지역 신문사에 입사, 기자로 일했던 그는 스물 아홉의 나이에 모든 걸 던지고 나와 항해사로 새 길을 걷기 시작했다. 특별한 목표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내 길이 아니라는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 우연히 본 포스터 한 장으로 완전히 뒤바뀌었다. 이제 어엿한 이등항해사, 책을 쓰기까지 32개국 46개 항구에 기항했다니 지금은 더 얼마나 많은 곳을 오고 갔을까.

저자 김연식씨의 지난 시간과 선택을 담은 책 <스물 아홉, 용기가 필요한 나이>는 어느덧 초판 2쇄를 인쇄했다. 딱히 유명인도 아니고 담긴 글이나 생각에서도 특출나다거나 훌륭한 부분이 없지만 이만큼 책이 팔린 데는 그가 느낀 불안과 욕망에 공감하는 이들이 많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직장을 때려치고 나온 순간에서조차 그것이 도전인지 도망인지 불확실했다는 저자는 이 시대 보통의 젊음이 느낄 법한 고민과 방황을 고스란히 겪은 끝에 그런대로 만족스런 오늘에 이른다. 서른이 되고 왠지 스스로가 아닌 세상의 힘으로 삶의 방향이 결정돼 버리는 것 같을 때, 뭔지 모를 막막함과 답답함, 혹은 내가 잘 살고 있는 건가 하는 고민이 앞을 가릴 때 읽어보면 좋을 책이다.

다만 아쉬운 건 눈에 밟히는 위선적 자기 미화와 마음에 들지 않은 동료에 대한 지나친 혹평이 아닐까. 책을 읽은 이들의 평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는 것처럼 자신과 다른 길을 선택한 동기를 크로마뇽인이라 칭하며 우스꽝스럽고 무능력하게 묘사한 부분, 책 곳곳에서 느껴지는 자신에 대한 과도한 자신감과 다른 태도에 대한 공격적 표현 등은 민감한 독자에게 불편함을 자아낼 수 있어 보인다.

그래도 이 책이 가진 가치는 분명하다. 기자 출신답게 정리정돈된 문장과 흥미로운 에피소드는 책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까지도 쉽게 마지막 장을 만날 수 있도록 이끈다. 무엇보다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긍정적 자극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반년 넘게 가족과 떨어져 지내야 하는 외로움, 고립된 배 안에서 정해진 사람들과 지내야 하는 고충 탓으로 해양대학교를 졸업한 이들조차 다른 직업을 찾는 경우가 적지 않은 상황에서 저자가 기꺼이 배에 오르기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불확실한 미래에 자신을 내던지고 오늘의 어려움을 기꺼이 감내하는 용기와 담대함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분명한 건 자신의 지난 스물 아홉을 이토록 긍정적으로 추억할 수 있는 사람이 그리 많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노력, 분발할 때다.

'나는 꿈이 있다. 아무도 내 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내 결심은 평범한 사람들의 기준과 어긋난다. 사람들이 만들고 강요하는, 그래서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던 꿈과 다르다. 그렇다고 내 꿈이 남에게 방해받도록 놔둘 수는 없다. 세상에 나와 같은 관점을 가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남의 의견을 존중하되 선택과 결과는 오직 내 몫이다.' - 책 중에서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김성호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goldstarsky.blog.me)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끌림 / 랜덤하우스코리아 / 이병률 지음 / 2005. 07. / 12000원>
<내 인생을 바꾼 스무살 여행 / 작가정신 / 브라이언 트레이시 지음 / 강주헌 / 2002. 04. / 9800원>
<스물 아홉, 용기가 필요한 나이 / 예담 / 김연식 지음 / 2015. 06. / 13000원>



끌림 - Travel Notes, 개정판

이병률 지음, 달(2010)


스물 아홉, 용기가 필요한 나이 - 방구석에만 처박혀 있던 청년백수 선원이 되어 전 세계를 유랑하다

김연식 글.사진, 예담(2015)


내 인생을 바꾼 스무살 여행

브라이언 트레이시 지음, 강주헌 옮김, 작가정신(2002)


태그:#끌림, #내 인생을 바꾼 스무살 여행, #스물 아홉, 용기가 필요한 나이, #김성호의 독서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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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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