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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슈판과 파인애플 통조림
 차슈판과 파인애플 통조림
ⓒ 강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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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나 소설, 만화나 드라마에 등장하는 음식들. 군침이 절로 나오는 이야기 속 음식 레시피와 그에 얽힌 잡담을 전한다. 한 술 뜨는 순간 장면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음식 이야기를 '씨네밥상'을 통해 풀어낼 예정이다. - 기자 말

빠르게 흐르는 배경을 뒤로 느릿느릿 움직이는 젊은이들, 세기말을 지나온 청춘이라면 왕가위가 만들어낸 울렁이는 감성에 감화되어 공허한 시선으로 도심을 훑으며 쓸쓸히 거닐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특유의 감각적인 화면으로 방황하는 청춘과 사랑을 담아낸 연작 <중경삼림>과<타락천사>는(<중경삼림>의 에피소드 1, 2와 <타락천사>는 원래 총 3개의 옴니버스로 구성된 하나의 영화로 촬영되었지만 러닝타임이 길어져 두 개의 영화로 나뉘게 되었다) 1994년 개봉 당시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키며 본격적인 '왕가위 월드'의 시작을 알린 기념비적인 영화다.

그 전에도 이미 <열혈남아> <아비정전> 등으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던 왕가위지만 몽환적인 온갖 색채와 이미지로 뒤덮인 <중경삼림>은 세기말을 준비하고 있던 이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왔고 전세계 젊은이들의 가슴에 불을 지폈다.

개봉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최근 수지의 신곡 뮤비가 '철지난' <중경삼림>과 <타락천사> 스타일을 그대로 따랐다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영화가 청춘의 바이블로 내려오는 것은 매일 지나치는 사람들 속에 고립된 쓸쓸함과 그 안에서 끝나고 또 다시 싹트는 사랑의 정서가 영화의 배경이 되는 홍콩의 침사추이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지기 때문 아닐까.

왕가위의 팬에게 홍콩의 이미지는 침사추이, 그중에서도 청킹맨션 그 자체일 정도로 이 영화의 배경은 전달하려는 정서와 직결된다. 다닥다닥 틈 없이 붙어있는 낡은 콘트리트 건물들, 서양과 동양의 이미지가 혼재된 카오스, 그 골목 사이를 휘젓고 다니는 경찰 223 금성무와 경찰 663 양조위, 그들이 잠시 쉬어가는 간이 스낵바의 점원 아비. 그리고 범죄의 소굴로 악명 높은 청킹맨션을 금발가발과 레인코트, 선글라스를 낀 채 쉼 없이 돌아다니는 마약밀매업자 임청하. 영화는 흔들리는 화면으로 침사추이의 뒷골목을 훑으며 그 사이의 스낵바와 노상식당의 좌판을, 음식을 지나쳐간다.

오래된 연인에게 실연을 당한 금성무, 실연당한 날이 4월 1일 만우절이라 처음엔 상대가 장난을 하는 걸로만 알았다는 그는 옛 연인이 좋아하던 파인애플통조림을 5월 1일까지 매일 하나씩 사 모은다. 그것도 유통기한이 5월 1일까지인 것만. 자신의 생일이기도 한 그날까지만 옛 연인을 기다리기로 한 그는 결국 5월 1일에도 떠나간 연인이 돌아오지 않자 서른 개의 통조림을 모두 먹어버린다. 그리고 그날밤 우연히 만난 금발의 임청하와 하룻밤을 보낸 뒤 생일축하 메시지를 받는 걸로 에피소드는 끝이 난다.

그 다음 에피소드의 주인공 양조위 역시 오랜 연인에게 실연을 당하는 인물. 순찰을 돌며 매일 애인을 위해 저녁을 사러 들르던 스낵바, 이제는 더 이상 애인을 위한 식사를 살 일이 없어졌지만 습관적으로 들러 커피만 마시고 사라진다. 그리고 그런 그를 짝사랑하는 스낵바의 점원 아비는 가끔씩 그의 아파트에 몰래 들어가 청소를 하고 그가 먹는 통조림을 조금씩 다른 통조림으로 바꾸어 놓는다.

이 두 가지 에피소드의 중심이 되는 야식을 파는 스낵바는 홍콩을 대표하는 식문화 중 하나로 흔히 '차찬텡'이라 부른다. 1960년대 경제 부흥기, 서양의 문물이 급속도로 퍼져나간 시기에 샌드위치나 간단한 토스트, 샐러드, 홍콩식 면과 덮밥, 커피 등을 파는 가게들이 생기기 시작했고 이런 가게들은 '차찬텡'이라 불리며 홍콩인들의 아침부터 점심, 야식까지 책임지게 되었다.

영화의 배경이 된 가게는 테이크아웃만을 하는 곳이지만 좌석이 준비된 곳도 많다. 홍콩을 비롯한 동남아시아 전역에선 점심뿐 아니라 아침과 저녁까지도 작은 식당에서 해결하거나 테이크아웃 등으로 해결하는 경우가 많은데 특히 홍콩은 높은 여성 취업률, 그리고 살인적인 부동산 가격으로 인한 유난히 좁은 주거형태 등의 이유로 대부분의 식사가 외식으로 이뤄진다. 때문에 큰 건물이나 아파트 1층 대부분이 소형 식당가로 이뤄져 있을 정도로 작은 식당과 길거리 음식이 발달했다. 아침은 죽과 국수, 토스트가 중심이 되는 차찬텡에서, 점심은 직장 근처의 차찬텡에서 해결하고 저녁은 퇴근하면서 집 근처의 차찬텡에서 테이크아웃하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

양조위가 순찰을 도는 중간에 식사를 하는 시장통의 노상식당도 흔히 볼 수 있는 형태로 이 때 양조위가 매번 먹는 음식이 홍콩의 대표적인 서민 음식인 차슈판이다. 돼지고기바비큐를 뜻하는 차슈에 밥을 뜻하는 판이 합쳐져 우리나라 말로 하면 돼지고기바비큐덮밥 정도. 미식에 일가견이 있는 도시답게 거위와 오리, 돼지고기 차슈 등을 파는 서민적인 식당들도 미슐랭 스타를 받을 정도로 맛도 일품이다. 

매일, 하루에도 몇 번을 먹는 끼니. 그 일상적인 음식들엔 하나하나의 추억이 깃들어져 있다. 혼자 묵묵히 밥을 먹다가도 헤어진 연인과의 추억이 떠올라 울컥하기도 하고 끼니를 먹다 새 인연을 만나기도 한다. 정신없는 홍콩의 뒷골목에서 양조위가 땀 흘리며 먹던 차슈판과 금성무가 떠나간 연인을 잊기 위해 삼키던 파인애플 통조림을 먹으며 다시 한 번, 겉잡을 수 없이 울렁거리던 그때 그 감정을 느껴보자. 마마스앤파파스의 캘리포니아드리밍도 빠트리면 안 된다. 이 감정의 유통기한은 언제까지일까?

[씨네밥상 레시피] 차슈판(돼지고기바비큐 덮밥, 5~6인분 기준)

구운 고기를 뜻하는 차슈, 광둥지방에서 발달한 요리 형태로 뼈를 제거한 살코기를 긴 꼬치에 끼워 불에서 굽는 오래된 바비큐 요리이다. 이것이 일본으로 건너가 라멘 토핑에 흔히 볼 수 있는 차슈로 변형되어 우리에겐 일본식 차슈가 더 익숙하기도 하다. 중국식 차슈와 일본식 차슈의 가장 큰 차이라면 바비큐 형태로 굽는가, 냄비에서 조림 형태로 익히는가도 있지만 무엇보다 향신료 사용의 차이다.

고기를 양념에 재웠다가 구워내는 중국 차슈의 기본 양념으로는 간장 외에도 꿀과 오향이 있다. 산초와 팔각, 회향, 정향, 계피를 섞은 오향은 특유의 중국의 맛을 내는 데 대표적인 향신료로 인터넷 등에서 오향파우더를 구매해 사용하면 편하다. 차슈 외에 대만식 돈까스나 족발 등을 만들 때에도 두루 사용할 수 있다. 중국식 차슈를 본래대로 집에서 하려면 고기를 양념에 재웠다가 바비큐그릴이나 오븐에 굽는 게 정석이지만 오븐이 없는 이들도 만들 수 있는 냄비버전으로 준비했다.

돼지고기는 어깨살을 가장 추천하는데 어깨살을 덩어리째로 팔지 않는다면 수육용 앞다리살이나 삼겹살 등도 괜찮다. 삼겹살보단 앞다리 살이 가격도 저렴하고 살코기도 많아 추천하지만 기름진 맛을 선호하는 이라면 삼겹살도 좋다. 고기 분량을 반으로 줄여서 요리한다면 양념분량은 ⅔로 줄여서 맞춘다. 완성된 차슈는 밥 위에 올려 덮밥 형태로 즐겨도, 중화면을 삶아 올려 중화풍 비빔국수 형태로 즐겨도 좋다. 

재료 : 돼지고기 어깨살 1kg, 해선장(굴소스로 대체 가능)·황설탕·꿀 2큰술씩, 다진마늘 ½큰술, 다진생강·오향파우더·간장·참기름·소금·후춧가루 1작은술씩, 물 1컵, 식용유 적당량
추가재료 : 쌀밥, 청경채 등

1. 돼지고기 어깨살은 큼직한 덩어리 준비해 3~4등분 한다. 통삼겹이나 통앞다리살이라면 가로로 3~4등분 한다. 생고기는 흐르는 물에 한 번 헹군 뒤 키친타올로 물기를 제거한다.
2. 물과 식용유를 제외한 나머지 양념 재료를 고루 섞은 뒤 고기를 넣고 밀봉해 냉장고에 넣고 4시간~하룻밤 재운다. 지퍼백 등을 활용하면 편하다. (고기를 더 부드럽게 하고 싶다면 양념에 베이킹소다 1작은술을 더해도 좋다.)
3. 재워진 고기와 양념을 통째로 냄비에 넣고 물 1컵을 더해 뚜껑을 덮어 약한 불에서 50분 가량 끓인다. 중간에 양념이 너무 눌어 붙는다 싶으면 물을 조금씩 더 넣는다.
4. 고기가 충분히 부드러워지고 양념이 소스 농도가 나면 고기만 꺼내 달군 프라이팬에 기름을 살짝 두르고 앞뒤로 굽는다. 양념이 살짝 눌어 붙는단 느낌으로 3~4분 가량 구우면 된다.
5. 구운 고기를 도마에 올려 5분간 그대로 두어 래스팅시킨다.
6. 고기를 0.5cm~1cm 두께로 썬다.
7. 그릇에 쌀밥을 담고 고기를 보기 좋게 올린다. 냄비에 남아있는 소스를 살짝 끼얹어낸다. 청경채 등을 삶아 곁들여도 좋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강윤희는 음식잡지에서 기자로 일하다 회사를 나와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는 푸드라이터. 음식에 관련된 콘텐츠라면 에세이부터 영화, 레서피 북까지 모든 것을 즐긴다. 영화를 보다가 호기심을 잡아끄는 음식이 나오면 바로 실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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