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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한국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을 향한 국민들의 실망과 좌절, 그리고 분노가 들끓어 시민들은 광장으로 나섰다.

조국의 광장에서 시민들의 분노가 들끓기 시작하자 해외에서도 촛불을 드는 교민이 늘어났다. 박근혜 탄핵을 촉구하는 시위가 세계 곳곳으로 번져나갔다. 네덜란드에 살고 있는 교민들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이렇게 촛불을 든 지, 어느덧 100일이 넘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뮤지엄 광장에서는 '박근혜퇴진촉구재네덜란드한인행동'(아래 네덜란드 퇴진준비모임)가 주최가 되어 네 차례 집회를 진행했다. 2016년 11월 14일 1차 집회는 조국에서 들려온 소식을 듣고 놀란 가슴으로 뭔가를 해야만 한다는 의지로 모였다. 그렇게  참가한 교민이 200명이 넘었다. (관련기사: 얼굴 없는 박근혜 네덜란드까지 왜 왔나?)

11월 26일에 열린 2차 집회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되어야 한다는 강렬한 열망이 표출된 날이었다. 교민들은 "박근혜 퇴진"을 목청껏 외쳤다. 그리고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후 열린 3차 집회는 탄핵을 위해 모인 사람들에게는 축제였고 즐거움을 나누는 자리였다. 그리고 그 집회가 암스테르담 광장에서 조국의 대통령 퇴진을 외치는 마지막 집회가 될 줄 알았다.

이겼다고 생각하고 등 돌린 순간 화살이 쏟아졌다

 참가자들이 각자 자신의 의견을 발표하고 있다.
 참가자들이 각자 자신의 의견을 발표하고 있다.
ⓒ 네덜란드 퇴진준비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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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헌법재판소와 특검의 행보를 주시하면서 퇴진 집회 규모는 서서히 줄어들었다. 재외 동포들은 각자의 일상으로 하나둘씩 복귀했다. 그들이 일상으로 복귀한 이유는 간단하다. 이제 세상이 움직일 것이라는 상식적인 믿음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뭔가 이상한 모양새다. 광장은 하나가 아니라 두 개였다. 이겼다고 생각하고 등을 돌려 집으로 돌아가는데 뒤에서 화살이 마구 날아오고 있는 느낌이다. 광장의 민심은 잠시 기뻤고, 잠시 안도했다. 어떤 이는 "꼭 지난 대선에서 참패하고 난 후의 느낌이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네덜란드 퇴진준비모임 카카오톡 그룹 채팅방이 다시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회원들은 지금 대한민국에서 상식 밖의 일들이 창궐하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다시 일상을 깨고 뭔가를 해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한국에서 일어나는 현장 소리를 미디어를 통해서 전해 듣고 있는 교민들에게는 상황 점검이 필요했다. 하지만 인터넷에서 유통되는 '가짜 뉴스' 때문에 지금의 한국 상황을 정확하기 이해할 수 없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기 했다. 그 가운데 정치 현장에서 자신의 사명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사람과의 대화를 통해 교민들의 궁금증을 해소하면서 이 모임의 초심을 다지자고 의견을 모았다.

그렇게 영상으로 초대한 주인공은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다. 박주민 의원의 초대를 주선한 이는 바로 고 백남기씨의 딸 백민주화씨다. 그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광장에서 있었던 박근혜 퇴진 3차 집회에 참여한 후 행사 준비모임의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교민들의 재능기부로 만들어진 박근혜 퇴진 비빔밥 간담회 포스터.
 교민들의 재능기부로 만들어진 박근혜 퇴진 비빔밥 간담회 포스터.
ⓒ 네덜란드 퇴진준비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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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4일 오후 3시 부터 광장이 아닌 실내에서 간담회를 열기로 계획했다. 네덜란드 퇴진준비모임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모두가 일사불란하다. 의견이 수렴되자 홍보팀으로 명명된 디자인 전공 유학생들이 웹포스터와 초대 영상을 만들어 배포했다. 다양한 재능기부들이 이어졌다. 각자에게 너무나 소중한 시간을 이 모임에 쏟아 부었다.

설 명절이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간이라 네덜란드 퇴진준비모임은 참가자들을 위해 비빔밥을 마련했다. 비빔밥 위에 얹을 고명은 회원들이 하나씩 맡아 만들었다. 차와 함께 먹을 케이크도 준비했다. 정의롭지 못한 조국 때문에, 평범하게 가족과 보낼 여느 주말 오후에 우리는 또 한 번 모인 것이다.

비어가는 광장... 주말을 포기하고 모인 교민들

 박근혜 퇴진 촉구 재네덜란드 한인 행동 모임이 주최한 간담회 참석자들과 영상으로 대화를 나누는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긴 1시간 가까이 대화를 나누었다.
 박근혜 퇴진 촉구 재네덜란드 한인 행동 모임이 주최한 간담회 참석자들과 영상으로 대화를 나누는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긴 1시간 가까이 대화를 나누었다.
ⓒ 네덜란드 퇴진준비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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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최 측이 준비한 비빔밥을 먹으며 간담회 중인 네덜란드 교민들.
 주최 측이 준비한 비빔밥을 먹으며 간담회 중인 네덜란드 교민들.
ⓒ 네덜란드 퇴진준비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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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네덜란드의 시차는 8시간, 행사를 시작할 때의 한국 시각은 이미 자정에 가까웠다. 네덜란드 퇴진준비모임은 귀한 시간을 내어준 박주민 의원의 의견을 제대로 들을 수 있도록 영상이 끊기지 않는 데 만전을 기했다. 현지 시각 오후 3시 30분(한국 시각 밤 11시 30분) 박주민 의원과의 영상통화가 연결되었다.

양복에 넥타이까지 말끔하게 차려 입고 통화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박주민 의원의 모습이 빔프로젝트를 통해 하얀 벽에 비춰졌다. 박주민 의원의 선거구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아닌데, 늦은 시간 해외 교민들이 궁금해 하는 시국 질문에 답하기 위해 자신의 시간을 선뜻 내어주는 박주민 의원에게 참가한 사람들은 모두 감사했다.

준비모임에서는 걱정이 많았다. 처음 진행하는 간담회에 몇 명이나 참석할지 미지수였다. 그리고 당일 기대보다 많은 사람들이 참석하지 않았기에 마음이 쓰였다.

박주민 의원과의 영상 통화가 연결되었고 광화문 집회에도 참가자가 많이 줄었다는 이야기를 하며 탄핵 반대 집회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는 소식을 들었다. 박 의원은 광장에서 지속적으로 들리는 소리 가운데 '탄핵이 있어야 조기 대선도 있다'는 목소리가 가장 머릿속에 남는다고 전했다. 이 말은 들은 교민들의 걱정은 커졌다.

'왜 광장이 비어가는 걸까!'
'왜, 간담회에 빈 의자가 생겼을까!'

박주민 의원은 밤늦은 시간에도 해외에서 고국을 걱정하며 뭐라도 해야겠다는 교민들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가장 최선의 답을 들려주려 노력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진실이 아직도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며 팩트가 얼마나 중요한지 성의 있게 이야기했다. 그리고 참가 교민들은 우리가 어떻게 해야 고국에서 박근혜 탄핵을 위해 힘쓰고 있는 분들을 도울 수 있을 지에 대해 질문했다.

그렇게 30분은 쏜살같이 흘렀다. 박 의원은 예정되었던 시간보다 2배의 시간을 교민들을 위해 내주었다. 그 시간 동안 교민들은 진심으로 한국의 상황을 걱정했다. 그리고 그 진심은 박주민 의원에게도 전해졌다.

"태어나 처음 꾸밈없고 솔직한 대한민국 국회의원을 만나본다"고 말하는 참석자도 있었다. 국회의원과의 화상 간담회를 성공적으로 치러낸 준비위원들은 화상으로나마 조국에서 나라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되었다.

앞으로 이런 형식의 간담회를 계속 열 계획이라고 행사 담당자는 말한다.

"조국에 힘이 될 수 있다면 뭐든 하겠다" 

 백민주화씨는 담담하게 자신의 소회를 풀어냈다.
 백민주화씨는 담담하게 자신의 소회를 풀어냈다.
ⓒ 장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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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편하게 보이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죄스럽다."

고인이 되신 백남기님의 딸, 백민주화씨의 말이다.

박주민 의원과의 영상 통화를 끝낸 후 참가자들은 자신의 상황과 앞으로 어떤 노력을 하면 좋을지에 대한 소견을 발표했다. 백민주화씨에게 마이크가 전해지자 그녀는 말을 잇지 못했다. 큰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였고 목소리가 떨렸다.

국가 폭력으로 갑작스레 삶과 작별을 고한 아버지의 원통한 죽음을 알리기 위해 로테르담 역에 홀로 서서 1인 시위를 했던 그녀는 당시 지독하게 힘들고 두려왔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했다.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불의와 부정에 대해 함께 나눌 친구들이 생긴 것에 감사했다.

백민주화씨는 "늦었지만 1인 시위 당시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두려움과 그 누구도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 주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을 때 함께 해주었던 사람들을 이 모임에 와서 다시 만났다"며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그 때의 고마웠던 마음을 함께 해주었던 사람들에게 전했다.

여전히 변화된 것이 없는 조국을 생각하면 네덜란드에서 편하게 살고 있는 자신이 죄스럽다고 말하는 그녀의 눈에서는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흘렀고 간담회 참석자들은 공감하며 함께 울었다.

지난 18대 대선 때, 박근혜 대통령의 당선으로 다시는 한국 정치에 관심 갖지 않겠다고 생각했다가 나라가 이 지경이 되고서야 자신의 행동을 되돌아보게 되었다는 참가자가 한둘이 아니었다.

"숨 쉬는 것만큼 자연스럽게 누리는 것이 민주주의라고 생각했는데 민주주의를 얻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일인지 새삼 알게 되었다"는 참가자부터, "아주 작은 일이라도 함께 연대해서 조국에 힘이 될 수 있다면 뭐든 하고 싶다", "그저 부정과 부패를 척결하자는 것뿐인데 기득권을 내려놓게 하는 일이 이렇게 힘든 일인지 몰랐다", "잘 사는 네덜란드에서 사는 것이 마치 한국을 피해 도망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미안한 생각이 든다"는 의견까지 100일 동안을 한국의 상황을 지켜본 교민들의 생각은 참으로 다양했다.

표현과 말은 달랐지만 모두는 정의롭고 건강하며 행복한 대한민국이 되기를 간절히 염원하고 있었다.

 간담회 시작 전에 찍은 단체 사진
 간담회 시작 전에 찍은 단체 사진
ⓒ 네덜란드 퇴진준비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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