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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도널드 트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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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3일 트럼프 대통령이 TPP(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 탈퇴를 명령한 데 이어, 31일 미국 무역대표부가 TPP 사무국에 탈퇴 의사를 통보했다. 2016년 2월 TPP에 들어간 미국은 이로써 가입 1년 만에 환태평양 차원의 거대 FTA(자유무역협정)를 이별하게 되었다. 

만약 장수태왕(장수왕) 시절의 동아시아 최강국인 북위 황제가 이런 왕명(황명)을 내렸다면 어땠을까? 중대한 일이 벌어졌을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427년 고구려의 평양성 천도가 없었거나, 있었다 해도 철회됐을 것이다.

자기 것 지키기도 힘든 미국, TPP 탈퇴 선택

1995년에 요란스럽게 출범한 WTO(세계무역기구)가 유엔만큼의 역할만 했어도, 세계 최강의 체모를 유지해야 할 미국이 TPP에 가입했다 얼른 탈퇴하는 해프닝이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전 세계 국가들은 미국이 유엔을 통해 카다피·후세인·김정은같은 이들을 혼내주려 할 때는 미국의 체면을 세워주지만, 먹고 사는 문제에서만큼은 미국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고 있다. 그래서 WTO가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해, 어느 순간부터 WTO란 단어가 우리 귓전을 울리는 횟수가 줄어들게 된 것이다.

WTO가 기능을 못한다는 것은 무역 분야에서 세계를 통합할 규범이 아직 제대로 확립되지 못했음을 뜻한다. 이렇게 된 것은 일단은 미국이 내리막길을 걷고 있기 때문이고, 다음으로는 중국이 오르막길을 걷고 있기 때문이다.

2001년 WTO에 가입한 중국은 이 시스템 속에서 순기능보다는 역기능을 더 많이 했다. WTO의 규범을 약화시키는 데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북한처럼 노골적으로 미국에 도전하지는 않지만, WTO 체제를 은근히 약화시키는 방법 등으로 중국은 미국의 힘을 빼고 있다. 

중국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관세장벽 철폐를 목표로 한국·일본·호주·뉴질랜드·인도와 아세안(동남아 국가연합) 회원국 등을 끌어들여 RCEP(역내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를 추진하고 있다. 이 역시 WTO와 미국 중심 무역질서를 약화시키고 아시아·태평양에서 새로운 무역질서를 창출하기 위한 것이다.

WTO가 약해짐에 따라 이에 수반해서 나타난 현상이 있다. 아세안 같은 지역 블록의 단결력 강화나 개별국가 간의 FTA 체결 증가다. WTO가 약해지니까, 지역 블록이나 양국 간 FTA에 의존하는 정도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에 브레이크를 걸고 세계적 무역규범을 재확립할 목적으로 오바마 행정부가 추진한 것이 바로 TPP 가입이다. 2005년에 싱가포르·칠레·브루나이·뉴질랜드 4개국이 관세장벽 제거를 목표로 설립한 TPSEP(환태평양 전략적 경제동반자협정)에 미국이 끼어들더니 이를 TPP라는 거대한 판으로 키운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TPP는 태평양을 둥글게 둘러싼 지역의 FTA 집합체 혹은 지역 블록의 외형을 띠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미니 WTO의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존재다. TPP 가입국들의 GDP(국내총생산) 합계가 세계 전체의 40%에 육박하는 것만 해도 그 위력을 짐작할 수 있다.

이 거대한 규모를 TPP로 묶음으로써 환태평양을 하나의 무역규범으로 단결시키는 것이 오바마의 전략이었다. WTO가 못했던 일을 TPP를 통해 보충함으로써, 결과적으로 WTO를 되살리고자 했던 것이다.

그렇게 되면, TPP와 유사한 RCEP를 내세워 아시아·태평양에서 새로운 무역질서를 수립하고자 하는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는 게 오바마의 판단이었다. 중국은 서비스 분야가 상대적으로 취약한 나라다. 오바마가 TPP 안에서 서비스의 완전 개방을 추진한 것도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었다. 

중국 서비스 산업의 기를 꺾게 될 TPP에 중국이 들어가는 것은 미국한테 좋은 일이다. 반대로, 중국이 TPP에 들어가지 않는 동시에 TPP의 파워가 커져 버리면, 중국 서비스 산업이 위축되고 중국 경제의 장래도 어두워질 수 있다. 이 역시 미국에 좋은 일이다.

그래서 중국이 가입하든 않든 TPP 체제는 미국이 유리하다는 게 오바마 행정부의 판단이었다. TPP를 통해 중국의 힘을 빼고 WTO의 힘을 되살리면 미국이 세계 무역을 장악할 수 있을 거라 계산했던 것이다. 

TPP가 환태평양 차원이라면, 환대서양 차원의 것도 있다. 미국과 EU(유럽연합) 사이에 논의되는 TTIP(범대서양 무역·투자 동반자협정), 아프리카와 미국과 EU 사이에 논의되는 범대서양 FTA가 그것이다. 이것들 역시 외형상은 FTA의 결집체 같지만, 실제로는 미니 WTO의 기능을 할 수 있는 것들이다.

이렇게 해서 세계의 양대 대양인 태평양과 대서양을 중심으로 미니 WTO가 기능하게 되면, 이 둘을 기반으로 WTO를 되살리고 세계 무역을 지배할 수 있다는 게 미국과 유럽의 전략적 계산이었다.

그런데 이런 거대한 프로젝트에 트럼프가 찬물을 끼얹어버렸다. TTP를 통해 미국의 영향력을 키우는 것은 싫지 않지만, 시장개방 확대로 인해 미국인 일자리가 줄어들 거라고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TTP로 얻을 이익은 좋지만, 그로 인한 손실을 감당할 자신이 없는 것이다. 약소국한테 경제원조를 해서라도 영향력을 늘리고 팍스 아메리카나를 확대하던 1950년대 미국의 패기를 더 이상 볼 수 없게 된 것이다. 이제 미국은 자기 것을 지키기도 벅찬 나라가 되었다. 

장수태왕의 평왕성 천도, 북위판 TPP의 산물

고구려 태왕. 충북 충주시의 충주고구려비 전시관에서 찍은 사진.
 고구려 태왕. 충북 충주시의 충주고구려비 전시관에서 찍은 사진.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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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413년. 광개토태왕에 이어 장수태왕이 고구려의 새로운 태왕으로 등극했다. 고구려 비문들이나 그릇들에서 확인되는 고구려 군주의 한자 명칭은 왕이 아니라 태왕이다. 그래서 광개토태왕·장수태왕이라 부르는 것이다.

아버지 광개토태왕 때만 해도 고구려는 서쪽의 중국 및 몽골초원을 향한 영토 팽창에 국운을 걸었다. 그때까지의 고구려 국가전략은 서쪽으로의 팽창을 추구하는 서진주의였다.

그랬던 고구려가 장수태왕의 등극을 계기로 국가전략을 바꾸었다. 중국이나 몽골초원보다는 한반도 쪽으로 팽창의 방향을 수정하게 된 것이다. 장수태왕이 427년에 만주 국내성에서 한반도 평양성으로 도읍을 옮긴 것은 그런 전략 변화를 반영한다. 서진주의를 접고 남진주의로 선회한 것이다. 

그것은 북중국에 출현한 북위라는 강대국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북위가 힘을 쓰기 전에 북중국이 한동안 혼란스러웠던 덕택에, 광개토태왕이 중국 쪽으로 영토팽창을 추진할 수 있었다. 하지만 북위가 중국대륙 전체는 물론이고 동아시아 차원에서 안정적인 패권을 구축하게 되면서 고구려의 처지가 달라졌다. 더 이상 서진주의를 추구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래서 남진주의로 선회한 것이다.

고구려 군대의 행진. 충주고구려비 전시관에서 찍은 사진.
 고구려 군대의 행진. 충주고구려비 전시관에서 찍은 사진.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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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위는 유목민인 선비족이 세운 나라다. 북위는 중국대륙을 지배하고 동아시아를 이끌 목적으로, 과거에 중국 한족 출신의 강대국들이 했던 방식을 차용하고 응용했다. 동아시아·중앙아시아·남아시아 등을 거대한 무역체제로 끌어들이고 이를 통해 영향력 확대를 도모했던 것이다. 

북위는 자국을 황제국으로 모시는 신하국한테 조공 명목으로 물자를 받으면 답례 명목으로 물자를 보내주는 방식의 무역체제를 운영했다. 과거의 중국 한족 출신 강대국들에 비해, 북위는 신하국들한테 훨씬 더 많은 자율권을 부여했다. 이를 통해 중동을 제외한 아시아권을 하나의 질서로 묶겠다는 게 북위 황제들의 판단이었다. 일종의 TPP 시스템을 구상했던 것이다.

모든 경우에 다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동아시아 패권국들은 자국 중심의 무역체제를 수립하고 이를 통해 정치적 패권을 누리는 과정에서 아무래도 돈을 쓸 수밖에 없었다. 신하국의 충성을 이끌어낼 목적으로 신하국과의 무역에서 의도적으로 적자를 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1950년대 미국이 경제원조라는 손실을 감내하면서 세계패권을 추구한 것과 비슷했다. 북위가 만든 TPP 역시 경제적 손실을 통해 북위의 패권을 담보하는 시스템이었다.

장수태왕은 북위의 그런 면을 최대한 활용했다. 북위와의 군사적 충돌을 피하고 북중국 쪽으로의 군사행동을 자제하는 대신에, 북위와의 무역관계를 활성화시켜 무역흑자를 늘리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만을 근거로 할 때, 장수태왕은 집권 79년 동안 총 48회의 조공을 했다. 이것은 고구려라는 나라의 무역 횟수가 총 48회라는 뜻은 아니다. 태왕 명의로 수행된 공식 무역의 횟수가 48회라는 의미다. 그리고 그중 43회는 북위와의 무역이었다.

79년 동안에 48회 했으면, 꽤 많이 한 편에 속한다. 중국과 3년에 1번만 해도, 무역을 많이 하는 편에 속했기 때문이다. 장수태왕 명의의 무역 횟수는 연평균 0.6회이지만, 시간이 갈수록 많아졌다. 집권 60년 차인 472년부터는 연평균 1.6회로 증가했다. 갈수록 조공을 많이 한 것은, 조공을 보내면 북위가 훨씬 더 많은 답례를 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472년 이후의 변화를 두고 고구려본기는 "북위에 보내는 조공이 전보다 배가 되니, 북위의 답례도 더 많아졌다"고 말했다. 고구려가 많이 보내면 북위는 훨씬 더 많이 보내야 하는 TPP 법칙을 이용해 장수태왕이 무역흑자를 추구했던 것이다. 북위가 이렇게 무역적자를 감내해줬기 때문에 장수태왕이 서진주의를 포기하고 평양성 천도를 단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북위에 이상한 황제가 등장해서 "북위 사람들의 일자리가 줄어드니 TPP에서 탈퇴하겠다. 너희들, 조공 그만하고 답례도 그만 받아가라"는 왕명을 내렸다면, 어땠을까? 물론 실제로는 이런 일이 없었지만, 만약 있었다면 장수태왕이 내놓을 대응 카드는 명확했다. 평양성 천도를 취소하고 국내성에 머무는 동시에, 남진주의를 철회하고 서진주의로 회귀하는 것이다. 그런 다음, 아버지의 전철을 따라 북중국을 한층 더 강도 높게 압박하는 것이다.

TPP를 감내할 수 없을 만큼 북위가 약해진 것을 눈치챘다면, 고구려 태왕으로서는 이 틈을 놓치지 않고 북위에 대한 압박의 수위를 높여야 할 필요성을 절감했을 것이다. 북위의 TPP 탈퇴가 강대국의 무례나 횡포를 뜻하기보다는 강대국의 약화를 반영하는 조짐이라는 점을 장수태왕은 놓치지 않고 활용했을 것이다.


태그:#TPP, #환태평양 경제동반자 협정, #도널드 트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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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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