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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22일 오후 광주 서구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포럼광주 출범식에서 지지자에게 둘러싸여 있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22일 오후 광주 서구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포럼광주 출범식에서 지지자에게 둘러싸여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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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는 있다고 하고, 누구는 없다고 한다. 반문정서, 혹은 비문정서라고 말하는 호남의 정서 말이다. 기자는 21~24일 나흘 동안 광주를 돌아다녔다. 확실히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아래 민주당) 대표를 향한 비토 정서는 존재했다.

그 정서를 관통하는 심리, 그리고 기저에 깔린 원인을 알고 싶었다. 기자가 찾은 키워드는 '불안'이다. 아직 문 전 대표(아래 문재인)가 광주의 불안한 마음을 해소해주지 못하는 것이다. 정권교체든, 정권교체 후 적폐청산이든 문재인으로는 불안하다는 게 광주의 전반적인 시선이었다.

"문재인이가 젤 앞서긴 허제. 여그도 그래. 그랑께 나도 마음이 가다가도, 또 가만 앉아갖고 생각해보믄 불안불안하단 말이여... 다들 이번엔 정권교체 된다한디, 기자 선생이 보기엔 진짜로 정권교체 되겄는가?" - 22일 광주 동구 남광주시장 상인(50대, 여)

불안의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정권교체 혹은 대선을 둘러싼 광주의 현실적 상황을 따져보자. 1987년 이후 직선제로 치러진 대선마다 광주는 늘 불안했다(정확히 말하면, 불안한 사람들의 비율이 높았다).

광주 입장에서 졌던 선거는 당연히 불안했고, 이겼던 선거(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선된 15·16대 대선) 역시 불안하기 그지없었다. 김대중은 김종필과 손잡고도 1.6%p 차이로 승리했고, 노무현은 정몽준의 변심 속에서 2.3%p 차이의 진땀승을 거뒀다.

문재인을 둘러싼 '패배의 이미지'


2012년 대선은 불안의 절정이었다. 좋은 기회라고 전망했지만, 광주는 자신들이 92%의 표를 몰아준 후보가 패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문재인은 그 선거의 당사자였다. 패배의 이미지가 광주에서 문재인을 옥죄기 시작했다.

대선뿐만이 아니었다. 문재인이 당대표일 때 치러진 2015년 4.29 재보궐선거에서 새정치민주연합(현 민주당)은 전패를 당했다. 선거 지역 4곳 중 3곳이 통합진보당 해산 및 의원직 상실에 따른 공석이었던 만큼 야권에 불리하지 않은 지형이었지만, 새정치민주연합은 어느 곳에서도 승리하지 못했다.

특히 광주 서을에서 당시 무소속 천정배 후보가 당선된 것이 주요 분기점이었다. 이때 분위기가 지난해 총선(국민의당의 압승)까지 이어졌다. 광주에서는 두 선거의 공통점을 '민주당의 공천 실패'라고 입을 모았다. 지역구 돌려 막기, 시스템 공천으로 가장한 기계적 공천, 지역 분위기를 무시한 막대기 꽂기 공천, 자포자기 공천 등을 사례로 들었다.

물론, 문재인 입장에서는 억울한 측면도 있다. 4.29 재보선은 그가 당대표직에 오른 뒤 두 달 만에 치러진 선거였고, 지난 총선 역시 그는 김종인 전 대표에게 대표직을 넘긴 상황이었다.

패배의 이미지 역시, 문재인 이전 민주당에 덧씌워졌던 이미지라고 봐야 더 정확하다. 짧게는 지난 대선 이후 길게는 60년 동안 민주당에 쌓였던 광주의 불만이, 문재인이 민주당의 리더로 자리매김한 최근에야 분출된 측면도 있다.

어쨌든 문재인이 광주에 승리의 이미지를 심어주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불안감에는 여러 부정적 이미지가 중첩되기 마련이다.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도 있지만 독점, 패권, 홀대 등의 이미지가 문재인을 상대로 켜켜이 쌓여왔다. 이는 단순히 "그런 건 없다"라고 해서 해소될 문제가 아니다.

노이로제가 된 '민주당 강요'

문재인 전 대표 23일(월) 오전 광주 서구 염주실내체육관 내 국민생활관에서 열린 광주·전남 언론포럼 초청 토론회에서 광주·전남의 지지를 호소했다.
 문재인 전 대표 23일(월) 오전 광주 서구 염주실내체육관 내 국민생활관에서 열린 광주·전남 언론포럼 초청 토론회에서 광주·전남의 지지를 호소했다.
ⓒ 오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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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은 "내가 패권을 휘두른 적이 있느냐"라고 말하지만, 광주는 그에게 패배의 이미지 만큼 독점의 이미지도 갖고 있다. 가깝게는 지난해 전당대회부터, 멀게는 그가 당대표가 됐던 전당대회까지 이른바 친문세력의 당권 장악 과정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그의 장점으로 꼽히기도 하는 '나눠먹기 거부' 혹은 '불의와 타협 않는 정치'가, 다른 눈으로 보면 독점으로 느껴질 수 있는 것이다.

'불의와 타협 않는 정치'는 자신과 정치 파트너를 각각 선과 악으로 나눠야 할 수 있는 생각이다. 특히 호남 지역을 기반으로 한 세력은 줄곧 불의의 포지션에 내몰려야 했다. 행여 평소 욕하고 다녔더라도, 자신의 지역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이 주류 세력에 의해 악으로 몰리면 감정적으로 서운한 마음이 들 수밖에 없다. 친문 입장에서야 국민의당이 악이겠지만, 광주의 오랜 민주당 지지자 시선으로 보면 떨어져 나온 국민의당이든 60년 여당 노릇했던 민주당이든 사실 거기서 거기다.

여느 진보진영에 속한 사람들의 생각처럼 광주도 정권교체와 이후 적폐청산을 열망하고 있다. 하지만 문재인을 둘러싼 독점의 이미지는 "대통령이 되더라도 120석 여소야대로 뭘 할 수 있겠나"라는 광주의 불안 심리를 자극한다.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이 지난 23일 광주에서 연정을 발표한 점은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겠다.

한편, 광주의 많은 시민들은 지난 총선 직전의 '충장로 우체국'을 떠올리고 있었다. 문재인의 조건부 은퇴 선언이 있었던 지난해 4월 8일은, 광주시민들에게 썩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지 않은 듯했다.

당시 문재인은 "(호남에서) 저에 대한 지지를 거두시겠다면 대선에 도전하지 않겠다"라고 선언했다. "미련없이 정치 일선에서 물러날 것"이란 말도 덧붙였다. 이후 문재인은 "호남의 지지를 얻고 싶은 간절한 마음으로 한 말", "전략적 판단으로 했던 발언" 등의 해명을 내놨다.

해명이 적절치 않았다는 평가뿐만 아니라, 문재인의 당시 발언이 읍소보다는 강요로 느껴졌다는 반응이 상당했다. 문재인 입장에서는 배수진을 친 것이지만, 광주 입장에서는 선택을 강요받는 느낌이었다는 것이다. '민주당 강요'는 광주가 지속적으로 겪어온 일종의 스트레스 요소였다. 특히 지난 총선을 전후로 그 경향이 더 짙어졌다.

"아따, 광주는 문재인이를 좀 싫어하믄 안 되는 것이요?" - 23일 택시기사 A(30대, 남)씨

기자가 A씨에게 한 질문은 "문재인이 왜 광주에서 인기가 없습니까?"였다. 그는 질문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23일 법원 인근에서 만난 자영업자 B(60대, 남)씨는 "우리가 (지난 총선 때) 새누리당을 찍었소? 민주당 찍는 기계도 아니고, 국민의당도 야당이요, 야당!"이라고 강조했다.

총선 이후 광주는 "문재인을 왜 싫어하나", "왜 국민의당을 찍었나"와 같은 질문을 많이 받았다. 그런데 이 질문에는 '문재인은 (적어도 광주에서는) 싫어해선 안 되는 사람', '국민의당은 찍어선 안 될 정당'이란 선악 구도의 전제가 깔려 있다.

선거를 관통하는 정신이 비슷하더라도, 지역 별로 수행해야 하는 과제는 다르다. '기득권 타파' 선거였던 지난 총선에서 수도권 및 영남과 호남의 타파 대상은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떨어져 나온 놈들(국민의당 일부 후보)이 아무리 밉다 그래도, 저 민주당 놈들부터 확 정신 채리게(차리게) 했어야"(말바우시장 40대 상인 C씨, 여) 하는 게 광주의 정치적 과업이었던 셈이다. 이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닌 가치 판단의 문제다.

그럼에도 문재인이 1위인 까닭은?

광주, 전남, 전북 유권자만을 대상으로 실시한 대선후보 선호도 조사에서 문재인 민주당 전 대표가 39.0%로 1위를 달리고 있다.
 광주, 전남, 전북 유권자만을 대상으로 실시한 대선후보 선호도 조사에서 문재인 민주당 전 대표가 39.0%로 1위를 달리고 있다.
ⓒ 타임리서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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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더불어민주당과 문재인은 광주에서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다. 총선 이후 회복세를 보이며 당과 문재인 모두 40%대 지지율을 기록하는 상황이다(관련기사 : [오마이뉴스 여론조사] 문재인, 호남에서 선호도·적합도 모두 선두).

압도적이거나 폭발적인 증가폭을 보이진 않았지만, 지지세가 꾸준히 증가했다는 점은 문재인 입장에선 긍정적이다. 특히 최근 조기대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문재인 쪽으로 쏠림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다만, 광주의 불안 심리가 걷혔다고는 할 수 없다. 최근 <전남일보> 여론조사에 따르면, 광주·전남에서 '대선 승리를 위해 야권후보 단일화가 필요하다'라고 답한 응답자가 가장 많았다(57.8%). 3자구도 대결에서 문재인에게 가장 높은 지지를 보내면서도(문재인 46.5%, 안철수 29.3%, 반기문 11.7%), 야권 단일화 욕구가 강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마땅한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정권교체 가능성이 높은 인물에 표심이 향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역설적으로 광주의 불안 심리가 오히려 문재인에게 득이 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측면에서 반문정서보다는 비문정서이란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다.

광주의 불안 심리는 당장 문재인에게 지지율 상승을 가져다줬다. 뚜렷한 대안이 나타나지 않을 경우, 이 추세는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문재인이 당장 눈앞에 놓인 대선이 아닌 더 먼 곳(성공적인 국정 운영)을 바라보고 있다면, 이 불안 심리는 털고 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불안 위에 쌓은 지지율은 모래성일 수 있다. '미워도 다시 한 번' 표심은 광주에도, 문재인에게도 좋은 현상이 아니다.

<취재 자문>
박구용 전남대 철학과 교수
윤영덕 광주路 지역공공정책연구소장
이정우 더좋은자치연구소 연구실장
최이성 광주사회적경제연대포럼 공동대표

* [광주 '대선민심' 탐방②]로 이어집니다.

 

인용한 여론조사
1. <오마이뉴스>·새시대를여는벗들, 타임리서치에 의뢰. 1월 21~22일 호남권(광주·전남·전북)에 거주하는 남녀 유권자 1003명 대상.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1%p(응답률 2.3%). 유선 RDD 자동응답 방식. 성·여령·지역별 인구 비례 할당으로 표본 추출.

2. <전남일보>·리서치미디어스, 한백리서치에 의뢰. 1월 21일~24일 광주·전남에 거주하는 남녀 유권자 1500명 대상.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2.51%p(응답률 5.2%). 성·연령·지역별 유권자 구성비 기준 비례할당 후 무작위 추출법(유선 RDD+온라인 패널).

보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홈페이지(http://www.nesdc.go.kr)를 참조하면 된다.



태그:#문재인, #더불어민주당, #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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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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