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이 기사 한눈에

  • new

    (핀란드에서는 사회복지시설에서) 이 여성이 성매매 피해로 들어왔는지 성폭력 문제로 들어왔는지, 그곳에서 구분하지 않아요.
성매매 피해자가 성매매 피해에서 벗어나도록 손길을 내미는 기관에서 일하는 사람들 목소리가 깃든 <언니, 같이 가자!>(삼인,2016)를 읽으면서 '사람이 사랑하는 사이'를 떠올립니다.

성매매가 이루어지는 곳에는 사랑이 없다고 할 만하지 싶습니다. 성매매가 불거지는 곳에서는 사람 사이에 사랑을 꽃피우는 숨결이 자라기 어렵다고 느낍니다. 곰곰이 따지자면, 사람 사이가 사랑이 아닌 돈이나 권력에 억눌리는 자리에서 성매매가 불거지지 싶습니다.

겉그림
 겉그림
ⓒ 삼인

관련사진보기

누구는 태어났을 때부터 성매매를 하고 싶어서 태어났겠어요? 그게 어떤 건지 알고나 하는 말이에요? (28쪽)

업주들이 직접 감금하는 게 아니라 해도 채무 문제들이 얽혀 있기 때문에 언니들이 업소에서 빠져나오기가 여전히 어려운 거예요. (37쪽)

그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고 끔찍하지만 벗어날 자신이 없는 거예요. 다른 사람들과 관계 맺는 것도 어려우니 힘들게 버텨내면서 그 안에 있는 거예요. (44쪽)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면 어떻게 지낼까요?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면 서로 함부로 하지 않으리라 생각해요. 우리가 서로 사랑하지 않고서 돈만 따진다면 어떻게 지낼까요? 이때에는 겉치레로 살필 뿐, 돈하고 먼 자리에서는 함부로 하기 쉬워요.

우리가 서로 아끼는 사이라면 집과 마을과 나라를 어떻게 가꿀까요? 다 같이 즐겁게 이룰 살림을 생각하면서 아름답게 땀을 흘릴 테지요. 우리가 서로 아끼지 않는 사이라면 집이며 마을이며 나라이며 어떻게 될까요? 이때에는 그만 제 밥그릇을 챙기는 데에 사로잡히고 말리라 느껴요.

남성이 여성을 돈이나 권력으로 거머쥐거나 움켜쥐거나 흔드는 얼거리가 성매매이지 싶습니다. 사람으로서 사람답게 살기 어려운 얼거리에 옭아매면서 성매매가 불거지지 싶습니다. 남성과 여성이 서로 다른 성이지만 서로 같은 숨결이요 사람으로서 사랑을 나누는 사이라는 대목을 잊거나 잃으면서 생매매가 생기고, 이에 따라 돈이 움직이면서 바보스러운 틀이 단단해지지 싶습니다.

보통 어린 시절부터 폭력을 당했고 지금 스무 살이라면 이십 년의 트라우마 속에, 서른 살이라면 삼십 년의 트라우마 속에 방치된 경우가 많아요. (154쪽)

(핀란드에서는 사회복지시설에서) 이 여성이 성매매 피해로 들어왔는지 성폭력 문제로 들어왔는지, 그곳에서 구분하지 않아요. 심지어 여러 반려동물들도 같이 와서 머물 수 있는 공간이었어요. 성매매라는 표면의 양상을 국한해 볼 게 아니라 모두가 건강하게 살기 위해 사회의 시스템을 제대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구나 하고 깨달았어요. (200쪽)

한국 사회는 성매매 피해 여성이 만든 빵을 편안하게 사 먹을 수 있는 계층이 많지 않은 거예요. 심지어 성매매 피해 여성이 교회에 들어가기만 해도 일반 사람들이 너무 싫어해요. '어딜 감히 교회에 발을 들여놔?' 이런 눈이죠. (217쪽)

<언니, 같이 가자!>에 나오는 이야기는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닙니다. 바로 우리 이야기입니다. 성매매 피해자가 되는 여성은 먼 나라 사람이 아닙니다. 바로 우리 곁에 있는 사람입니다.

사랑이 아니기 때문에 성욕을 돈으로 풀거나 맺으려 합니다. 사랑을 배우지 못한 탓에 사람을 돈으로 휘두르거나 부리면서 성매매가 불거집니다. "파는 사람"이 있기에 "사는 사람"이 있지 않습니다. "팔게 내모는 사회"에서 등을 떠밀거나 몰래 속이기 때문에 성매매가 생깁니다. 그리고 "사는 사람"인 남성은 사랑을 못 배운 채 억눌리거나 짓눌리는 사회 틀에서 꿈을 그리지 못하고 성욕만 자꾸 떠올리고 말아요.

왜 군대 둘레에서 어김없이 성매매가 이루어질까요? 일제강점기에 종군위안부라는 이름으로 여성을 짓밟은 일은 왜 생겼을까요? 일터와 사회와 마을과 군대에서 따돌림받거나 괴로운 사내는 왜 성욕에 눈을 돌리면서 성매매 사회를 더 단단히 하고야 말까요?

사람들이 성매매 여성에게 관심의 초점을 맞추는 것은 그게 편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문제 있는 여성은 따로 있으니까'라고 여기면 사람들은 부채감이나 방관자적인 태도에 면죄부를 받는 거잖아요. (267쪽)

사실 낙인은 여성들한테 폭력적인 거예요. 성 구매에 대한 낙인은 해프닝으로 끝나는데 성매매 경험 여성에 대한 낙인은 그렇지 않죠. 여성한테는 그게 삶이 흐트러질 정도의 고통이 되니까 더 큰 폭력이 되는 거예요. (273쪽)

'아픈 언니'한테 손길을 내미는 이들은 밤낮없이 아픈 언니 곁에서 지켜보고 함께하면서 살림을 배우고 가르칩니다. 버스나 전철조차 타 본 적이 없는 '아픈 언니'는 집장촌에서 겨우 달아났어도 '아는 사람'한테 도리어 집장촌으로 되팔린 일을 겪으며 '낯선 사람을 만나기'를 무척 꺼리거나 두려워합니다. 아픈 사람을 쓰다듬지 못하는 사회 얼거리인 셈입니다. 어느 모로 보면 아픈 사람을 더욱 아프게 하는 사내한테 제대로 '사랑 교육·삶 교육·사람 교육'을 하지 못하는 사회라고 할 수 있니다.

<언니, 같이 가자!>는 아픈 언니한테 손길을 내미는 사람들한테서 아픈 언니들 삶과 사랑과 꿈을 들은 이야기를 담습니다. 이 책을 덮으며 한 가지를 생각해 봅니다. 아픈 언니한테 손을 내미는 일 못지 않게, '언니를 아프게 하는 사내'한테, 그러니까 '성매매 남성'한테 사랑을 가르치고 삶과 사람을 처음부터 하나씩 제대로 가르치는 사회로 거듭나야 하지 않을까 하고 말이지요.

입시만 바라보는 학교교육은 하루 빨리 멈추어 참다운 살림을 가르쳐 주어야지 싶습니다. 군사훈련만 시키는 군대 사회도 얼른 평화를 제대로 일깨우는 얼거리로 거듭나야지 싶어요. 앞으로는 "언니도 같이 가"고 "오빠도 같이 가"는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빕니다.

덧붙이는 글 | <언니, 같이 가자!>(안미선 엮음 / 삼인 펴냄 / 2016.11.30. / 14000원)



언니, 같이 가자!

안미선 지음,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성매매방지중앙지원센터 기획, 삼인(2016)

이 책의 다른 기사

우리는 연결될수록 강하다

태그:#언니, 같이 가자, #안미선, #인문책, #성매매, #사회읽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