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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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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이 행정고시 폐지 논란으로 홍역을 앓고 있다. 김기식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소장인 민간 싱크탱크 더미래연구소가 행시 폐지를 주장했기 때문. 고시촌과 대학가를 중심으로 비판 의견이 나오고 있다. 결국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24일 오전 국회에서 "행정고시 폐지는 당 차원에서 공식논의가 없었던 사안"이라고 발표했다.

이번 논란은 공무원 선발의 한 방법인 행정고시에 대한 국민의 의견을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필자는 2010년부터 5년간 전북도청, 국토교통부 외청인 새만금개발청에서 전임가급(4급 상당)과 행정사무관이라는 직위로 근무했다. 행정고시 제도를 현장에서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행정고시를 폐지하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필자가 행정고시와 연을 맺은 건 1989년이다. 이해 시행된 행정고시 33회에 응시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당시 필자에게도 행정고시는 신분상승의 기회이자, 공정한 경쟁을 통해 더 높은 곳으로 오를 수 있는 사다리라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에 그 대열에 합류했다.

하지만 생각지도 않은 계기로 들어선 공직 생활을 통해 행정고시가 한국 공무원 사회의 바른 발전을 막을 뿐만 아니라, 국가의 행정 관료를 발굴하는 바람직한 제도가 아니라는 쪽으로 의견을 굳히게 됐다.

행정고시로 공무원 리더를 뽑는다고?

우선 필자는 행정고시가 신분 상승의 사다리를 걷어차는 나쁜 제도라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 물론 행정고시 합격자 중에선 소위 '개천에서 용 난 케이스'가 많지 않다. 특수한 고등학교와 명문대학을 거친 이들이 대다수다. 이런 과정을 거친 합격자들은 관료 조직에 들어가 그들만의 카르텔을 만들고, 다른 방식을 통해 올라온 이들을 배척하는 것에 익숙하다. 그렇지만 행정고시가 신분 상승을 꿈꿀 수 있는 드문 방법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럼에도 한국 행정고시 제도의 근간이 되었던 일본은 물론이고 대부분의 국가들이 행정고시와 같은 고위급 공무원을 뽑은 시험제도를 폐지하거나 채택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행정고시를 채택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정책이나 법령, 사업추진을 위해 필요한 논리 구성 능력, 기획 능력, 갈등 조정 및 대안 제시 능력을 갖춘 인재를 선발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사회가 복잡해지고, 다원화되면서 이런 능력을 한 번의 시험으로 평가하는 것이 어려워졌다. 실제로 논리력이나 기획력, 협상 능력은 한 번의 시험이 아니라 공무원 업무를 수행하면서 쌓이고, 드러난다. 오히려 시험을 통해 선발된 고시 출신들은 그들만의 카르텔을 만들어 하위직부터 올라올 수 있는 다양한 장점 등을 무시하게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럼 행정고시를 채택하지 않는 다른 나라에서는 고위직 공무원의 선발 방식을 어떻게 할까. 중국은 공무원 선발 방법이 우리나라처럼 직급이 아닌 업무별로 선발한다. 우리나라 중앙행정부처와 같은 국무원에서 필요한 중하위 직위를 공모해 선발하고, 이렇게 선발된 이들은 업무 추진하면서 리더십, 업무능력, 조직 친화력 등을 바탕으로 상향, 하향식 평가를 통해 고위직으로 갈 기회가 제공된다.

이런 방식을 통해 선발된 인재는 다시 현급, 성급 당학교에서 모여서 교육을 받고, 이 과정에서 인재는 더욱 앞설 기회를 제공받는다. 베이징에 있는 당학교에서 다시 교육과 선발을 통해 최고급 인재로 성장하는 제도다. 이럴 경우 고위급 승진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까 하는데, 이 역시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필자가 만난 중국 고위급 관료 중에는 이런 방식을 통해 30대 중반에 국장급에 오른 이들이 적지 않다. 

이런 제도를 두고 배경이나 맹목적 충성을 통해서만 승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나온다. 물론 이런 우려가 현실이 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수십 년 동안 축적된 인사평가와 역량평가, 재직 시에 가능한 승진시험 등의 절차가 있어 이런 우려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오히려 행정고시 제도를 통해 올라온 간부급들의 무능과 불통이 공무원 사회를 더 어지럽히고 있지 않은가를 물어야 한다.

행정고시 폐지 논란의 다른 한 측면은 민간 경력자 채용의 확대가 가져올 수 있는 문제다. 박근혜 정부에서 벌어진 청와대 3급 행정관의 채용 등이 이런 분노를 만들었다. 이에 관해서는 두 가지 측면을 봐야 한다. 행정고시 폐지가 민간 경력자 확대로 이어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현행 9급이나 7급 공무원 시험을 유지할 경우 7급에 모집단이 확대되고, 인재가 이곳으로 합류할 수 있다. 이 시험을 통해서 선발된 공무원이 업무 능력과 인성, 리더십 등을 평가해 더 높은 직급으로 오르도록 하면 된다.

바른 조직 성장 막고, 영혼 없는 공무원 양성하는 행시

세종시의 해뜨는 모습. 앞으로 보이는 곳이 산업부, 복지부 등 청사
▲ 해 뜨는 세종시 모습 세종시의 해뜨는 모습. 앞으로 보이는 곳이 산업부, 복지부 등 청사
ⓒ 조창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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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현장에서 느낀 행정고시 제도의 가장 큰 문제는 공무원 조직 안에서 '기회의 사다리'를 걷어차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개인적 경험을 되짚어보면, 행정고시 출신들은 그들의 성을 만들어 민간 채용 전문가 그룹은 물론이고 하위직 채용 공무원들도 배척했다. 선배, 형 같은 사적인 호칭을 통해 그들만의 유대감을 과시해 토론문화가 정착되지 못했다.

결국 일반적인 지시를 통해 업무가 추진되고, 행정고시 출신이 아닌 경우 업무에 대한 자신감이나 창의력을 키울 수 있는 기회가 원천적으로 막힌다. 이런 상황을 필자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프로크루스테스라는 괴물에 빗대어 글을 쓴 적도 있다.(관련 기사) 키가 크면 잘라죽이고, 짧으면 늘려서 죽이는 이 괴물처럼 공직사회는 획일화된 인물형을 만들기 때문이다.

행정고시 폐지를 반대하는 이들의 주장 가운데 가장 도드라진 것은 5급 특채나 로스쿨 출신이 관료 사회를 장악할 수 있다는 우려다. 필자 역시 4급 상당으로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지만 전문 계약직이나 별정직 공무원들의 경우 한계가 뚜렷하다. 2년 후 3년 재계약을 해야 한다. 이는 보통 4급부터 채용되는 '국가공무원 경력경쟁 채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들은 임기는 보장받지만 승진 등에서 상대적으로 열악하고, 특정 분야의 전문성을 중심으로 채용되기 때문에 공무원 조직 전체를 흔들 정도는 되지 못한다. 물론 행정고시가 폐지될 경우 이런 경력채용자들이 카르텔을 만들 가능성도 있지만, 공무원 조직 내 승진자 그룹을 넘어설 가능성은 크지 않다.

5년의 공직 경험을 통해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공직 사회에서 협업의 문화가 무너졌다는 것이다. 부처별 소통은 물론이고, 국 사이, 과 사이의 소통은 이제 거의 전무하다. 그 원인 가운데는 행정고시도 한몫 했다. 행시 출신 과장과 비행시 출신 과장의 격차는 물론이고 위 국장으로 이어질 때 발생하는 차별 등 문제가 적지 않다. 결국 이런 조직에서 생활하는 공무원들은 '영혼 없는 공무원'이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결국 일에 대한 자존감이 떨어진다. 특히 간부급으로 올라갈 때 윗선과의 인간적 유대감을 고려하는 경우가 많다.

필자는 3년을 지방직 공무원으로, 2년을 국가직 공무원으로 일했다. 그런데 국가직으로 일할 때보다 지방직으로 일할 때 훨씬 재미있었다. 지방직에는 고시 출신이 많지 않아 고위직과 느끼는 이질감이 작았다는 것도 큰 이유라고 생각한다. 국가직으로 있을 때는 과장급 이상 간부의 대부분은 행정고시 출신이었고, 이들을 대상으로 창의적인 기획이나 정책 제시는 꿈도 꾸지 못했다.

우리 행정고시의 근간이 됐던 일본은 우리의 행정고시와 유사한 1종 시험과 2종 시험을 2012년부터 폐지하고, 종합직과 일반직을 신설했다. 종합직은 기획 업무를 담당하고, 일반직은 집행 업무를 담당한다. 이후엔 중국처럼 전문적인 연수와 업무 능력을 검증해 고위 간부로 육성한다.

그런 측면에서 행정고시는 '기회의 사다리'가 아니라 올라가다가 결국 떨어질 수밖에 없는 '썩은 동아줄'이라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태그:#공무원, #행정고시, #중국,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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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케이아이테크놀로지 상무. 저서 <삶이 고달프면 헤세를 만나라>, <신중년이 온다>, <노마드 라이프>, <달콤한 중국> 등 17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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