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예산의 시골 오일장을 간판삼아 50년 가까이 수선일을 해 온 고정덕씨.
 예산의 시골 오일장을 간판삼아 50년 가까이 수선일을 해 온 고정덕씨.
ⓒ 이재형

관련사진보기


땅으로 허리가 가까워진 한 할머니가 뒤춤에 들고 온 비닐봉다리에서 헌 운동화 한 짝을 꺼내놓는다.

"이것 좀 꿰메 줘."

구두 뒤축을 칼로 다듬고 있던, 나이가 지긋한 수선공은 힐끗 쳐다보고 말이 없다. 그럼 된 것이다. 더 이상의 말은 성가실 뿐. 충남 예산군 삽교·덕산·고덕 등 시골 오일장을 간판삼아 50년 가까운 세월을 쓰다듬고 달래며 수선일을 해 온 고정덕(77)씨.

지난 3일 고덕장, 날씨가 제법 매운데 그는 어김없이 출근했다. 늘 그 자리에 골동품 같은 공업용 미싱을 세워놓고 깔판에 구두밑창과 우산살, 지퍼 등 수선에 필요한 몇가지 재료를 진열하면 하루 일과의 시작이다. 수십 년 동안 보태거나 뺀 것도 없는 풍경 그대로다.

<무한정보>
 <무한정보>
ⓒ 이재형

관련사진보기


"6·25때 국민핵교 문턱까지는 가봤는데 그만뒀어. 공사장 일도 다니고, 먹고살기 바빴지 뭐! 조금만 더 배웠어도…"

충남 홍성군이 고향인 고씨는 젊은 시절 예산군 삽교(상성리)로 와 정착했다. 이일저일 전전하다 수선기술을 배워 장꾼이 된 지 어느덧 50여년 세월이 흘렀다. 그렇게 번 돈으로 4남매를 어엿하게 키우고 가르쳐 못 배운 한도 풀었다.

그가 미싱 등허리에 꽂힌 '실패'를 뽑아 보여주며 "요게 딱 47년 된거여. 나허고 같이 늙어가는 중이지. 재봉틀은 한 30년 됐나. 논 두마지기 값을 주고 산거야" 말했다.

예전엔 홍성·예산·합덕장까지 봤는데(장사했는데) 홍성장은 조수 기술 가르쳐 먹고살라고 내줬고, 예산장은 친구 조카가 같은 일을 해서 안 간 지 오래 됐단다.

고씨의 고객은 시골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대부분이다. 고무신을 신던 시절엔 그걸 때우고 꿰맸고, 우산이 귀했던 시절엔 우산살을 갈았다. 헌 가방은 지퍼만 갈아도 10년은 더 쓸 수 있었고 헌 구두도 뒤축만 갈으면 새신이 됐다.

<무한정보>
 <무한정보>
ⓒ 이재형

관련사진보기


<무한정보>
 <무한정보>
ⓒ 이재형

관련사진보기


<무한정보>
 <무한정보>
ⓒ 이재형

관련사진보기


"새거 쓰나 고쳐 쓰나 매한가지"이고 "신던 신발 신어야 발이 편하다"는 게 그의 철학이다.

어떤 물건 고치는 게 가장 힘드냐는 질문에 "(수선비) 흥정하는 게 최고 어려워"하고 엉뚱한 대답을 하고는 '허허' 웃는다. 하기는 50여 년 한가지 일을 했으니 수선이야 달인 수준으로 어려움이 없을 테고, 가격흥정은 아무리 오래해도 힘들다는 얘기다.

언제까지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냐는 물음에 "오늘 하다가 내일 하기 싫으면 그만두겠다"고 한다.

<무하정보>
 <무하정보>
ⓒ 이재형

관련사진보기


그러면서도 "버스편이 줄어서 시골장에 사람이 없다. 노인들이 나오고 싶어도 못 나온다"고 걱정을 하며 버스편을 늘리든지 택시(섬김택시)를 더 대주든지 하라고 군청에 얘기 좀 하란다. 또 "예산 역전장허구 고덕장이 한날인데 그것도 바꿔야 한다"고 목청을 높인다.

전통시장 장꾼 고정덕씨는 곧 일을 그만둘 것 같이 말하면서도 장터에 대한 걱정이 한 짐이다. 50여 년 평생 이곳이 직장이었는데 오죽하겠나. 수선공 등뒤로 자리잡은 뻥튀기 기계에서 '뻥' 소리와 함께 수증기가 피어오르고 고소한 냄새를 흩뿌리니 한적한 시골장이 풍성해진다.

덧붙이는 글 | 충남 예산에서 발행되는 지역신문 <무한정보>와 인터넷신문 <예스무한>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오일장, #전통시장, #수선, #예산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