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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다른 빛을 지닌 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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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른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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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면서 '하라'라는 소리를 몇 번이나 들을까. 공부하라, 말 잘 들어라, 대학에 들어가라, 성공하라, 결혼하라, 아이 낳아라 등등. '하라'라는 말은 사회라는 거대한 집단이 개인의 입을 통해 또 다른 개인에게 하달하는 명령과도 같다. 부모가 자식에게, 친구가 친구에게, 삼촌이 조카에게, 어른이 아이에게.

수많은 '하라'에도 등급이 있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되지만 되도록 하면 좋은 하라들. 안 하는 것보다는 하는 것이 더 좋은 하라들. 무슨 일이 있어도 꼭 해야 하는 하라들. 이 중 마지막 '꼭 해야 하는 하라'는 우리 인식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요지부동 명령이다. 이 명령은 그것 자체로 강력한 당위가 되어 질문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질문하지 않고 서로서로 하라를 주고받으며 재미없고 획일적인 사회를 만드는 데 일조한다.

하지만 질문하지 않기란 얼마나 어려운지! 우리는 우주가 어떻게 시작됐는지도 궁금해하는 인간인데 어찌 마땅한 이유 없는 결론을 무작정 따를 수 있는지! 그래서 궁금한 마음에 질문을 건네면 이는 불온한 것이 되고 만다. '하라'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있어도, 그 사람에게 '왜 해야 하냐?'고 묻기는 껄끄럽다. 아니, 답이 뻔하기에 묻고 싶지도 않다. 그래서 이제 질문은 온전히 개인이 감당해야 할 문제가 된다.

질문은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거나, 때로는 거친 소용돌이가 되어 개인을 생각 속으로 몰아넣는다. 나는 그걸 꼭 해야 하는가, 아니면 하지 않아도 괜찮은가. 개인에게 부여된 하라가 유독 많은 사회에서 독립적인 개인이 되는 방법은 이러한 질문들을 회피하지 않고 돌파하는 것이다. 그리고 생각의 끝자락에서 자기 자신만의 답을 찾아냈을 때, 그 답이 무엇이든, 우리는 색다른 빛을 지닌 개인이 된다.

내가 책을 좋아하는 이유는 작가들이 지닌 이러한 '색다른 빛' 때문이다. 사회가 요구하는 하라에 순응한 사람들이 세상을 향해 할 말이란 별로 없다. 어떻게든 반발하고, 저항하고, 처절히 고민한 사람들이라야 본인들이 힘겹게 찾아낸 답을 글로 옮겨 적는다.

이는 독자들에게 또다른 삶의 예를 보여주겠다는 사명감 때문이기도 하겠고, 자기 자신을 해명하고 싶은 욕구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나는 정효정의 유쾌한 여행기 <남자 찾아 산티아고>를 이런 생각을 하며 읽었다. 이 책은 저자가 하라를 거부한 끝에 이제야 겨우 자유로워졌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남자 찾아 산티아고>는 오마이뉴스에 연재될 때 간혹 읽던 여행기였다. 한 번 만난 적이 있는 작가가 쓴 여행기라서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나는 남녀노소 불구하고 내게 없는 면이 있는 사람에겐 우선 반하고 보는데, 정효정 작가에게도 첫 눈에 반하고 말았다. 유머 구사 능력 때문이었다. 짧은 문장 몇 개로 앞에 앉은 수십 명을 웃길 수 있는 건 정말 엄청난 재능이지 않은가.

평소에도 유머러스한 사람이(라 보이)기에 산티아고 순례길로 떠난 이유가 무려 '남자를 찾기 위해서'라는 저자의 말에 위화감이 들지는 않았다. 오히려 스멀스멀 웃음이 났다. 어찌 남자를 찾기 위해 그 먼데까지 날아갈 생각을 했을까. 핸드폰 번호를 안다면 문자라도 보내 물어보고 싶었다. 정말 그런 거예요? 정말 남자를 찾으러 스페인으로 간 거예요?

"나랑 산티아고 같이 갔으면 내가 좋은 남자 많이 소개해줬을 텐데!"


저자를 순례길에 오르게 한 방아쇠는 이 말 한마디였다고 한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막 돌아온 시인이자 지인이 그냥 해 본 한마디 말. 보통 사람이라면 같이 호들갑을 좀 떨다가 웃고 넘겼을 법한 말인데, 저자는 이 말에 그냥 훅 넘어가버리고 만다. 안 그래도 저자의 이상형은 "까다롭지 않고 여행을 좋아하며 삶의 태도가 진지한 사람"이었다나. 잘 생각해보니, 정말 이런 사람은 소개팅 자리에 앉아 있기보다는 순례길을 걷고 있을 확률이 더 높을 것 같기도 하다.

연애하고 싶지도 않았으면서, 왜

평소에는 1km도 걷기 싫어 택시를 탄다는 저자는 그렇게 남자를 찾겠다는 일념 하나로 딱 한 번의 예행연습 끝에 엄마에게 각종 등산 도구를 빌린 후 800km 순례길에 오른다. 예수의 12제자 중 하나였던 야고보(산티아고)의 무덤을 향해. 장장 36일 동안이나.

그런데 이게 웬일. 순례길에 오른 지 며칠 만에 저자는 꿈을 접고 말았단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은퇴자 버킷리스트 1위에 해당할 정도로 순례자 연령이 높기도 하거니와, 저자처럼 흑심을 품고 걷는 사람은 젊은 사람들 중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저자는 순례자 본연의 일에 집중할 수 밖에 없었던 듯하다. 바로, 걷기에.

사실 책은 '남자 찾기 프로젝트'라는 콘셉트를 내내 유지하고는 있지만, 다른 대부분의 산티아고 여행기들과 마찬가지로 만남에 대한 이야기이다. 처음 만난 사람들과 이곳에서는 하기 힘든 이야기를 마음껏 나누고, 오래도록 품고 있던 질문을 꺼내 세계 각국에서 온 사람들에게 저마다의 독특한 대답을 얻고, 작고 단단하게 뭉쳐있던 고정된 생각을 크고 유연하게 풀어헤치며, 결국 삶이란 내가 지금껏 살아왔던 것만이 다가 아니란 것을 깨닫는 일. 우리가 여행을 통해 얻고자 하는 건, 이렇듯 작은 인식의 전환 아닐까.

비록 남자 찾을 생각은 일찌감치 버렸지만, 저자는 순례길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랑과 결혼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눈다. "이 길을 걷는 사람들의 90%는 사랑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는 것 같아"라는 한 순례자의 말처럼 순례자들은 각자의 마음속에 사랑 고민 하나씩은 품고 있었다.

여자 친구를 사랑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불합리한 결혼 제도 속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다는 다니엘은 "사랑을 증명하기 위해 결혼을 한다는 상황 자체"가 "사랑에 대한 모독"이라고 말한다. 아이는 있지만 결혼은 하지 않았다는 아이린은 "평생 결혼하지 않았지만 인생은 괜찮았다"며 "다른 사람들 말은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어차피 삶은 누구에게도 같을 수 없거든"이라고 말하며 저자의 어깨를 토닥인다.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1년 4개월을 걸어 산티아고로 온 미첼은 "사랑이라는 감정에 속박당하고 싶지 않"다며 "인간이 사랑을 느끼는 생명체인 것은 우리가 약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독신주의자였던 쥬디는 "계산기를 두드려" 본 결과 결혼을 결심했다고 말한다. 쥬디가 두드려본 계산기란 '돈'이나 '사랑'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성격'과 '인생관'이 맞는지 오랜 시간을 들여 분석했다는 말이었다.

저자는 순례자들 이야기 틈틈이 본인이 결혼하지 않은 여자로서 겪은 경험을 들려주기도 한다. 저자의 이야기는 우리 사회가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데 얼마나 적극적인지, 정상 범주에서 벗어난 결혼하지 않은 여자에게 얼마나 적대적인 시선을 보내는지를 보여준다. 일을 하다 보니 어느덧 결혼 적령기를 넘긴 저자에게 무례한 잣대를 들이대던 사람들. 결혼은 꼭 해야 마땅한 거라며 저자를 압박하던 시선들. 그리고 그런 그들에게 당당히 목소리 높이지 못하고 대충 타협하며 고개를 숙였던 과거의 저자. 저자는 말한다.

"왜 결혼을 안 했냐?"라는 질문 앞에 나는 "어쩌다 보니 못했어요, 어쩌죠?" 하고 못나게 웃어버리곤 했다. 최대한 자신을 낮추고 불쌍하게 보여야 공격당할 여지가 적기 때문이다. 이게 내가 터득한 생존법이었다. 외눈박이 세상에 양눈박이가 살든, 양눈박이 세상에 외눈박이가 살든 어쨌든 내가 사는 세상에선 다른 건 틀린 것이기에.


그리고 순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저자가 스스로에게 한 질문은 결국 이것이었다.

"그때 나는 정말 연애를 원했을까?"


그렇다면 저자는 왜 연애를 갈망하지도 않았으면서 남자를 찾는다며 산티아고로 간 걸까. 연애하지도 결혼하지도 않는 그녀에게 '너는 이대로 너여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사회의 등쌀 때문이었다. 단지 연애와 결혼을 하지 않는 것 뿐인데 집에 있는 그녀를 '궁상' 맞다 표현한 사람들의 주장에 내몰렸던 것이다. 그녀의 '생존법'은 우선은 사회의 기준에 자기 자신을 맞추는 것이었기에 얼렁뚱땅 순례자가 돼버렸던 거다.

하지만 저자는 산티아고 길에서 만난 순례자들의 따뜻하고 유연한 태도를 접하며 '기준점'을 재조정할 수 있었다. 모두가 옳다고 하는 삶에 기준을 두고 살아갈 것인지, 내가 원하는 삶에 기준을 두고 살아갈 것인지. 그렇게 얻은 저자의 결론은 이렇다.

800km를 걸으며, 나는 삶에서 "반드시"라는 단어를 지웠다. 고민이었던 결혼도, 연애도 "반드시"라는 수식어가 사라지자 그것은 인생의 수많은 요소 중 하나로 자리를 평범하게 자리매김했다. 나는 그제야 겨우 자유롭게 숨을 쉴 수 있었다.


개인보다 집단이 우세한 사회에서 개성 있는 개인으로 '용기 있게' 살아가려면 개인에겐 스스로 세운 기준이 필요하다. 기준을 세우려면 아무래도 치열한 고민이 선행되어야 할 테다. 고민을 해야 할 땐 지금 이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떠나보는 것도 좋겠다. 산티아고 순례길도 좋겠다. 그 어디든 좋겠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우리의 고민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봐줄 따뜻한 시선일 뿐이니.

덧붙이는 글 | <남자찾아 산티아고>(정효정/푸른향기/2017년 01월 03일/1만5천원)
개인 블로그에 중복게재합니다



남자 찾아 산티아고

정효정 지음, 푸른향기(2017)


태그:#남자찾아산티아고, #산티아고 순례길, #정효정, #결혼, #연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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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처음 킥복싱>, <매일 읽겠습니다>를 썼습니다. www.instagram.com/cliann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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