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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6년 12월 20일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의원이 대표발의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일부개정법률안'은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무고기소를 재판이 종결된 이후에야 개시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이를 두고 지지와 우려가 혼재하고 있다. 이 법안에 대해 제대로 논의하려면 '성폭력 무고사건'에 대한 적절한 이해가 우선적으로 필요해 보인다.

최근 들어 성폭력 피해자로 가해자를 고소한 피해여성이 무고사건의 피의자로 인지되어 수사가 전환되는 사건들이 증가하고 있고, 실제 많은 성폭력 고소사건들이 무고사건으로 의심받고 있다. 2015년 대검찰청의 범죄분석 자료에 따르면 한국사회는 지난 2005년에서 2014년 동안 13~20세 아동 대상 성폭력범죄 발생 건수가 무려 279.8% 증가하였고, 2010년 이래 연평균 9.7%의 성범죄 증가율을 보이면서도 성폭력 범죄 불구속률이 90%에 육박하는 사회다. 성폭력 범죄의 심각성은 곧 '성폭력 엄단'이라는 정책 기조를 수립하도록 하였지만, 이는 다시 '무고죄를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는 내용으로 이어졌다.

'무혐의'에 대한 광범위한 오해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 직장 내 성희롱 피해 신고 이후 또 다른 사건이 시작된다. 회사는 각종 불이익 조치를 자행하며 피해자인 나를 내보내려고 했다.
ⓒ gera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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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사건의 높은 불구속률을 무고죄의 증거로 보고 싶어하는 이들이 있다. 주로 언론매체들이 앞장서서 '불기소'와 '무혐의'를 강조하며, 성폭력으로 신고된 사건의 대다수가 '꽃뱀'에 의한 무고사건이며, 따라서 희생된 '억울한 남성 피해자'가 진짜 우리가 염려해야 할 일임을 은근히 강조해 왔다.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무혐의'에 대한 광범위한 오해는 제대로 처벌되지 않는 성폭력 범죄를 깊이 우려하고 고민해야 할 공간을 '꽃뱀'에 대한 한탄으로 채우는 데 일조했다.

때문에 '무혐의'를 곧 무죄판결과 동일시하는 단순한 발상을 짚어보는 것이 필요하다. 무혐의는 증거불충분의 의미를 내포한다. 여기서 증거불충분은 '신고된 사건에 대한 증거를 찾지 못했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경찰의 치밀하지 못한 수사와 부적절한 조치' '지연된 수사와 자의적인 수사종결'의 결과이기도 하다.

철저하지 못한 수사로 인한 증거 확보의 실패는 피해 여성을 신뢰하지 않고 오히려 의심하는 경찰의 태도와 관련이 깊다. 여성과 아동을 동급으로 인식하고 취급하는 태도, 여성이라는 존재를 신뢰하지도 심각하게 여기지도 않는 남성중심사회에서 여성은 손쉬운 편견과 판단의 대상이 된다.

한 사회에서 여성이 신뢰받지 못하는 것은 실제 그들이 못 미더운 사람들이어서가 아니라 그 사회에서 권력과 지위를 갖지 못한 사회적 약자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 사건이 일어났다고 믿거나, 수사할 가치가 있다고 여기는 판단은 비법률적인 기준에서 비롯되며, 수사의 개시, 과정, 종결에도 영향을 미친다. 공정하고 합리적인 제도와 규칙의 마련이 그를 집행하는 사람들의 인식, 편견, 태도의 공정성과 합리성을 동시에 담보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피해자의 고소취하, 왜 무고죄 기소의 증거 되나?

 강간 가해자와의 대질심문... 검사는 나를 무고 가해자로 바라보며 압박했고 다그쳤다.
ⓒ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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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의 고소취하 역시 성폭력 피해자를 무고의 피의자로 단정 짓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성폭력 사건을 '꽃뱀사건'으로만 보고 싶어 하는 입장에서 피해자의 고소취하는 피해자 자신의 거짓진술을 스스로 증명하는 매우 결정적인 증거로만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무지에 가까운 단정과는 달리, 성폭력 피해자는 다양한 이유들로 자신의 진술을 철회한다.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이 피해자인 자신을 의심하고 수사의지를 보이지 않을 때, 피해자인 자신이 오히려 비난받을 때, 조사과정에서 다시 성폭행당하는 것 같은 수치심을 느낄 때, 자신의 가족, 친구, 동료들이 진술해야 하는 것에 대한 미안함, 최종결과에 대한 경찰의 부정적인 언질, 복수를 당할지 모른다는 공포, 이쯤에서 그만하라는 주변인들의 설득,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홀로 감당해내기 버거운 심리 상태에 의해 고소취하를 결정한다.

이처럼 피해자가 마주하고 있는 모든 맥락과 배경을 고려한다면 피해자의 고소취하를 '성폭력 사건이란 아예 없었던 것' 또는 '없던 일을 일부러 꾸며낸 것'과 동일시하기 어렵다. 신고된 성폭력 사건이 무고로 판단되려거든, 단순히 고소취하가 아니라 피해자가 자신의 진술을 모두 자진 철회하는 동시에, 자신의 진술이 위증이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해야 한다는 두 가지 원칙이 모두 충족되어야 한다. 그러나 많은 경우 피해자의 진술 철회가 허위진술의 근거가 되고, 때로는 무고죄 기소의 증거가 되기도 한다.

성폭력 사건에 대한 다른 방식의 의심

 BBC 보도
 영국의 경찰감차관실과 검찰조사국의 조사에 관한 BBC의 보도
ⓒ BBC 뉴스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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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도 영국의 경찰감찰관실(HMIC, Her Majesty's Inspectorate of Constabulary)과 검찰조사국(HMCPSI, Her Majesty Crown Prosecution Service Inspectorate)에서는 2005년 영국 7개 지역에서 제출된 752건의 성폭행 수사 자료를 다시 분석하였다.

특히 당시 '무혐의'로 판명된 179건을 면밀히 검토한 결과 그중 32%에 해당하는 57건이 반드시 수사했어야 할 성폭행 사건이었음을 밝혀내었다. 이러한 조사를 바탕으로 영국 법무부는 무혐의 판단에 대한 신중한 접근과 원칙 수립 및 준수의 중요성을 재확인하게 된다.

2010년 6월 2일자 뉴욕타임즈는 2005년에서 2009년 사이 뉴욕시에서 성폭력으로 분류되는 사건의 비율이 무려 35.7%로 대폭 감소하였음을 보도하였다. 그러나 사실 이 기사가 주목하고 있던 것은 명백한 성범죄였음에도 불구하고 가벼운 경범죄로 처리된 비율이 6%가량 상승했으며, 성폭력 신고가 허위신고 또는 증거부족으로 판단되어 기각된 사건이 매우 가파른 속도로 증가했다는 것이었다.

언론뿐이 아니었다. 성폭력 범죄의 높은 감소율을 정부정책의 성공적 결과로 간단하고도 편리하게 해석하며 자찬하는 대신, 뉴욕 경찰국장은 특별수사대를 조직하여 성폭력 피해자를 수사하는 새로운 행동규칙을 마련하였다. 이러한 언론의 추적과 관심, 피해자 인터뷰를 통한 증언확보, 그리고 지속되는 문제제기에 힘입어 2010년 미 상원위원 공청회에서는 북미 전역에서 성폭력 사건을 조사하는 데 있어 경찰의 구조적인 실패가 만연되어 있음이 고발되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한국사회는 드높은 불기소처분과 불구속율을 억울한 무고죄의 가능성으로만 비출 뿐, 피해자를 오히려 의심하고 타박하는 수사관행, 철저하지 않은 수사로 인한 증거불충분이라는 결과를 신중하게 검토하지 않는다. 성폭력 범죄에 대한 엄단을 신속하고도 거침없는 '꽃뱀 색출 작전'과 곧바로 동일시하고 이를 낯설어 하지 않는 것이다.

합리적인 무고죄 기소원칙을 마련해야 한다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형사소송의 대원칙에 근거하여 검사는 무고 사실을 적극적으로 증명해야 한다. 판사 또한 합리적 의심을 할 여지가 없는지 판단하여야 한다.
ⓒ free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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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두에 언급한 개정 법안은 성폭력 피해자가 중간에 무고죄 피의자로 전환됨으로써 정작 수사되어야 할 성폭력 사건이 제대로 수사되지 않는 점을 우려했기 때문에 취해진 조치로 여겨진다.

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여러 조력 장치들이 제도로 마련되어 있지만, 검사의 인지로 인해 무고죄로 기소됨으로써 밝혀져야 할 진실들이 채 드러나지 못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일단 성폭력 수사를 철저히 하자는 것이다. 그것이 성폭력 사건이 아니었다는 명백한 증거를 확인한 이후에 이것이 무고죄인지를 다투자는 의도가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조치가 다른 범죄에 대한 수사방식과의 형평성에 부합하는지, 실제 실효성이 있을 것인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렇다면 그 논의는 단지 법안에 대한 찬반이 아니라,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무고죄 기소가 그간 어떠한 원칙과 근거에 의해 이루어져 왔는지를 밝히는 데 집중되어야 한다.

왜 유독 성폭력 사건에 있어서 무고죄 적용이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하는지를 따져 물으려거든, 한국사회의 사법부가 여성이 피해자가 되는 여러 범죄에 대해 어떠한 편견과 왜곡 없이 매우 공정하고 객관적인 방식의 수사기조를 유지해 왔음이 증명되어야 한다.

성폭력 피해자였지만 무리하게 무고죄로 기소되었다가 대법원으로부터 무죄를 받아낸 여성에게 적용되었던 수사원칙과 기준의 합리성이 온 국민에게 제시되고 검토되어야 한다. 그동안 검찰·경찰의 성폭력 범죄 수사 과정이 성폭력 피해자다움에 대한 편견과 전형성에 얼마나 얽매여 왔는지에 대한 비판 없이, 마치 사법적 절차라는 외양이 객관성과 공정, 정의로움을 저절로 보장하는 것인 양 착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를 성찰해야 한다.

저지르지도 않은 범죄에 대한 기소와 처벌은 상상하기 어려운 고통이자 누구도 감당해서는 안 될 누명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무고죄로 기소되어 처벌받게 될 때의 그 고통과 억울함은 가늠하기조차 쉽지 않다.

성폭력이라는 범죄 자체가 진실을 규명하기 어려운 범죄 중의 하나라는 점에서 성폭력 무고는 무섭게 추궁해야 할 일이지만, 또 그런 만큼, 오히려 무고죄로 기소당하고 처벌받는 피해자가 있다면 그러한 단죄는 존재해선 안 될 만큼 가혹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성폭력 무고는 이러한 두 가지 가능성을 모두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 성폭력 무고와 관련된 이슈들은 거의 맹목적이다 싶을 만큼 '억울하고 무고한 남성 피해자'와 곧바로 등치되고 있다. 물론 성폭력 무고는 존재할 수 있다. 구제받아야 할 남성피해자 역시 존재할 것이다.

이를 철저히 밝히기 위해서는 성폭력 무고를 확신할 수 있는 모든 절차와 과정이 제대로 확립되고 준수되어야 한다. 원칙과 기준 없는 성폭력 무고의심은 성폭력 범죄가 제대로 수사되지 않는, 가해자 남성이 처벌되지 않는 조건을 만들어 낼 뿐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 연구교수입니다. 해당 글은 허민숙 교수의 논문 <성폭력 무고의 재해석> 일부를 발췌 수정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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