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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 한눈에

  • 꼭 이렇게 '짬티' 내는 이등병, 꼭 있습니다. 훈련병 앞에서 어깨에 힘 주는 이등병 말입죠.
306보충대에서의 마지막 아침이 밝았습니다. 3박 4일간의 보충대 생활이 끝나는 거죠. 이제 보충대의 수많은 장정들은 떠납니다. 각자 배속된 사단의 신병교육대로 향합니다. 이미 각 신교대로 향하는 버스가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짧으면서도 긴 시간이었습니다. 그들의 모습도 처음 입소했을 때와 신교대로 떠나는 지금, 많이 달라져 있습니다.

어리숙한 '빵모자' 베레모

각양각색의 사복. 306에 입소한 장정들의 복장이었죠. 후드부터 셔츠, 심지어 정장 차림의 사람들도 보였습니다. 장정들의 모습은 처음과 많이 달라져 있었습니다. 모두들 전투복을 입고 있었죠. 물론 전부 어색한 차림새입니다.

본래 베레모는 접혀 있는 '각'이 멋있게 보입니다. 반대로 말하자면 '각'이 없으면 굉장히 우스꽝스럽습니다. 하지만 방금 새로 받은 베레모에 각이 잡혀 있을 리가 없죠. 결국 장정들은 굉장히 펑퍼짐한 베레모를 쓰고 돌아다녔습니다.

흡사 '빵모자'라고 느낄 정도로 어리숙하게 만들었지요. 사실 좋게 말해서 어리숙하지, 그냥 '동네 바보'가 떠올랐죠. 어떤 장정은 베레모의 각을 잡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실패하고는 이렇게 투덜거렸습니다.

"차라리 미군처럼 각진 전투모나 주지…, 이건 뭐가 이리 불편해?"

생각보다 멋지던 전투복, 생각보다 불편한 전투화

신형전투복은 2011년부터 지급됐다. 당시 육군17사단 수색대대 장병들이 신형 방상외피와 베레모를 선보이고 있다.
 신형전투복은 2011년부터 지급됐다. 당시 육군17사단 수색대대 장병들이 신형 방상외피와 베레모를 선보이고 있다.
ⓒ 국방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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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레모는 혹평이 가득했습니다. 반대로 전투복에 대해서는 대부분 평이 좋았죠. 특히 당시 도입된 '디지털 패턴' 전투복은 굉장히 신기했습니다. 특히 이 '디지털 패턴'은 미군이 연상되는 느낌, 뭔가 최신식의 느낌을 강하게 부여했죠. 한마디로 멋졌습니다.

전투화의 경우에는 장정들의 평은 좋지 않았습니다. 신형전투화라도 답답하고 뻑뻑했죠. 훈련소 입영버스를 기다리는 와중에, 발이 아프다는 사람도 나왔습니다. 생각보다 발을 꽉 조여서 그렇죠. 짜증을 내던 장정에게 어느 구대장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나마 그건 편한 거야. 옛날 전투화는 발이 버티지 못했대."

옛날 전투화는 오히려 더 거친 소재라서, 발이 부르트거나 다치는 경우가 매우 흔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아픈 전투화'에서 그나마 '불편한 전투화'로 바뀌는 데 수십 년이나 걸린 것이죠. 여러모로 참 대단합니다. 일찍이 '막장군대'의 대명사인 일본군조차도 메이지일왕이 직접 이렇게 어명을 내렸다고 합니다.

"군화에는 돈을 아끼지 말라. 군복 중에 가장 중요한 부분이 군화다."

19세기에도 이런 안목이 있던 겁니다. 역대 한국군의 수뇌부는 그런 안목이 없던 걸까요? 아니면 하고는 싶은데 능력이 안 되는 걸까요? 참으로 '미스터리'합니다.

어느 '이등병'의 황당한 협박

지난 2014년 12월 26일 오전 경기도 의정부시 306보충대에서 입영장정들이 공개전산부대분류 과정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지난 2014년 12월 26일 오전 경기도 의정부시 306보충대에서 입영장정들이 공개전산부대분류 과정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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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기종기 모여 줄을 서는 장정들. 얼마 후면 신교대 가는 버스가 도착합니다. 각자 배속된 곳으로 떠납니다. 사단별로 나눠서 줄을 선 장정들은 서로에게 작별인사를 했습니다. 자대에 도착하면 연락하거나, 휴가 나오면 꼭 보자는 말들이 나왔죠. 이런 저희에게 어이없는 일이 하나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황당하고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어느 장교가 이등병과 함께 저희를 향해 다가왔습니다. 그 대위는 조용히 저희를 보고 대강대강 명부를 체크했습니다. 처음 보는 '반짝이는 은빛 계급장'. 장교를 처음 본 저희들은 바싹 긴장했습니다. 군 계급을 모르더라도 '우리보다 엄청 높은 사람'임은 누구나 알 수 있죠.

대위는 한참 체크를 하고 어딘가로 가버렸습니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됐지요. 대위와 함께 따라온 이등병이 어슬렁거리며 다가왔죠. 그 이등병은 대단히 오만하게 저희를 훑어봤습니다. 고작 작대기 1개인 이등병이지만, 계급장도 없던 우리들에게는 그마저도 대단해보였습니다.

그 이등병은 저희에게 버스에 타라 했죠. 강압적인 태도와 반말이었지만, 아무도 불평하지 못했습니다. 이제 군대에 들어온 지 기껏해야 4일 차인 장정들에게 이등병은 '너무나도 높은 작대기'로 보이니까요.

버스에 장정들이 모두 올라타자, 이번에는 그 이등병은 되도 않는 협박을 했습니다. 갑자기 올라와서 군홧발로 버스 바닥을 쿵쿵 내리치며 이렇게 외쳤죠.

"야! 니들! 내 말을 안 들으면 얼차려를 줄 거야! 알았어?!"

간부라고 할지라도 직속병사가 아니면 얼차려를 줄 수가 없습니다. 병사끼리는 원칙적으로 얼차려가 금지돼 있습니다. 순진한 장정들을 상대로 한 '갑질 사기극'이죠.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없는 헛소리입니다.

그 이등병은 되도 않는 협박을 한 뒤, 뭔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습니다. '이등바리'주제에 순진한 장정들에게 '갑질'을 한 것이 뿌듯했던 걸까요? 그러더니 버스에서 내렸습니다.

몇 분 뒤 그 이등병은 다시 버스에 돌아왔습니다. 고개를 빼꼼 내밀고 장정들에게 '담배 있냐?'라고 물었습니다. 사실 그때까지도 담배를 몰래 소지한 사람이 있기는 했죠. 하지만 그걸 말할 사람은 어디에도 없는 법. 아무도 대답하지 않자 이등병은 저열하게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야! 어차피 신교대가서 뺏기나, 나한테 뺏기나, 똑같아!"

순간적으로 군인인지, 양아치인지 구분이 안 갔습니다. 아무도 대꾸가 없자, 그 이등병은 투덜대며 버스에서 내렸습니다. 이런 횡포에 아무도 항의할 수가 없었습니다. 덩치가 좋은 장정들도 마찬가지죠. 부당한 대우에 항의를 할 수가 없는 잘못된 구조이기 때문이죠.

그 한심한 이등병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계급이 깡패다'.

이등병은 대한민국 국군 계급 중에 가장 낮다. 물론 아직 '군인'이 아닌 '장정' 입장에서는 '작대기 1개'가 아니라 '커다란 기둥 1개'처럼 위압감이 넘친다.
 이등병은 대한민국 국군 계급 중에 가장 낮다. 물론 아직 '군인'이 아닌 '장정' 입장에서는 '작대기 1개'가 아니라 '커다란 기둥 1개'처럼 위압감이 넘친다.
ⓒ 국방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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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입영부터전역까지, #고충열, #군대, #입대, #전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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