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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가야 한다고 알려진 군대! 저 역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2013년 10월 어느날, 저는 부모님과 함께 의정부로 향했습니다. 바로 306보충대대로 입소하기 위해서죠. 의정부에 도착한 다음, 저는 가족들과 식사를 하러 갔습니다.

흔히 입대 전의 식사는 '최후의 만찬'에 비유할 정도로 분위기가 침울합니다. 특히 군에 입대하면 '고생문'이 훤히 열렸다는 인식이 강한 것도 한몫합니다. 저의 아버지 역시 입대하는 아들이 염려스러웠는지, 의정부에서 가장 유명한 어느 고깃집으로 저를 데려가셨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입대 당일이기에 거의 죽지 못해서 먹는 수준입니다. 사실 저는 배불리 먹었습니다. '군대에 가면 이렇게 맛있는 것을 언제 먹겠나!'라는 생각이 들어서죠.

식사를 마친 후에는 조용히 보충대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입영식이 시작됐고, 저는 부모님께 힘차게 경례를 올렸습니다. 눈시울이 붉어진 부모님을 뒤로 하고 무겁게 보충대로 들어갔습니다. 가족과 떨어진다는 슬픔, 이제 군인이 된다는 긴장은 각각 절반이었습니다. 그렇다면 306보충대대에서의 생활은 어땠을까요?

민간인도, 군인도 아닌 애매한 위치 '장정'

지난 2014년 12월 26일 오전 경기도 의정부시 306보충대에서 입영장정들이 공개전산부대분류 과정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지난 2014년 12월 26일 오전 경기도 의정부시 306보충대에서 입영장정들이 공개전산부대분류 과정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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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충대에 입소한 저는 '장정'이라는 신분을 받았습니다. 장정(壯丁). 군역에 소집된 남자를 일컫는 말입니다. 즉 엄밀하게 따지면 '정식 군인'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민간인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군인도 아닌 장정. 매우 어중간한 신분입니다. 그 애매한 신분을 부여받은 저는 이내 배속된 방으로 갔습니다.

그 방에는 저를 비롯해서 같은 날에 입대한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입고 있는 사복은 제각각 달랐으나 '짧게 깎은 머리' '긴장된 표정' 만큼은 모두 똑같았습니다.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누군가 처음으로 말을 꺼냈습니다.

그것을 필두로 사람들의 말문이 터져 나왔습니다. 서로 간단하게 소개를 하며 인사를 나눴습니다. 긴장감이 풀어졌기에 더 신나게 떠들었습니다. 대부분 비슷한 동년배였기에 그랬을까요? 우리들의 대화는 '구대장'이 오기 전까지 이어졌습니다.

구대장이란 장정이 지내는 '구대(區隊)'를 관리하는 직책의 병사입니다. 체격이 좋고 검은색 헬멧을 쓴 구대장이 보이자, 장정들은 자연스럽게 몸을 움츠렸습니다. 사회에서는 평범해보이던 구대장이, 부대 안에서는 엄청나게 두렵게 느껴졌죠. '혹시 때리지는 않을까?'라는 불안함을 모두가 느꼈습니다. 다행히 구대장은 떠든 것을 지적하러 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잠시 구대장은 인원체크를 위해 호명을 하고, 앉은 순서대로 번호를 부여했습니다. 그리고 2개의 번호를 호명해 임시로 '분대장'과 '부분대장'을 지정했습니다. 분대장과 부분대장이라고 해서 거창해보이지만, 실상은 '대표 심부름꾼'에 불과했습니다. 이를테면 전달사항이 있으면 분대장 장정이, 혹은 부분대장 장정이 달려가는 셈이지요. 실제 분대장, 부분대장처럼 권한이 있는 것도 아니지요.

저녁시간이 되자 '분대장 장정'은 어딘가로 달려갔습니다. 돌아온 그는 식사 집합을 하라고 전달했습니다. 모두들 식사라는 말에 서둘러서 움직였죠. 그렇다면 군대에서의 첫 식사는 어땠을까요? 애석하게도 최악이었습니다.

군대에서의 '세제 냄새가 나던 적은 양'의 첫 식사

사실 저는 입영 전에 고기를 넉넉히 먹어서 크게 배가 고프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대다수 장정들은 입대를 한다는 긴장감 탓에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식사시간을 고대하는 모습을 보았지요. 상당수 장정들은 저녁을 대단히 기대하는 눈치였습니다.

배가 크게 고프지 않던 저 역시 '군대에서의 첫 식사'이기에 기대했습니다. 과연 군대에서는 무엇이 나올까? 무엇이 얼마나 나올까? 이런 기대감이 모두에게 나타났습니다. 병영식당에서 줄을 서던 장정들은 차례로 들어갔습니다. 얼마 후에 제 차례가 왔습니다. 약간 설레는 마음으로 식당에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군대라고 크게 다른 것은 아니었습니다. 배식되는 반찬이나 밥도 사회에서 흔히 볼 수가 있던 것들이죠. 배식병들이 장정들에게 배식을 하는 모습. 학교에서도 흔히 볼 수가 있는 풍경이죠. 여기까지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다음이 문제였습니다. 배식병들은 '병아리 눈물'만큼의 반찬을 나눠줬습니다.

비단 반찬만 그렇게 적은 게 아니었습니다. 밥은 바닥을 겨우 가릴 정도로 적게 줬습니다. 국물은 약간의 건더기와 함께 굉장히 얕게 주었습니다. 입으로 후후 불면 식판 바닥이 보일 정도였습니다.

순간적으로 저는 그 상황을 의심했습니다. 혹시 나만 적게 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죠. 그러나 주변을 살펴보니 모든 장정들이 적게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다들 '군대에서는 원래 이렇게 적게 먹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어찌 되었건 적은 양이지만 배가 고픈 장정들은 숟가락을 들었습니다. 허겁지겁 반찬을 집어먹던 한 장정은 정말로 배가 고파보였습니다. 하지만 이내 그는 이내 얼굴을 찡그렸습니다. 궁금해진 다른 장정이 왜 그런지 그에게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장정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반찬에서 세제 냄새가 나요!"

이에 놀란 우리들은 숟가락으로 반찬을 떠먹어봤습니다. 어렴풋하게 세제 냄새가 났습니다. 비위가 약한 어떤 장정은 숟가락을 그대로 내려놨습니다. 비교적 비위가 좋은 다른 장병은 꾹 참고 국을 마셨습니다. 그러나 그 장정도 국을 마시더니 숟가락을 내려놨습니다. 국에서도 세제 냄새가 난다는 것입니다.

반찬에 세제라도 섞였던 것일까요? 아닙니다. 사실은 이렇습니다. '세제가 제대로 닦이지 않은 식판'을 나눠줬기 때문입니다. 식판을 자세히 살펴보니 누렇게 들러붙은 기름때도 보였습니다. 우리만 이랬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식판도 그리 깨끗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비위가 상한 사람들은 얼마 먹지 않고 그대로 식사를 버렸습니다.

그렇다면 식사 자체는 맛은 있었을까요? 그것도 아니었습니다. 밥도 굉장히 푸석푸석했고 반찬은 딱딱하거나 흐물흐물했습니다. 식사를 마친 장정들은 식당 밖에서 투덜댔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씨X, 개돼지한테도 이렇게 주지는 않겠다!"

그렇게 우리들의 군대에서의 첫 식사는 '개돼지만도 못한 식사'로 시작됐습니다.

흡사 '수용소'처럼 열악한 306보충대

2011년 10월 14일 오전 경기도 의정부시 육군 306보충대에서 열린 신병부대분류에서 부대발표를 마친 장병들이 떠난 뒤 플라스틱 의자가 남아 있다.
 2011년 10월 14일 오전 경기도 의정부시 육군 306보충대에서 열린 신병부대분류에서 부대발표를 마친 장병들이 떠난 뒤 플라스틱 의자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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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식사가 끝나고 방으로 돌아온 뒤에도 장정들은 분을 삭이지 못했습니다. '밥이 뭐 이 따위냐' '교도소의 범죄자들도 이보다는 잘 먹겠다' '이러니까 군대를 기피하지' 등의 여러 불만들이 쏟아졌습니다.

한참 불만을 쏟아내던 중, 구대장의 굵직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몇 시 몇 분까지 세면세족을 하라는 전달사항이었죠. 장정들은 지급받은 세면백을 들고 씻을 준비를 했습니다. 그러나 충분하게 씻을 시간이 주어지지는 않았습니다. 양치질하고 대충 세수만 해도 시간이 부족할 정도였죠. 머리를 감거나 씻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했을 정도입니다.

사회로 따지면 '고양이 세수' 정도일까요? 그 정도로 저를 비롯한 사람들은 제대로 씻지 못했습니다. 아주 짧은 세면을 마치고 방에 돌아오자, 지친 표정들이었습니다. 매우 형편없는 식사 때문에 사람들은 더 피곤해보였습니다. 얼마 후에야 취침 준비를 했습니다. 저는 내심 속으로 '드디어 잠을 자겠구나'라고 기뻐했습니다.

입영 이후에 여러 가지 검사를 받거나 세면백 등의 보급품 일부를 받는 등, 굉장히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죠. 형편없는 식사로 인해서 더욱 피로해진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을 정도였죠. 그런데 구대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모두 대단히 황당했습니다.

"세 사람당 매트릭스 2개를 깔고, 모포 2장을 같이 덮고 자도록 합니다."

군에서 쓰는 얇은 매트릭스는 그리 크지 않습니다. 한 사람만 누워도 꽉 차는 느낌이 들죠. 그걸 2개 깔아서 3명이 누웠습니다. 좁을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군에서 쓰는 국방색 모포는 굉장히 얇은 편입니다. 1명이 1장을 덮어도 추위를 느끼는데, 3명이 2장을 나눠서 덮었습니다. 더 말할 필요가 있을까요? 결국 닭장 수준으로 서로가 꽉 붙어서 잘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잠을 푹 잘 수도 없었습니다. 첫날부터 불침번이 있었죠. 저 역시 몸을 뒤척이다가 불침번을 섰습니다. 군에 입대해서 설레는 마음이 아닌, 군대의 이런 형편없는 현실에 대한 걱정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한 것이지요. 불침번을 서던 중에 책에서 읽은 수용소가 떠올랐습니다.

2차 대전 당시 독일은 수용소에 갇힌 이들에게 매우 비인간적인 대우를 했습니다. 톱밥이 섞인 빵을 식사로 주었습니다. 그마저도 매우 적었기에 없어서 못 먹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세면세족 등을 보장하지 않아서 위생적으로도 악영향을 주기도 했습니다.

수용소를 떠올릴 정도로 306보충대대의 환경은 너무나도 열악했습니다. 우리가 군인으로서 입대한 것인지, 수용소에 수감이 된 것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였죠. 새벽에 추위에 덜덜 떨면서 저는 문득 '그 말'이 생각났습니다. 취침 직전에 어떤 장정이 체념하는 목소리로 했던 말. 모두들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깨어나면 집이면 좋겠다.'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아닌, '열악한 환경' 때문에 집을 그리워하는 것이었죠. 모두들 빨리 306에서의 생활이 끝나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306에서의 시간은 생각보다 길었습니다.


태그:#고충열, #입영부터전역까지, #306보충대, #의정부, #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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