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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백만명이나 되는 노동조합원들이, 1만명도 안 될듯한 농민회원들의 농산물을 도맡아 사 주면 안 되나? 그게 그리 어려운 일인까? 대체 무슨 피치못할 사정이 있는건가. 그들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들려고 어깨 걸고 나선 동지 사이가 아닌가?"

평소 매우 궁금하고 답답한 의문과 의심을 감출 수 없다. 선뜻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그 숫자가 100배도 넘을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노동조합원들은 왜 그러나. 도대체 왜, 조직적으로 농민회원들이 생산하는 농산물을 우선적으로 사주지 않나. '의식도 있고 구매력도 있는' 노동조합원들이 왜 '동지적이고 형제적인' 농민회원들의 절박한 생활과 생계를 남의 일처럼 외면하는 것일까. 

물론 이해를 하려 들면 전혀 이해가 안되는 건 아니다. 오로지 노동자로서만, 노동조합원의 역할로서만 세상을 살아갈 수 없다는 절박한 처지를. 임금협상, 단체협상 등 생계나 자존심과 직결된 절박한 현안을 다투지 않은 평소의 일상에서는 그저 보통의 일반시민과 다를 바 없는 곤란한 입장을. 나아가 그저 평범한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재벌마트의 싸고 좋은 상품'을 불가피하게 구매할 수밖에 없는 도시 소비자로서의 딱한 형편을.

설사 그렇다해도 못내 아쉽다. '동지적인' 노동조합 조차 농민회의 농산물을 기꺼이 사 먹지 않는 현실이 야속하다. 노동조합원 조차 농민회원의 농산물과 먹거리를 외면하는데 불특정 다수의 일반 도시민과 국민에게 호소하고 당부할 수 있을까. "농민의 농산물을 좀 사 달라"고. 아무래도 자신이 없다. 그래서 불특정 다수의 도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도농교류 캠페인이니 1사 1촌 자매결연은 왠지 공허하고 막연하다. 

그렇다면 농촌의 1개 농민회와 도시의 1개 이상 노동조합의 상호호혜적 결연 협약부터 맺으면 어떨까. 그렇게 상시적으로 직거래의 물꼬를 트면 되지 않을까. 이왕이면 농․노 직거래 급식 및 꾸러미사업단도 조직하고 가동하면 더 좋겠다. 그리 어려운 일로 보이지 않는다.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그토록 노동자 일방이 손해보고 피해보는 일인가. 이때 노동부, 농식품부 등 관련 중앙정부, 해당 자자체는 농민과 노동자가 서로 상생할 수 있도록 관련 예산 등을 적극 지원해야할 책무를 잊지말아야 한다.

이렇게 노동자와 농민이 생산자와 소비자로서 연대하면 둘 다 좋다. 단순한 상거래가 아니라 말그대로 상호호혜적인 상생관계가 된다. 농장도 살고 공장도, 기업도 산다. 농촌도 살고 도시도, 국가도 산다. 그저 농민 혼자 잘 먹고 잘 살겠다고, 농촌부터 우선 먼저 살고보자고 던지는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상공인이 세우고 농민이 운영하는 레오강 마을의 잘펠덴 농민직판장
▲ 직판장 상공인이 세우고 농민이 운영하는 레오강 마을의 잘펠덴 농민직판장
ⓒ 정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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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공인이 앞장서 열어준 잘펠덴 농민 직판장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인근의 레오강(Leogang) 마을은 스키관광명소로 유명하다. 또 상공인, 노동자와 농민, 소비자와 생산자가 서로 상생하는 지역공동체 모델로도 유명하다. 바로 잘펠덴 농민직판장(saalfelden  saalachtaler bauernladen)이 그 실천현장이다. 지속가능한 농업을 유지하려는 목적으로 1993년 문을 연 이 직판장은 상공인과 지자체의 지원을 받았기 때문에 더 뜻깊은 사례로 알려졌다. 

오직 농민들끼리 직판장을 열고 운영하지 않는다. 관광업체, 호텔, 식당 등 소비자를 대표하는 오스트리아 상공인협회, 그리고 행정을 대변하는 군청, 면사무소 등 지자체가 함께 개설한 도심 속 농민직판장이다. 도시 상공인들은 매장 등 시설을 지원하고 농민들은 직영을 책임지는 도농상생, 노농상생 공동사업이라 규정할 수 있다. 

직판장을 찾는 주고객은 3000명 남짓한 레오강 마을 주민이다. 그리고 스키레저 등 관광명소인 레오강을 찾는 휴양관광객들이다. 이른바 '지산지소(地産地消)'의 도농상생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는 현장이다. 더욱 인상적인 건 사업은 농민이 주도한다는 점이다. 상공인과 행정은 거들 뿐이다.

농산물 판매가격부터 전적으로 생산농가가 결정한다. 농산물의 가치를 가장 잘 아는 이는 당연히 그 농산물을 생산한 농민이기 때문이다. 농민은 판매액의 18%를 매장임차 수수료 명목으로 납부한다. 가입한 농민의 연회비는 불과 40유로 밖에 안 된다. 참여한 30여 농가들은 농가소득의 평균 40% 가량을 직판장에서 벌어들인다.

주 5일 화~토요일은 8시 30분~12시까지, 주말인 금요일은 14시~18시까지 반나절 정도만 영업한다. 이렇게 벌어들이는 월 매출은 1만 5천 유로 정도, 연간 2억원 가량 된다. 농민들이 직접 생산하고 가공하는 농산물, 가공식품이 주력상품이다. 알프스 산악 지역에 위치해 겨울이 7개월 농한기인 지역농가의 특성상 다양한 전통 수공예품을 부업 삼아 만들어 팔기도 한다.

잘펠덴 농민직판장을 운영하는 농민 대표, 프란츠보이트 호버(franz voit hober) 회장
▲ 회장 잘펠덴 농민직판장을 운영하는 농민 대표, 프란츠보이트 호버(franz voit hober) 회장
ⓒ 정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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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소농들의 기본생활 보장은 문화경관직불금으로

직판장 관리와 경영을 책임지는 프란츠보이트 호버(franz voit hober) 회장도 농민이다.  12ha의 농사를 짓는 전형적인 소농이다. 회장이지만 월급도 없고 특별한 대우나 보상을 받는 게 아니다. 지역의 30여 농가가 자발적으로 모여 법인격도 없고, 사업자등록도 내지 않고 일종의 동호회처럼 '일하는 듯 노는 듯' 소박하게 운영하기 때문이다. 굳이 농업을 그렇게 규모화, 기업화, 상업화할 필요는 없다는 뜻으로 읽힌다.

"레오강 마을은 농업보다는 문화경관 자원에 바탕을 둔 겨울철 레포츠와 그린투어(농촌휴양)로 유명하죠. 농촌관광 활성화를 고민하다가 1995년 레오강 농업회의소, 관광협회를 중심으로 잘펠덴 유기농 로컬푸드 직판장을 열었어요. 이 지역은 관광업이 마을을 먹여살리지만 결국 농민들이 없으면 관광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농민이 농촌 전통문화와 지역경관을 보전하기 때문에 바로 그것을 보려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관광업이 가능하도록 문화와 경관을 보전해주는 농민들의 수고가 고마워 농민 직판장을 열었다는 것이다. 그 일에 호텔, 식당 등 관광업 관련 지역상공인들이 먼저 앞장 섰다는 것이다. 생산자인 농민과 소비자인 상공인도 회원으로 가입한 일종의 다중이해관계자 협동조합처럼 운영된다.

이 지역의 농민들은 이렇게 직판도 하고 농박도 해서 부수입을 거두지만 그렇다고 해도 농가가계 사정은 넉넉하지 않다. 농촌의 문화와 경관을 보호하고 보전하는 농민들에게 지급되는 직불금이 아니라면 농촌에서 생활하는 게 여전히 만만치 않은 것이다. 그래서 정부의 농업보조금 프로그램의 목적도 자연을 보호하고 농촌의 문화경관을 유지하는 데 두고 있다.

마을주민들이 주고객으로 로컬푸드, 공예품 등 다양한 지역특산품을 구비한 직판장
▲ 직판장 내부 마을주민들이 주고객으로 로컬푸드, 공예품 등 다양한 지역특산품을 구비한 직판장
ⓒ 정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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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불금은 주정부 20%, 연방정부 30%, 유럽연합 50% 분담 

잘펠덴 직판장이 자리잡은 레오강마을처럼 독일, 오스트리아 등 EU의 공동농업정책은 식량 생산 못지 않게 농촌문화경관 보전을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농촌의 문화와 경관을 보전하는 농민을 보호하기 위해 '문화경관(kulturlundschaft) 직불금'이라는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연방국인 독일이나 오스트리아는 주정부 마다 직불금 규정을 따로 두고 있으나 정책의 기조와 제도의 원칙은 크게 다르지 않다.

독일 바이에른주의 경우 주정부가 20%, 독일연방정부가 30%, 그리고 유럽연합에서 50%를 분담해 지급재원을 조달하고 있다, 특히 바이에른주 농가들의 농사규모가 크지 않은 소농들이 많아 '소농들을 먹여살리는' 직불금이 가장 중요한 농업정책이라 할 수 있다.

독일연방은 1984년부터, 바이에른주는 1988년부터 직불금제도를 도입했다. 농민들이 직불금을 수혜받으려면 직불금제도를 도입한 주요 취지와 목적을 충실히 따르고 이행해야 한다. 우선 탄산가스, 암모니아 등 유해 가스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기후변화 방지를 위한 농사를 지어야 한다. 토양 유실 방지, 질소비료 지하수 오염 방지를 위해 토양과 수자원도 보호해야 한다. 농사를 짓는 동안 전형적인 지역의 고유 문화경관을 보존하고 관리해야함은 물론이다.

특히 농부들은 동식물 등 생태계 다양성을 유지하는 원칙을 고수한다. 당연히 동물애호적 축산을 한다. 독일의 가축동물보호법 1조는 "동물도 인간과 동등한 신의 창조물로서 인간은 이를 보호할 의무가 있다"고 선언하고 있다. 헌법과 동등한 효력을 갖는다. 소는 고뚜레에 매달지 않고 초지와 고산지대에서 뛰놀며 닭은 닭장에 갇히지 않고 활개를 치고 돌아다닌다.

그런데 이같은 문화경관 직불금 프로그램은 강제성이 없다. 농부가 지키기 싫으면 안 지켜도 된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직불금은 받을 수 없다. 안정된 농가살림을 꾸려갈 수 없다. 독일, 오스트리아 등 농가 소득의 50% 이상을 보전하는 직불금을 받지 못하면 소농들은 농촌에서 생활하기 어렵다. 통상 5년 단위로 계약하는데, 가령 5년 동안 농민이 비료를 주지 않고 유기농사를 짓겠다고 약속하면 경관을 보전하는 데 기여했다는 명목과 보상으로 직불금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직불금으로 정부가 소농들의 기본생활을 책임지는 레오강 마을 중심가
▲ 레오강마을 직불금으로 정부가 소농들의 기본생활을 책임지는 레오강 마을 중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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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와 토양과 생태계 보호한다고 약속하면 직불금 지급

바이에른주의 문화경관 직불금 프로그램에는 2016년 신규 지원 항목이 추가됐다. 주로 유기농, 환경보호, 기후변화 방지 등의 목적과 효용을 더욱 강화하는 방향이다. 기본적으로 초지와 밭에 비료를 주지않고 유기농사를 지으면 ha당 273유로를 지급한다.

지구온난화 방지도 강조하고 있다. 암모니아 가스 배출을 방지하기 위해 액비를 밭에 살포하면 형사처벌 대상이다. 대신 액비는 땅 밑으로 뿌리면 1평방미터당 1.5유로, ha당 최대 54유로까지 추가 지급한다. 아울러 하천 오염 등 환경에 부담을 줄 수 있는 원인도 사전 차단하려고 노력한다. 하천 인근 습지를 초지로 전환하면 ha당 570유로를 지급한다.

토양 유실을 방지하고 수자원을 보호하기 위해 특별한 작물을 재배한다면 ha당 920유로를 지급한다. 특히 토양 유실이 우려되는 집약농업단지에서 유기농 재배를 하면 ha당 250유로를 추가 지급한다. 동식물 생태계 다양성 유지를 위한 노력도 인상적이다. 작물이 꽃 피고 열매를 맺을 때까지 유지하면 ha당 600유로를 지급한다.

독일은 숲의 나라다. 도시의 시계를 넘어서면 바로 광활한 숲이 어이진다. 프라이부르크를 둘러싼 흑림(Swaltbaltz)는 마치 검은 바다같다. 그래서 숲을 보호하려는 직불금도 따로 있다. 숲에 접한 밭 주변에 제초제를 뿌리지 않으면 평방미터당 2.7유로를 추가 지급한다. 조류 등 숲 생태계의 다양한 동식물을 보호하려는 목적이다. 이때 독일의 경우 농정기관이 아닌 세무서에서 토양을 관리하므로 땅의 평가에 따라 직불금은 차등 지급된다.

'농민 기본소득' 같은 효과를 주는 문화경관직불금으로 도시노동자 등 국민과 동등한 생활을 보장하는 오스트리아 농촌의 목가적 풍경
▲ 농촌 '농민 기본소득' 같은 효과를 주는 문화경관직불금으로 도시노동자 등 국민과 동등한 생활을 보장하는 오스트리아 농촌의 목가적 풍경
ⓒ 정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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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국민 약속대로 농사 짓지 않으면 패가망신 

또 초지 1ha마다 1.4두 가축을 사육하면 169유로를 따로 지원한다. 단위면적당 사육가축 개체수가 줄어드는 만큼 자연을 보호하고 환경에 부담을 덜 주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이때 유기농 축산농가가 사료가 아닌 목초만으로 사육한다면 ha당 100유로를 지급한다. 특히 500kg의 소를 4개월 이상 자연에서 방목해 키우면 50유로를 지급한다.

일반농가가 유기농가로 전환하려면 2년의 기간이 필요한데 이 전환기간동안 농산물 판매를 할 수 없어 감당하는 손실을 보전해주는 전환농가 직불금도 따로 있을 정도다. ha당 축산농가는 350유로, 채소농가는 915유로, 과수농가는 1250유로이다.

농민들은 당초 계약조건을 철저히 지켜야 직불금을 제대로 받을 수 있다. 가령 9년간 농자재 구입 영수증을 의무적으로 보관해야 한다. 1년에 2회 정도는 산지의 풀을 베서 초지를 아름답게 관리해야 한다. 당연히 화학비료나 제초제를 몰래 뿌리면 안 된다. 만일 이러한 의무 규정을 하나라도 어기면 막대한 벌금이 부과된다.

평소 EU의 농정공무원들은 농민들이 약속대로 농사를 짓는지 철저히 감시한다. 국민의 세금으로 직불금을 지원받기 때문이다. 다만 독일의 농부들은 독일의 공무원들이 감시하지 않는다, 다른 유럽연합 국가에 소속된 타국의 공무원이 불시에 감시하고 적발한다. 만일 단속에 걸리면 다시는 농사를 짓지 못할 정도로 패가망신한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단속에 걸린 사례는 거의 없다고 한다. 독일의 농부는 독일 정부와 공무원을 믿고, 독일의 공무원은 독일 농부를 믿고 있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 ‘독일의 농부’ : 문화경관 직불금, 농업회의소, 협동조합, 가족농가, 유기농업, 사회안전망 등으로 국가와 정부의 돌봄과 보살핌을 받으며, ‘돈 버는 농업’이 아닌 ‘사람 사는 농촌’을 위한 ‘농부의 나라’를 지키며 살아가는 독일, 오스트리아 등 EU(유럽연합)의 ‘행복한 사회적 농부’ 이야기



태그:#잘펠덴, #직불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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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연구소(Commune Lab) 소장, 詩人(한국작가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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