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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의 개헌 논의로 주권자는 다시금 공론장에서 소외되는 기분을 느낄지 모릅니다. 하지만 개헌 논의를 그 자체만으로 '더러운 기득권의 권력 나눠먹기'라 할 수는 없습니다. 헌법은 일종의 계약서입니다. 계약서의 내용이 복잡하다고 정치인들이 무엇을 작성하고 있는지 따져두지 않는다면 우리와 우리의 후손들은 큰 손해를 볼 것입니다. 시민들 앞에 진열된 상품들의 질과 판매자들의 진정성을 요리조리 따져봅시다. -글쓴이 말

권력을 나눌 것인가, 합칠 것인가.. 주권자의 선택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일인 지난해 12월 9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으로 경찰과 집회 참가자들이 대치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일인 지난해 12월 9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으로 경찰과 집회 참가자들이 대치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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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재 두 편은 5년 단임 대통령제와 의원 내각제의 문제를 살펴봤습니다. 우리의 87년 헌법 제도 안에도 분명 한계점들이 있지만, 내각제 역시 현재로서는 매력적인 대체 상품은 아니라는 점을 짚어봤습니다. 오늘은 대통령 중심제와 내각제를 혼합한 성격이 있는 이원정부제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앞서 설명해 드렸듯 민주주의 나라의 주권자는 시민이며 시민이 국가 기구에 정통성을 부여하는 방식에 따라 권력 구조가 이원적이냐 일원적이냐가 나뉩니다. 한국은 권력 구조가 이원적인 나라죠. 시민들 손으로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뽑으니까요. 따라서 정상적인 대통령 중심제 국가라면 대통령과 의회가 서로 견제하며 국정 운영을 한답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 박근혜 대통령과 같은 독단적 리더십의 출현을 빌미로 대통령 중심제의 정당성이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국회의원들이 종종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용어를 쓰고(가령, 김종인 의원), 경쟁 정파에 "패권주의"라고 딱지 붙이기(예를 들어, 개혁보수신당이나 야권 비문계가 "친문 패권" 운운)하는 것을 보셨을 겁니다.

이분들 나름의 정치적 피로감 때문에 그렇습니다. 자신들만의 비전(꿈)을 실현해 보고 싶은데 강한 카리스마를 가진 대통령이 버티고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총선뿐 아니라 대선 때마다 국민 눈치를 봐야 한다면요? 대중의 입장에서는 대통령을 통해 의회 엘리트들을 직간접적으로 견제할 수 있지만 엘리트들 입장에서는 성가시게 느끼겠죠?

따라서 권력 구조를 내각제로 전환해 대통령 직선제를 폐지하고 의회에 민주적 정통성을 몰아줘 자기들끼리 수상도 뽑고, 내각도 구성하고, 사법부 인사권도 쥐고 싶은 유혹이 생기겠죠? 국정 추진을 일원화시켜 자신들의 존재 증명을 하고 싶은 유혹이 생기겠죠? 이처럼 내각제는 효율성은 있지만 엘리트주의에 빠질 위험성도 있습니다.

또한 다수당 내각이 구성되면 대통령만큼이나(혹은 그 이상) 강력한 총리가 출현할 가능성도 있어서, 애초에 명분으로 내세운 독단적 리더십 차단 가능성도 보장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떤 정치인들은 내각제와 대통령제를 '짬뽕'을 시키겠다는 아이디어를 생각해냈습니다.

이 잠뽕은.. 맛있는 짬뽕인가, 맛없는 짬뽕인가, 좌우지간 짬뽕인가

현재 개헌 특위 위원장을 맡고 있는 새누리당 이주영 의원.
 현재 개헌 특위 위원장을 맡고 있는 새누리당 이주영 의원.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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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신년 여론조사에 따르면 시민들은, '대선 후보들이 개헌 공약 후 차기 정부에서 개헌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 47.1%, '대선 전 개헌을 해 새 헌법으로 선거를 치러야 한다'는 의견이 37.5%인 가운데 개헌을 한다면 45.9%가 4년 중임 대통령제, 20.8%가 분권형 대통령제, 16.9%가 현행 5년 단임 대통령제, 7.9%만이 의원 내각제를 선호한다고 답했습니다.

보시다시피 내각제는 가장 인기가 없습니다. 그런데요. 지난 4일 자 <매일경제>에 따르면,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개헌 특위) 소속 여야 의원 36명 중 30명에게(출장 6명 제외)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대선 전에 개헌하자는 의원이 20명(66.7%), 대선 후에 하자는 의원이 6명(20%), 입장 보류 의원이 4명으로(13.3%) 나타났습니다.

또한 절반인 15명이 내각제를, 10명이(33.3%) 이원정부제를, 3명만(10%) 4년 중임 대통령제를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기타 2명, 6.67%). 이것만 봐도 의회 엘리트들이 민심과 완전히 거꾸로 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지 않습니까(관련 기사: "대선前 개헌 67% 압도적".. "혼합형 의원 내각제 도입 50%"). 그런데 흥미로운 부분이 있습니다.

내각제를 선호하는 의원들도 대부분이 '혼합형 내각제'를 선호한다고 합니다. 이것을 요즘 정치권에서는 '분권형 대통령제' '대통령 직선 내각제' 등 말을 뒤죽박죽 통일되지 않게 해서 시민들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들의 정확한 명칭은 '이원정부제'입니다. 취지는 대통령제와 내각제를 혼합한 권력 구조를 만들자는 것.

속된 말로 짬뽕을 시키자는 거죠. 물론 짬뽕도 재료에 따라 맛의 차이가 있으니(그래봤자 결국 짬뽕이지만...), 의원들이 감각이 둔하다면 잘 분별을 못 해 말을 헷갈리게 하는 것일 수도 있고 일부러 맛없는 짬뽕인데 맛있는 짬뽕이라고 공갈치는 것이면 국민 기만입니다. 그럼 의원들이 우리에게 팔려고하는 이 짬뽕. 이원정부제에 대해 따져봅시다.

이원정부제는 이런 제도입니다. 주권자가 대통령을 직선제로 뽑을 수는 있지만, 의회도 국회의원들끼리 수상을(총리) 뽑습니다. 권력도 나눠 가집니다. 국가 원수인 대통령은 통치권을, 내각의 수장인 총리는 행정권을 행사합니다. 통치권과 행정권은 뭐가 다르냐고요? 통치권은 말 그대로 국가를 통치할 수 있는 권한을 말하고요, 행정권은 그 일부로서 행정을 담당할 수 있는 권한이죠. 그런데, 잠깐!

오스트리아 도리스 부레스 국회의장.
 오스트리아 도리스 부레스 국회의장.
ⓒ 오스트리아 의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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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대통령이 행정부 수장이라고 배우지 않았습니까? 그럼 대통령이 행정권을 입법부에 떼주고 나면 뭐가 남을까요. 대통령이라는 상징(구색)이 남습니다. 그럼 내각제와 뭐가 다르냐고요? 사실 별로 다르지 않으니까 지금 의원들도 '혼합형 내각제'랬다가 '분권형 대통령제'랬다가 시민들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실제로 이원정부제를 하는 나라 전부가 대통령이 총리에게 모든 권력을 떼어주지는 않습니다.

절충의 방식에 따라 내각이 우위인 오스트리아식, 대통령이 우위인 프랑스식 등으로 나뉘거든요. 지금 개헌 특위에서 의원들이 주로 주장하는 것은 오스트리아식입니다. 오스트리아는 대통령을 시민의 손으로 직접 뽑지만, 내각 총괄권·각료 임명제청권·외교권·국방권처럼 내치는 물론이고 외치와 관련된 알짜배기 실권을 총리가(!) 쓸어갑니다.

그럼 대통령은 무슨 권한이 있냐고요? 의회해산권(이것은 아무리 대통령이라도 함부로 쓸 수 없는 권한입니다), 총리 및 각료 임명권·해임권(오스트리아 대통령은 해임권을 행사한 적이 없습니다), 군통수권(국방권과 분리되어 버렸습니다), 긴급권 및 사면권(의회가 제청할 때만 가능합니다) 정도만 가져갑니다. 한국은 의회해산권을 빼고는 대통령이 원래 다 갖고 있는 권한들이죠.

총리 및 각료 임명권도 한국처럼 대통령이 사람을 콕 집어 지명하고 의회의 동의나 청문회를 거쳐 임명장을 수여하는 개념이 아닙니다. 의회에서 유력 인사가 나오면 대통령이 임명장만 수여하죠. 지금 정치권 일각에서는 일단 시민들의 거부감을 줄이고자 대통령 직선제를 남겨뒀다가 나중에는 대통령도 의회에서 간선하는 순수내각제로 바꾸자는 주장까지 나옵니다.

실제로 정치학자 듀베르제가 1992년 <새로운 정치 체제 모델: 이원정부제>에서 처음 이원정부제 사례로 지목했던 나라 대부분은 사실상 내각제로 전환했거나 대통령이 행정에 관여하지 않는 관행이 정착됐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결과적으로 접근하면 내각제와 이원정부제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본질적 차이가 있다고 보기 힘듭니다.

제도를 이원정부제로 바꾸고 바지 대통령을 남겨둔다고 문자 그대로 '이원적인' 권력 견제 구조가 정착되리라 본다면 순진한 발상입니다. 실권을 의회가 독점하니까요.

제도도 중요하지만, 사람도 중요하다

옛 프랑스 대통령 샤를 드골
 옛 프랑스 대통령 샤를 드골
ⓒ free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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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프랑스처럼 내각제 대신 대통령제에 근접하는 방향을 선택한 이원정부제 국가도 있긴 합니다. 프랑스는 대통령의 권한이 좀 더 강합니다. 한국 대통령처럼 프랑스 대통령도 의회가 통과시킨 법률에 대한 '거부권'을 갖기 때문입니다. 여당이 다수당일 경우 수상이 대통령에게 종속되는 제왕적 리더십이 출현하기도 합니다.

그런 대통령이 바로 드골입니다. 만약 다수당과 대통령의 색깔이 다르다면 동거 정부의 형태가 나타나는데, 이 경우 협치보다는 의회 해산 위험과 국정 운영의 불안정이 나타나는 게 역사적인 경험입니다. 그래서 더민주 민주연구원 한상익 연구원은 <민주화 체제를 넘어 민주주의 체제로: 성숙한 민주주의를 위한 정치제도 개혁>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대통령제형 이원정부제는 '분권적'이지 않으며 결코 안정적인 '협치'의 권력구조도 아니다. 한국의 일부 학자와 정치인만이 이 용어를 사용할 뿐, 전세계 어느 국가의 어느 학자도 이원정부제를 '분권형 대통령제'라고 부르지 않는다. 이미 내각제로 운영되는 오스트리아 이원정부제와 강력한 대통령제에 근접한 프랑스 이원정부제를 '분권형 대통령제'로 부르는 것은, 마치 대통령제를 유지하면서 분권적으로 운영한다는 잘못된 인식을 국민에게 줄 수 있다. (중략) 만약 내각제를 선호하지 않는 국민을 호도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사용한다면 그것은 더 큰 문제다." (상기 논문, 247쪽) 

이제 이원정부제를 마치 대단한 대안인 양 주장하는 의원들이 왜 정직하지 못한지 독자들께서 이해하셨으리라 믿습니다. 이원정부제는 도로 내각제나 대통령제 중 하나로 수렴합니다(대개는 내각제로요). 물론 내각제가 꼭 나쁜 것이냐? 지난 연재에서도, 이번 연재 서두에서도 누차 말씀드렸지만 분명 내각제도 일면 효율적인 장점이 있습니다.

법안 통과부터 집행까지 일련의 과정들이 간편하고 신속합니다. 국정 추진이 효율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행정권이 거의 의회로 일원화되어 있고, 거부권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대통령이 없으니까요. 내각제를 채택하는 나라들 중에는 한국과 비교도 안 될 결과를 내는 선진국들이 많습니다. 그런데요. 간편하고 신속한 것은 꼭 그 자체로 좋거나 옳은 것은 아닙니다. 간편하고 신속하게 나라를 말아먹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필자는 정치 혐오를 혐오합니다. 한국 사람이 한국 정치인을 무작정 불신하며 정치를 멀리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바보 같은 인간들에게 지배당할 것을 재촉하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요. 내각제 찬성론자들이 한국이 내각제를 채택하면 선진국들처럼 좋은 아웃풋을 낼 수 있다는 정확한 근거를 드는 것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정치를 멀리해서도 안 되지만 국회의원들을 무조건 신뢰해야 한다는 생각도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민주주의 사회는 시민이 주인인 나라입니다. 헌법은 시민들의 계약서이고, 대통령이든 국회의원이든 이 엘리트들은 그 계약 내용을 대신 집행하는 대리인들일 뿐입니다. 시민들이 대리인들을 꼼짝 못 하게 할 생명줄 정도는 쥐고 있어야 마음이 좀 놓이지 않겠습니까. 그 생명줄 중에 하나가 시민이 뽑은 대통령과 국회가 상호 견제를 하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내각제든 이원정부제든 하자는 주장은 대통령의 힘을 빼서 국회를 좀 밀어주자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그런 주장을 하시는 분들이 좀 처지를 바꿔 생각해주셨으면 합니다. 제도 변화. 물론 중요하지만 아무리 제도를 바꿔도 대통령이든 국회의원이든 결국 '사람'이고 그 사람을 뽑는 것도 '사람'입니다. 사람이 안 바뀌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자신들을 밀어달라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하나를 내어달라 할 거면 자신들도 무언가를 내놓는 진정성을 보여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정작 그러지 않는데, 어떤 근거로 우리가 믿고 이원정부제라는 상품을 구매할 수 있습니까. 이분들은 정작 '사람을 바꿀 수 있는 제도'에 대해서는 논하지 않습니다. 다음 '4년 중임 대통령제' 편에서 그것을 논해볼까 합니다.

참고한 글(필자와 저자들의 의견은 일부 다를 수 있음)
- 한상익, 「민주화 체제를 넘어 민주주의 체제로: 성숙한 민주주의를 위한 정치제도 개혁」 『수권정당의 길』, 더불어민주당 민주연구원, 2016년 8월 23일.
- Maurice Duverger, "A New Political System: Semi-Presidential Government", Arend Lijphart ed. Paliamentary versus Presidential Government, Oxford Univ. Press,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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