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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의 개헌 논의로 주권자는 다시금 공론장에서 소외되는 기분을 느낄지 모릅니다. 하지만 개헌 논의를 그 자체만으로 '더러운 기득권의 권력 나눠먹기'라 할 수는 없습니다. 헌법은 쉽게 표현하면 일종의 계약서이며 중요한 것은 계약의 내용입니다. 내용이 복잡하다고 지금 정치인들이 무슨 계약서를 작성하고 있는지 따져두지 않는다면 우리와 우리의 후손들은 큰 손해를 볼 것입니다. 시민들 앞에 진열된 상품들의 질과 판매자들의 진정성을 요리조리 집요하게 따져봅시다. -기자말

하나를 내어달라 할 거면, 받는 쪽도 무언가를 내놔야 한다

참의원 건강 · 노동 · 복지위원회 회의에서 발언 중인 아베 신조 총리.
 참의원 건강 · 노동 · 복지위원회 회의에서 발언 중인 아베 신조 총리.
ⓒ 일본 수상관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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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사회는 시민이 주인인 사회입니다. 주권자가 국가기구에 정통성을 부여하는 방식에 따라 권력 구조도 일원적이냐 이원적이냐가 판가름 납니다. 한국의 현행 5년 단임 대통령제는 이원적 권력 구조입니다. 시민이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각각 직접 선출해 행정부와 입법부가 구성됩니다. 그래서 정부와 의회는 원래 서로 경쟁·견제를 해야 합니다.

대통령은 법률안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고, 의회는 예산안 심의·국정조사(감사) 및 청문회 등을 통해 정부를 견제할 수 있죠. 이러한 매커니즘이 정상 작동하려면 정당 정치 풍토가 민주적이어야 합니다. 또한 양당제보다는 다당제가 좋습니다. 양당제인 데다가 여당이 다수당이면서 대통령에 종속되고 소수당들이 견제할 방법도 없다면 답이 없어집니다.

많은 독자들께서 지난 필리버스터 정국을 기억하실 겁니다. 4.13 총선으로 여소야대가 되면서 상황이 바뀌긴 했지만, 당시에는 다수당이 승자 독식을 하는 의회 제도에 무언가 문제가 있다는 합리적인 의심을 가능하게 했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지금 국회에는 자기 성찰보다는 특정 정파를 논의에서 배제한 채 민주적 정통성을 무작정 의회 쪽으로 더 많이 끌고오고 보려는 의원들이 있습니다.

민주적 정통성을 의회가 독점하거나 주도적으로 가져가는 권력 구조를 바로 '의원 내각제'라 합니다. 이 경우 행정부와(내각) 그 수장인 수상은 의회의 정통성에 기대어 구성 및 선출됩니다. 시민이 직접 대통령을 뽑지 않고(뽑더라도 권력이 상대적으로 약해짐), 국회의원을 뽑으면 그 국회의원끼리 수상을 뽑는 간접 선거 방식으로 실세가 선출되는 것입니다. 독자적 정통성이 없는 내각은 의회가 불신임을 선언하면 권력을 행사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내각과 의회가 서로 견제하기보다 융합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다수당이 의회와 내각 심지어 사법부 구성까지 장악하므로 아주 강력한 힘을 갖게 됩니다. 수상이 집권당의 확고한 리더라면 대통령 중심제 국가의 대통령보다도 막강해지는데 이를 '프레지덴셜라이제이션(presidentialization)' 현상이라 합니다.

현행 5년 단임제가 '제왕적 대통령제적 요소'를 일부 내장한 건 맞지만 이를 빌미로 '의원 내각제' 개헌을 하자는 주장이 왜 앞뒤 안 맞는 주장인지 이제 이해가 가실 것입니다. 물론 내각제라고 다 같은 내각제는 아닙니다. 수상 및 각료 선출 방식, 의원직과 내각 겸직 허용 여부, 산하 위원회 구성 및 위상, 토론 방식, 좌석 배치 등에 따라 종류가 다양합니다.

성향이 다른 정부끼리 연립 내각을 통해 연정을 성사시키기도 하고 다수당에도 지도부가 존재하는 만큼 수상이 자의적인 권력을 행사하지 못 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또한 내각제 개헌을 하면 입법과 집행이 쉽고 빨라져 국정 추진이 탄력을 받는 장점이 있습니다. 간혹 내각제 개헌 반대론자들 중에는 일본 사례를 들며 내각제 개헌을 하면 보수가 '영구 집권'할 것이라고 주장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네. 분명 일본식 내각제가 세습적이고 보수 독재적 모습들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필자도 일본식 내각제 개헌에 반대합니다. 그러나 그 때문에 내각제 제도 자체를 악마화하는 것은 근거가 탄탄하지 못 합니다. 결과론적으로 접근하면 한국이 일본보다 못 한 분야들이 굉장히 많기 때문입니다. 외교, 경제, 안보, 과학기술, 제도의 효율성 등 하나하나 국제적 통계들을 나열한다면(굳이 그러지는 않겠지만) 말입니다.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경제민주화'라는 자신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의원 내각제를 적극 주장해온 의회 엘리트의 전형이다.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경제민주화'라는 자신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의원 내각제를 적극 주장해온 의회 엘리트의 전형이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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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구제불능의 정치 체제를 탑재한 국가라고 할 것이라면 적어도 결과적 측면에서는 한국이 훨씬 절망적인 나라라 해야 옳을 것입니다. 그럼 과정론적으로 접근하면 어떨까요. 일본처럼 세습적 폐단이 있는 내각제 말고도 유럽의 독일식 내각제를 채택함으로써 정당성을 얻는 방법도 있습니다. 이 경우 중요성이 대두되는 것은 선거 제도입니다.

내각제 개헌을 하면, 시민이 국가의 '실세'를 직선으로 뽑지 않으므로 국회의원을 한 번 뽑을 때 잘 뽑아야 하고(물론 대통령 중심제도 투표는 잘 해야 합니다) 민의가 정확하게 반영되는 선거 과정이 더욱 필요해집니다. 정치학자 아렌트 레이파르트의 <민주주의의 양식>에 따르면, 총선 결과에서 나타나는 불비례성(실제 의석수로 반영되지 못하는 유권자의 표의 비중)은 한국이 21.97%로 독일의 2.55%에 비해 현격히 높습니다.

이른바 '독일식 정당명부제' 선거 제도 도입과, 내각제 개헌을 함께 하면 한국도 선거 과정에서 승자 독식과 민의 누수를 배제할 수 있을지 모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현재 내각제 개헌에 반대합니다. 첫째, 일본이든 독일이든 집권당이 좋은 결과를 낸다고 한국 집권당도 그러리라는 명확한 근거가 없습니다. 둘째, 내각제의 장점은 쉽고 신속한 국정 추진입니다. 그런데 쉽고 신속한 것은 그 자체로 좋거나 옳은 게 아닙니다.

쉽고 신속하게 나라를 말아먹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 경우 '어떤 당' '어떤 리더십'이냐를 따지는 인치주의자들(제도보다 사람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반론에 부딪힙니다. 셋째, 대통령 중심제든 내각제든 결국 시민은 투표권을 행사합니다. 인치주의자들이 답하지 못 한 문제를 내각제 찬성론자들도 맞닥뜨립니다.

지도자를 한 번 뽑을 때 잘 뽑고 맹목적인 지지를 보내지 않으며 합리적인 비판도 가능한 시민이 있어야 한다는 건데요. 도대체 그런 강한 시민을 어떻게 육성할 것인지(논점1) 지금 내각제 개헌을 말하는 사람들은 정작 그러한 비전을 전혀 제시하지 않고 있습니다. 대통령제에서 내각제로 바꾼다고 시민사회가 하루 아침에 달라지지는 않을 테니까요.

넷째, 그러면서도 시민이 국가 수반을 직접 뽑을 선거권은 뺏겠다는데 평범한 사람들이 과연 이런 상품을 선뜻 구매하고 싶어질까요? 결국 내각제라는 상품은 시민의 권한 행사 범위를 늘리는가라 물으면 필자는 '아니오'라 답하겠습니다. 오히려 좁아지죠. 그렇다고 시민의 문제의식을 신장시킬 장기적 비전을 담고 있는가라고 물어도 '아니오'라 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두 가지가 해결되면 필자도 내각제에 찬성할 용의가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추가적인 해명이 없다면 주권자의 한 사람으로서 이 상품을 선뜻 구매하기가 매우 꺼려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왜 국회의원들은 유독 내각제를 사랑하는 걸까 곰곰이 생각해봤습니다.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정치적 피로감이 가장 큰 원인이 아닐까 싶습니다. 대통령 눈치, 선거철 국민 눈치 좀 덜 보고 자기들 나름의 꿈을 실현하고픈 욕망이랄까요.

네. 인간이라면 그런 욕망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자아 실현의 꿈은 엘리트들만 가진 것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도 갖고 있습니다. 이번 촛불 민심에서 필자가 절실히 느낀 것은 정치가들의 기본적 속성이란 주권자가 늘 견제를 해야 눈치를 본다는 것입니다. 광장에서 직접 민주주의를, 선거로 대의제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도 다 견제입니다.

박 대통령 탄핵안 가결은 '대선이 가까워지는 시점의 시민들의 분노 표출'이라는 조합이 위기감에 휩싸인 의회 엘리트들을 움직인 성과였습니다. 5년 단임 대통령제 즉 이원적 권력 구조를 유지하면 직접 선거에 참여할 기회가 지금처럼 유지되겠지만, 내각제 개헌을 하면 이 기회는 줄어듭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대통령을 통해 국회의원들을 견제할 길이 좁아집니다.

의원들이 정 내각제 개헌을 관철시키고 싶다면 무언가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할 텐데, 그런 흥정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게 이 문제의 핵심일 것입니다. 혹자는 의회를 내전과 무력충돌을 '말의 싸움'으로 대체하는 제도라고 평가하더군요. 좋습니다. 그런데 그 장수들은 결국 주권자들을 위해 싸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주권자가 장수들을 통제할 수 있는 길을 장수들 스스로 차단하고 좁히려 든다면 이것은 쿠테타가 아닐까요?

참고한 글(필자와 저자의 의견은 일부 다를 수 있음)
- 한상익, 「민주화 체제를 넘어 민주주의 체제로: 성숙한 민주주의를 위한 정치제도 개혁」『수권정당의 길』, 더불어민주당 민주연구원, 2016년 8월 23일.


태그:#개헌, #의원 내각제, #내각제, #김종인, #아베 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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