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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원봉사자 유영달씨
 자원봉사자 유영달씨
ⓒ 유영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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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서 로봇엔지니어로 일하던 유영달씨(61)는 은퇴를 앞두고 자신의 버킷리스트를 실행하려고 마음먹는다. 버킷리스트 중 한 가지 항목은 다름 아닌 '봉사활동'이었다. 어디를 가서 어떤 나눔을 할까 고민하던 차에 한국의 경남 산청에 위치한 한센인 복지시설 성심원에 가게 된다.

그곳에서 만나게 된 한센인 할머니 한 분이 마지막 소원이라며 소록도에 있는 자신의 친구를 찾아달라고 간청한다. 사람을 찾기 위해 간 것, 그게 그와 소록도의 첫 인연이었다.

할머니 친구 분을 찾아드리고 짧은 봉사활동 시간을 가졌다. 다시 캐나다로 돌아왔지만, 소록도의 여운은 그의 가슴을 계속 따뜻하게 만들었다. 잠을 자는데 소록도에서 만난 어르신들이 꿈에 나왔다. 다시 오라고, 다시 올 수 없겠냐고….

그는 즉시 짐을 꾸렸다. 3개월만 있을 요량으로 3개월 치의 짐만 쌌는데 그 길로 소록도에 머물게 됐다. 그는 여기에 계신 어르신들 한 분 한 분 모두가 평생 공부(참 사람이 되는 일)의 스승이라고 말한다.

- 현재 소록도에서 어떤 봉사활동을 하고 계신가요?
"어르신들 식사수발, 목욕, 청소, 간병, 말벗 해주고 있어요. 제가 전문가는 아니지만, 영적 돌봄 전문가 교육을 수료하여 어르신들 내면 상처 치유에 도움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특별한 것은 생각 못하고 어르신들과 같이 생활 하면서 어르신들께 필요한 게 뭔가 고민해요. 울 때 같이 울어주고 웃을 때 같이 웃어주고. 저는 말 들어주는 것밖에 없어요."

- 소록도는 어떤 곳인가요?
"한센인과 이들을 돌보는 국립소록도병원 직원과 가족들 그외 자원 봉사자들이 살고 있어요. 한센병은 한센병균의 감염으로 오는 만성피부질환인데 지금은 발병율이 거의 없고, 걸리더라도 주사 1번 맞고 3개월 약 복용하면 완치된다네요.

일제시대에는 소록도에 한센인들이 5000~6000명까지 됐다고 해요. 일본 정부에서 한센병 환자 치료 격리 정책으로 소록도에 격리시킴으로 차별, 편견 고통의 역사가 시작되었지요. 지금은 7개 마을에 530여 분이 살고 계시고 평균 연령 75세이세요.

후유증으로 여러가지 변형이 생겨 외모와 손발, 시각 장애가 있으시지요. 그런 외형으로 사람들 편견과 차별 속에 40~50년을 사셨으니 얼마나 힘드셨겠어요. 소록도는 치유의 땅이에요. 저에게 이 어르신 한 분 한 분이 모두 평생과제의 스승이고 그분들의 히스토리가 다 귀한 역사책이에요."

- 한국에선 장애에 대한 편견이 심한데, 캐나다는 어떤가요?
"캐나다는 이런 장애인 분들을 같이 어울려 같은 동네에서 살도록 하는 정책을 펴더라고요. 격리가 아니고 같은 마을 공동체에서 함께 살아가는 형태로요. 제가 외국에서 20년 살아보니까 그게 바로 선진국인 것 같아요."

 간병하고 있는 유영달씨
 간병하고 있는 유영달씨
ⓒ 유영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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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센인 분들은 마음의 상처가 클 것 같아요.
"가끔 대학병원에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입원하시면 보호자겸 간병을 위해 입원실에 같이 있어야 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럼 같은 입원실에 계시는 다른 환자나 보호자 분들이 '저 양반, 다른 방에 옮겼으면 좋겠다'고…. '앞도 못 보고 손도 없는 저런 노인네를 고쳐서 뭐하냐'고 하실 때가 있어요.

어르신들한테 그 느낌이 다 전달이 돼요. 마음이 아프죠. 그럴수록 저는 더 우리 어르신들만 보살피는 거죠. 언젠가 간병봉사 갔을 때 치료 제대로 받으시고 퇴원하던 어르신 한 분이 저한테 '유선생, 당신이 나 살렸다'고. 길게 얘기도 않고 '당신이 나 살렸다고, 너무 고맙다'고 하더라고요. 그 한마디에 간병하던 2주, 3주의 고통, 어려웠던 건 봄에 눈 녹듯이 사라지죠."

- 사랑을 주는 것 같아도 오히려 사랑을 더 많이 받고 있는 셈이네요.
"맞아요. 요새는 육지와 소록도간 다리도 놓이면서 봉사자들이 많이 와요. 육지와 사람들 왕래가 많아 차별과 편견이 많이 개선되어 가고 있어요. 어르신들이 과일 같은 것, 혼자 드실 양도 안 되는데 숨겨놨다가 저를 살짝 불러요. 이거 봉사회관 가서 먹으라고….

그럼 혼자 먹을 수 있나요. 그 자리에서 사과 깎아서 같이 먹어요. 사과 한 개 같을지 모르지만, 어떻게 보면 그분들한텐 전부일 수도 있거든요. 따뜻한 마음이 어르신들로부터 나와서 그런지 사과 한 조각 같이 먹는 게 서울 제일 좋은 호텔에서 밥 먹는 것보다 나아요.

많은 분들이 소록도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차별과 편견을 없앴으면 좋겠어요. 저도 이 봉사활동을 끝내면 소록도에 남기려고 봉사 후 저녁마다 어르신들 만났던 이야기, 감동받은 사연, 이런 걸 쭉 기록하고 있어요. 흔적을 남기면 저에게도 도움이 되고, 다른 분들한테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소록도 봉사 43년 오스트리아 마리안느 수녀님과 함께
 소록도 봉사 43년 오스트리아 마리안느 수녀님과 함께
ⓒ 유영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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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록도 자원봉사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국립소록도병원 홈페이지에 자원봉사란이 있어요. 봉사자가 워낙 많아서 설명이 잘 되어 있어요. 어떻게 신청하는지, 담당부서, 전화번호, 봉사활동 내용 다 나와 있어요. 꼭 한번 오셔가지고 소록도 어르신들하고 함께 하는 시간 가져보세요.

선입견 갖지 말고 우리 시골 동네 할아버지 할머니처럼 생각하면 좋겠어요. 가까운 부대 군인 아저씨들도 한 달에 두 번씩 목욕봉사 하러 와요. 그 친구들하고 나하고 같이 어르신들 목욕봉사하기도 하고 이러거든요.

군인 아저씨들도 봉사 끝나고 나면 똑같은 이야기를 해요. '제대하고 나서 다시 한 번 와야겠습니다.' 이렇게요. 최근에 고시 패스한 청년들, 미국이나 캐나다 등 해외에서도 학생들이 많이 와요."

- 마지막으로 60년 정도 살고 보니까 인생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인생은 축제이지 고해가 아니에요. 삶은 선물이지 짐이 아닌 것 같아요. 제자리에서 제 몫을 다하는 인생을 살아오면서 행복했어요. 그 과정은 항상 비움의 여정이었어요. 비우니 겸손해지고 사랑의 여정으로 바뀌었습니다. 인생을 계절로 치면 봄 여름 가을 겨울인데, 전 이제 가을을 막 넘어간 거잖아요. 인생의 2막을 잘 준비해서 겨울을 맞이해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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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월간 <세상사는 아름다운 이야기(http://m.post.naver.com/my.nhn?memberNo=4832522)> 1월호에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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