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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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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달력이 이제 달랑 한 장 남았습니다. 한 장을 남겨둔 달력처럼 제 연차 휴가도 하루가 남았습니다. 조금은 긴 여행을 다녀오기 위해 며칠을 몰아서 휴가를 사용하기도 했고, 육아를 위해 하루이틀 정도 시간을 내기도 했습니다. 딱히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냥 좀 쉬고 싶어서 갑자기 휴가를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전 대체로 원하는 대로 휴가를 쓰는 편입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에서 직장인들에게 주어진 휴가를 마음껏 사용하는 것은 어쩌면 꿈같은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휴가를 비교적 자유롭게 사용하는 편인 저도 10여 년의 직장생활에서 올해처럼 휴가를 전부 사용한 경우는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마다 그리고 다니는 직장마다 다를 수 있지만 직장인들이 자유롭게 휴가를 사용하는 것이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닌 듯 합니다. 있는 휴가를 전부 사용했다고 하면 주위 동료들조차 화들짝 놀라니까요.

현재 우리 나라의 법정 연차 휴가일수가 충분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법으로 정해진 휴가를, 당연히 사용해야 할 휴가를 사용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직장인들에겐 왜 쉽지 않은 것일까요? 모든 직장인이 이렇다라고 일반화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저의 지극히 개인적인 직장생활 경험과 주변 동료들에게서 들었던 말들을 기반으로 직장인들의 휴가 사용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휴가를 안쓰는 혹은 못쓰는 이유

노동자들
 노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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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 직장인들이 휴가를 사용하지 못하는 혹은 사용하지 않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는 듯한데, 가장 먼저는 한 마디로 '눈치'가 보이기 때문입니다. 휴가를 사용하지 않는 것을 성실함의 척도라 생각하는 상사나 동료가 적지 않게 있고, 휴가로 자리를 비우게 될 경우 자신의 업무를 동료에게 맡겨야 하는 부담이 있기도 합니다. 마감 기한이 정해져 있고 협력해서 해야만 하는 업종에 종사하는 경우 이 부담감은 특히 더할 것입니다.

근면과 성실로 단기간에 압축적 성장을 이뤄냈던 우리 나라 산업화 시기의 경험, 즉 휴가도 반납하고 밤샘 근무를 해서라도 목표를 이뤄냈다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지는 문화가 노동현장에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상사의 압박이 없다고 해도 휴가를 사용할 때 가지게 되는 묘한 죄책감의 근원은 산업화 이후 이어져왔던 이와 같은 경험에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게다가 각 개인마다 점수를 매기고 그에 따라 모든 이들을 일렬로 줄 세우는 평가 시스템이 있는 곳에선 다른 사람에 비해 자리를 많이 비우는 것은 은근한 압박이 됩니다. 인사평가 기간이 가까워 오면 가능한 자리를 비우지 않으려 애쓰거나 소위 야근도 기꺼이 감내하면서 인사 평가권자의 눈에 들려고 노력하는 동료들의 모습을 보노라면 임금 노동자의 팍팍한 현실에 씁쓸해지곤 합니다.

다른 한편으로 휴가를 사용하지 않으면 해당 일수만큼 연차 수당이라는 명목으로 보상을 해주는 제도가 있는 것도 직장인들의 휴가 사용을 제한하는 데 한몫 합니다. 마땅히 사용해야 할 휴가를 사용하지 않았다면 그에 해당하는 만큼의 일당을 지급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긴 합니다. 하지만 이 제도에는 노동자들이 쉼보다는 금전적 보상을 선택하도록 암묵적으로 강요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휴가를 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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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용 휴가에 대해 금전적 보상이 없었던 몇 년 전에는 회사나 상사의 압박에 의해 서류상으로는 휴가로 처리해 놓고 출근을 해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금전적 보상이 생기자 외부의 압박이 없어도 자발적으로 휴가를 사용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꽤 많아졌습니다. 놀랍게도 휴가를 1년에 단 하루도 사용하지 않는 동료들도 있는데, 이들은 자발적으로 금전적 보상을 선택한 경우이거나 그것을 성실함이라 여기는 경우 중 하나입니다.

마지막으로 휴가를 사용하지 않는 또 하나의 이유는 휴가를 낼 사유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주변 동료들 중엔 가족이 아프거나 경조사가 있거나 하는 등 특별한 이유가 있어야만 휴가를 사용하는 것이라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단순히 쉴 줄을 몰라서 휴가를 사용하지 않는 경우도 있죠. 또한 이래선 안 되겠지만 일부 남성 가장들 중에는 휴가를 내고 집에 있는 것이 더 피곤해서 휴가를 사용하지 않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와 같은 부류의 사람들은 휴식 혹은 쉼의 가치를 잘 느끼지도 필요로 하지도 않습니다. 심지어 휴가를 최소한으로 쓰면서 근면하게 일한 자신의 성실함을 스스로 칭찬하기도 합니다. 제가 그냥 별 이유 없이 휴가를 내고 찻집에 앉아 책을 읽거나 혹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멍하니 있을 때도 있다고 하면 이분들은 결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곤합니다. 삶에서 다양하게 누릴 수 있는 유희를 잃어버리고 있기에 그 시간을 일로 채우려고 하는 경향이 커지는 것 같습니다.

내년엔 휴가를 전부 사용해 봅시다

매년 노동시간과 노동생산성 등에 관한 OECD국가 통계가 발표되면 우리 나라의 장시간 노동과 비효율성에 대해 지적하는 기사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기업들도 이와 같은 현상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노동구조를 바꿔보려고 노력을 하기는 합니다. 하지만 과거 오랫동안 이어져오는 성실함에 대한 생각을 넘어서기 쉽지 않습니다. 게다가 현재의 경쟁적 인사평가 제도 하에선 위와 같은 통계 수치를 개선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직장에서 휴가는 당연히 보장받아야 하는 권리 중의 하나입니다. 상사나 동료의 눈치를 보거나 금전적 보상의 유혹으로 인해 혹은 경쟁의 압박으로 인해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를 빼앗기거나 포기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드러나지는 않지만 암묵적으로 휴가 사용에 압박감을 느끼게 하는 기업들을 제재할 법적 조치도 필요하겠지만 그것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기업뿐만 아니라 노동자들도 '비효율적인 부지런함'을 미덕으로 여기는 문화에서 벗어나야 할 것입니다.

머지않아 보편화된 인공지능의 시대를 맞이하게 될 텐데 이런 시대에도 노동현장에 오래 머무는 것을 미덕이라 할까요? 많은 것을 기계가 대체하게 될 시대에 더 중요해 질 것은 창의성입니다. 창의성을 업으로 삼는 여러 예술가들은 창의성을 발휘하는 데 중요한 것은 '잉여'의 시간 혹은 '멍때리는' 시간이라고 합니다. 즉, 집중하던 것으로부터의 단절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과거엔 고단한 몸을 쉬게하는 휴가가 필요했다면 이젠 생각을 위한 휴가가 점점 더 중요해질 것입니다.

아직은 우리 나라 노동 현장이 마음 편히 휴가를 사용하기엔 어려운 상황인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변화는 기존의 것에 아주 작은 틈을 내는 것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습니다. 자리를 비우는 것이 눈치보이고 부담스러운 것이지만 가끔씩은 그 부담을 고스란히 안고 아무 이유 없이 그냥 휴가를 써 보는 겁니다. 앞으로 변화될 미래에 대비한다 생각하고 2017년 새해엔 가진 휴가를 전부 사용해 보는 것을 목표로 삼아 보는 건 어떨까요?


태그:#연차휴가, #직장인, #장시간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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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건대, 지치지 말기를. 제발 그러하기를. 모든 것이 유한하다면 무의미 또한 끝이 있을 터이니. -마르틴 발저, 호수와 바다 이야기-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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