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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 탄핵 가결 이후 첫 집회가 열린 10일 오후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정권 끝장내는 날' 촛불집회에 참석한 수십만명의 시민들이 청와대를 향해 행진하고 있다.
▲ 청와대로 향하는 촛불 박근혜 대통령 탄핵 가결 이후 첫 집회가 열린 10일 오후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정권 끝장내는 날' 촛불집회에 참석한 수십만명의 시민들이 청와대를 향해 행진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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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쟁은 문화를 거쳐 촉발ㆍ전파된다. 미디어 기술과 도덕감정이 항쟁의 교향곡을 합주한다. 대의ㆍ상징ㆍ언어ㆍ프레임ㆍ감정ㆍ이념ㆍ서사가 각종 미디어를 통해 행동을 촉발한다. 2008년 촛불부터 인터넷과 디지털미디어는 가장 중요한 조직자(네트워커)가 되었다. 또한 그 속성은 운동의 조직 방식 전체에 영향을 끼쳤다.

SNS에서의 조직과 확산이 이번 항쟁의 큰 특징이다. 참가자들은 실시간으로 시위 참가에 대한 '소셜한 공감'을 끌어냈고, 거대 미디어가 잡아낼 수 없는 집회ㆍ시위의 세부를 중계했다. 광화문 인근에 결집한 미디어와 채널의 수는 참가자×N=(거의) 무한대였다. 이는 지배의 '송출량'을 압도해버렸다. 이는 박근혜의 '베이비토크'를 풍자와 시국성명의 언어가 양과 질에서 압도한 현상과 비교될 수 있다.

시위나 저항행동 자체만이 아니라 연설ㆍ토론회, 문학ㆍ음악ㆍ미술ㆍ공연 등 복합ㆍ종합적인 문화예술의 작용으로 광장 민주주의의 '현장'과 그 안에서 주체성이 구성된다. 투쟁의 문화화ㆍ축제화는 2000년대 이후 증대돼왔으며 이번 촛불항쟁에서도 두드러진 특징이다. 주류 언론은 '문화화'를 곧 촛불의 '비폭력ㆍ평화'와 등가로 놓고 촛불의 진행과정을 규정하거나 통제하려 했다. 지배의 프레임에 갇힌 '비폭력ㆍ평화'를 비판하면서 '문화화'를 비판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광장의 문화는 단순한 수단이나 투쟁의 어떤 부산물ㆍ결과물이 아니다.

운동ㆍ봉기ㆍ항쟁은 새로운 문화적 주체와 산물을 만들어내어 빠르고 큰 문화적 변화를 야기하고 가속화한다. 혁명의 문화는 개방적이고 자유주의적이며, 동시에 '당연히' 평등주의적이다. 그러나 아직 초기적이며 혁명의 급진화ㆍ내재화(습속과 사회세계 속에 스미게 하는 것)하지 않은 단계에 있는 2016년 촛불의 문화적 효과가 무엇일지 짐작하기 어렵다. 87년 7-9월 노동자대투쟁이 그랬듯, 촛불이 어떤 사회개혁의 요구와 접속하여 불길이 될지, 아직은 미지수다. 그러나 반드시 그래야 한다.
 
2016년 촛불시위의 다중적 주체와 문화적 표현

박근혜 대통령 탄핵 가결 후 첫 주말인 10일 오후 광화문광장 일대에서 열린 '박근혜정권 끝장내는 날' 촛불집회에 많은 시민들이 참여하고 있다.
▲ 탄핵 가결 후에도 꺼지지 않은 '촛불의 바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가결 후 첫 주말인 10일 오후 광화문광장 일대에서 열린 '박근혜정권 끝장내는 날' 촛불집회에 많은 시민들이 참여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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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중은 지배권력과 상호작용ㆍ쟁투하면서 광장의 민주주의를 전개한다. 그리고 현장에서의 주체화ㆍ자력화(empowerment)를 통해 혁명적 군중이 된다. 2016년 촛불의 문화정치의 상당 부분은 2008년으로부터 오고 또 수정ㆍ보완된 것이라 보인다. 08년의 촛불은 혁명에 관한 상상력을 전면 개정했다. 혁명은 '전위조직+노동계급+통일전선'이 아니라 다른 어떤 주체성에 의해 수행되어야 할 것이라는 점이 좀더 분명해졌다.

그런데 50만 명이 결집한 08년 6월10일 밤 명박산성을 넘으려던 시민들의 발을 붙잡은 것은 지도부의 부재가 아니라, '혁명'이 야기하는 본원적 공포, 또는 대중 스스로의 '대중에 대한 공포'와 온몸을 결박한 듯한 '준법 의식'이었다. 새로운 사회운동의 의식과 광장의 정치는 자유주의나 합법주의와 함께 도래했던 것이다.

이제 80년대의 혁명론대로의 혁명이 일어나리라 믿지 않지만, 새로운 방식의 혁명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는 아는 사람도 별로 없다. 어느 경우든 중요한 것은 모순적인 두 가지다. 첫째 과거로부터 직접행동과 광장 정치의 양식을 끊임없이 발전시켜야 한다는 점. 둘째 그러나, 새로운 참여자들은 과거에 대한 기억 없이 참여한다는 점. 16년의 새로운 참여자들은 누구인가?

촛불은 개인성ㆍ성찰성ㆍ비폭력성을 자체로 내장하고 있다. 내성성과 수동성도 내포한다. 따라서 '주최측'이 촛불을 들고 참가하고 걷는 집회ㆍ시위를 기획했다는 사실 자체가 급진성이나 폭력적 전화 가능성을 멀리한 것이다. 촛불 든 손은 다른 일을 하기 어렵다. 대신 촛불은 다른 수단과 달리 혼자 준비할 수 있으며 어린이ㆍ장애인ㆍ노인들도 들 수 있다. 촛불은 가장 넓은 참여성과 내성적인 행동성을 모순적으로 결합한다.

오늘날 취향은 정체성 자체를 구성하고 '정치'를 운반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촛불에 참가하는 동호인ㆍ마니아ㆍ덕후ㆍ팬들은 기존의 학생회나 노조 또는 시민사회단체와 정당 들이 조직하지 못하는, 네트워크와 다중의 분파가 엄청나게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사실이다. 특히 이번 촛불 항쟁에서 그것은 깃발을 통해 표현됐다. 08년 촛불과 달리 16년의 촛불들은 다양한 깃발을 만들어 자신의 정체성ㆍ소속을 표현하였으며 더 나아가 깃발로 풍자적이고 비판적인 메세지를 전달하고자 한다. 깃발로 표현된 이 새로운 '조직'들은 대체로 두 가지 종류로 보인다.

첫째, 가상의 조직이거나 이번 정국에서 급조된 개인들의 모임.(장수풍뎅이연구회, 고산병연구회, 전국 한시적 무성욕자연합, 민주묘총, 범야옹연대, 전국아재연합, 힝입니다ㅠ 등등.) 이런 조직 아닌 조직은 촛불의 확산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동시에 이는 일반시민과 사회세계의 자연인들이 새로 정치성ㆍ조직성을 획득하기 위한 우회로를 의미한다.

달리 말해 촛불의 주체는 매우 다양한, 조직되지 않은 '자유로운 개인들의 네트워크'로 간주될 수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학생회도 노조도 '가입율'이 현저하게 낮은 한국의 사회세계가 있다. 노조와 학생회는 이제 불필요한 구시대적 네트워크 형식인가? 촛불의 자유주의와 다양함은 광장 너머 세계에서의 정치적 연대의 취약함과 불가능함의 동전의 양면 아닌가?

둘째, 근래 새로 생겨난 소규모 공동체나 연대조직들은 이번에 오프라인에서 새롭게 연대하며 깃발을 들고 행동에 나섰다. (예: 전국청소년혁명, 지옥에서 온 페미니스트, 박하여행, 혜화동인문학노동자, 민주팬덤연대 등) 이들은 강렬한 정체성과 운동성을 보이면서 중요한 세력이 되어 기성의 질서와 광장 민주주의의 성격 자체도 문제 삼고 있다. 이들은 새로운 행동가들로서 세상을 바꿀 것 같다.

여전히 마중물과 같은 역할을 하는 존재들의 헌신과 희생으로써 대규모 집회ㆍ시위는 가능하다. 이번 '판'을 만든 사람들 중에는 지치고 않고 투쟁했던 세월호 유가족들과 이화여대 학생들 같은 존재가 있다. 또한 본격적인 투쟁을 시작하여 희생과 위험을 감내하며 싸운 전통적인 조직 대중이 있다. 바로 민주노총과 백남기 선생의 전농이다. 그런데 왜 대학생ㆍ청소년이나 '혼참러들'보다 노동자들의 대오는 주목받지 못하는 것일까? 민주노총을 폭력집단으로 매도하는 언론이나 노동자들의 구호를 불편해 하는 시민들은 아직 다수다.

두 가지 지양이 필요하다. 한편 절박한 싸움의 과정에서 고안되고 발전해온 질박하고 민중지향적인 조직운동의 문화를 이해해야 하며, 노동자 집회 문화와 노동운동 문화의 어떤 측면들도 성찰과 개혁을 필요로 한다. '운동권 혐오' '80년대 혐오'가 세대를 가로지르고 있을 뿐 아니라, 미소지니 문제를 비롯한 광장의 행방 자체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래야만 광장의 저변과 지역에서 헌신하는 민주노총ㆍ전농의 선도성과 광장 민주주의 중앙무대에서의 소외라는 비대칭은 해소될 것이다.

비폭력ㆍ합법주의의 문제와 촛불의 성격

촛불집회 현장 모습
 촛불집회 현장 모습
ⓒ 노순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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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모로 '폭력 대 비폭력' 프레임은 공허하다. 사실 '현장'에서 폭력ㆍ비폭력 문제를 결정하는 데 있어 다중은 이니셔티브를 갖고 있지 못하다. 또 언제나 공권력과 다중의 힘은 비대칭적이다. 시민ㆍ민중의 힘이란 비조직적이며 기본적으로 '비폭력' '반폭력'을 지향한다. 그런 점에서 '과거의 시위는 폭력적이고 비성숙한 것이었는데, 시민들이 성숙해졌다'는 식의 말은 사실에 완전히 어긋날 뿐 아니라, 촛불에 부여된 굴욕적이고 엘리트주의적인 헛소리였다. 언제나 민중과 시민단체는 '성숙'해있었다.

또 이런 말은 '현장'의 폭력이 기본적으로 경찰과 지배에 의해 유발된다는 사실을 숨기고 떠넘긴다. 이번엔 눈치 빠른 경찰이 권력보다는 민중의 분노나 여론을 더 많이 살피려 했기에, 또한 백남기 선생의 희생이 대규모 저항의 바탕이었기에 감히 물대포 같은 수단을 쓰지 못한 채 오직 차벽만을 동원했다. 물론 비폭력은 폭력에 비해 인륜성에 본연에 더 맞다. 또 이제까지의 촛불의 노선ㆍ방법으로 옳았으나, 근본적 과제는 비폭력 자체가 아니라 '복종하지 않는 반폭력'과 효과적인 퍼포먼스이다. 

2015년 민중총궐기의 후과와 민주노총ㆍ한상균 위원장에 대해 쏟아진 비난 여론을 기억하는가? 합법주의와 '반노동'은 촛불의 구성원들에게 아직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보인다. 맥락을 초월해서 터져나오는 비폭력 구호는 물론, 쓰레기 줍기나 차벽 스티커 떼기 등도 어떤 강박처럼 보인다.

이명박정권 이래의 불법ㆍ폭력 시위 프레임은 시민 스스로로 하여금 자유의 영역을 협소하게 했다. 체제 속 자유주의자-시민은 자기가 실제로 얻은 양의 자유(질도 낮다)보다 더 많이 국가와 법에 자기를 동일시함으로써 기꺼이 자유를 유보ㆍ양도한다. 과연 '법 바깥'에 진정한 주권과 정치가 있을 수 있음을 이번 촛불은 인식하게 하고 있는가? 멈추지 않고 헌법재판소 앞에서 붙기 시작한 촛불은 그렇게 양도된 자유와 주권을 재인식하고 '정치의 (과잉) 사법화'를 교정하기 위한 좋은 시도라 보인다.

강박적 법치주의와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과도한 강박은 해방이나 혁명과는 거리가 있다. 이는 의회주의와 광장에 대한 '여의도 정치'의 헤게모니에 대한 추인과도 연결된다. 광장의 정치는 '여의도 정치'와 변증법의 관계에 놓이지만, 기본적으로 선거와 의회라는 '여의도 정치'는 깔때기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현재 거기 모두 빨려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촛불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촛불은 '박근혜 탄핵'에 부근 어딘가에 멈춰 서성대고 있다. 새로운 세상을 건설하자는 말들은 무성하지만 그게 뭔지 모른다. 촛불의 '혁명(성)'이 운위되지만 새로운 정체의 구성은 중요 의제가 아니며, 신자유주의의 극복 문제도 마찬가지다. 어떤 새로운 나라를 만들 것인지 뚜렷한 비젼을 제시하는 정치세력이 없다. 물론 정권교체도 중요하지만 그것은 목적이 아니다. 목적을 위한 또다른 계기(모멘텀)일 뿐이다. 

촛불을 지킬 과제

비가 오고 바람이 불어도,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시민들의 촛불은 꺼지지 않았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불어도,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시민들의 촛불은 꺼지지 않았다.
ⓒ 송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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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 연인원 근 1,000만에 이른 촛불은 계급ㆍ세대ㆍ젠더를 초월하여 박근혜정권의 종식 뿐 아니라 근본적 사회개혁이라는 대의에 대동단결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내용에 대한 실제적 합의는 아직 없거나 약하다. 그 속에는 '기존의 질서' 하에서는 도저히 함께 손잡을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갈등과 분열로 점철된, 헬조선의 주체성 - 남성/여성, 정규직/비정규직, 수도권/지방, '명문대/지잡대', 장애인/비장애인 등 - 의 갈라진 삶이 있다. 어쩌면 촛불-행동은 치명적이고도 답 없어 보이는 양극화와 파편화된 삶을 '승화'하는 위로의 기제이며, 그래서 일종의 (순치된) 카니발인지도 모른다.   

분명 촛불의 경이로운 규모와 확산 자체는 '혁명적인 것'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부족하고 불분명한 것도 많다. 여덟 차례에 걸친 집회ㆍ시위의 장소와 형태가 조금씩 변했지만, 기본적으로는 비슷했다. '자유로운 개인들의 네트워크'나 '유연자발집단'은 소규모의 조직화나 풍자에는 대단히 유능했을지 모르지만, 직접행동과 문화의 면에서는 아직 진화할 여지가 있다 봐야겠다. 온-오프라인에 걸친, 정치권에 대한 압박과 사회 곳곳의 부역자들에 대한 창발적 저항행동은 더 필요하다.

현재는 교착상태다. 어떻게 촛불의 공동체와 촛불의 민주주의 문화를 돌이킬 수 없는 것으로 만들 것인가? 촛불을 마을과 학교, 직장으로 가져오고 또 대선을 위한 시민사회 공동의 기구가 필요하다. 토론하는 광장과 새 세상에 대한 꿈을 나누는 촛불이 필요하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천정환씨는 성균관대학교 교수입니다.



태그:#박근혜, #퇴진, #최순실, #국정농당, #캠핑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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