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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빈곤사회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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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은 다양한 사람들이 공유하는 공간이다. 지역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사람, 지역으로 내려가는 사람, 대중교통으로 출·퇴근을 하는 사람, 롯데마트를 이용하는 관광객까지, 사람들은 서울역을 거쳐 저마다의 목적지로 향한다. 목적지로 떠나는 사람들의 속도는 빠르고 힘 있다. 그렇게 떠나간 서울역 빈자리엔 사람들이 남는다. 거리노숙인이다. 역 주변을 배회하고 역 광장에 앉아 술을 마시기도, 자리를 펴 잠을 청하기도 한다.

떠나간 사람들과는 다르게 이들의 속도는 느리고 힘없다. 거리노숙인에게 서울역은 단지 거쳐 가는 공간이 아닌 삶의 공간이며, 더 내려 갈 곳 없는 마지막 층이기 때문이다. 속도를 낼 이유도 힘도 없이 그 곳에 남아있다. 그렇게 남겨진 거리노숙인을 바라보는 시선은 크게 '불쌍하다'와 '게으르다' 둘로 나뉜다. 하지만 나뉘었던 둘은 '불쌍하지만 게으르기 때문에 노숙을 하게 됐을 것'이라는 하나의 시선으로 모인다.

아무도 책임이지 않은 복지와 일자리 정책

거리노숙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입 모아 주거와 일자리를 말한다. 주거비를 지원하는 복지제도와 임대주택 관련 정책은 제법 귀에 익숙하다. 땡볕의 여름과 한파의 겨울을 거리에서 보낼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단연 주거공간일 것이다.

하지만 정작 주거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일자리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게 내뱉는 '뭐라도 해서 먹고 살아야지'라는 말과 역설적이게도, 무관심하다. 뭐라도 하기 위해 '민간시장 일자리'를 찾아보지만 기술과 학력 그리고 나이 등에 불리함이 있다. 더욱이 거리노숙이 장기화되었을 때 나타나는 자존감의 하락이나 삶의 의미박탈 그리고 신체·정신적 건강악화는 더욱 심각한 불리함으로 작동한다.

노숙의 원인은 사회구조도 한몫하지만 일반적인 시선은 개인의 무능이나 나태함으로 향해있다. 그렇다 보니 거리노숙인 A씨와 B씨 그리고 C씨 삶에서 고민과 노력의 역사는 일방적으로 부정당해졌다. '사지 멀쩡하면 뭐라도 해서 먹고 살아야지' 쉽게 뱉는 말은 거리노숙인 D씨와 E씨 그리고 F씨 노동의 역사를 너무 쉽게 지워버렸다. 

<노숙인 등의 복지 및 자립지원에 관한 법률>에는 거리노숙인을 비롯해 쪽방, 고시원, 비닐하우스 등 주거환경이 열악한 곳에 거주하는 홈리스를 대상으로 고용정책을 실시해야 한다고 쓰여 있다. 한 개인이 노숙에 이르는 과정과 특수성을 인정해 '민간시장 일자리'가 아닌 일정 정도 보호된 시장에서 자립·자활의 기반을 다지게 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노숙인 등의 복지 법>은 중앙정부차원이 아닌 지방정부에 책임을 떠넘겨 지자체별로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중앙정부의 의지가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중앙정부의 책임방기는 홈리스를 대상으로 하는 복지정책을 제대로 실시하는 지자체를 만들어내지 못했고, 심지어 정책운영조차 하지 않는 지자체를 만들어냈다.

서울시 홈리스 일자리정책

거리노숙인과 쪽방이 밀집해있는 서울시에는 홈리스를 대상으로 하는 '노숙인 특별자활근로'와 '노숙인 일자리갖기사업'란 이름의 일자리정책이 있다. 특별자활근로는 거리청소나 불법광고물을 떼어내는 등 비교적 노동강도가 약한 일자리다.

한 달 단위 고용, 최대 6개월까지 연장가능하며, 월 15일, 일 5시간미만의 노동을 통해 최저생계비 수준의 임금을 받을 수 있다. 일자리갖기사업의 경우 건설현장 보조업무 등 특별자활근로보다 다소 노동능력이 높은 홈리스를 대상으로 한다.

최대 11개월 까지 가능하며 한 달 약 150만 원의 임금을 받을 수 있다. 노동능력이 낮은 홈리스에게는 특별자활근로, 보다 나은 홈리스에게는 일자리갖기사업을 통해 자립·자활의 기반을 다지면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두 일자리 모두 고용이 불안정하다. 특별자활근로는 1년에 최대 6개월이 고작이며 최대 개월 수를 채우는 것조차 쉽지 않다. 일자리갖기사업의 경우 최대 11개월이라고는 하지만 민간기업과 계약하고 서울시에서 임금의 절반을 지원해주는 형태로 단 하루만에도 일자리를 박탈당할 수 있다. 고용이 불안정한 이유는 예산의 부족, 일자리 수가 적기 때문이다. 서울시에 파악되는 시설·거리 노숙인 수는 약 400여 명이다.(2015년 8월 기준)

하지만 2016년을 기준으로 특별자활근로는 600명, 일자리갖기사업은 400명이 고작으로 터무니없이 부족한 수준에 있다. 더욱이 안전과 일자리, 복지를 키워드로 '불안해소 시민안심'을 목표로 밝힌 서울시는 2017년도 예산안에서 홈리스를 배제했다. 지금도 부족한 홈리스 일자리 예산을 대폭 삭감한 것이다. 2017년 특별자활근로는 올해보다 50명이 줄었고, 일자리갖기사업은 180명이 줄었다.

누군가는 특별자활근로와 일자리갖기사업의 고용기간과 임금수준을 들었을 때,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자리가 있냐고 되물을 수 있다. 하지만 홈리스들에게 이 두 일자리는 너무나 소중하다. 그나마 일하는 동안에는 골방이지만 거리에서 벗어나 뜨거운 태양과 시린 바람을 피할 수 있다. 당장 오늘의 끼니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소도 비빌 언덕이 있어야 한다. 홈리스가 안정적 주거공간을 유지하며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일자리 정책이 필요하다.

밤이 가장 길다는 동짓날, 올해도 서울역 광장에서 홈리스추모제가 열린다. 홈리스를 대상으로 하는 열악한 복지와 일자리 실태를 고발하고 사회적 대책을 요구하며, 죽어서 마저 차별받는 홈리스를 추모하는 그 날에 더 많은 사람이 함께 하길 희망한다.



태그:#홈리스추모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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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은 경쟁을 강요하고 격차를 심화시키는 사회에서 발생합니다. 빈곤사회연대는 가난한 이들의 입장에서 한시적 원조나 시혜가 아닌 인간답게 살 권리, 빈곤해지지 않을 권리를 외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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