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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자는 2016년에 순천신흥중학교로 발령받았고, 학교에서 학생생활안전부장의 역할을 맡고 있다. 외부에서 온 방문객을 관리하는 것도 하나의 임무다.

2016년 11월 어느 날, 학교에 낯선 사람이 있어서 불러 세웠다. 나를 향해 돌아본 방문객의 얼굴을 확인하고 보니 고등학생 정도로 보였다.

"네?"

"학교에 들어오실 때에는 경비실에서 방문증을 발급받아서 오셔야 합니다."

그 순간 상담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세정(가명)아."

상담선생님과 세정이는 따뜻하게 껴안았다. 행정실 주무관으로 근무하는 선생님도 나오셔서 세정이를 반기셨다. 뒤에 가만히 서 있는 나를 향해 상담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아. 선생님. 세정이는 작년 졸업생이에요. 학기 초에 현수막 보셨지요? 우리 세정이 전남에서 유일하게 Wee 희망 대상 탔다는 거?"

"아! 네."

미운 오리 새끼, 세정이

며칠 후에 학생 상담 협조를 위해 상담선생님을 찾았다.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세정이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세정이는 고등학교 가서도 자주 만나요. 그런데 학교에서 자꾸 문제를 일으켜서 걱정이에요."

"우리 학교에서는 어땠어요?"

"2학년 때에는 친구, 선생님에게 막말하고, 욕하고, 수업시간에는 말 안 듣고. 그래도 3학년 되어서는 많이 변했어요. 세정이는 조금씩 노력했어요. 말은 다 못하지만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옆 사람을 챙길 수 있는 사람이 되었어요. 항상 화나 있던 꼬맹이가 웃는 얼굴로, 참 많이도 컸지요."

난 참 우둔하고 생각이 좁아서 궁금한 것을 참지 못한다. 그래서 또 물었다.

"그런데 고등학교 가서도 사고 친다면서요? 이번에 퇴학당했다고요?"

"네. 세정이가 학교 밖에서는 정말 남들을 배려하고 착해요. 학교 안에서도 약한 애들을 참 많이 배려하고 착한데, 다른 친구들하고 많이 부딪혀요. 교감 선생님께서 세정이 한 명만 잡아달라며 부탁까지 하셨어요. 교감 선생님 말씀처럼 세정이와 이야기 나누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전에 'Wee클' 선생님이 더 좋다고 하면서 상담실에 아예 오지도 않았으니까요. 그래도 누군가를 좋아했다는 말에 희망을 가졌지요. 그래서 교실과 복도를 오가며 눈을 맞추고, 급식실에서도 맛있게 먹으라고 인사했어요. 반응이 없었지요. 체육시간을 마치고 올라오는 세정이에게 생수를 건네기도 했어요."

이경옥 선생님의 끊임없는 관심 덕분에 세정이는 상담실을 찾아왔다. 선생님을 찾아온 세정이는 아빠와의 갈등, 가정사 등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상담 선생님은 어려운 이야기를 들려준 세정이에게 고맙다고 하고, 개인 상담을 진행하기로 약속했다.

"와. 선생님 참…."

'인내심이 대단하네요'라는 표현을 생략했다.

"세정이와 상담을 나누는 일도 고민의 연속이었지요. 상담실의 물건은 세정이가 만지면 부서졌고, 시끄럽다며 주위 친구들에게 욕을 날리고, 세정이가 상담실에 산다고 소문이 나서 다른 친구들은 발길을 끊었어요. 남자 애들만 일부러 세정이를 괴롭히러 와서 싸움이 나기도 했고. 상담 시간도 제대로 지키지 않아서 어려웠어요."

"와. 고놈 참…."

'싸가지 없다'라는 표현을 생략했다.

칭찬은 오리도 춤추게 한다

세정(가명)이와 함께 갔던 진도 팽목항에서 찍은 사진.
▲ 처음으로 흘린 눈물 세정(가명)이와 함께 갔던 진도 팽목항에서 찍은 사진.
ⓒ 이경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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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정이의 체험학습 전날 세정이와 마트에 간 적이 있어요. 자기랑 다니는 게 안 창피하냐고 묻더라고요. 선생님이 엄마인 줄 알고 그러면 기분 나쁘실 것 같다면서요. 죄송하다고 그러면서 장 봐주셔서 고맙다고 이야기하는 세정이를 보고 마음속으로 꼭 안아주었어요."

이경옥 선생님은 가정과 학교에서 세정이에 대한 시선이 변해야 세정이를 살릴 수 있다는 판단을 하셨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정이의 특성을 이해시켜야 했다. 세정이의 아버지에게 아이의 성향과 양육 태도에 대해 말씀드렸고, 선생님들과는 성공적인 행동 수정을 위해 사전 협의로 일관성 있는 계획을 세워나갔다. 칭찬 쿠폰, 계약서 작성, 벌점이나 과제 면제 등의 방법으로 수업 방해나 지각, 욕설의 부적절한 행동을 감소시켜 나갔다고 한다. 그리고 이경옥 선생님은 세정이에게 고맙다는 말, 잘한다는 말을 자주했다.

"그러던 어느 날 세정이가 집에 있는 걸을 힘들어하며 고통을 호소했어요. 여름 내내 핀 곰팡이며, 좁은 원룸에서 아버지가 가끔 집을 비우시는 것이 무섭다고 하더라고요. 세정이에게 제가 먼저 같이 살자고 했어요. 날도 추워져 걱정됐고, 같이 밥 먹고, 자고, 웃고, 첫눈 맞고. 소소한 것들을 함께 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졸업하면 자주 못 보겠다는 생각에 더 그러고 싶었어요."

이경옥 선생님은 세정이와 6개월 동안 함께 살았다고 한다. 세정이가 3학년 2학기가 되던 날 아버님의 동의를 구해 본인의 집에서 세정이와 동거를 했다고 한다. 아무리 결혼을 하지 않은 선생님이지만 학생과 함께 산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계속 이야기해달라며 채근하는 눈빛을 보냈다.

2015년 9월 장흥 여행 중 세정(가명)이가 이경옥 선생님에게 썼던 편지. 일 년 뒤, 올해 9월에 받아보았다.
▲ 느리게 쓴 편지 2015년 9월 장흥 여행 중 세정(가명)이가 이경옥 선생님에게 썼던 편지. 일 년 뒤, 올해 9월에 받아보았다.
ⓒ 이경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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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정이와 함께 여행도 자주 갔어요. 장흥, 전주, 기차 여행, 진도팽목항. 장흥에 갔을 때 '느리게 가는 편지'를 썼어요. 그게 얼마 전에 도착했는데, 얼마나 눈물이 나는지. 세정이가 1년 뒤에 배달이 안 되면 어떻게 하냐며 걱정했거든요. 그때의 눈빛이 아직도 선해요."

세정이가 선생님께 쓴 편지의 일부를 옮겨본다.

'이제 곧 헤어지지만 아니 죽을 때까지 연락하고 만날 우리 상담쌤 정말정말 미안하고 고맙습니다. 샘 때문에 처음 해본 게 너무 많아서 비밀일기에 적어도 모자랍니다. 내 편이 되어준 첫 번째 사람, 돼지갈비도 처음 먹어봤고, 솔직히 먹어본 건 거의 다 처음이었습니다. 진도 팽목항을 함께 간 그 날 울어본 적이 없는 나는 유가족 아빠가 건강하게 재미있게 학교생활 잘 하라는 말씀에 눈물이 터졌습니다. 눈물 흘리게 해주신 거, 같이 산책해주신 거, 같이 공부해주신 거, 전부 다 평생 갚겠습니다. 쌤 때문에 알게 된 저의 많은 장점들 기억하겠습니다. 지금 저는 쌤 집에서 함께 살고 있어 염치없지만 웃을 일도 많고 행복합니다. 공부를 못해서 선생님은 못 되지만, 남을 도울 수 있는 건강한 사람으로 잘 자라겠습니다. 꼭 지켜봐 주세요!'

아이들과 마음을 나누는 교사

사마천의 <사기>에 보면 가장 훌륭한 지도자는 마음을 나누는 지도자라고 했다. 반대편에 서 있는 지도자는 규율과 형벌로 다스리고, 백성과 다투는 지도자라고 했다. 나는 교직 9년 차에 처음 학생부장 역을 맡으면서 아이들을 규칙과 벌칙으로 다스리며, 가끔 학생과 다투고 있다. 물론 쏟아지는 공문 폭탄에, 아이들의 유난스러움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고 변명해본다. 그러나 변명은 변명일 뿐이다.

세정이와 이경옥 선생님께 한 수 배웠다. 선생님이 세정이에게 했다는 한 마디가 아직도 가슴에 남는다.

"고등학교 가서 자꾸 사고 쳐서 죄송하다고 하지 말고, 실망시켜 드려서 죄송하다고도 하지 마. 난 너한테 한 번도 실망한 적이 없어. 느려도, 조금 다르게 살더라도 괜찮아. 우리 12월 31일 이별여행 다녀오면서 손 꼭 잡고 약속했던 거 기억나지? 자기를 사랑하는 세정이가 됐으면 좋겠다고. 백조가 아니라 진짜 미운 오리여도 괜찮아. 난 항상 네 편이고, 널 응원해."

덧붙이는 글 | 이경옥 선생님은 순천신흥중학교에서 인기 교사다. 모든 아이들을 세정이를 대하는 마음으로 대하니 아이들이 좋아하지 않겠는가?



태그:#이경옥, #순천신흥중, #상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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