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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이 열리기 전 엘 빨라시오 안달루스(El Palacio Andaluz) 플라멩코 공연장. 세비야의 많은 플라멩코 공연장 중 단연 손꼽히는 명소이자 스페인 전체에서 규모와 공연 수준이 최고임을 자랑한다. ⓒ 길동무
자유로운 영혼, 사람을 향한 말 중에 이보다 더 매력적인 말이 있을까?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사람들의 문화와 예술, 그들로부터 비롯된 화려하고 열정적인 춤과 노래의 공연 플라멩코(Flamenco), 잠시지만 일상을 내려놓고 멀리 떠돌며 자유를 즐기는 여행객이 감상하기에 플라멩코만큼 어울리는 공연이 또 있을까?

길동무가 플라멩코를 감상한 공연장 엘 빨라시오 안달루스(El Palacio Andaluz)는 세비야의 많은 플라멩코 공연장 중 단연 손꼽히는 명소였다. "스페인 전체에서 규모와 공연 수준이 최고라 할 수 있다"는 가이드 이 선생의 말이 조금도 틀리지 않았다. 빈틈없이 운집한 관객, 코스 요리에 곁들인 와인 잔을 채우기도 전에 객석의 불이 꺼졌다. 길동무 이번 여행에서 아주 오래 기억될 세비야의 그 밤이 그렇게 시작되었다.

무대는 바로 열리지 않았다. 구슬픈 음성의 노래 칸테가 먼저 관객들의 귓전을 파고들었다. 천천히 막이 열리고 세 명의 여성과 두 명의 남성이 나란히 앉아 발을 구르고 손뼉을 치며 관객을 맞았다. 칸테 가수의 목소리가 더 커지고 이내 남성 춤꾼 두 명이 앞으로 나섰다. 그들의 발놀림으로 서서히 무대가 고조되기 시작했다.

남녀 혼성 무대와 솔로, 다시 군무를 오가는 사이 객석은 끊임없이 술렁였다. 모든 순서는 스토리를 갖추고 있었고, 출연자들은 각기 나름의 장기를 스토리 속에서 녹여냈다. 여성 출연자들의 화려한 드레스, 매혹적인 몸짓, 슬픔과 한이 뚝 떨어져날 듯한 표정은 관객의 몸을 긴장하게 했고, 남성 출연자의 다이내믹한 동작과 상반되는 엄숙한 표정은 관객의 몸에 힘을 빼지 못하게 했다. 춤과 춤 사이에 칸테가 돌출했다가는 다시 백으로 깔렸고, 또 다른 사이에는 연주단의 합주와 기타 독주가 플라멩코 음악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어우러지기 시작한 플라멩코 공연장 ⓒ 길동무
춤과 노래는 사람이 살아있음을 즐기는 가장 가까이 있고 또 멋진 수단이다. 플라멩코 공연 감상은 바로 그 점을 훈훈하게 확인시켜 주었다. 삶의 멋진 수단이 화려하고 열정적이니 더 바랄 것이 무엇이겠는가. 더욱 놀라운 것은 그것이 자유로운 영혼, 즉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온전히 즐길 줄 아는 마음으로부터 비롯되었다니 정말 아무것도 바라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사람만이 가지는 습성이 드러난다. 온통 즐거워야 할 삶이 고(苦)임을 밝혀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것이나 원죄를 상기하여 자기를 반성하게 하는 것과 같이 암시의 연속이다. 가진 것과 안정을 누리는 것에 연연하지 않고 이리저리 떠돌았던 집시들의 신세 한탄이 플라멩코였다고 뿌리를 들춘다. 플라멩코가 한(恨)을 들추고 승화하여 무엇으로써 어떻게 감동을 전달하는가를 알고 즐길 것을 요구한다.

길동무는 여행을 떠나기 전 플라멩코를 감상하기 위해 예열을 했다. 길동무 한정보씨가 어렵게 확보한 자료 덕으로 2003년에 제작된 영화 <카르멘(Carmen)>을 감상했다. 그리고 오페라 <비제의 카르멘>을 감상했다. 이 오페라는 한국 국립오페라단 창단 50주년을 기념하여 실시된 설문조사에서 '대한민국 국민이 가장 사랑하는 오페라'로 선정된 바 있다. 물론 공연 시 '전석매진'이라는 기록도 세웠다.

영화와 오페라, 그리고 플라멩코 이 세 가지는 그 틈이 참으로 절묘했다. 공통의 주제이면서도 달랐고 다르면서도 서로 관통하고 있었다. 자유로운 영혼을 춤과 노래로 표현한 집시 문화라는 공통분모를 가졌으되, 장르가 다르니만큼 표현 방법이 다름으로써 감동 또한 달랐다. 한 가지 주제의 각기 다른 예술 장르 즐기기를 제대로 한 셈이다.
엘 빨라시오 안달루스(El Palacio Andaluz) 공연장의 전속이자 대표적인 출연자 에밀리오(Emilio)의 솔로 공연 ⓒ 길동무
엘 빨라시오 안달루스(El Palacio Andaluz) 공연장의 대표 여성 출연자 ⓒ 길동무
'두엔데(duende)', 두엔데란 '플라멩코 공연 시 노래나 춤으로 인한 몰입이 정절에 달해 접신의 경지에 이르는 것'을 의미한다. 두엔데는 일종의 안달루시아 대지의 귀신을 의미하는데, 플라멩코가 한 수준에 오르려면 공연자는 자신을 잊은 듯 몰입해야 하고 감상자도 그 묘경을 느껴 삼매에 들어야 참으로 플라멩코의 완성이라 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음악 칼럼니스트 이용숙씨는 그 경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플라멩코 가수의 노래나 댄서의 몸짓에 스민 깊은 고통과 한이 우리의 모든 감각 기관을 통해 전달될 때, 몸속에 갇혀 있던 영혼이 몸 밖으로 튀어나오는 듯한 느낌. 그것이 바로 두엔데다."

"아 그런 거..." 하고 공감하는 분 많을 것이다. 그렇다. 우리 한민족 민초들의 생활은 한의 연속이었다. 그러므로 한민족의 전통춤과 전통 음악에 지천으로 깔린 것이 한이다. 그것이 현대에 와서 개성과 깊이로 해석되고 신명이 더하면서 한류의 튼실한 바탕 작용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한국인이 플라멩코의 절대 요소인 두엔데를 이해하는 것은 별로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말 나온 김에 조금만 더 옆길로 새겠다. 한(恨), 이 글자 구성을 보면 마음 심(心)과 그칠 간(艮)으로 이루어져 있다. 풀이하자면 마음이 어긋나고 거스르기 어려워 그만 굳는 것이 한이다. 흥미로운 것은 우리 민족의 한에는 반드시 뒤따르는 것이 '풀이'다. 한민족은 처한 사정으로 맺히는 한이 많다고 하더라도 어떤 형태로든 그때마다 스스로 풀어내는 데 능했다.

한풀이하는 방법 중 최선은 뭐니 뭐니 해도 춤과 노래다. 따라서 한민족의 민속악이나 민속춤은 서린 한을 풀어내기 위한 절절함이 뚝뚝 묻어난다. 플라멩코도 다르지 않았다. 집시들은 스스로 처한 현실을 플라멩코란 화려하고 열정적인 춤과 노래로 이겨내고 즐겼다. 그리고 누구의 삶에나 있을 수밖에 없는 고통과 위선을 어루만지며 감상하는 이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했다.
공연 마지막을 앞둔 군무 ⓒ 길동무

역시 생생한 플라멩코 감상은 영상으로 볼 때와 달라도 아주 달랐다. 절로 몰입이 되었고 전율이 일었다. "두엔데는 공연자뿐만 아니라 관객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주장이 결코 틀린 말이 아니었다. 칸테(Cante)라 불리는 노래 부분은 한국의 판소리와 흡사했다. 올레! 하고 외치는 할레오(jaleo, 추임새)는 판소리의 다양한 추임새에 비해 다소 단조로웠지만 그 분위기는 영락없는 판소리 마당이었다.

그러나 바일레(baile, 춤)라 말하는 춤 동작은 판소리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다른 점이었다. 때로는 잔잔하게 때로는 역동적인 발 구름과 몸짓, 손짓은 관객을 한껏 매료시켰다. 관객들을 두엔데 상태로 몰아갔다. 거기에 현란한 토케(toque, 음악적 기교)를 드러내는 기타리스트와 협연하는 악단은 소수였지만 공연장 안의 열기를 멋지게 고조시켰다. 특히 기타리스트의 독주는 한마디로 신기였다. 마치 한국 전통 음악 중 거문고, 가야금, 대금 산조에서 느끼는 자유로움과 변화무쌍함 바로 그런 것이었다.

백미는 플라멩코 남자 댄서 중 에밀리오(Emilio)였다. 세계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힌다는 그는 오직 그 공연장에 전속된 춤꾼으로서 때로 협연으로 때로는 솔로로 나서 플라멩코의 진수를 유감없이 드러냈다. 연주자의 연주와 발 구르기의 장단 대결은 관객들에게 폭소와 감탄사를 아울러 끌어내며 무대와 객석을 휘저었다.

그의 춤은 정교했다. 그리고 섬세했다. 손동작이 화려하지 않기에 그의 발 구르는 동작과 울리는 소리는 더욱 빛났다. 상체 움직임은 최소화하면서 두 다리의 움직임만으로 리듬을 조절하고 강약을 자유자재로 표현했다. 작은 움직임 속에서 펼쳐내는 음향은 분명하면서도 힘이 넘쳤다. 그의 표정과 형형한 눈빛은 품격으로 다가왔고 관객을 몰입으로 이끄는 힘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그는 남자 춤꾼이다. 그런데도 그는 영화 <카르멘>의 여주인공 파즈 베가와 같은 도발적인 요염함을 풍겼다. 때론 매우 강력하게 때론 한없이 부드럽게 몸짓으로 노래했다. 오페라 <비제의 카르멘>에서 여주인공을 맡은 미국의 메조소프라노 케이트 올드리치의 목소리와 몸짓, 그리고 관능미를 연상하게 했다.

"플라멩코의 기타 연주는 웬만한 기타연주자들이 혀를 내두른다고 합니다. 관객들이 올레라고 외치는 데 반해, 플라멩코 배우들끼리는 손뼉으로 서로 추임새를 넣는데요, 그 손뼉 치기 또한 엇박자여서 따라 하기가 정말 쉽지 않습니다."

가이드 이 선생의 말이 맞았다. 절정의 순간에 올레는 맘껏 지를 수 있었지만, 손뼉치기는 흉내조차 낼 수가 없었다.

플라멩코가 집시 민족의 예술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온통 집시 민족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평은 설득력이 있다. 때는 15세기경, 인도 라자스탄을 떠난 집시들은 흐르고 흘러 유럽의 끝 이베리아 반도까지 왔다. 그러나 그들을 온전히 받아줄 환경이 아니었다. 그들을 황홀하게 한 것은 이베리아 반도 남부의 풍부한 산물과 좋은 기온과 햇빛이었을 뿐, 격동기의 이베리아 반도는 그들에게 너그러울 수가 없었다.

무려 8세기 동안을 누린 이슬람 왕조가 막을 내리고 가톨릭 왕조가 시작된 때로서 무어인들이나 유대인들은 탄압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동굴에 숨어서 몸을 낮춰야 했다. 절망은 소리로 터트렸고, 핍박은 땅을 구르는 것과 격한 몸짓으로 이겨냈다. 이 과정에서 비슷한 처지에 있던 무어인들이나 유대 민족과 슬픈 연대감이 생겼다. 안달루시아 지방 향토문화와도 자연스럽게 조화했다.

그라나다의 알람브라 궁전에서 건너다보이는 사크라몬떼 집시 마을은 그때 집시들이나 탄압을 받은 다른 민족들이 몸을 붙여 살던 곳이다. 현재 거기에 위치한 La Rocio 플라멩코 공연장이 전통성을 인정받는 이유는 그 역사성 때문이라 한다.

사람들은 모두 방종을 배척한다. 그것이 열정과 자유를 대변하는 것이라 해도 방종은 그냥 방종으로 치부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자유를 찾아 방종할 수 있는 용기에 박수를 보내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자유를 갈망하고 누렸으며 열정을 플라멩코로 표출한 집시 민족의 문화에 경의를 표한다. 그들이 플라멩코를 통해 세상의 많은 이에게 얼마나 많은 감동을 주었으며 대리 만족을 누리게 했는가. 

그러므로 나는 집시 민족의 문화가 19세기 프랑스 역사가이자 소설가인 프로스페르 메리메에게 포착되어 소설 <카르멘>으로 탄생한 것은 예정된 순서였을 것이란 생각을 한다. 그리고 프랑스를 대표하는 작곡가 비제에게 놀라운 영감을 주었고, 그 결과 1875년 파리에서 첫 공연 후 지금까지 가장 유명하고 대중적인 오페라로 인기를 누리고 있음에 당연함을 느낀다.

사람의 내면에는 누구에게나 자유를 향한 열정이 감춰져 있다. 예술가는 그것을 예술로 승화시켜내려는 부류다. 그리고 대중은 다양한 장르의 예술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하여 세상의 예술가들을 위해 기도한다. 부디 그대들의 사명감에 신의 축복이 더하기를.

플라멩코 감상기, 갈래가 잡히질 않아 시작이 어려웠다. 시작을 하고 나서는 자꾸만 스스로 도취되어 진행도 느렸다. 마치려는 이 순간에도 여전히 내 가슴은 플라멩코 열기로 가득하다. 글을 마치면서 길동무 유프카씨의 지인에게 존경을 표한다. 그는 스페인 여행 중 플라멩코를 관람한 후 한국으로 돌아가 플라멩코 춤꾼이 되었다 한다. 그의 노력과 실천, 자유를 향한 열정이 참으로 부럽다.


덧붙이는 글 | 여행을 위해 ‘길동무’란 이름으로 뭉친 인도네시아에 사는 한국인 다섯 부부의 스페인 포르투갈 여행 이야기입니다.

태그:#플라멩코, #길동무, #에밀리오, #세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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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가. 2015년 5월 인사동에서 산을 주재로 개인전을 열고 17번째 책 <山情無限> 발간. 2016, 대한민국서예대전 심사위원장 역임. 현재 자카르타 남쪽 보고르 산마을에 작은 서원을 일구고 있음.

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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