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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랬던 학교 화장실이... 서울 길동초동학교의 개선 전 화장실. 서울시내 대부분의 초중고 학교 화장실은 이같이 어둡고 칙칙하며 단조로운 모습이었다. ⓒ 서울시제공
이렇게 바뀌었어요 서울시의 학교화장실 개선사업으로 새롭게 단장한 길동초등학교 화장실 내부.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해 밝고 산뜻하게 단장했다. ⓒ 서울시제공
"SNS에 우리 학교 화장실 사진이 올라갔어요.
귀하고 큰 선물 주신 만큼 아름답고 깨끗하게 가꿔가겠습니다."

지난 5월 서울시청 서소문청사 교육정책담당관실에는 2통의 예쁜 편지가 도착했다. 서울 동일여상 총학생회장과 부회장의 편지로, 모두 학교 화장실이 확 달라진 데 대한 고마움이 물씬 묻어나는 편지였다.

이 학교에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수십 년 지나도 변함없는 그곳... 화장실 가기가 두려운 학생들

학교 화장실하면 왠지 어둡고 칙칙하고 냄새나고 불결한 생각이 드는 것은 기자만이 아닐 것이다. 오죽하면 잘못한 학생들이 받는 최악의 벌칙이 '화장실 청소'이겠는가.

학교 화장실을 이용하기 '두려운' 학생들이 하교때까지 참았다가 집에 와서야 볼 일을 보는 일도 예사가 아니다.

화장실시민연대라는 시민단체가 지난 2012년 학생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해본 결과, 학교 시설 중 가장 불편하고 만족스럽지 못한 곳이 '화장실'이라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그런 서울 시내 학교 화장실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화장실 개선에 매년 100억에서 200억에 달하는 예산을 지원하는데도 막상 학교에 가 보면 화장실은 늘 그대로인 거예요. 학교에 다니는 우리집 아이들도 생각나고 해서 이젠 시에서 직접 챙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죠." 학교 화장실 개선사업을 처음부터 담당했던 교육환경지원팀 유재경 주무관의 말이다.

서울시가 학교 화장실 개선사업에 팔 걷고 나선 것은 재작년인 2014년부터. 7개 학교를 대상으로 시범사업을 벌인 결과 반응이 좋자 이듬해부터는 '꾸미고 꿈꾸는 학교 화장실'이란 이름으로 본격사업에 착수했다.

그 해 175곳을 손봤고, 올해는 이미 완공한 180여 곳에 이어 앞으로 75곳을 더해 모두 265곳의 화장실을 새단장할 계획이다.

학교 화장실 개선사업에 나선 디자인디렉터가 학생에게 가상현실(VR) 기기를 착용시켜 설계오류를 점검하고 있다. ⓒ 서울시제공
학교 화장실 개선사업으로 새롭게 단장한 밀알학교 화장실. ⓒ 서울시제공
학교에 '디자인디렉터' 파견, 아이들 아이디어 모아

서울시에 등록된 초·중·고교는 모두 1331개. 이 중 일부 사립학교를 제외한 지원대상은 1254곳이다.

시는 교육청을 통해 파악한 화장실의 노후도를 감안해 심사를 거친 뒤 지원 대상 학교를 선정한다.

특이한 것은 '디자인디렉터'를 선정해 학교에 파견하는 것이다. 디자인디렉터는 건축이나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뒤 그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로 현재 66명의 풀이 조성되어 있다. 학생들과 함께 작업할 사람들이니 만큼 교육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선호된다.

디자인디렉터가 학교에 가면 우선 전교생을 상대로 화장실 문제에 대한 설문을 실시하고, 좋은 의견을 낸 학생들과 학부모, 교사 등 20여 명으로 된 디자인TF팀을 구성한다. TF팀은 이후 여러 차례의 워크숍을 통해 디자인과 색상 등을 정하고 설계자에게 넘겨 실시설계를 한 뒤 공사에 들어간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화장실을 실제 이용하게 될 학생들의 의견을 듣고 반영하는 것.

유 주무관은 "학생들이 TF나 설문을 통해 자신들의 의견이 반영되니까 내가 지은 화장실이란 주인의식과 자부심을 갖게 되고, 만족도도 높은 것 같다"고 말했다.

어둡고 칙칙한 화장실에 구름, 별, 해 모양 조명이 설치돼 밝고 화사해졌고, 벽에는 아이들이 직접 그린 그림들이 부착됐다.

아이들의 키에 맞도록 개수대와 소변기의 높이가 조정되고, 가상현실(VR) 기기를 이용해서 지어질 화장실 내부를 미리 체험한 뒤 설계 오류를 조정하기도 했다.

한 자동차고등학교 화장실은 학교 특성을 살려 벽에 자동차 모양의 3D그래픽이 그려지고 타일, 문에는 카레이싱 깃발, 타이어, 계기판 문양이 적용됐다.

깨끗하고 화사해진 화장실은 단순히 배설하고 얼른 나와야 하는 곳이 아니라, 오래 머무르고 싶은 곳이 됐다. 남고에서는 흡연이 줄었고 학교폭력이 줄었다. 여고에는 학생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파우더룸을 설치한 결과, 화장실이 정말 화장을 고치고 담소를 나누는 곳으로 바뀌었다.

학교 화장실 개선사업은 2015년 서울시 10대뉴스에서 4위에 선정되기도 했다.

대형거울이 설치된 동일여상 화장실내 파우더룸. ⓒ 서울시제공
자동차 전문학교의 특색을 살려 벽에 자동차 설계도면을 디자인한 신진자동차고등학교 화장실. ⓒ 서울시제공
"단순한 배설장소가 아닌 내가 존중받는다는 느낌 받았으면"

작년부터 참여해 지금까지 모두 5곳의 학교 화장실 개선사업에 참여했다는 디자인디렉터 김석 소장(49.그린도시건축 건축사사무소)은 "건축인으로서 환경이 열악한 학교 화장실을 바꿔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서 참여했다"며 "아이들과 함께 만드는 과정도 재밌고 바뀐 화장실에 아이들이 기뻐하는 모습이 좋아 앞으로도 계속 참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디자인디렉터 이경선 교수(홍익대 건축대학)는 "초등학생들도 너무 좋은 아이디어를 내놔 깜짝깜짝 놀란다"며 "아이들이 화장실을 단순히 배설하는 공간으로 생각하지 않고, 여기를 통해 내가 정말 존중받는다는 느낌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경란 서울시 교육환경지원팀 팀장은 "학교 화장실이 개선되기 전과 후 사진들을 보면 너무나 대조적인 것을 보고 보람을 느낀다"며 "서울 시내에 아직도 화장실을 개선해야 할 학교가 많이 남아 있는 만큼 이 사업이 중단되지 않고 이어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내놓았다.
태그:#학교화장실, #디자인디렉터, #서울시, #개선사업, #화장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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