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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보성 벌교 보탑사 관음보살입니다.
 전남 보성 벌교 보탑사 관음보살입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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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교 보탑사로 가요. 행복은 많고 큰 데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작은 것을 가지고도 고마워하고 만족할 줄 안다면 행복한 사람이란 거 알지요?"

제주도에서 육지로 나오신 덕해 스님, 느닷없는 법문 모드에, 뜬금없는 소리지만 수긍했습니다. 근데, 처음 듣는 보성 보탑사를 들먹였습니다. 연유가 있겠지요. 내비게이션을 칩니다. 나오지 않습니다. 스님이 직접 안내하시겠답니다. 좋으실 대로. 차가 출발하자 친절하게 설명합니다.

"절에서 수행할 때 4~5년 같이 지냈던 도반이 계시는 절입니다. 엄청 친했지요. 당시 같이 있었던 몇몇 스님들과 보탑사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왜 그랬는지 알 수 없습니다.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 하던 때를 떠올렸습니다. 스님들 만남이 마치 독립 운동가들의 비밀결사 같은 느낌이랄까. 아마, 보성 일대를 주 무대로 다룬 태백산맥의 영향이지 싶습니다. 감이 맞았을까. 스님의 안내는 소설 태백산맥의 문학 기행길인 '철다리' 인근에서 멈췄습니다. 보탑사는 벌교 중심 도로가에 있었습니다. 예서, 철다리를 배경으로 한 태백산맥 내용을 뺄 수 없지요.

자비 실천, 기원정사에서 길상사 그리고 보탑사

벌교 보탑사입니다. 밖에서 보는 것과 달리 아기자기한 맛이 있더군요.
 벌교 보탑사입니다. 밖에서 보는 것과 달리 아기자기한 맛이 있더군요.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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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태백산맥 문학 기행길에 자리한 철다리 안내판입니다.
 소설 태백산맥 문학 기행길에 자리한 철다리 안내판입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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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교 아래 선창에서 물건을 훔쳐내다 들켜 일본 선원을 죽이고 도망쳤다가 해방과 함께 벌교로 돌아와서는 용감하게 일본놈을 처치한 독립투사로 변신한 염상구. 그는 장터거리 주먹패의 주도권 쟁탈전에서 땅벌이라는 깡패 왕초의 제의에 희한한 결투를 벌인다. 철교의 중앙에 서서 기차가 가까이 올 때까지 누가 더 오래 버티다가 바다로 뛰어 내리는지 담력을 겨루어 여기서 지는 자는 영원히 벌교바닥을 뜨기로 한다."(태백산맥 1권 188쪽)

담력 겨루기 배경이 된 철다리는 태백산맥 뿐 아니라 보탑사의 배경이기도 했습니다. 보탑사 주지, 우인 스님에 따르면 "보탑사는 일제시대 뻘밭이었던 곳에 중도방죽을 쌓은 후, 뻘밭을 메워 논이 된 곳에 세운 절이다"면서 "1980년대 창고 방에 부처님을 모시며 시작된 불사가 2002년 대웅전을 세우고 지금의 절이 되었다"고 소개합니다. 여기에 기도발이라는 영험한 이야기가 숨어 있더군요.

"버리고 비우는 일은 소극적인 삶이 아니라 지혜로운 삶의 선택입니다. 버리고 비우지 않고는 새 것이 들어설 수가 없지요. 선종순 보살과 신도들께서 절을 짓기로 마음먹은 후 기도로 대웅전 등을 건립하고, 땅 6백여 평까지 부처님께 바쳤습니다."

부처님께 기증한 절의 시초는 급고독장자가 우여곡절 끝에 지어 부처님께 바친 '기원정사'지요. 우리나라에선 김영한씨가 책 <무소유>에 감명 받아 요정이었던 대원각을 법정 스님께 시주한 후 '길상사'로 바뀐 사연이 널리 알려졌습니다. 이처럼 벌교 보탑사도 시주로 지어진 절집이었습니다. 요즘 돈벌이 수단으로 변질되어 간혹 불법 매매되는 절에 견주지 않더라도 아름다운 자비의 실천이었습니다.

불가에서 스님들께 묻지 않는 불문율 세 가지

보성 벌교 보탑사 대웅전과 스님들. 보탑사는 지금 대웅전 단청 불사 중입니다.
 보성 벌교 보탑사 대웅전과 스님들. 보탑사는 지금 대웅전 단청 불사 중입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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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탑사 대웅전에 모신 삼존불입니다.
 보탑사 대웅전에 모신 삼존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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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오십시오."

스님 세 분이 환영했습니다. 보탑사는 일주문과 절집 마당, 대웅전, 관음보살, 약사여래불 등 한눈에 들어옵니다. 대웅전 오르는 계단에는 대웅전 단청불사 동참을 바라는 안내문이 서 있습니다. 널리 알려진 큰 사찰보다 이렇게 작은, 새로 시작하는 절집 불사에 시주하는 게 더 바람직하단 생각입니다. 절집들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합니다. 두루 널리 시주되길.

먼저, 대웅전에 들었습니다. 보탑사는 산중에 있는 절집과 달리, 도로가에 붙어 있어 절집 같지 않습니다. 하지만 대웅전으로 드니, 밖에서 볼 때와 달리 제법 아늑하고 편안합니다. 역시 부처님 도량은 어디든 마찬가지입니다. 대웅전에는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 등 삼존불이 안치됐습니다. 그리고 지장탱화, 지상보살상, 칠성탱화, 신중탱화 등이 걸렸습니다. 삼배의 예를 갖춘 후 스님들 인사 나누기에 바쁩니다. 우인 스님, 그 감흥을 이렇게 전합니다.

"도반 만난 느낌요? 뭐랄까. 오랜만에 만나니까 좋아요. 어찌 살았는지 궁금하고, 자주 못 만나지만 옛날로 돌아간 것 같아요. 예전에 4, 5년 같이 살면서 궁극의 목표인 깨달음을 얻기 위해 참선, 경전, 염불 등 자기 방식대로 수행을 열심히 하신 스님들이라 더 반가워요. 당시, 홍인 스님은 외부 출입을 접고 천일기도를 두 번이나 했지요."

불가에서 스님들께 묻지 않는 세 가지 불문율이 있습니다. 첫째, 스님 왜 출가하셨어요? 둘째, 스님 고향이 어디에요? 셋째, 스님 나이가 어떻게 돼요? 하는 것입니다. 인연에 따라 출가한 분들이니 굳이 따질 게 없다는 거죠. 개인 사정이 있으되 출가의 궁극적인 목적이 '해탈'이니 물어도 굳이 답할 필요 없다는 겁니다. 그럼에도 물어보는 건 인간의 궁금증 차원이겠죠? 우인 스님에게 즉석에서 법문 한 말씀 부탁했습니다.

"법구경에 '면상무진공양구(面上無瞋供養具)'라는 말이 나옵니다. '얼굴에 찡그림이 없는 것이 참다운 공양이다'란 의미입니다. 삶을 살아갈 때 재물, 법, 마음 등을 보시하지만 웃고 다니는 게 참 공양이라는 겁니다. 부처님의 자비심을 갖고 살면 사람들이 좋아하고 행복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 향, 쌀 등의 공양을 올리는 것처럼 부처님을 향해, 모든 사람을 향해 웃는 게 부처님께 공양 올리는 거와 같습니다."

"무엇이든 욕심 부리면 좋은 게 하나도 없어!"

보탑사 옆에 선종순 보살님 집이 있습니다. 선 보살님은 비움의 미학을 이미 체득하신 겁니다.
 보탑사 옆에 선종순 보살님 집이 있습니다. 선 보살님은 비움의 미학을 이미 체득하신 겁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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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탑사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남겨진 감입니다. 이걸 보면 나눔의 미학에 흐뭇합니다. 자비는 비움과 나눔에 있는 듯합니다.
 보탑사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남겨진 감입니다. 이걸 보면 나눔의 미학에 흐뭇합니다. 자비는 비움과 나눔에 있는 듯합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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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을 지어 시주하신 선종순(71) 보살님과 이야기 나눴습니다.

- 보탑사는 언제 지었어요?
"2002년에 지었어. 절 지은 지도 벌써 14년 되었네."

- 절은 왜 지으신 거예요?
"왜 그랬는지 나도 몰라. 그냥 짓고 싶더라고. 절을 지어 돈 벌려 한다고 오해도 많이 받았어. 처음부터 돈 벌려는 게 아니라 잘하는 스님에게 드릴 생각이었어."

- 언제부터 절을 짓고 싶었어요?
"내가 71살이니까 몇 년 전이야? 28년 전인 마흔 세 살 때부터 그냥 절을 짓고 싶은 마음이었어."

- 그래도 계기가 있을 텐데.
"사람들하고 절에 갔다가 큰스님께 사찰 하나 짓는 게 소원이라 하니, 스님께서 부처님께 속히 지어주라고 빌어라 하대. 그래 열심히 기도했어. 그러던 어느 날 스님 법문을 듣다가 손에 힘이 절로 생기는 거야. 힘을 받는 기분이었지. 그 뒤로 부처님 공부와 기도밖에 몰랐어. 내가 잠보였는데 부처님 공부하다 보니 잠도 안 와. 부처님께서 그렇게 공부를 시키더라고. 순전히 기도의 힘으로 절을 지은 거야."

- 다른 오해는 없었어요?
"아까 말했잖아. 절 지어서 돈 벌라 그런다고. 또 스님한테 절을 주고 나니까, 우리 절 사람들 말고, 다른 데 사람들이 저 여자가 스님한테 절을 팔아먹었다고 한 대. 내버려 둬. 나는 안 팔아먹었으니까. 팔아먹으려고 생각도 안 했으니까. 명의도 스님 앞으로 해줬어."

- 절을 주실 스님은 직접 선택하신 거예요?
"절에 스님 추천해 달라고 했어. 절에 갔다가 우인 스님이 신심으로 염불하는 걸 보고 거기에 반해 절을 맡겼어."

- 절을 지은 자체로 뿌듯하시겠어요?
"누구나 소원이 있잖아. 나는 이제 절을 짓고 싶은 소원을 이뤘어. 보탑사는 내 소원을 이룬 절이야. 무엇이든 간절하게 소망하면 소원을 이루게 되어 있어. '방하착'이라고 다 내려놓으니 마음 편해. 무엇이든 욕심 부리면 좋은 게 하나도 없어."

도로에서 들어서면 보탑사가 한 눈에 들어옵니다.
 도로에서 들어서면 보탑사가 한 눈에 들어옵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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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제 SNS에도 올릴 예정입니다.



태그:#보성, #벌교, #보탑사, #우인 스님, #선종순 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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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힐 수 있는 우리네 세상살이의 소소한 이야기와 목소리를 통해 삶의 향기와 방향을 찾았으면... 현재 소셜 디자이너 대표 및 프리랜서로 자유롭고 아름다운 '삶 여행'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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