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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순천 금전산 금둔사 일주문입니다. 가을이 곱게 치장하고 기다리더이다!
 전남 순천 금전산 금둔사 일주문입니다. 가을이 곱게 치장하고 기다리더이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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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마음 가는 그리운 사람이 있지요. 멀리 떨어져 수년간 만나지 못했더라도 만나는 순간 모든 벽이 허물어지는 반가움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스승이든, 연배이던, 연하든, 연인이든 간에 한 번 빼앗긴 마음은 쉬 감출 수 없는 법이더이다. 먼저, 아함경에 있는 문구 한 구절 읽고 가게요.

세상에서 가장 작으면서 큰 거인을 만나러 가는 길

"반석은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것과 같이
어진 사람은 비방과 칭찬 속에서도 움직이지 않는다.
깊은 못은 맑아서 고요한 것과 같이
지혜 있는 사람은 부처님 법을 들어 편안하다."

그는 "이런 사람이 있다"고 했습니다. "에이, 설마. 어지러운 시대에 이런 생불이 있을까!"라고 받아쳤습니다. 그러면서도 은근 기대했습니다. 제발, '살아 있는 생불은 아니더라도 생불 비슷한 불상이라도 한 번 봤으면 이상 소원이 없겠다' 싶었습니다. 마음을 읽었을까. 스님인 그가 순천 금전산 금둔사로 향하면서 찍소리 못할 결정타를 날렸습니다.

순천 금전산 금둔사 대웅전 가는 길은 큰 스님을 만나러 가는 길 중간쯤이었습니다.
 순천 금전산 금둔사 대웅전 가는 길은 큰 스님을 만나러 가는 길 중간쯤이었습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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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있으면 이 세상에서 가장 작으면서 가장 큰 거인을 만날 것입니다. 왜 큰 거인이라 하는지 자연히 알게 될 겁니다."

잔소리 마라는 거죠. 만나보면 알게 될 거라는 거죠. 그렇다면야 좋은 인연에 감사해야지요. 금둔사 행에는 불법을 닦는 네 분의 스님과 함께였습니다. 그러고 보니, 네 분 스님들은 큰 스님을 뵈려면 마음과 몸까지 깨끗한 상태여야 한다는 듯, 순천 낙안의 온천에서 목욕재계를 하자 한 것일까, 싶었습니다. 무튼, 네 분과의 동행은 온 천하를 얻은 듯한 기분이었지요.

요 몇 년 간, 뭔가 모를 그 무엇들이 물밀 듯이 가슴 속으로 들어옵니다. 감당되지 않으면 거부하겠지만, 물 흐르듯 자연스레 파고드는 관계로 무척이지 행복합니다. 그동안 부족했던 도(道)에 대한 갈증을 원 없이 푸는 듯해 살아 있는 즐거움을 만끽하는 중입니다. 고맙고 감사할 일입니다.

금둔사, 조건만 맞추면 누구나 부처 된다는 의미

금둔사 대웅전 옆 출입문에 붙은 '예배'에 대한 설명이 퍽이나 인상적이었습니다.
 금둔사 대웅전 옆 출입문에 붙은 '예배'에 대한 설명이 퍽이나 인상적이었습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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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껴서 사는 것이란? 그래...
 아껴서 사는 것이란? 그래...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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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된 자아를 향해 현실의 자신을 비우는 것이 예배입니다."

금둔사 법당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쓰인 글귀가 몸과 마음을 추스르게 합니다. 삶에 있어 언제 어디서든 마음을 비우는 게 잘 사는 관건인 듯합니다. 부처님께 삼배의 예를 올린 스님들, 이곳저곳 살피더니 노무현 대통령 영정에 호기심을 나타냅니다. 없던 게 있다는 표정입니다. 그에게 고개 숙입니다.

금전산 금둔사 유래가 흥미롭습니다. 금전산(金錢山)은 "처음 창건 당시 현우경에 석가세존 500나한 중 정진제일 금전비구의 이름을 인용하였고, 산 위에 여러 모양으로 서 있는 암석은 500나한이 선정에 든 모습"이라 합니다. 또 "금둔사(金芚寺)의 '금'은 부처님이고, '둔'은 싹이 돋는다는 뜻으로, 일체 중생은 각기 불성을 갖추어 있기에, 스스로 조건만 맞추어 주면, 누구나 부처님이 된다"는 의미랍니다.

인간세계를 내려다 보니, 마치 금둔사가 선계 같습니다.
 인간세계를 내려다 보니, 마치 금둔사가 선계 같습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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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스님 계십니까."

법당을 나온 스님들, 큰 스님 행방을 묻습니다. "한 시간 전까지 뵈었는데, 어디 계신지 모르겠다"는 답입니다. 큰 스님이라는데 쉽게 만나면 재미없지요. 전화를 걸어 있는 곳을 수소문합니다. 전화 통화에서도 존경과 경의가 배어 있습니다. 행자 때와 선원에 기거하며 가르침을 많이 받았다는 설명뿐입니다. 궁금증이 밀려듭니다.

"대체 큰 스님 법명이 뭡니까?"
"지허 스님!"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 했거늘, 이럴 땐 아무 소용없습니다. 태고선원을 지나 법성각으로 향합니다.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낙엽과 흰 고무신 한 짝 댓돌에 놓였습니다. 걸음을 멈춰 산 아래를 봅니다. 그동안 살아왔던 지상세계가 낯설게 느껴집니다. 서 있는 이 자리가 본디 살아왔던 선계처럼 여겨지는 건 왜일까!

아껴서 사는 것이란? 어디서 왔는지 아는 거

스승과 제자의 인연은 꽉찬 즐거움이었습니다.
 스승과 제자의 인연은 꽉찬 즐거움이었습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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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을 만나러 가는 길은 금둔사 단풍만큼이나 설레임이었습니다.
 님을 만나러 가는 길은 금둔사 단풍만큼이나 설레임이었습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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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께 삼배하십시오!"

그동안 절을 하던 말던, 괘념치 않던 덕해 스님, 낮은 중저음으로 삼배를 강요(?)합니다. 얼떨결에 네 분 스님과 함께 삼배했습니다. 절이 익지 않아선지, 기우뚱기우뚱. 그들의 삼배 속도를 따를 수 없습니다.

목간에 함께 들고서도 겉돌았던 분위기가, 삼배 덕분에 조금씩 일행이 되어 갑니다. 삼배 후, 굳은 얼굴이 확 피었습니다. 그리고 큰 스님 입에서 떨어진 말씀.

"느그들이 요렇게 모일 줄 몰랐다. 잘들 살았냐? 너는 제주도 그대로 있고? 넌 보성에 있을 테고? 너는 구례에서 잘 하지? 넌 어디에 있냐?"

묻기에 바쁩니다. 큰 스님이시라 길래, 반가움을 다 드러내지 않고 살짝 숨기며, 짐짓 목소리에 힘도 줄 거라 여겼던 걸까. 격 없는 살뜰한 말에 웃음 터질 뻔했습니다. 반가우면 그만인 것을. 나무 석가모니불!

네 명의 제자와 마주 앉은 스님 얼굴에 형언할 수 없는 뿌듯함이 서려 있었습니다. 든든함 자체였습니다. 꼭 명절에 집에 온 자식들 맞이하는 분위기랄까. 방이 꽉 차 보였습니다.

"나보다 먼저 죽은 제자가 벌써 네 명이나 돼. 느그들도 아껴서 살아라. 몸이 어디서 왔는고? 송장 끌고 다니는 게 누군고? 그걸 아는 게 잘사는 거고, 또 아껴서 잘사는 거여."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차를 우려내는 손에도 반가움 가득합니다. 깨달음의 길에 있어 기본에 충실하자는 충고도 아끼지 않습니다.

"조계산이 비었다? 중이 중노릇 못해 주인 없어"

지허 스님 책상에 놓인 책과 노트, 안경, 돋보기 등이 열정적 삶을 대변하는 듯합니다.
 지허 스님 책상에 놓인 책과 노트, 안경, 돋보기 등이 열정적 삶을 대변하는 듯합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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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만난 스승과 제자, 의기투합해 점심 공양에 나섰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스승과 제자, 의기투합해 점심 공양에 나섰습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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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량석이 기가 막히게 좋은 걸 할 때마다 느낀다. 새벽공기도 좋고, 운동에도 좋고. 건강에도 좋다. 도량석으로 세상을 깨울 때면 벌레까지 다 알아듣는다. 어떨 땐 벌레들이 '오늘은 왜 그리 힘이 없소' 한다."
"저도 새벽에 도량석 하고 나면 뿌듯합니다. 혼잔데도 메아리가 받아줘 둘이 주고받는 것 같습니다."

스승과 제자, 쿵짝이 잘 맞습니다. 무슨 말을 해도 서로 흐뭇합니다. 염화미소를 아는 게지요.

"니가 만들어 준 막대기 아직 있다. 기억나냐? 하하하."
"그럼요. 딱 하나 만들었거든요. 얼마나 정성을 들였는데."

흉금을 털어 놓을 즈음 살며시 일어납니다. 방을 둘러봅니다. 책상 위에 책과 볼펜, 노트가 어지러이 어울렸습니다. 그 위에 안경과 큼지막한 돋보기가 놓였습니다. 여든을 앞둔 노스님의 사그라지지 않은 열정 앞에 부끄러움이 앞섭니다. '삶은 곧 공부'인 것을.

-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나라가 어지럽습니다. 현 시국을 사자성어로 정리하신다면?
"인과응보. 아버지를 그렇게 보냈으면 자식 된 도리로 정치의 '정'자도 피해야 했어. 자기가 타고난 복을 수행 못해 오히려 자기가 화를 입은 거야. 자기 삶의 주인이 못된 거지."

- 주인이란 무엇입니까?
"수행은 혼자 가는 길. 정진해서 자기 본래 모습을 찾는 게 주인. 근래 이런 사람이 드물어 걱정스럽다. 조계산이 비었다. 선암사와 송광사 등 중이 중노릇을 못하니 주인이 없는 거야."

아, 뿔, 싸!

절집 금둔사 마당에 내려 앉은 은행 잎 무리, 한 곳만 바라 봅니다. 하얀 고무신...
 절집 금둔사 마당에 내려 앉은 은행 잎 무리, 한 곳만 바라 봅니다. 하얀 고무신...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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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둔사 태고선원에는 고요가 있었습니다.
 금둔사 태고선원에는 고요가 있었습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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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삶인 것을, 주인되지 못하고...
 그저 삶인 것을, 주인되지 못하고...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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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제 SNS에도 올릴 예정입니다.



태그:#금전산 금둔사, #순천, #스승과 제자, #박근혜,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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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힐 수 있는 우리네 세상살이의 소소한 이야기와 목소리를 통해 삶의 향기와 방향을 찾았으면... 현재 소셜 디자이너 대표 및 프리랜서로 자유롭고 아름다운 '삶 여행'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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