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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11월 13일, 노동자 전태일 님은 온몸에 불을 당겨 스스로 불꽃이 되어 어두운 나라와 어두운 거리와 어두운 공장과 어두운 마을을 밝히려고 했습니다. 스물두 해를 고이 기른 아들이 시커멓게 타들어 죽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며 아들이 남기는 말을 듣던 어머니 이소선 님은 이 자리에서 '태일이가 하고자 했던 일이 무엇인지 자세히 모르지만 근로자를 위하는 일로서 평소 태일이의 성품을 보았을 때 좋은 일, 훌륭한 일일 거야. 그렇지만 쉬운 일이 아니고 이렇게 목숨까지도 바쳐야 하는 무척 어려운 일이겠지' 하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목숨을 바쳐 불꽃이 된 아들이 남긴 말을 들은 어머니 이소선 님은 이날 1970년 11월 13일부터, 이녁 목숨이 다하고 아들 곁으로 돌아간 2011년 9월 3일까지 "노동자의 어머니"가 되어 언제나 노동자 곁에서 따사로운 품과 따끔한 말과 힘찬 몸짓으로 삶을 지었다고 합니다.

겉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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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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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일이가 동생을 일으켜 세우더니 머리를 숙이고 가만히 서 있었다. "사람이 그러는 거 아니다. 나눠 먹는 것이 사람의 도리다. 먹을 것이 생기면 아버지 어머니가 드실 것을 먼저 마련해 놓은 다음에 너희들이 먹는 것이다. 아무리 어려워도 그렇게 하면 안 된다. 이 어미가 너희들 먹는 게 아까워서 그러겠느냐? 너희들 사람 만들려고 그러는 거지." (115쪽)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 평전>(돌베개,2016)은 노동자 어머니일 뿐 아니라, 이 나라에서 가난한 시골 아이로 태어난 가시내로서, 근로정신대에서 겨우 살아남아 아이들을 낳아 돌보던 여느 어머니로서, 또 이 나라에 드리운 어둠을 걷어내려고 힘껏 싸운 어른으로서 걸어온 길을 차근차근 밝혀서 보여줍니다.

가시내는 학교에 보내지 않아 글도 책도 배울 수 없었으나 '배우고 싶은 마음'을 잃지 않던 어린 이소선 모습이 흐르고, 일제강점기와 해방과 전쟁을 모질게 겪으면서도 삶을 단단히 붙잡은 젊은 이소선 모습이 흐릅니다. 여러 아이를 맨손으로 길러서 착하며 아름답게 가르치려고 하는 다부진 이소선 모습이 함께 흐르고요.

집도 밥도 없이 판잣집 처마 밑에 비닐을 깔고 밤을 새우기 일쑤였던 아득한 살림에서도 아이들은 참으로 착하면서 대견스레 자랐다고 해요. 지붕 없는 나날을 무척 오래 살아야 했어도 아이들은 다른 사람 것을 훔치지 않았고, 외려 제 낡은 옷조차 벗어서 더 가난한 아이한테 주기까지 하면서 자랐다고 합니다.

"나는 잘못한 것 없다. 공장장이 깡패를 사서 사람을 죽게 만들어 놓고 저렇게 방치해 버렸지 않은가. 그 공장장은 처벌하지 않고 놔두면서 왜 우리만 가지고 처벌을 하는 것이냐!" 이소선은 있는 그대로 말했다. 결국 구류 9일을 살았다. (194∼195쪽)

이소선도 지지 않고 "나더러 무슨 자격으로 노동운동 하느냐고 묻기 전에, 본인은 무슨 자격으로 노동 문제에 간여하는지 생각해 봐! 근로자들이 아무리 무식하다고 해도 근거도 없이 협박하는 것은 무슨 자격으로 하는 거야! 근로자들을 짓밟으라는 자격을 누가 주었나?" 말했다. 장 계장은 "저 여자 당장 끌어내 차에 실어!" 하고 대동한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282∼283쪽)

처음에는 전태일 전태삼 전순옥 같은 이녁 아이한테 어머니이던 이소선 님입니다. 아들 전태일이 불꽃으로 타오른 뒤에는 전태일하고 함께 일하던 청계피복 노동자한테 어머니가 되어 준 이소선 님입니다. 이윽고 택시 노동자한테도, 건설 노동자한테도, 이 땅에 있는 모든 노동자한테도 어머니가 되어 준 이소선 님이에요.

아픈 아이 곁에 어머니가 머물듯이, 아픈 노동자 곁에 이소선 님이 머뭅니다. 고단한 아이한테 어머니가 밥을 차려 주듯이, 고단한 노동자가 세끼 밥을 넉넉히 먹을 수 있는 나라를 꿈꾼 이소선 님입니다. 노동자한테 기나긴 노동 시간만 있던 무렵, 아들 같고 딸 같은 노동자들 모두 '일하는 대접'을 제대로 받도록 온힘을 쏟은 이소선 님이에요.

"욕을 한 사실이 있소. 재판을 가뜩이나 지배적으로 하길래 울화통이 터져 욕을 했소. 판검사라면 공부를 많이 해서 지식이 많은 사람들인 걸로 알고 있는데, 내 상식으로 생각할 때 많이 배운 사람의 태도가 아니라고 생각했소. 배운 사람들이 그렇게 진실되지 못하게 사람을 업신여기고 야비하게 몰아붙이는 것을 보니 화가 치밀었소. 그래서 재판장이나 검사가 먼저 죽어야 우리가 살 수 있지, 이런 식으로 하다가는 우리가 정말로 다 죽겠다는 뜻으로 욕을 했소."(352쪽)

"박정희 독재가 죽어서 민주주의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더 지독한 놈(전두환)이 나타나서 지금 민주주의를 빼앗으려고 합니다. 학생, 노동자 똘똘 뭉쳐서 전두환을 몰아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또다시 군복 입은 놈들에게 민주주의 빼앗겨 독재의 암흑 속에서 두들겨 맞다 죽을지도 모릅니다. 여러분!" (410쪽)

어머니 이소선 님은 사람답게 살자고 외친다면 모두 전태일하고 같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녁 아들 전태일은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수많은 노동자 가운데 하나"라고 이야기합니다. 일하는 사람이 참답게 제 권리를 찾을 수 있도록 외친다면 누구나 전태일이요, 이 땅을 슬기롭고 씩씩하게 바로세울 수 있는 노동자라고 이야기합니다.

이러면서 어머니 이소선 님은 '수많은 전태일'을 감싸고 보듬고 보살피려는 몸짓으로 살아왔어요. '많이 배운 사람'이 보여주는 바보스러운 몸짓을 따끔히 나무랍니다. 이 때문에 옥살이를 해야 하더라도 '수많은 전태일'이 기운을 내도록 마음을 쏟아요. 그리고 '많이 배운 사람'도 '적게 배운 사람'을 얕보거나 깔보는 몸짓이 아닌, 서로 어깨동무할 수 있는 길을 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됩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전태일입니다. 내 아들 전태일이라고 특별한 사람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전태일, 전태일 하고 외치니까 전태일입니다. 여러분이 없다면 무슨 전태일이 있겠습니까? 자신의 권리를 찾고 모든 노동자들이 인간답게 살게 하기 위해 외치는 사람 모두가 전태일입니다." (545쪽)

대통령도 전태일이 되기를 바랍니다. 판사와 검사뿐 아니라 경찰과 군인도 전태일이 되기를 바랍니다. 공무원과 회사원도 저마다 선 자리에서 아름다운 전태일이 되기를 바랍니다. 서로 아끼는 따사로운 손길로 즐겁게 일하는 전태일이 되기를 바랍니다. 배를 곯는 어린 여공한테 풀빵을 사 주던 전태일처럼, 대통령을 비롯한 모든 자리에서 사이좋게 손을 맞잡고 아름다운 일터와 마을과 보금자리를 꿈꿀 줄 아는 전태일로 거듭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혼자 더 많이 가지려고 해 본들 재미없지 않을까요? 함께 나누며 기쁘게 두레를 할 줄 아는 몸짓일 때에 웃음도 노래도 흐드러지지 않을까요? 한결같은 사랑과 씩씩한 줏대로 노동자 모두한테 어머니가 된 이소선 님 이야기를 담은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 평전>을 이 가을 11월에 새롭게 되새깁니다.

덧붙이는 글 |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 평전>(민종덕 글 / 돌베개 펴냄 / 2016.9.3. / 25000원)



노동자의 어머니 - 이소선 평전

민종덕 지음, 돌베개(2016)


태그:#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 평전, #이소선, #인문책, #전태일, #노동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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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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