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박근혜 대통령의 변호를 맡은 유영하 변호사가 1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변호인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날 유 변호사는 "현직 대통령이 새로운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번번이 검찰 조사를 받아야 한다면 의혹 해소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국정 수행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 밖에 없다"며 "검찰이 모든 의혹을 충분히 조사해서 사실관계를 대부분 확정한 뒤에 대통령을 조사하는 것이 합리적이다"고 말했다.
▲ 박근혜 대통령 변호 맡은 유영하 "조사 늦춰야" 박근혜 대통령의 변호를 맡은 유영하 변호사가 1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변호인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날 유 변호사는 "현직 대통령이 새로운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번번이 검찰 조사를 받아야 한다면 의혹 해소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국정 수행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 밖에 없다"며 "검찰이 모든 의혹을 충분히 조사해서 사실관계를 대부분 확정한 뒤에 대통령을 조사하는 것이 합리적이다"고 말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대통령 이전에 여성으로서의 사생활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해명해야 한다."

더불어민주당 박경미 대변인이 15일 오후 내놓은 현안 브리핑 중 일부다. 이날 검찰에 선임계를 낸 박근혜 대통령의 '변호인' 유영하 변호사가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 앞에서 연 기자회견 말미에서 한 폭탄 발언(?)에 즉각 화답한 것이다. 유 변호사의 그 기기묘묘한 당부는 이랬다.

"그리고 끝으로 대통령이기 전에 여성으로서의 사생활이 있다는 점도 고려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의 7시간'에 대한 의혹이 다시금 재점화되는 마당에 "여성으로서의 사생활"을 언급한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줄을 잇고 있다. 박 대통령에게 '여성', 그러니까 사회적인 약자나 소수자의 정체성을 덧씌우려는 시도가 가당치 않다는 것이다. 특히나 복수의 매체를 통해 '대통령의 7시간' 잠적이 보톡스와 같은 미용(주사) 시술과 관련된 것이 아니냐는 의혹 보도가 지속적으로 터져 나오고 있는 시국에는 더더욱.

이와 관련 국민의당 김광수 의원은 15일 원내대책회의 석상에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다"면서 "박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당일 때 8차례 보고를 받고도 단 한 차례도 지시를 내린 적이 없다"고 말했다. '대통령의 7시간'과 관련 SBS <그것이 알고 싶다>도 오는 19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과거와 현재에 대해 보도할 예정이다.

이런 가운데 여야 특검 합의와 대통령 검찰 조사를 앞두고 '대통령의 변호인'이 "여성으로서의 사생활"을 언급한 것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이 발언뿐만이 아니다. 유 변호사의 기자회견 내용은 박 대통령이 여전히 현실 인식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성실히 조사를 받을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유 변호사의 말을 하나하나 곱씹어 보자.

여전히 정신 못 차린 박 대통령의 꼼수



"헌법상 현직 대통령은 재직 중 내란·외환죄 이외에 소추를 받지 않도록 불소추 특권이 인정되고 있습니다. 이는 대통령의 임기 중 수사, 재판을 받으면 국정이 마비되고 국론이 분열되는 상황이 우려되기 때문에 국가 공동체를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헌법상의 보호장치인 것입니다.

따라서 원칙적으로 대통령에 대해서는 내란·외환죄가 아닌 한 수사가 부적절하고 본인의 동의 하에 조사하게 되더라도 대통령의 직무 수행에 지장을 최소화하는 방법으로 진행돼야 하는 것이 헌법 정신에 부합하는 것으로 저는 판단하고 있습니다.

원칙적으로 서면조사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부득이 대면조사를 해야 한다면 당연히 그 회수를 최소화해야 할 것입니다. 현직 대통령이 새로운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번번이 검찰 조사를 받아야 한다면 의혹 해소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국정 수행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협박이나 다름없다. 유 변호사는 "헌법상의 보호장치" 운운하며 "재직 중 내란·외환죄 이외에 소추를 받지 않도록 불소추 특권이 인정된다"고 못 박았다. 헌법이 그렇다는 겁박인 셈이다.

'서면조사가 바람직하다'는 대목도 현직 대통령이 검찰청 앞에 서거나 검사들이 청와대로 들이닥치는 초유의 사태를 최소화하자는 뜻으로 풀이된다. 지금까지 명백하게 범죄 혐의가 드러난 마당에 '대통령의 국정 수행 부담'을 언급하는 것은 공분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특검은 물론 검찰 조사 시기 역시 최대한 늦추려는 '꼼수'도 분명해 보인다. "검찰이 모든 의혹을 충분히 조사해서 사실관계를 대부분 확정한 뒤에 대통령을 조사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유 변호사의 주장은 축소·늦장 수사 의혹을 받고 있는 검찰에게 박 대통령이 메시지를 보내는 꼴이 아니고 뭔가. 특히 여야 합의로 특검이 합의됐건만 "검찰과 협의를 하겠다"고 밝힌 대목은 어이를 상실하게 된다.

국민들이 박근혜 대통령을 매도한다고?

법적인 문제도 문제지만, 박 대통령의 의중을 읽을 수 있는 부분은 후반부에 나왔다. 이 부분이 중요하다. 대통령 자신이 '몸통'으로 지목된 초유의 국정농단 사태에 대해 여전히 회피하고 죄를 인정하지 못하는 듯한 대목이 유 변호사의 '워딩'을 통해 나왔기 때문이다.

"대통령께서는 그동안 개인적 부덕의 소치로 주변 사람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엄청난 국정혼란을 초래하고 이에 대한 국민들의 질책과 분노에 대해 본인의 책임을 통감하시고 모든 비난과 질책을 묵묵히 받아들여 왔습니다."

그러니까, 박 대통령은 여전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개인적인 부덕의 소치로 여기고 있다. 심지어 "주변 사람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죄"로 축소시키고 있다. 지지율 5% 대통령의 생각이 이렇게도 짧다. 심지어 "비난과 질책을 묵묵히 받아들였다"며 피해자 코스프레도 마다 않는다.

"선의로 추진했던 일이었고 그로 인한 긍정적인 효과도 적지 않았음에도 이런 일이 일어나 매우 가슴 아파하고 계십니다. 온갖 의혹을 사실로 단정하고 매도되는 것에 대해 매우 안타까운 심정이지만 성실하게 수사에 협조해서 진실을 밝히는 데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이 부분이 압권이요, 핵심이다. 이미 밝혀질 대로 밝혀진 국정농단의 정황과 범죄 혐의들에 대해 박 대통령은 아직도 "선의로 추진했던 일"이라 생각한다. '창조경제', '문화융성' 등 최순실-차은택 라인 관련 정책에 쏟아부은 혈세에 대해 "그로 인한 긍정적인 효과도 적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박 대통령 자신이 국민들에게 "매도된다"고 생각한다. 가엽기 짝이 없다. 변호사가 적은 글이라 "최순실 화법"은 없어졌지만, 만연체는 여전하다. 박 대통령의 비현실적인 의중을 충분히 읽을 수 있는 글이라 할 만하다.

다시 정리해 보자. 박 대통령의 현재 의중을 추려 보면 이쯤 될 것 같다.

'헌법상에 보장된 대통령으로서의 권리는 다 누리겠다. 검찰·특검 조사는 최대한 늦게, 다치지 않고 받고 싶다. 선의로 추진한 일도 많았다. 그로 인한 경제 효과도 있었다. 나를 매도하지 말라. 나는 심지어 사회적인 약자인 '여성'이지 않은가.'

긴 말 필요없다. 탄핵은 논의가 더 필요하겠지만, 하야 혹은 퇴진은 필수다. 예나 지금이나, "박근혜는 박근혜다". 박 대통령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책임을 통감하기는커녕 어떻게든 이 난국을 모면하기 위해 임기 보장만을 원하고 있을 뿐이다. 국민들이 철퇴를 내릴 차례다.

마침, 15일 오후 기자회견을 연 문재인 더민주 전 대표는 "명예혁명"을 거론하고 나섰다. 그렇다. 혁명이 요구되는 시기다. 지난 12일 확인된 '100만 광장'의 민의를 지켜나가기 위해서, 국민들이 다시 '퇴진 혁명'에 나서야 할 때다.


태그:#박근혜
댓글8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