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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로마시대 물길로 쓰인 다리
▲ 스페인 세고비아 수로교(水路橋) 2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로마시대 물길로 쓰인 다리
ⓒ 길동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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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보고 계시는 이 다리는 여기서부터 약 16km 떨어진 프리오 강에서 물을 끌어오기 위해서 세운 것입니다. 다리는 아치가 총 148개입니다. 아치는 높이가 9m 이상인데, 중앙 부분의 높이는 28.5m로 보시다시피 2층입니다.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다리의 길이가 275m라고 하는데, 총 사용된 돌의 숫자가 무려 2만 4천여 개라고 합니다. 놀라운 사실은 시멘트나 접착제가 일체 사용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순수하게 토목기술로만 쌓은 거예요."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 북서쪽 세고비아(Segovia)의 수로교(水路橋), 흔히 수도교(水道橋)라 불리는 이 다리는 무려 2천 년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로마시대 건축물 중 가장 잘 보존된 것 중 하나라고 한다. 오늘날에도 쓰인다고 한 문헌이 있어 다리 높이의 성루에서 살펴봤지만 사실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 엄청난 다리를 악마가 쌓았다고요?"
"어디까지나 설화입니다. 유수한 건축 학자들이 와서 살펴보고 다양한 유추는 하지만 근거가 없으니 '이거다'라고 확실한 건축술을 제시하지 못하는 까닭도 있다고 봅니다. 2천 년 전 인간이 세웠다고 하기에는 상상을 초월한 부분이 많고요. 그래서 설화로서 그 불가사의에 접근을 하려는 것이겠지요."
"그 악마 좀 소개받을 수 있을까요?"

길동무 여행의 정보 해결사를 맡고 있는 한정보씨가 질문을 던졌다. 길동무는 물론 땡볕에서 설명을 하던 가이드 이 선생도 서로가 키득키득 웃음을 참지 못했다. 한정보씨는 길동무 중 성실의 대명사다. 그는 항상 여행지를 미리 공부해 꼼꼼히 자료를 챙겨 온다. 그래서 그는 이런 기발한 질문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다리 아치 사이로 보이는 첨탑이 아름답다.
 다리 아치 사이로 보이는 첨탑이 아름답다.
ⓒ 길동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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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길동무 영국 일주 여행 시 구 그리니치 천문대에 갔을 때다. 그리니치 공원을 가로 질러 세계 표준시인 해시계를 찾아 가는 중이던 한정보씨가 갑자기 갈지자 걸음을 걸었다. 그리고 얼마 후 그의 스마트폰 앱은 본초자오선의 정확한 지점을 찾아냈다. 그때 그 의미 깊은 장소에서 남긴 길동무 기념사진은 볼 때마다 의외성 가득한 미소가 소리 없는 소리로 삐져난다.

한정보씨는 자칭 음악의 대가다. 그에게는 기회가 될 때마다 꺼내는 최강 십팔 번이 있다. 김창완의 '어머니와 고등어'다. 십여 년을 들어도 한 번도 같은 편곡인 적이 없는데, 그때마다 듣는 이들은 포복졸도다. 길이도 종잡을 수 없는 그의 노래가 끝나면 어떤 의미에서건 박수를 치지 않을 수 없는데, 그는 자기의 음악성에 대한 수준 높은 화답이라고 만족해한다.

이번 여행처럼 값싸고도 질 좋은 와인이 그침 없이 분위기를 달굴 때는 길동무 장기자랑 시간이 빠질 수 없다. 여행 10일째인 그라나다의 밤이었다. 그 밤도 한정보씨 특유의 음표들이 또 빛을 발했다. 그 밤 한정보씨가 흩뿌린 그 음표들은 지금도 스페인의 시공을 떠돌며 히죽거릴 것이다.

접착제 없이 오직 돌만 쌓아올린 다리의 아치가 참 아름답고 웅장하다
 접착제 없이 오직 돌만 쌓아올린 다리의 아치가 참 아름답고 웅장하다
ⓒ 길동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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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시대 건축물 중 가장 보존 상태가 좋은 것이라고 전한다.
 로마시대 건축물 중 가장 보존 상태가 좋은 것이라고 전한다.
ⓒ 길동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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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드 이 선생의 설명이 설화로 바뀌었다.

"위험천만한 협곡에서 날마다 물을 길어 와야 하는 소녀가 있었나 봅니다. 고된 모습의 소녀를 보고 악마가 유혹을 합니다. 자기에게 영혼을 팔면 다음 날 날이 새기 전까지 다리를 세워 집 앞까지 물을 흐르게 해주겠다고 말입니다. 당장 고된 상황을 모면할 수 있다는 생각에 소녀는 선뜻 그 제안에 응했답니다. 그러나 곧 영혼을 버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커졌겠지요. 겁이 난 소녀는 성모마리아께 기도를 올립니다. 그리고 그 기도의 효험으로 악마가 다 쌓은 다리의 마지막 돌을 놓기 직전 햇살이 비치지요. 악마는 물러갈 수밖에 없었고 소녀는 영혼을 빼앗기지 않을 수 있었지요."

정말 흥미로운 것은 역사 속에 드러난 인간의 능력이다. 이 다리만 해도 11세기 회교도들에 의해 파괴가 되었는데, 15세기 들어 원형 그대로 복원했다고 전한다. 이 복원에 대해서는 위와 같은 설화도 전해지는 것이 없다. 돌아보면 세상엔 불가사의 한 인간의 업적이 참 많다. 오직 인간의 힘으로 이룬 것들이다. 그런데 그것을 이야기할 때마다 사람들은 그 업적을 신의 몫으로 돌리거나 악마를 끌어들이기도 한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이 가진 신(神)적 요소에 대해 주목을 해볼 필요가 있다. 이 신적 요소를 인간이 지닌 불굴의 의지로 바꿔 말할 수도 있겠는데, 이는 특히 하나를 이루기 위한 지도자의 능력과 그를 따르는 집단의 의지가 집중될 때 신의 업적 운운할 수 있는 것들이 탄생함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인간에게 부여된 신적 능력이 자칫 잘못 사용되어 커다란 재앙의 원인이 되는 것 또한 역사는 수많은 사례로 증거하고 있다. 

작금 길동무의 고국 대한민국은 잘못 발휘된 사람의 신적 요소로 인해 온 나라가 극심한 혼란에 빠져있다. 온 국민의 마음이 갈래갈래 찢기고 있다. 보도에 의하면 지도자가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의 신성을 믿은 결과다. 자기 영혼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영혼에 기댄 탓이다. 지도자는, 정치인들은 악마의 유혹에 잠시라도 자기 영혼을 팔아서는 안 된다. 순간이나마 영혼을 맡겨도 안 된다. 세고비아 다리에 얽힌 설화 속 소녀처럼 악마가 유혹할 틈을 주어서도 안 된다. 정치인이 신적 요소를 잘 발휘할 수 있도록 권한을 준 국민 모두가 불행해지기 때문이다.

하여 길동무는 이번 세고비아 여행에서 그 악마를 꼭 찾았어야 한다. 이 어마어마한 다리를 하룻밤에 뚝딱 쌓을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악마라면, 단숨에 헐어버릴 수도 있을 것 아닌가? 그런데 오늘날까지 멀쩡히 남겨두고 있는 맘 좋고 능력 좋은 그 악마를 찾아냈어야 한다. 만약 악마를 찾았으면 한국으로도 보내고, 현재 길동무가 사는 인도네시아로도 초청했을 것이다. 그 능력이면 도대체 해결책이 잘 안 보이는 한국의 정치 문제를 깔끔하게 한방에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인도네시아의 교통지옥 현상도 간단히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악마를 찾지 못한 것이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다. 

수로교와 어깨를 겨루는 새끼돼지 요릿집

수로교 바로 앞에 자리한 새끼 돼지고기 요리로 유명한 레스토랑 메손 데 깐디도(Meson de Candido)
 수로교 바로 앞에 자리한 새끼 돼지고기 요리로 유명한 레스토랑 메손 데 깐디도(Meson de Candido)
ⓒ 길동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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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 돼지고기 요리의 전통을 이어가는 깐디도 가의 3대
 새끼 돼지고기 요리의 전통을 이어가는 깐디도 가의 3대
ⓒ 길동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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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고비아에는 세계에 세고비아를 알리는 레스토랑이 하나 있습니다."

가이드 이 선생의 말이다. 마드리드와 세고비아의 경계인 과다라마 산맥을 꿰뚫은 긴 터널을 빠져 나올 때다. 레스토랑과 짰나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허언이 아니었다. 새끼 돼지고기 요리로 유명한 레스토랑 메손 데 깐디도(Meson de Candido), 수로교 앞에서 수로교와 좋은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감히 수로교의 전통과 필적하고 있었다. 세고비아 경제에 크게 공헌하고 있었다. 세고비아를 이야기 할 때면 왜 하필 새끼 돼지고기 요리를 들먹이는지 그 레스토랑에서 그 요리를 먹어보고서야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메손 데 깐디도(Meson de Candido) 레스토랑의 내부
 메손 데 깐디도(Meson de Candido) 레스토랑의 내부
ⓒ 길동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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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이 생생히 묻어나는 레스토랑 2층 내부
 전통이 생생히 묻어나는 레스토랑 2층 내부
ⓒ 길동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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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로교 2천 년 역사와 그 레스토랑의 132년 역사는 어느 모로 보나 견줄 바가 아니다. 그러나 "3대를 이어가며 세계적인 명물 레스토랑으로 면모를 다져가는 그 레스토랑이 존재함으로써 수로교 또한 가치를 더욱 드높인다"는 이 선생의 평도 틀리지 않다. 레스토랑 하나가 전통을 지켜가는 특별함이 지역 경제를 움직이고 있다니, 결코 간과할 부분이 아니다.

세고비아시는 그 레스토랑 건물을 유적으로 지정했다고 한다. 스페인 요식협회와 세고비아시, 그리고 레온주에서 공동으로 레스토랑 창업자 깐디도를 기리는 헌정 기념비까지 세웠다. 유럽 전체가 동상을 많이 세우는 문화지만 역사적 위인도 아닌 일개 식당 창업자의 동상이라니, 한국의 정서와는 너무도 차이가 난다.


길동무가 주문했던 레스토랑 메손 데 깐디도(Meson de Candido)가 자랑하는 새끼 돼지고기 요리. 반드시 2개월 정도의 새끼 돼지를 사용한다고 한다.
 길동무가 주문했던 레스토랑 메손 데 깐디도(Meson de Candido)가 자랑하는 새끼 돼지고기 요리. 반드시 2개월 정도의 새끼 돼지를 사용한다고 한다.
ⓒ 길동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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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디도 가의 현 주인이 멀리 한국에서 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연로함을 무릅쓰고 나와 길동무를 위해 직접 설명과 시범을 보였다.
 깐디도 가의 현 주인이 멀리 한국에서 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연로함을 무릅쓰고 나와 길동무를 위해 직접 설명과 시범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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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좀 보세요. 주변이 훤하네요."

옆에 앉은 길동무가 속삭였다. 새끼 돼지고기 요리와 그 밖의 맛깔난 요리, 이에 곁들인 와인이 몇 순배 돈 뒤였다. 수로교도 충분히 감상했고, 특식도 충분히 즐긴 다음이니 아소게호 광장을 오가는 인파들이 좀 더 구체적으로 눈에 들기 시작한 때였다. 모델인 듯했다. 튀는 옷차림에 개성 강한 선글라스, 그리고 워킹, 보는 듯 안 보는 듯 다수의 눈길이 그에게 쏠렸다. 그를 동반한 두 사람은 그의 부모인 듯했다. 그는 그의 아버지에게 카메라를 들려 수로교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그는 사진을 찍고 나서 꼭 사진을 살폈다. 몇 번이나 반복해서 다시 찍었는데 그때마다 아버지를 향해 인상을 찌푸리며 잔소리를 했다. 한 순간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카메라를 넘기려 했다. 자신의 실력으로는 도저히 딸을 만족시킬 사진을 못 찍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어머니는 손사래를 치며 물러섰다. 놀라운 것은 아가씨의 순간 반전하는 표정이었다. 사진을 찍을 때와 사진을 찍고 난 후, 그리고 아버지에게 잔소리를 할 때의 표정이 그야말로 묘기였다. 자세히 본 사람이면 저절로 끌끌~ 혀가 차질 수밖에 없는 상황, 이 상황을 놓칠 복나눔씨가 아니다.

스페인 요식협회와 세고비아 시, 그리고 레온 주에서 공동으로 세운 레스토랑 창업자 깐디도를 기리는 헌정 기념비
 스페인 요식협회와 세고비아 시, 그리고 레온 주에서 공동으로 세운 레스토랑 창업자 깐디도를 기리는 헌정 기념비
ⓒ 길동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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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제 모습이 제대로 찍힌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그래서 카메라가 더 발전하기 까지는 가급적 사진 찍기를 자제하려고 합니다."

이런, 이런 경우가 있나. 이구동성 모두 다 사진 속의 자기 모습이 실물보다 훨 못 미친단다. 난 나만 그런 줄 알았다. 옥석을 가려볼 일이다. 그러나 오란 데가 많은 여행 중이니 시시비비는 나중에 가릴 수밖에 없다. 세고비아만 해도 아직 귀부인이라는 별명을 가진 세고비아 대성당과 마요르 광장, 그리고 구 시가지가 있다. 백설공주 성으로 유명한 알카사르 성도 있다. 모두 목 빠지게 길동무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가족사진 찍읍시다."

길동무는 수로교를 떠나기 전 다리를 배경으로 나름의 포즈들을 취했다. 도저히 실물을 따르지 못할 사진 기록을 그렇게 또 하나 남겼다.

덧붙이는 글 | 여행을 위해 ‘길동무’란 이름으로 뭉친 인도네시아에 사는 한국인 다섯 부부의 스페인 포르투갈 여행 이야기입니다.



태그:#길동무, #수로교, #세고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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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가. 2015년 5월 인사동에서 산을 주재로 개인전을 열고 17번째 책 <山情無限> 발간. 2016, 대한민국서예대전 심사위원장 역임. 현재 자카르타 남쪽 보고르 산마을에 작은 서원을 일구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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